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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협동조합 붐? 이 시대의 오래된 미래"

[협동조합 프레시안] <월간 아젠다> 창간…양홍관 기획위원

'이런 잡지 하나 나올 때 됐다'고 생각할 즈음, 딱 그 때 잡지 하나가 창간됐다. "지방중심시대, 자치와 협동"을 기치로 내건 <월간 아젠다>.

사실 '지방중심시대'라는 슬로건은 20여 년 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지방선거 때마다 반복된 얘기였지만,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발전 속도는 더뎠다. 여전히 중앙 정부에 예속, 혹은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자치단체의 재정과 권한, 주민들의 참여 자치 경험 부족 등이 원인이다.

그런데 2010년 민선5기 지방자치단체들이 다양한 주민 참여 자치 실험들을 진행하고,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자치에도 질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월간 아젠다>는 창간 취지를 통해 "실질적인 주민자치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자립적 경제활동에 그 기반을 둔다"며 "각 지역에서 저마다 민주주의 원리를 생활 속에서 실현해 나가고,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는 다양한 우애적·협동적 활동들을 만들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자치의 소망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 <월간 아젠다> 창간호.
협동조합은 '1인 1표'라는 민주주의적 원리를 바탕으로 협동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하는 조직이다. 자치와 협동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이와 같은 시대 흐름 속에서 <월간 아젠다>는 "협동과 자치의 활동들을 널리 취재·보도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공적 행복을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고 한다"는 취지로 창간됐다. <프레시안>은 잡지의 창간을 이끈 양홍관 기획위원을 만났다. 인터뷰는 5월 30일 서대문 '삶의 출판 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잡지를 내는 출판사도 직원협동조합 형태다.

감옥에서 얻는 세 가지 병

양홍관 기획위원이 <월간 아젠다> 창간에 나선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개인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92년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1998년까지 복역했었다.

"감옥에 7년을 있으면서 정치범은 물론 일반 사범까지 장기수들을 보면 감옥에 고립돼 개조를 강요 받다 보니 병이 세 가지 생기더라구요. 첫 번째 병은 조잡증입니다. 작은 공간에 갇혀 작은 문제를 갖고 하루 종일 고민해야 하니까 작은 것에 집착이 강해지고 조잡해질 수밖에 없어요. 두 번째 병은 조급증입니다. 항상 선착순이니까 목욕을 해도 내가 먼저 가서 빨리 해야 되고, 뭐가 나오면 내 것부터 챙겨야 하고. 세 번째 병은 독선증입니다. 조잡해지고 조급해지니까 자기 중심적이 돼 버리고 작은 일에도 소통하지 못하고 싸우고. 저도 돌아보니 그런 병에 걸려 있더라구요. 그런데 둘러보니 우리 사회도 그런 거예요. 분단이라는 공간적 상황 속에서 독재와 큰 힘을 가진 나라들의 억압 속에 살아 남기 위해 60년을 살아오다 보니 조잡해지고 조급해지고, 대화와 소통이 안 되니 자기 고집이 세지고.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양 위원은 감옥에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생명사상을 공부하고 '협동조합'을 배웠다. 199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를 보면서 대안을 찾다가 스페인 몬드라곤 등을 공부했다. 1998년 출옥 후에는 노동자 협동조합을 차렸다. 당시에는 협동조합 기본법이 없어 법률적으로 협동조합은 아니었지만, 배운 바를 바탕으로 주변의 실업자 6명을 모아 '1인 1표'의 협동조합적 운영 틀을 짰다.

▲ 양홍관 기획위원. ⓒ프레시안(김하영)


1998년 협동조합을 만들다

그가 시작한 협동조합은 한약 전문 택배업이었다. "아이템이 좋았다"고 한다. 한약은 위생이 중요한데 일반 택배에 섞여 가는 것을 불안해 하는 한의사와 소비자들이 많았고, 그의 택배업은 틈새시장을 정확히 파고 들었다.

협동조합으로 시작한 것도 사업 성장에 도움이 됐다. 고정 월급 지출이 없이 수익을 분배하다보니 초기 자본 부담이 크지 않았다. 특히 "개개인의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1년 만에 참여 직원 조합원이 50명으로 늘어났다. 양 위원은 "너무 잘 돼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회사가 너무 빨리 크니까 사람들이 너도 나도 들어왔지만,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협동조합에서 조합원들의 관계는 어때야 하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협동조합적 의사결정이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개별 이익에 따라 의견 그룹화가 이뤄지고 주도권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협동조합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강의도 하고 회의도 자주하고 친분을 유지하면서 "협동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기쁨을 만끽했지만, 일이 늘고 직원(조합원)이 늘어나면서 교육과 소통에 소홀해졌다고 한다. 양 위원은 "협동 관계가 아니라 사업적 마인드로 가면 분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교육과 훈련, 정보 공유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민주주의는 결국 소통입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타인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에 대한 존중, 자존감이 높지 않은 것 같아요. 자기가 자신을 무시하니 남도 무시하는 겁니다. 민주주의적 소양의 토대가 약하면 협동조합 토대도 단단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중요합니다.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깨닫고, 남을 존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도 협동조합도 가능해지겠죠."

2년 만에 한의 택배에서 손을 뗀 양 위원은 자신의 거주지인 남양주에서 생협 활동을 시작했다. 팔당 지역 유기농 단지 농민들과 힘을 모아 '팔당 생명살림 생협'을 만들었다.

