1. 최근 정부가 124조 원 규모의 지역 공약 이행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이를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 우선 이 계획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죠.
⇨ 지난 5일 기획재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 공약을 뒷받침할 167개 공약 사업 이행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이 계획은 96개 신규 사업에 84조 원을 투입하고, 71개 계속 사업에 40조 원을 투입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계획에는 구체적인 예산 소요 규모나 재원 조달 방안 등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인데요. 지난 5월에 정부가 중앙정부 '공약 가계부'를 발표하면서 지하 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정비 등으로 134조8000억 원을 확보한다는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2. 얼마 전 정부가 '공약 가계부'를 발표하면서 SOC 예산을 상당히 줄여서 복지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는데요. SOC 사업이 대부분인 지역 공약 사업에 124조 원을 투입한다면 SOC 예산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 아닙니까?
⇨ 지난 5월 정부가 향후 4년간 SOC 예산을 11조6000억 원 줄여서 복지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올해 중앙정부 SOC 예산이 25조 원 규모인데, 경제 위기라는 특이한 상황에서 투입된 것도 많기 때문에 이를 21조~22조 원 규모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설명이었습니다. 즉 중앙정부 SOC 예산을 매년 3~4조 원씩 줄여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SOC 사업이 대부분인 지역 공약 사업에 124조 원을 별도로 투입한다고 하니, 도대체 토건 예산을 줄이자는 것인지 아니면 늘리자는 것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
3. 124조 원 규모의 지역 공약 사업들 중에서 토건 사업 비중은 어느 정도 됩니까?
⇨ 정부는 지난 5일 지역 공약 이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106개 지역 공약 목록도 동시에 소개했는데요. 이 공약들을 보면 99% 이상이 토건 사업입니다.
4. 정부는 지역 공약 이행 계획에 들어 있는 124조 원의 토건 사업을 반드시 현 정부 하에서 완료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이 재원을 현 정부 하에서 다 조달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주장,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 물론 정부가 그런 편법(꼼수)을 통해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무책임한 편법이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준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토건 사업의 특징은 대부분 5년, 10년, 15년 이상의 계속 사업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권이 표를 구걸할 목적으로 시급하지도 않은 토건 사업을 일단 시작해 놓으면 나중에 이 사업이 엉터리로 판명된다 하여도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즉 10년간 1조 원의 토건 사업을 한다고 할 때 5년쯤 지나 5000억 원이 투입되었는데, 이 사업이 낭비적인 엉터리 사업으로 판명된 경우 시쳇말로 빼도 박도 못하고 5000억 원의 혈세를 그냥 허비하고 마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106개 지역 공약 대다수가 경제사회적인 타당성보다는 표를 의식한 퍼주기식 사업이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됩니다.
5.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약속은 꼭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슬로건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대통령이 약속을 꼭 지키면 국가 재정에 큰 재앙이 닥치는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곤혹스러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 정치인의 공약은 당선된 후 유권자들 대다수가 원하는 한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가 당선된 후 유권자들 대다수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공약은 지켜져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나중에 엉터리로 판명된 공약도 무조건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결코 합리적인 주장이라 볼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공약은 몇 %를 지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민심에 부합하는 공약을 몇 % 지켰느냐가 중요합니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유권자들 대다수가 원하지 않았던 엉터리 공약, 즉 4대강 사업과 유사한 엉터리 공약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6. 지역 토건 공약 실천에 필요한 124조 원의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도 주요 관심사인데요. 중앙정부 공약 재원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정부가 124조 원의 재원을 추가로 마련할 수 있을까요?
⇨ 그래서 정부가 모색하고 있는 고육지책이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재원 부담을 차기 정부로 넘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자 사업을 늘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둘 다 생색은 현 정부가 내고 부담은 후세대로 넘긴다는 것인데요. 더 황당한 것은 이렇게 염치없이 부담을 후세대로 넘기는 토건 사업들 대다수가 경제사회적인 타당성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7.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돈 나올 데가 없기 때문에 현 정부 하에서 민자 사업 의존도가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민자 사업에 대한 많은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민자 사업의 어떤 점들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까?
⇨ 민자 사업이라는 것은 대개 정부나 지자체가 민간 투자자들에게 30~40년간 비용이나 수익을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추진됩니다. 따라서 민자 사업은 국가나 지자체 재정을 직접 투입한 SOC 사업과 다른 특징이 있는데요. 그것은 이것이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겁니다. 첫째, 국가 재정을 투입한 SOC 사업은 현세대가 전액 부담하지만, 민자 사업은 그 부담을 후세대에게 미루는 것입니다. 이런 사업은 후세대에 대한 현세대의 착취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대개 SOC 사업은 부유한 지역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유한 지역은 일찍 개발되었다는 이유로 국가 재정으로 사회 기반 시설을 제공받고, 소외 지역은 개발이 늦었다는 이유로 민자 사업으로 사회 기반 시설을 제공받을 경우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더 심화됩니다.
