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깬 조기 등판…안철수式 '타이밍의 정치'?
안철수 식 '타이밍의 정치'는 이번에도 발휘됐다. 새 정부 출범 후 일주일이 흘렀지만 국정 난맥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답보 상태고, 존재감 없는 새누리당과 무기력한 민주통합당의 '대결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비판 여론도 높다. 기성 정치권의 난맥상이 결국 안철수 전 후보에게 정치적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 전 후보는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 출마를 택했다. 시기와 정치권의 상황, 당선 가능성에 대한 여러 셈법을 구동한 결과로 보인다.
▲ 대선일인 지난해 12월19일,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돌아왔다. 오는 4월 열릴 재보궐선거에서 노원병 출마를 시작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제2의 '안풍'은 다시 불 수 있을까? ⓒ연합뉴스 |
안 전 후보의 출마로 4.24 재보선의 무게감도 확 달라졌다. 시점도 절묘하다. 새 정부 출범 직후에 열리는 재보선은 거물급 정치 지도자들이 정계에 입문하거나 복귀하는 무대로 활용되어온 사례가 적지 않다. 1998년 4월 재보선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2003년 4월 선거에선 유시민 전 의원이 각각 나서 정치 지형을 바꿨다. 안 전 후보의 출마도 이 연장선으로 보이는데, 사실상 '미니 총선'으로 판이 커진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신당 창당 등 안철수발(發) 정계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난감한 민주당…대선 '단일화 딜레마' 또 봉착
각 진영의 셈법도 엇걸린다. 가장 난감한 쪽은 민주당이다. 대선 패배 후 4월 재보선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민주당의 입장에선 안 전 후보의 출마가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안 전 후보의 출마 소식이 전해진 3일, 민주당은 "대국민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라는 건조한 한 줄짜리 논평만 내놨다. "환영하고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는 문재인 전 대선 후보의 반응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당의 속사정이 복잡한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안 전 후보의 등판으로 인한 당의 세력 분화다.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군기'를 잡을 지도부조차 없는 상태에서, 안 전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해 신당 창당의 시나리오를 밟아간다면 당내 이탈자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론조사 결과도 민주당에 부정적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2일 실시해 4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 전 후보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 40.1%, 안철수 신당 29.4%, 민주당 11.6% 순으로 나타났다.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친노(親盧)-비노(非盧)간 갈등도 재현될 수 있다. "안철수 신당은 공멸의 길"이라고 경고했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야권 단일화 여부다. 노원병은 지난 4.11 총선에서 민주당과 진보정의당(당시 통합진보당)이 단일화를 통해 얻어낸 지역구로, 아무리 야성(野性)이 강한 지역이라지만 민주당이 독자 출마한다면 새누리당에 패배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번에도 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10월 재보선에서 안철수 진영에 밀릴 위험이 있는데다, 안 전 후보로 단일화해 승리한다면 당 분열의 시나리오가 예고되는 상황이다. 지난 대선에서의 '단일화 딜레마'가 노원병 선거에서도 재현된 셈이다.
당초 민주당 쪽에선 금태섭 변호사 등 안 전 후보의 측근이 4월 재보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박용진 대변인, 이동섭 지역위원장 등의 출마 여부를 검토해 왔다. 안 전 후보가 정치에 복귀하겠다고 이미 공언한 만큼 안철수 진영의 '세력화'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직접 출마'의 뜻을 밝히면서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진보정의당 '격앙', 새누리 침묵 속 '상황 주시'
복잡한 민주당과 달리, 당장 지역구를 '빼앗길' 위기에 놓인 진보정의당은 격앙된 표정이다. 노회찬 전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가난한 집 가장이 밖에서 돈 벌 생각을 해야지 집안에 있는 식구들 음식을 나눠 먹느냐"고 힐난했다. 야권의 승산이 높은 노원병에 왜 하필 "야권 후보 중 가장 경쟁력 있는" 안 전 후보가 출마하느냐는 것이다. 진보정의당과 민주당 일각에선 안 전 후보가 서울 노원병이 아닌 부산 영도 출마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보정의당은 독자 후보를 낸다는 방침 아래 이날부터 후보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반면 새누리당은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은 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당초 새누리당은 4일 안 전 후보의 출마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했지만,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선 별도의 언급이 없었다. 야권의 '집안 싸움'이 될 것이 뻔한 국면에서 굳이 불필요한 언급을 해 안 전 후보의 '체급'을 높일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3석에 불과한 이번 재보선을 가급적 '조용히' 치르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안 전 후보가 또 다시 '새 정치'를 내세우며 여야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한다면, 집권 초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동력에도 상당 부분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이번엔 '정치력' 보여주나
여야의 셈법이 복잡한 상황에서, 결국 키는 안철수 전 후보가 쥐고 있다. 다만 안 전 후보가 이번에는 후보직을 '완주'해 계획대로 정치 행보를 밟아갈 수 있을지는 물음표가 찍힌다.
당장 그의 출마를 두고 야권의 비판이 만만치 않은데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야권의 의석 수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뿐만 아니라 원래 지역구의 '주인'이었던 진보정의당, 이정희 대표 체제 전환 뒤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통합진보당까지 후보를 낸다는 방침이어서 야권 후보의 난립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결국 안 전 후보가 야권의 반발을 잘 추스를만한 리더십을 보일지가 관건인데, 단일화를 무리없이 이뤄내 여의도에 입성한다면 규모가 큰 10월 재보선으로 세를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도전이 '출마 선언'에만 그친다면, 안 전 후보의 정치적 재기는 한동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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