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진정성을 보이면 2005년 9.19 합의를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는 케리 장관의 말에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정 전 장관은 "9.19 선언의 핵심은 북의 핵무기 포기 결단과 미국의 대북 적대 관계 청산"이라며 "케리 장관의 언급은 과거 대북 무시 정책의 실패를 수정하고 대화 테이블을 열겠다는 의지 표명"이라고 반겼다.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한미 양국의 대화 제의에도 중거리 미사일 발사와 개성공단 완전 폐쇄 조치로 가면 강대강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에 정 전 장관은 "이젠 북한이 멈출 차례"라고 했다. "미사일 발사는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했고, "남북이 이제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마주 앉아 조속한 정상화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 전 장관에게 개성공단 중단 사태는 남다른 사건이다. 그가 통일부 장관 시절 가장 역점을 두고 일군 사업이 바로 개성공단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1, 2차 핵실험 때는 핵문제와 별개로 정상운영되던 개성공단이 이번에 멈췄다. 그는 "지난 5년간 단 한 차례도 6자회담이 열리지 못했고 그 속에서 3차 핵위기가 발생했다"며 "그 불똥이 이제 개성공단으로 옮겨붙은 것"이라고 했다.
해법은 역순이다. 그는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5년간 누적된 남북의 적대를 풀고, 더 나아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법이 가동되는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북한에도 당부했다. "북한이 정말 미사일을 쏜다면 개성공단의 잠정 중단사태도 길어질 것이지만, 공장을 최대한 빨리 가동시키면 정치군사적 위기가 닥쳐도 공단은 돌아간다는 빛나는 가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한반도 문제의 총체적 위기 상황을 마주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의 닉슨이 되라"고 조언했다. "우리의 외교적 주도권 행사를 통해 북한이 핵을 내려놓고 평화 협정으로 갈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한다. 한반도의 탈냉전을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한반도 냉전의 종식에 앞장서라는 주문일텐데,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옆엔 헨리 키신저 같은 설계사가 안보인다."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편집자>
"마주 달리는 열차, 이젠 북한이 멈출 차례"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에 대화 제의를 했다. 북한이 진정성을 보이면 2005년 9.19 합의를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는 건데, 미국의 이같은 제안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나?
정동영 : 9·19 공동성명은 북핵 해결의 종점이자 출발점이다. 9·19 선언의 핵심은 북의 핵 무기 포기 결단과 미국의 대북 적대 관계 청산이다. 지난 5년 한미 양국의 대북 무시 전략 아래 북은 두 차례 핵 실험과 세 차례 핵 투발수단 발사 시험으로 핵 능력을 대폭 키워 버렸다. 이제 북은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 하려고 하지만, 한국·미국·중국 모두 북의 핵 보유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은 북의 핵 보유와 미북 관계 정상화를 병행시킬 수 없는 확고한 입장이다.
이 같은 북미 간의 입장 충돌 속에 협상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9·19로 돌아가는 길밖엔 없다고 본다. 케리 국무장관이 9·19 이행을 언급한 것은 오바마 1기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수정을 의미한다고 본다. 북한 문제에 대한 engagement(개입) 전략론자인 케리 장관의 9·19 언급은 과거의 대북 무시 정책의 실패를 수정하고, 대화 테이블을 열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된다.
프레시안 : 대화 제의와 함께 케리 장관은 북한의 도발이나 위협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선택은 김정은 제1비서의 결단에 맡겼습니다. 공을 넘겨받은 북한이 한미 양국의 제안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으로 전망하나?
정동영 : 김정은 위원장과 측근 참모들의 고민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미사일 문제는 북미 관계가 중심이고 개성공단 문제는 남북이 당사자인 문제다. 북한이 3차 핵 실험 이후 지속적으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온 의도가 한미 양국의 대북 정책 변경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면, 일단 한미 양국이 대화 국면으로의 선회하고 있는 마당에 이를 거부해서 얻을 실익은 없다고 보인다.
