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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 제목은 '플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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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 제목은 '플레이북'

[민교협의 정치시평]<16> 한반도를 '희롱'하는 자들

지난 한 달간, 한미 키리졸브 훈련을 시작으로 한반도는 전쟁의 공포와 죽어라고 싸워왔다. 그런데 이 모두가 어떤 지침에 의한 것이고, 그 지침에 의해서 증폭됐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런데 이는 사실이다. 한반도에 감도는 전운은 어떤 '시나리오 책'에서 시작됐다. 이른바 '플레이북(playbook)'이라고 명명된 전쟁게임 시나리오. 이 극본은 미국 정부에 의해 지난해 12월 쯤 만들어졌다. 미국은 지난해 말 북한의 핵 실험 이후에 한반도에 적절한 전쟁 위협(war escalating)을 가할 필요하다고 보고 그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그 계획의 이름이 바로 '플레이북'이다. 그리고 그 플레이북의 지침대로 한미 키리졸브 훈련을 확대하여 지난 3월 중순 진행했다. 그리고 그 계획안에는, 핵무기가 탑재 가능한 B-2 스텔스 폭격기의 미국 본토로부터의 출격도 포함돼 있었다. 실제로 B-2 폭격기는 미국 본토에서 출격하여 북한에 근접한 서해안 어딘가 남한의 섬에 모의 폭탄(핵무기인양)을 투척하였다. 그리고 미 펜타곤은 이 보도를 즉각 시인했다. 이 사실의 홍보 역시 플레이북의 일환이었다.

소설 쓰시냐구요? 아니다. '플레이북'의 존재도, 그리고 이 모든 작전이 '플레이북'이라고 명명된 사실도, 지난 4월 3일 <월 스트리트 저널> 보도 내용이다. 남한의 언론들이, 일부는 전쟁 공포를 만들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고 또 일부는 전쟁의 공포에 스스로 납작 엎드려서 놓쳐버린 보도이기도 하다. <월 스트리트 저널>기사와 그간 나온 국내외 보도들을 근거로 사건들을 재구성해봤다.

▲ 미국 스텔스 전략 폭격기 B-2. ⓒ뉴시스

3월 19일 미국과 한국은 북한 영해에 근접하여 핵 잠수함을 배치하는 한미 합동 해군훈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3월 20일 미군 태평양 사령부는 괌에서 "지속적인 그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B-52를 발진시켰다. 이어 3월 26일 미 육군 전쟁대학에서 북한 지도부가 핵 폭탄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면서 권력 붕괴가 발생하는 상황을 전제로 한 북한통합 전쟁게임 시나리오가 유출되었다. 이는 한국에서도 보도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3월 28일 핵 폭탄 탑재가 가능한 B-2 폭격기가 '방어 임무'의 일환으로 북한 내 공격 목표를 겨냥하여 북한 영공 근처를 비행하고, 이어 서해안에 위치한 남한의 한 섬에 모의 폭탄을 투하했다. 한국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처음엔 코미디처럼, 그리고 다음엔 비극처럼, 또 그 다음엔 컬트무비처럼.

코미디인 이유는 <조선일보> 등이 이 폭격 훈련을 오독하여 미국이 북한 주석궁을 폭파한다는 둥 오보를 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비극인 이유는 한반도는 또다시 외세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철저히 농락당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제 쉬르레알 컬트무비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또 똑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드디어 전쟁 게임의 모든 약발이 먹히기 시작했다. '전쟁 공포'는 여지없이 일상을 누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휘둘린다. 미국인도 일본인도 중국인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한 사람들도.

