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박근혜식 경제민주화, 시장의 역습 맞는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박근혜식 경제민주화, 시장의 역습 맞는다

[박근혜 취임 한 달] 자세 낮춘 재벌, 언제까지 숨죽일까?

컵을 여러 개 쌓아놓고 맨 위 컵에 물을 부으면, 첫 번째 컵을 다 채운 물은 넘쳐 아래 컵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두 번째 컵을 채우고 세 번째, 네 번째 컵을 채운다. 이를 낙수효과라 한다. 'MB노믹스'라고 하는 이명박 정권 경제정책의 핵심개념이다. 대기업이 잘 살게 되면 그 혜택이 아래로 떨어져 나머지 국민도 잘살게 된다는 것. 이것은 MB정부가 대기업 우선 경제정책을 펼치는 것에 면죄부를 주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지난 5년 동안 우리사회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 됐다. 대기업 경제성장률은 OECD 최고 수준이 됐고 기업 사내 유보금은 500조를 돌파했다. 외화 보유액도 3000억 불을 넘었다.

반면, 중소기업은 내수 침체로 경영난에 허덕였다. 870만 비정규직은 고용 불안을 겪어야 했다.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건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이유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제40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노력한 만큼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도 중요한 과제"라며 "원칙이 선 시장 질서를 확립해 대·중·소기업이 함께 나누고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이 함께하는 새로운 경제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재차 경제민주화 실행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는 건 아니다. 장관 인선조차 마무리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를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임명된 경제라인 인사가 경제민주화와는 상관없는 인사라는 게 이유다.

▲ 2012년 11월 8일 박근혜 당시 후보자가 전경련 회원을 만나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 압박에 넙죽 엎드린 재벌

재계는 일단 낮은 포복이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를 맞기 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현재가 바로 그런 상황"이라며 "어느 기업이든 처음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폭풍전야가 더 불안하다는 이야기다. 기업들은 문제가 될 소지를 사전에 없애기 위해 내부 점검 등을 진행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전후 사정기관의 날 선 칼날에 떠밀린 듯한 모양새지만 나름 자발적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축소가 대표적이다. 롯데그룹을 시작으로 SK그룹과 LG그룹 등을 확산하고 있는 추세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을 직영으로 전환키로 했다.

지금까지 전국 52개 영화관에서 매점을 운영해왔던 것은 유원실업과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등 관계사들이었다. 일감 몰아주기 대표 사례로 꼽혀왔던 곳이다. 특히 유원실업은 미스코리아 출신의 서미경 씨(60%)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막내딸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40%)이 100% 지분을 갖고 있다.

SK그룹도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자진 축소키로 했다. SK텔레콤은 올해 SK C&C와의 거래 금액을 1950억 원으로 정했다. 지난해 2150억 원보다 10% 정도 줄어든 수치다. SK C&C는 그룹 내 SI(시스템 통합)업체이며 최태원 SK 회장이 38%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SK C&C와의 거래 물량을 작년 455억 원에서 올해 390억 원 규모로 14% 줄였다.

LG그룹은 SI, 광고, 건설 분야 계열사에 주는 그룹 물량을 줄이기로 내부 방침을 정하고 지난해부터 이를 시행 중이다. 한화도 30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에 광고를 맡겼고, SK와 현대도 여기에 합류하겠다고 밝혔다. 재벌이 계열사에 광고회사를 만들어 거기에 광고물량을 몰아주는 건 업계 관행이었다.

골목 상권에서 철수하겠다는 재벌도 나타났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스위트밀 지분 19.97%를 그룹 계열 장학재단 '꽃과 어린왕자 재단'에 기부했다. 스위트밀은 외식사업 계열사로 빵집 프랜차이즈 '비어드파파'를 운영한다. 삼성계열 호텔신라와 현대백화점도 골목 상권에서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세청과 공정위 내세워 재벌 전면 압박

재벌의 이러한 자발적 움직임에는 정부의 압박도 일정 작용한다. 최근 대기업에 관한 전방위 세무조사가 벌어지고 있어 재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의 주요 핵심 기관들이 국내 금융권은 물론 주요 대기업들을 조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다.