특히 김양건 비서가 개성공단 잠정 중단 직전 앞으로 '남측의 대응 여부에 따라 공단의 존폐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한 언급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의 유지·발전에 확실한 의지를 밝혔기 때문에, 이제 남북이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마주 앉아 조속한 정상화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논의를 통해 개성공단이 재가동된다면 오히려 정치군사적 위기 속에서도 공단은 돌아간다는 귀중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대화 제의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도 이제 조금은 풀리지 않겠냐는 전망과 기대도 나온다.
정동영 :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주 달리는 열차에서 먼저 멈춘 셈인데, 적절한 조치였다. 흔히 치킨 게임이라고 하는데, 이젠 북한이 멈출 차례다. 도발적인 말과 행동을 이제 자제해야 한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은 대화 의지를 보였지만, 정홍원 국무총리가 "주먹 앞에서 대화 제의는 상황을 악화 시킨다"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통일부도 메시지 조율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
정동영 : 시스템이 정착이 아직 안 된 것 같다.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위원장을 해본 사람으로서 얘기하면, 사실 NSC 체제가 위기 상황에서 효과적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선 아예 NSC를 해체해 버렸고, 지금도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로 이원화 하지 않았나. 내부의 소통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으면 메시지에 혼선이 올 수밖에 없고, 대표적인 게 어제와 같은 일이다. 통일부 장관 시절 미국에 가면, 백악관을 가나 국방성을 가나 하는 얘기가 똑같다. 사전에 "한국에서 누가 오니까, 우리의 메시지는 이거다"라고 내려 보는 것이다. 그런 시스템 작동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과 양국 장관의 대화 언급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한다면, 다시 흐름이 다른 국면으로 전개되지 않겠나.
정동영 : 북한은 일단 우리 정부와 캐리의 메시지를 주목하고 있는 것인데, 이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미사일 발사 여부를 결정하지 않겠나.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닐 것이고, 일일이 대응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으로 전용될 수 있는 로켓도 이미 발사하지 않았나. 물론 중거리 미사일도 제재 대상이고, 유엔(UN) 결의를 위반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큰 흐름을 바꾸지 못할 것으로 본다. 오히려 국내의 일부 언론들이 미사일을 오늘 쏘는지 내일 쏘는지 중계방송 수준으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일종의 안보 상업주의인데, 국민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해서야 되겠나. 문제가 많다.
"북핵 20년의 교훈…소통 멈추면 北은 핵 개발에 전력투구"
프레시안 :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을 탓인지 남북 대화에 회의적인 기류도 강하다. "주먹 앞에 대화 제의는 상황을 악화 시킨다"는 정홍원 총리의 언급이 대표적이다.
정동영 : 북한의 의도는 명확하다. 첫째는 미국과 한국의 적대적 대북 정책을 바꾸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북미 직접 협상을 통해 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북한의 우선순위를 끌어올리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사실 오바마 정부 4년,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북한의 입장에선 철저히 무시를 당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라고 했지만, 사실 '전략적 무시'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전략적 무시 정책의 오류는 이 기간 동안 결정적으로 북한의 핵 능력을 강화해 버린 데 있다. 북한 입장에선 시간을 번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부지런히 우라늄도 농축했을 것이고, 미사일도 여러 번 발사해 사거리도 키웠고, 로켓도 발사했다.