8. 과거에 민자 사업은 최소운영수입보장제(MRG) 때문에 논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이 제도 대신에 최소비용보장제를 도입한다고 하는데요. 양자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 최소운영수입보장제(MRG, Minimum Revenue Guarantee)는 SOC에 대한 민간 투자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미리 계약해 놓은 운영 수입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수익의 일정 부분을 보전해 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제도가 과거에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양측이 뻥튀기 수요 예측을 해서 운영 수입 기준을 천정부지로 높여 놓고 정부나 지자체가 국민들 혈세를 물 퍼주듯이 퍼준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정부는 이 제도 대신에 민자 사업자가 투자한 원금을 보장해주는 최소비용보장제를 도입한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최소비용보장제 정도의 인센티브로는 민간 투자자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려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9. 최소비용보장제 정도에 민간 투자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부는 다른 혜택을 줘서 이들을 유인하지 않을까요?
⇨ 다른 별도의 혜택을 주려 하겠지요. 토지 보상비를 일부 부담해 준다거나, 인접 도로 혹은 진입 도로를 개설해 준다거나, 국유지를 헐값에 넘겨준다거나, 별의별 유인책을 다 동원할 겁니다. 문제는 이런 유인책 모두 국민들 부담이라는 것입니다. 또 더 큰 문제는 이런 민자 토건 사업들이 수많은 편법과 꼼수를 동원해야 할 만큼 그렇게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니라는 겁니다.
10. 그러나 일부 지자체들은 현재 경부고속도로의 혼잡이 심하기 때문에 제2 경부고속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 제2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기도 구리시와 세종특별자치시를 연결하는 총연장 129㎞의 도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설날과 추석 등 명절 때도 서울-부산이나 서울-광주의 주행시간이 평일의 2배가 안 되는 상황에서 도로를 마구 개설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충분히 따져보아야 합니다. 또 나중에 연구 기관들에 의해 이 도로의 경제적 타당성이 확인된다 하더라도 그 재원은 전국에서 무수히 개설되고 있는 다른 도로 건설 사업을 억제해서 조달해야 합니다.
11. 명절 때 고속도로가 혼잡해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이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 정부 관료들과 여야 정치인들이 약간만 창의력을 발휘하면 이 사람들의 고통을 확실하게 덜어줄 수 있습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대체휴일제 입법화를 모색하고 있는데요. 이 제도는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치는 경우 대체휴일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이 휴일은 연평균 2일 정도라 하는데요. 향후 정부가 대체휴일제를 시행하되 그 대체휴일을 명절(설날과 추석) 때로 몰아주어 '명절 휴일 5일제'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향후 5년간의 달력을 토대로 추정한 바에 따르면 이 제도를 시행할 경우 2014년, 2016년, 2018년에는 2일의 휴일이 더 필요하고, 2015년에는 3일이 더 필요하며, 2017년에는 4일이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명절 휴일 5일제'를 제도화한다면 명절 때 고속도로 혼잡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크게 줄어들 겁니다.
12. '명절 휴일 5일제'를 시행하면 최대 4일까지 추가 휴일이 늘어나게 되는데요. 그렇게 되면 기업 측에서 강하게 반발하지 않을까요?
⇨ 기업 측에서 강하게 반발한다면 '명절 휴일 5일제' 시행으로 추가되는 휴일이 3일 혹은 4일인 경우에 한해, 명절 휴일 5일제가 시행되는 시기의 전 주 혹은 후 주 토요일에 1~2일 정도 더 일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제도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13. 불필요한 토건 사업을 줄여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여야 정치인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불필요한 토건 사업을 남발하고 있는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지금은 원칙적으로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인 토건 사업에 대해서만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예비 타당성 조사도 대부분 한국개발연구원과 교통연구원 등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연구 기관들이 정부와 정치권에 재정적으로 예속되어 있다 보니 국민들이 원하는 수준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엉터리 조사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경우도 많고요.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들 검증 기관들이 정부와 정치권의 예속으로부터 독립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들 기관의 예비 타당성 조사 부분을 떼 내어 노사정위원회 산하에 두고 재정적으로 독립된 상태에서 토건 사업 타당성 검증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 1년에 5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토건 사업의 타당성을 지금보다 훨씬 더 광범하고 정밀하게 검증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토건족 관료들과 토건족 정치인들로 인해 매년 수조 원의 토건 예산이 낭비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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