"저는 계속 비주류였던 것 같아요. 정읍이라는 산골짜기에서 태어난 것도 비주류였고, 열 살에 서울로 전학왔는데 전학 왔으니 비주류고, 공부를 못해 비주류고, 돈도 없어 비주류고. 경쟁에서 낙오하다 보니 비주류고, 내 인생이 허무하잖아요. 그런 제게 종교가 사랑을 가르쳐줬어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우리가 넘어서야 할 궁극의 과제라는 것을 배웠어요. 그런데 협동을 배우면서 협동하는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형성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개인적으로 사상의 큰 변화였죠. 협동적 삶을 살면 존엄해질 수 있겠구나. 이런 화두를 갖고 감옥에서 나와 보니 제가 사는 지역(남양주)에 유기농이 싹트고 있더라구요. 처음에는 제가 사는 지역에서 협동 운동을 하려 했지만, 농사를 배울 시간도 필요하고 해서 2년만 서울에 가서 노동자 협동조합을 해보자 해서 한약 택배를 했었고, 2000년에 팔당 생명살림 생협을 시작했죠."

유기농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을 아우르는 생협을 하면서 그가 가장 노력한 부분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보통 농산물이 집하 과정을 거쳐 서울 하나로마트로 팔려가는데, 팔당 지역 주민들이 팔당 유기농 농산물을 먹기 위해서는 다시 서울에서 사와야 하는 과정이 불합리해보였다.

"지역 아파트 단지마다 찾아가 팔았고,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마다 다 찾아가 팔았습니다. 소비자 조합원이 늘어나더군요. 그래서 우리 자산을 투자해 남양주와 구리, 하남 지역에 매장을 5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지역에 깊숙히 파고 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남양주 거주 가구수가 21만 정도 되는데, 회원이 3000명 정도니까요."

"당원 없는 정당, 시민 없는 시민단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도 생협에게는 위기였다. 4대강 사업 전까지만 해도 유기농이 물을 맑게 한다 해서 하천 부지 경작을 허용했지만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유기농이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둔갑돼 대체 부지로 쫓겨났다. 이명박 정부의 '아젠다'가 그의 활동 범위를 <월간 아젠다>로 넓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한계도 있었지만 지방 분권화, 민주적 자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토건산업 중심의 중앙 집중 방식으로 회귀했습니다."

▲ 양홍관 기획위원. ⓒ프레시안(김하영)
그리고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고 한다.

"정당을 가봐도 정당에 당원이 없고, 시민단체에는 시민이 없고, 노조에는 노동자가 없습니다. 어디를 가 봐도 다 텅 비어 있더라고요. 운동이 상층화 돼 있고 관념화 돼 있고 소수화 돼 있다고 느꼈습니다. 국민들 개개인은 저마다 절박함을 갖고 있지만 구체적 관계 속에서 결합돼 있지 않아요. 그러니 질 수밖에 없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 새로운 변화의 화두 속에서 '자치'와 '협동'에서 다시 화두를 잡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협동조합을 "오래된 미래"라고 표현했다.

"20여 년 전 생협의 등장은 사람들의 절박한 필요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내 몸이 아프고, 아이들이 아토피에 걸리고. 아, 먹을거리가 문제구나. 건강과 생존에 대한 절박함에 유기농 같은 건강한 먹거리를 찾게 된거죠. 이제 협동조합의 차례라고 봐요.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더 많은 경쟁입니다. 결국 사람들을 1 대 99의 사회로 만들었고, 반성이 시작됐습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세상이 흔들릴 때도 흔들리지 않는 곳이 스페인 몬드라곤, 이탈리아 볼로냐, 캐나다의 퀘벡이었습니다. '어, 저건 뭐지'라는 고민이 시작된 거죠. 유엔도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했잖아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생협이 생명권으로 시작이 됐다면, 지금의 협동조합은 신자유주의의 대재벌 금융자본 중심 축에 맞서는 협동사회경제 축이 새로 생기는 세계사적 전환점이라고 봅니다. 협동조합이 갑자기 등장한 것도 아닙니다. 160년 전 영국의 로치데일에서 시작돼 역사적으로 경험이 축적돼 있습니다. 전세계 10억 명 정도가 협동조합이라는 틀로 네트워크화 돼 있습니다. 오래된 미래죠."

<월간 아젠다>가 필요했던 이유는 뭘까.

"협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동조합 간의 연대입니다. 거대한 자본주의적 경쟁 시스템에서 협동하는 사람들끼리 우애적, 호혜적 연대와 협동이 없으면 협동조합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이들을 매개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아젠다를 통해 소통하고 나누고 유통하고 새로운 협동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양 위원은 현재 삶이 협동조합이다. <월간 아젠다>에 상근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남양주에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이전의 팔당생명살림 생협에도 여전히 참여하고 있으며, 한살림 조합원이고 남양주·구리 의료생협 준비위원을 하는 등 5개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잡지의 제호를 '아젠다'로 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 시대가 개개인이 저마다의 일상 생활에 매몰되면서 화두가 없어요. 의제가 없습니다. 방향성을 잃었다는 문제 의식이 있었습니다. 사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져야 할 의제가 있어야 합니다. '자치와 협동'이라는 아젠다를 갖고 가겠다는 의미입니다."

2013년. '지방 중심 시대, 자치와 협동'은 아젠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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