북핵의 역사 20년을 돌아보면 공교롭게 10년을 주기로 위기가 왔다. 1993년 1차 위기, 2003년 2차 위기, 그리고 2013년 3차 위기, 즉 지금이다. 1993년 1차 위기를 해결한 게 북미 직접 대화였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통해서 10년간 핵이 동결됐다. 2003년 2차 위기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폭발했다. 그런데 이 2차 위기 이후로 10년은 어땠나. 북미 대화가 없었다. 대치 국면으로 갔던 것이다. 이 대치 속에서 10년 동안 북한의 플루토늄과 우라늄 능력은 어마어마하게 향상됐고, 핵 무기 운반수단 개발에도 성공했다. 1차 위기 이후 10년 동안 북한의 핵 능력은 그렇게 크게 증진되지 않았다. 핵 실험도 없지 않았나. 그런데 2차에서 3차 위기 사이의10년은 달랐다. 이 10년 동안 부시 정권이 6년, 오바마 정권이 4년을 집권했다. 이 기간 동안 유일하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이 개입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게 2005년 9·19 공동선언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사실 1차 핵 위기 때 한국은 구경꾼이었다. 그 때 당시 한국 외교관이 하는 일은 미국 대표단이 하는 브리핑을 들으러 다는 것 밖에 없었다. 완전히 '협상장 문 밖의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경수로 비용의 70% 부담하겠다고 나서면서 제네바 합의서에 남북 대화가 중요하다는 한 줄만 들어갔을 뿐이다. 우리 정부가 북핵 문제에선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우리 외교사에선 참담한 기록이었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남북 간 소통이 끊어지면, 남북이 통하지 않으면, 한국 정부가 '이건 우리 문제'라고 주장할 근거가 사라져 버린다. 반면 2005년엔 남북이 소통했다. 한국이 6자 회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9·19 공동선언까지 이뤄냈다. 최초로 북이 핵 포기를 결단을 선언했다. 물론 그냥 결단한 것은 아니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었다. 하나는 북미관계 정상화였고, 다른 하나는 평화 협정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9·19 선언 석 달 전인 2005년 6·15에 제가 특사로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그 때 얘기한 핵심이, "우리가 도와줄 테니 6자 회담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미국을 설득할 테니, 핵을 내려놓고 같이 풀자"고 했다.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실제 우리가 네오콘도 설득했다. 당시 외교부 장관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고 제가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다. 그렇게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북한을 6자 회담으로 복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3차 위기다. 이번에도 북미 간의 대화로만 끝나게 할 건가? 아니면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건가? 10년 전 2차 위기보다 여건도 좋다. 이제 미국 대통령이 부시가 아니라 오바마다. 대외 여건이 비교적 낫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의 국제적 지위도 달라졌다. 핵안보정상회의도 우리가 주최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이제 워싱턴에서도 "한반도 문제는 한국이 주도하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번 3차 핵 위기를 북미 간 양자 협상에만 맡겨 두기엔, 우리의 과거 경험이 명확하게 엇갈리지 않나. 우리가 협상에서 제외될 때 얼마나 참담한지, 우리가 대화에 끼어들면 얼마나 창의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지.
"北-美 팽팽한 대치, 우리 정부가 틈 벌려야"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도 대화 의지가 없어보이진 않는데, 보수진영에서 '핵 무장론'까지 나오는 마당에 잘 실행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많다.
정동영 : 얼마 전에 '박근혜 대통령, 한국의 닉슨이 되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그런데 하나 빠진 게 있다. 박 대통령 옆에 헨리 키신저가 안 보인다. 키신저 같은 설계사가 없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동방정책엔 에곤 바르라는 설계사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엔 임동원 장관이 설계사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에겐 그게 아쉽다.
1,2차 핵 위기를 돌아보면 3차 핵 위기는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킬 기회일 수도 있고, 5년을 허송세월로 보낼 위기일 수도 있다. 선택은 명확하다. 대화냐, 대치냐. 지난 5년은 대치였다. 대치하다 보니 소통이 끊어졌다. 더불어 금강산 관광도 끊어지고 적십자 교류도 끊어졌다. 이 대치 상태를 어떻게 대화 국면으로 바꿀 것이냐가 박 대통령에게 부여된 과제다.