영어로 Playbook은 문자 그래도 '장난 책'이라는 뜻이다. 즉 전쟁 장난이다. 말 그대로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 게임'을 한번 해보고자 했다. 그럼 그 이유는? <월 스트리트 저널>은 친절하게도 열심히 취재하여 이유까지 말하고 있다. 이 신문은 지난 3월 키리졸브 훈련으로부터 일련의 미국의 북한 도발 혹은 전쟁 위협(war escalating) 시나리오가 오바마 대통령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의 승인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한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국의 군사력 과시의 목적(의도적으로 폭격기의 존재를 과시하는 것)은 첫째는 북한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새로 들어선 한국의 강경파 정부에게 미국의 지지를 보여주어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국이 독자적으로) 군사적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냥 '희롱' 혹은 '불장난질'로 끝날 일에 상대가 모욕감 내지 위협감을 느끼거나, 실제적인 전쟁의 위협이라고 정색을 하고 덤벼들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점이다. 물론 이 때도 상대가 진지하게 반응하면, '나 사실은 장난이었어요, 당신을 건드려봤어요' 하고 물러설 수도 있지만, 이 때 물러나기도 체면 손상이라서 쉽게 물러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한반도의 지금 상황이 바로 딱 그 지점에 와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상황은 이랬다. 지난 1일 언론에도 보도된 핵항공모함 이지스함의 한반도 주변 배치는 사실 플레이북에 없던 내용이라고 한다. 즉 미 국방부가 공개되기를 원치 않았던 사안인데, 전쟁 위기를 보도하던 언론의 과잉 취재열기로 보도되고 말았다. 그리고 북한은 여기에 대해 강경 대응하기 시작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하기를, "미국은 북한이 '원래 미국이 의도했던 것보다 더 도발된' 것으로 평가하고 당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관료는 "모두가 (playbook의) 계산 착오와 전쟁의 발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부 내 전반적인 판단은 북한이 전면적인 전쟁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스스로 똑똑하다가 말았다. 역사상 전쟁이 어떻게 벌어졌는가를 생각하면 너무나 어리석은 자들임에 분명하다. 예를 들어 1차 대전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이제는 생존자도 거의 없으니 기억할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다음만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독일의 헌법학자인 칼 슈미트는 1차 대전의 발발이 "유럽의 전통 엘리트들 사이의 영토 게임"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국내정치적 이유이든, 대외적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필요했든, 당시의 유럽의 입헌 군주들과 호전적인 장군들은 아주 제한적인, 그리고 통제된 전쟁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또는 그런 위협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만의 어리석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 1913년의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는 유럽에서는 전쟁이 불가능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자만했다. 통제된 전쟁, 만들어지는 전쟁, 혹은 '플레이'로서의 전쟁. 전쟁 위협만 하는 전쟁…. 그래서 1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 누구도 이 전쟁이 '세계대전'이 될 줄은, 그리고 4년이라는 시간을 끌고 수천만 명이 죽을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모두 한 달이면 이 전쟁을 '승리로' 끝낼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국민들은 그런 낙관 하에 있었고, 또한 애국심에 불타는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전장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하다. 한반도에서 전쟁 획책 혹은 전쟁 게임이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칼 슈미트가 말하는 그런 영토 게임처럼 엘리트들이 이 국면에서 전쟁을 필요로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월 스트리트 저널>이 말하듯, 미국 정부가 북한에 위력을 과시하고 남한 정부에 따로 독자적인 군사 위협을 가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는 이유 말고, 더 깊은 이유, 구조적인 이유는 없을까.

여기서 몇 가지 세계 정치, 나아가 국제 정치경제학적인 현실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지난 3월 아주 미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중요한 몇 가지 움직임이 있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러시아를 방문해 전략공군사령부(핵전쟁 사령탑)를 찾았고, 이 방문에 대해 언론은 이곳을 찾은 최초의 외국 지도자라고 보도했다. 또 중국과 유럽을 순방한 잭 류 미국 재무장관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유럽과 중국은 잭 류 장관이 요구한 수요 촉진책을 거부했으며, 중국은 고도성장은 없지만 자국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이들은 미국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졸'이 되는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전쟁 위기로 미국은 다시 나름의 국제적 헤게모니를 재정립하고 있다.