국세청은 지난 3월 6일 KT&G 서울 삼성동 사옥과 대전시 본사에 관한 세무조사에 착수, KT&G 간부급 이상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압수하고 회계 장부 일체를 확보했다. 국세청은 KT&G가 국내외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회피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세청은 지난달부터 코오롱글로벌, 동아제약, LG디스플레이, 롯데호텔 등에 대해 세무조사에 나섰다. 앞서 르노삼성은 이미 700억 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특히 GS칼텍스는 이미 5개월 이상 장기간에 걸친 세무조사가 진행 중이고, LS그룹 계열의 액화석유가스 업체인 E1에 대해서도 곧 세무조사가 시작된다.

롯데그룹은 '특별세무조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들어간 롯데호텔은 정기적인 세무조사지만 롯데정보통신의 세무조사는 조사4국이 맡았다. 조사4국은 국세청의 '중수부'다.

공정위의 경우, 지난 3월 4일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재벌 기업만을 대상으로 공시 위반 여부 조사와 이에 따른 6억7000만원 상당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룹별 과태료는 삼성 4억646만, SK 1억6477만원, 현대차 6015만원, LG 4160만원 순이다.

재벌의 꼼수, 사외이사에 권력기관 출신 선임해

재벌들은 정부 칼날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재벌이 사정기관 출신 인사들을 자기 회사로 끌어들이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어 닥칠 때, 바람막이 식으로 사용될 거라는 게 일반적 견해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대 재벌그룹 소속 80개 상장사 가운데 감사위원회를 도입한 66개사는 이달 주주총회를 통해 총 81명의 감사위원을 선임했거나 선출할 예정이다.

출신 직업별로 보면 대학교수가 35명(43.2%)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금융 및 재계(10명), 중앙부처 관료(9명), 국세청(7명), 판사(5명), 계열사 임직원(4명), 검찰(3명), 경찰(1명), 언론(1명), 협력사 관계자(1명) 등의 순이었다.

이중 정부 고위 관료나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사법당국 등 이른바 힘 있는 권력기관 출신은 25명으로 집계됐다. 비율로 따지면 10명 중 3명꼴인 30.9%로 집계됐다.

특히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와 세무조사 권한을 행사하는 국세청 출신에 대한 인기가 상당했다. 이들 두 기관은 박근혜 정부 들어 대폭 권한을 강화하고 기업을 압박하는 기관으로 등극했다.

현대제철은 정호영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신세계는 손인옥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인원장(현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사외이사로 각각 영입했다. 롯데제과는 강대형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SK C&C는 주순식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현 법무법인 율촌 고문)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한다.

현대모비스는 박찬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현대건설은 이승재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을 감사위원으로 재선임한 데 이어 SK텔레콤 역시 서울지방국세청장 출신인 오대식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을 감사위원으로 영입할 계획이다.

정권에 눈치를 보면서도 자기 살길은 찾고 있는 셈이다.

경제민주화 끌어갈 청와대-정부 인사 전무

문제는 앞으로다. 경제민주화는 사정기관의 칼날만으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정권 초기, 머리를 조아린 재벌이 언제 고개를 들지 모를 일이다.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적확한 정책과 비전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현재 경제정책을 총괄하게 될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성장주의자로 평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경찰'로 공정한 시장경제 조성을 책임져야 하는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대기업을 옹호해온 대형 로펌 김앤장 출신이다. 청와대 수석급 12명과 비서관 37명 가운데에도 경제민주화를 주도적으로 고민해온 인사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민주화 관련해서 어떠한 비전도, 정책도 나오기 요원하다. 일각에서 시장의 역습이 멀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