문제는 총리의 언급처럼, 대화를 곧 '굴복'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북한 붕괴론자라는 것이다. 압박하면 무너질 것으로 믿는다. 북한은 곧 붕괴될 것이고, 붕괴시켜야 하고,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 이건 망상론이다. 북을 보고 싶은대로 보는 사람들이다. 현실주의적 접근을 해야 한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게 현실주의적 접근이다.
페리프로세스 역시 '있는 그대로 북한을 보자'는 것 아니었나. 그 때는 핵도 아니고 미사일 문제였다. 페리프로세스의 결실이 2000년 10월 조미공동코뮤니케 합의였다. 있는 그대로 북을 보고, 대화를 통해 미사일을 동결하고, 대신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조명록 인민군 차수가 군복 입고 백악관을 가서 클린턴과 사진을 찍을 정도로 북미관계가 진전되지 않았나. 이번 3차 핵 위기도 그런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사실 우리가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외교를 하는 전제엔 '이게 누구의 문제냐'는 확실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북핵 문제가 나와 우리의 문제라는 확실한 자각과 인식, 주체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두 가지 기대하는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대화를 직접 나눠본 사람이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북한을 본 사람이라 아니란 점에서 기대를 건다. 둘째는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7·4 공동성명이 나오지 않았나. 그 3원칙 중 첫째가 '자주'다. 어찌되었든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철학의 계승자이니,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면 한반도 핵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남과 북이 직접 풀자'는 철학적 기반은 있는 셈이다.
"개성공단, 남북 대화 복원의 지렛대로 삼아야"
프레시안 : 개성공단 가동이 나흘째 중단되고 있다. 개성공단을 일군 당사자로서, 안타까움이 클 것 같다.
정동영 :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든 것이다. 1,2차 핵 실험 때에는 핵 문제와 개성공단이 분리돼 있었다. 핵 실험 다음날에도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고, 공장이 가동됐다. 그런데 이번 3차 위기에선 개성공단마저 묶여 버린 것이다. 왜 이번엔 그럴까. 1,2차 핵 실험 때엔 그래도 남북이 적대 관계로 온전히 돌아서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이명박 정부 5년간 누적된 적대 관계가 있다. 5년간 누적된 적대가 단 한 차례도 6자 회담이 열리지 못하게 했고, 그 속에서 3차 핵 위기가 발생했다. 그 불똥이 이제 개성공단으로 옮겨 붙은 것이다.
나는 역순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는 것부터 시작해 5년 동안 누적된 남북의 적대를 풀고, 더 나아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법이 가동되는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침 7시 반에 광화문에서 개성공단으로 통근버스 두 대가 출근하기 시작한 지가 이제 8년이 됐다. 많을 땐 1000대 가량의 차량이 철조망과 지뢰밭을 걷어내고, 그 위에 도로를 깔아 비무장지대를 건너서 출퇴근을 했다. 남북의 긴장 속에서도 8년 동안 개성공단은 그렇게 가동됐다. 어찌 보면 굉장히 비정상적이고 특이한 상황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개성공단을 '최후의 보루'라고도 불렀고, '평화의 생명선'이라고도 한다. 개성공단이 보이지 않는 일종의 안전판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런 안전판마저 무너진다면 어떻게 되겠나.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의 상황과 (개성공단을) 분리해 지켜야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제 개성공단이 잠정 중단 상태로까지 갔는데, 아직 북한은 남쪽의 대처에 따라 영구폐쇄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공장 가동은 중단됐지만 아직 폐쇄는 아니다. 아직 여지는 남아있는 셈이다. 다행이 박 대통령도 대화 제의를 했고, 내가 봤을 땐 북한도 개성공단은 건드리지 않고 우회하고 싶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화 의지를 보였으니, 북경 채널을 활용해서 대화 의지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해야 한다. 개성공단은 1차적으로 식자재나 의약품을 공급하는 것부터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미사일 문제도 있다. 북이 정말로 미사일을 쏴 버린다면 이 교착 국면이 만성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성공단의 잠정 중단 상태도 길어질 것이고, 남북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가 온다. 최대한 빨리 공장을 가동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이런 정치군사적 위기가 닥쳐도 공단은 돌아간다는 게 빛나는 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전화위복의 상황도 만들 수 있다.
