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학회(회장 정운찬)가 18일 주최한 정책포럼에서 경제학자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FTA 체결 이후 미국 기업이 우리 시장에서 가격을 좌우하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근 "미국기업이 한국시장에서 가격결정자가 될 수도…"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미 FTA 추진 근거의 이론적 검토: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란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FTA 이후) 미국의 선진 산업기술과 지식이 한국으로 이전된다는 보장이 없다"면서 "오히려 미국기업이 시장에서 가격결정자가 되고 과점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선진기술과 지식이 이전돼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져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고 설명해 온 정부의 주장에 대한 정면 반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근 교수는 이어 "FTA를 통해 미국식 신자유주의 법제가 한국에 이식되면 국가의 역할이 최소화돼 미국의 과점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고, 결국 우리 기업은 미국기업에 밀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래 시장동력은 자국시장에서 일정기간 보호해 경쟁력을 키운 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게 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며 "농업, 의류, 섬유 부문은 열고 통신, 하이테크, 금융서비스 부문은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출했다.
전성인 "미국은 연방국가여서 우리가 불리"
미국은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한미 FTA로 인해 우리나라만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FTA의 명암: 금융·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발표에서 "한미 FTA는 미국 연방정부와 체결한 조약이기 때문에 미국의 주정부를 구속하지 않는다"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한 예로 미국은 우리 보험시장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의 보험업은 주(州)법을 통해 규율되고 있어서 우리는 아무런 개방압력도 행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즉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는 미국기업들에 우리 시장을 모두 내어주게 되지만, 미국은 연방제라는 특성 때문에 제한적으로만 우리 기업들에 대해 시장을 개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전 교수의 지적은 한미 FTA가 체결되면 세계 최대인 미국시장이 우리 기업들을 향해 활짝 열리게 될 것처럼 홍보해 온 정부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읽힌다.
미국 측은 이미 한미 FTA 조달분과 협상 과정에서 자국 주정부 차원의 조달시장은 개방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성인 교수는 또한 한미 FTA 협상에서 논의되고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대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투자자가 투자대상 국가의 법·제도 등으로 인해 손실을 봤을 때 해당 국가를 상대로 국제 분쟁해결기구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전 교수는 "금융관련 분쟁이 발생했을 때 '국가 대 국가'의 해결방식 외에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투자자 대 국가' 방식을 인정할지 여부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주 "내생적 위험요인들로 인해 한국경제가 암초지역으로"
한편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경제는 최근 위험한 암초지역에 들어서고 있으며, 위험요인들이 외생적인 것 못지 않게 내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원유 등 주요 원자재의 급격한 가격상승 등 외생적인 문제는 자원보유국 이외의 모든 국가들이 공통으로 당면하고 있는 애로사항으로 유독 한국만의 제약요인은 아니다"라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인력을 교육기관이 공급하지 못하고 ▲교육 평준화가 인력수급의 격차를 좁히는 노력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노동시장 기득권 세력의 과도한 영향력으로 인해 청년층 구직난 등 고용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 등이 내생적인 위험요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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