더 중요한 일은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졌다. 일본 중앙은행은, 이 시기를 틈타 양적·질적 완화라는 이른바 혁명적인 통화정책(군사·외교적으로는 팽창주의적 정책)으로 엔화 약세를 고착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는 박노자 박사가 어디선가 언뜻 지적한 바다. 양적 완화는 미국이 2008년 파생상품 위기에서 시작된 공황에 대해서 줄곧 해왔던 방식이다. 즉 무식하게 계속 돈을 찍어대는 것이다. 근데 이제 일본도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근데 왜 여기에다 '질적 완화'이기도 하다고 표현할까. 양적 완화의 기본 규칙을 깨버리고 아예 새로운 통화 찍기 정책이기 때문이다. 양적 완화의 불가침의 기준은 그 나라의 빚을 상회하는 통화 찍기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근데 일본은 그것을 위배해 그 이상 찍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사실 본국 통화 정책에 대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정책이기도 한다. 물론 주변국의 경제에 엄청난 주름을 준다. 그런데 이를 이번 전쟁 위기 속에서, 어떤 반발도 없이 해치웠다. 또한 한국은 미국의 골칫거리인 F-35 전폭기를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국제 정치경제 현실 속에서 플레이북은 가동됐다. 그리고 약간의 '오산'은 있었지만, 즉 북한의 강한 반격을 예상하지 못하였지만, 여하튼 한반도의 호전적인 혹은 한반도에서 전쟁 희롱하기 게임은 꽤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제 그만두어야할 때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칼 슈미트를 인용하자면, 칼 슈미트는 1차 세계대전을 가리켜 "상대적인 적대의 게임'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상대적 적대가 '절대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되어서야 전쟁은 포기되었다고 말했다. 물론 1차 대전이 발발해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그제서야 즉 상대적인 적대가 '절대적 적대'로 바뀌는 순간 그들은 멈췄다. 미셀 푸코식의 표현으로 하면, "절대 생존과 절대 절멸"이 교차하는 순간.

전쟁은 어떻게, 아니 전쟁 희롱 시나리오는 어떻게 종지부를 찍을지 모른다. 아마 찍을 것이다. 아마 여전히 치킨게임처럼 얼마간 달려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을 잠정적으로 말할 수는 있겠다.

한반도에서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아니 모든 전쟁은 이런 것이다.

전쟁은 파국이다. 아니 '파국론'에서 시작한다. 파국이 온다는 협박, 파국에 대한 공포의 주입, 파국이 결국 종의 절멸이라는 사실까지. 그러나,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파국이 아니다. 전쟁은 차라리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권력의 시작이고, 새로운 체제의 시작이고, 새로운 자본주의, 새로운 '피아'의 구분의 시작이다.

한반도는 바로 그런 전쟁 '파국론'의 실체를 보여주는 본보기다. 이번 전쟁의 '파국론'도 이렇게 끝날 듯하다. 파국이 온다는 협박, 파국에 대한 공포의 주입, 파국이 결국 종의 절멸이라는 사실까지. 그러는 가운데 전쟁의 공포가 무르익으면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연다. 새로운 권력, 새로운 체제, 새로운 자본주의, 새로운 피아의 구분.

한반도의 두 정치체제와 정치권력, 미국과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의 4강. 그들 모두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과 그 파국론을 통해서 자신들이 노리는 모든 효과를 얻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으로 전환하면 된다.

남한 정부는 취임식 이후 정치적 불안을 지금 북한 카드로 근근이 지탱하고 있다.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을 통해서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와 자기 생존을 도모하고자 한다.

일본은 지금 호전적 국수주의를 외부의 적으로 돌려야 한다. 나아가 경제를 살려야 한다.

중국은 지금의 한반도 균형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긴장과 적절한 타협의 '거간꾼'이 되어야 한다.

미국은 경제 위기가 남긴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와 사회 불안을 희석시킬 외부의 타깃이 가장 절실한 국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전쟁할 의사가 없다. 의지도 없다. 일부는 아예 능력도 없다. 그들은 단지 전쟁의 레토릭, 전쟁의 파국론을 가능한 한 확대시키고 싶을 뿐이다. 그들의 신민에게 누가 '피아'인지 구분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 구분을 강제하도록 만드는 것, 그래서 저희들 엘리트에게 복속하도록 만드는 것. 결국 전쟁은 노예화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불쌍한 인민들.

우리는 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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