"개성공단, 경제적 가치가 아닌 군사전략적 가치 커"
프레시안 : 개성공단이 문제 해법의 실마리가 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다보니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개성공단 폐쇄 주장이 대표적이고, 오늘 한국갤럽 조사에선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쪽이 41%, 계속해야 한다는 쪽이 48%였다. 폐쇄 반대 여론이 더 높긴 하지만, 중단론도 만만치 않다.
정동영 : 안타까운 일이다. 개성공단은 경제적 가치보다 군사전략적 가치가 더 크다. 경제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있지만 군사전략적인 가치는 국민의 생명과 안보에 직결된 것 아닌가. 경제적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2004년 8월에 워싱턴에 가서 럼스펠드 당시 국방부 장관을 만났는데, 그 때만 해도 미국은 개성공단 추진에 소극적이었다. 완전한 반대는 아니었지만, '속도를 조절해라, 늦춰라'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설계도도 있고 땅 고르기도 했지만, 선뜻 공장을 짓지 못한 상태였다. 제가 당시 NSC 위원장 자격으로 럼스펠드를 만나 개성 지도를 손에 들고 설득했다. 한미동맹군이 군사적 측면에서 가장 큰 취약점은 종심이 짧다는 것 아니냐. 휴전선에서 평양까지는 180km, 서울로는 40km 밖에 안 된다. 북한군의 장사정포 사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한미동맹군이 주력하는 게 조기경보 기능이다. 북의 이상 동향을 얼마나 빨리 파악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인공위성으로 영상정보를 얻고, 고성능 정찰기를 뛰어 음성정보를 확보한다. 엄청난 돈과 장비를 투입한다. 그런데 휴전선 넘어 북쪽 땅에 개성공단을 짓는다면, 2000만 평을 남쪽의 경제 영토로 삼는다면 조기경보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특히 개성 일대는 북한군의 포병 화력이 집중된 곳이다. 평양 아래로 총 6개 군단이 있는데, 개성 일대에만 4개가 있다. 그 설명에 럼스펠드 장관이 이해를 표했고, 다음날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을 얻었다. 그 후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 2004년 말 1호 공장이 가동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123개 기업까지 입주할 수 있었던 건데, 원래 계획으론 2012년 말까지 지금보다 20배로 규모가 더 커졌어야 했다. 1차로 100만 평, 2차로 200만 평, 3차로 500만 평을 확대해 총 800만 평 규모의 공장을 입주시켜 35만 명의 노동자와 주민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다. 애초 정주영 회장의 설계에 따르면, 총 50만 명의 도시로 설계해 경남 창원시와 비슷한 사이즈로 구축하는 것이었다. 2012년까지 그 계획대로 이행됐다면 개성공단 하나가 북한의 국내총생산(GDP)보다 커지게 된다. 그 정도로 커졌으면 개성공단 자체가 한반도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사실상 동결시켜 버린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한국에 주도권이 없다고? 20년 북핵 역사를 보라"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계획대로만 추진했다면 폐쇄 주장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란 얘긴가?
정동영 : 이명박 정부는 아예 추진할 의지가 없었다. 내가 (대선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계획대로 갔을 것이다. 개성의 50만 도시 뿐만 아니라, 해주의 제2공단, 원산의 조선소, 단천의 광산 개발 프로젝트, 서해의 공동어로 구역 모두가 가동됐을 것이다. 일종의 국방 토건사업이 부흥하고, 이런 남북 화해협력 사업을 통한 탈냉전화로 가지 않았겠나. 지난해 12월 정권교체가 됐다면 3차 핵실험 국면까지는 안 왔을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그 얘기는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 정부의 역할을 과포장한 것이 아닐까. 한반도 문제의 이니셔티브는 미국이 쥐고 있는 것이 불행하지만 현실 아닌가.
정동영 : 이제는 한 걸음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안타깝게도 9·19 공동선언은 선언 다음날인 20일 미국 강경파에 의해 파기됐다. 흔히 북한이 약속을 어긴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05년 9월19일 6자 회담에서 북한이 핵 포기 결단을 내린 것은 분명 한국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다음날 미국 재무성이 돌연 북한을 '불량국가'로 규정하면서 북이 달러화를 위조해 마카오 BDA 은행에 숨겼고, 이를 조사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양키들 이럴 줄 알았다"며 반발했고, 그렇게 9·19 합의는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상황이 강대강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2006년 1차 핵 실험까지 이어진다.
ⓒ프레시안(최형락) |
결국 부시 정부 6년차였던 2007년 2월13일 휴지통에 처박혔던 9·19 합의가 다시 복원된다. 북이 이미 1차 핵 실험을 해버린 후였고, 부시의 외교정책 실패와 이라크 전쟁 실패, 네오콘의 퇴장이 겹쳐 있는 시기였다. 강경파인 럼스펠드가 사임하자 이른바 협상파들이 주도했던 9·19 선언이 복원된 것이다. 부시 정부 6년 동안 북한은 곧 '악의 축'이었고, 악과의 대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2·13 합의로 다시 북한과 테이블에 마주앉아 대화를 하게 됐고, 이 합의로 북한은 영변 핵 냉각탑을 없애지 않았나. 그리고 그해 12월, 한국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나? 정동영이 떨어졌다.(웃음) 그리고 이명박 정부 5년이 열렸다. 다시 대치 국면이 이어졌다. 5년 동안 6자 회담이 멈췄고, 그 사이에 북한은 핵 실험 2번에 로켓 발사를 3번 하게 된다.
이런 역사가 보여주듯, 대화가 멈추고 대치 국면으로 빠지면 북은 핵 능력 증진에 질주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능력을 과장한 것은 아니다. '일동족은 소통, 일동맹은 공조, 삼동반자는 협력 관계'로 가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가 공조하고 협력하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가능하다. 그게 9·19 선언의 정신이었다. 동족 간에 소통했고, 동맹 간에 공조했고, 동반자들의 협조를 끌어냈다. 그런데 5년간의 대치 국면에서 소통은 불통으로 바뀌었고, 미국과의 동맹 일변도였고,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불편해졌다. 협력을 전혀 얻지 못했다. 그 속에서 북한은 핵 실험, 미사일·로켓 발사에 매진한 거다.
내 해법은 개성공단을 통해서 북한과의 소통을 복원하고, 이를 통해 동반자들과의 협력도 다시 복원하는 것이다. 대선 직전이던 지난해 11월에 9·19 합의의 주역이자 회담 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전 동아태차관보가 서울에 왔다. 문재인 후보와 셋이서 조찬을 했는데, 그 자리서 "9·19 합의를 다음날 뒤집은 배경이 뭐냐"고 물었더니 "당시 미국엔 두 개의 정부가 있었다"고 하더라. 라이스-힐로 대표되는 외교라인 협상파와 체니-럼스펠드로 대표되는 강경파 네오콘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는 네오콘이 대외 정책을 주도해 협상 파기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상황과 비교해서, 지금 3차 핵 위기의 환경은 어떤가. 오바마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가불 받은 상태고, 케리나 헤이글 모두 대화와 외교를 통해 북한을 비핵화하자는 입장이다. 참여정부에 비해선 조건이 좋은 것이다. 더욱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 5년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때다.
사실 이런 국면이 가장 답답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우리다. 미국은 그렇게 답답하지 않다. 우선순위가 북한이 아니라 이란이나 아프간, 이라크, 시리아에 있다. 미국에게 한반도 문제는 한참 밀려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나서서 만성적 위기로 갈 것인지, 이를 타개해 새로운 국면을 만들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엔 북경채널을 가동하고, 민간 채널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특사 이전에 이런 부분부터 풀 수 있지 않겠나.
과연 한국이 약소국인가. 근본적으로 이 부분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보수 진영에선 여전히 약소국 마인드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한반도를 경영해야 할 때다. 적어도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자신감을 갖고 나서야 한다. 군사력은 10등 안팎이고, 경제적 덩치도 15위에 이른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문제를 우리가 결정 못하고 있지 않나. 오바마 대통령도 이제 북핵 문제는 한국이 앞장서서 해법 내라고 하지 않나. 이런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그 방법이 남북 간에 화해와 협력을 복원하는 것이다.
"개성공단, 한국형 통일모델 될 수 있어"
프레시안 : 화해와 협력의 시작이 개성공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긴가?
정동영 : 미사일 문제는 상대적으로 지렛대가 북한과 미국에 있지만, 개성공단은 온전히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다. 개성공단 복원은 우리의 능력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2006년 베를린에서 서독의 동방정책 설계자인 에곤 바르를 만났는데, 개성공단의 사진을 보여주고 설명을 하니 무릎을 탁 치면서 "한국형 통일모델"이라고 하더라. "개성공단만 쭉 따라가라. 중간에 경제통일을 만날 것이고, 그 종점에 통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에곤 바르가 독일의 통일 정책을 만든 사람이지만, 독일과 한국은 크게 세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는 동서독 간엔 증오가 없었다. 반면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남북 간의 증오와 적개심이 있다. 두 번째로 동독은 교회와 시민사회가 있었다. 북한과 다르다.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섰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를 바탕으로 시민사회 커뮤니티가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1989년 라이프치히의 한 교회에서 시작된 촛불집회가 500명에서 5000명, 나중에 100만 명의 집회까지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서독은 1970년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언론 정보공유를 했다. 동서독 간에 커뮤니케이션은 됐던 것이다. 우리 시민들이 지금 평양방송을 볼 수 없고, 이북 사람들이 프레시안을 볼 수 없는 것과 다른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독일의 통일 모델은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동방정책의 설계사가, "한국의 통일 모델은 개성공단"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이게 지금 폐쇄될 위기 속에 있는 것 아닌가. 연평도에도, 천안함에도, 핵 실험에도 개성공단만은 돌아갈 수 있다면, 에곤 바르의 지적처럼 통일의 지렛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박근혜, 한국의 닉슨이 되라"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정동영 : 3차 핵 실험에서 개성공단 중단까지, 상황이 최악으로 몰렸다. 이제 더 이상 북한이 상황을 끌고가게 할 수 없다. 우리가 상황을 이끌어야 한다. 이제 그만한 역량과 단계에 접어들었고, 조건도 과거와 비교하면 나쁘지 않다.
일단 북한에겐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는 물론 김정은 체제의 생존과 안정일 것이고, 둘째는 경제건설일 것이다. "더 이상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여기서 이명박 정부가 그랬듯 우리가 5년 동안 손을 놔버리면, 북한은 계속 핵 능력을 증진시킬 것이고 남과의 대화 역시 닫아버릴 것이다.
해법은 두 가지다. 일단 개성공단을 복원하고 확대·발전시켜서 남북 간 경제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외교적 주도권 행사를 통해 북한이 핵을 내려놓고 평화협정으로 갈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한다. 우리가 도울 테니, 북미 관계를 정상화해 정상국가로 가자고 이끌어야 한다. 한 마디로 한반도의 탈냉전을 우리가 주도하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의 '닉슨'이 되었으면 좋겠다. 보수 반공주의자인 닉슨에 의해 미국과 중국 간의 냉전이 청산됐듯이, 한국에서도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가 냉전 종식에 앞장선다면 내부적인 저항도 가볍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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