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엉망이 된 기초연금 보며 유시민을 떠올리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엉망이 된 기초연금 보며 유시민을 떠올리다

[정책쟁점 일문일답] <11> 기초연금-국민연금 결합할 이유 없다

1.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정계를 은퇴했습니다.
⇨ 아쉬움이 큽니다. 특히 최근 보수·진보 양 진영의 복지정책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고 있어서 그의 정계 은퇴는 더 큰 아쉬움을 줍니다. 얼마 전에 만난 국책연구소의 한 중견 간부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있을 때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주도한 기초노령연금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는데, 최근의 기초연금 논란을 보니 그가 참 명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2. 보수·진보 양 진영의 복지정책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수긍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 그들이 수긍을 하든 못하든 그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과거에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 토론회에 패널로 자주 참석했는데, 그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지곤 했습니다. 진보정당은 노조를 정치적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추가되는 복지예산 중 절반 이상을 노동복지에 쓰고 싶어 했습니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노동복지에 대한 간절함이 컸던 겁니다. 문제는 집권 가능성이 높은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입니다. 이들의 복지재원 배분 공약은 경제적·사회적 효율성·형평성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표밭의 크기, 또는 세력의 크기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3. 새해 벽두에 국회를 통과한 예산을 보면 힘없는 사람들의 비극이 나타나기도 했지요?
⇨ 새해 벽두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자신들의 대선 공약을 일부 반영한다는 미명 하에 일부 저소득층 복지 예산을 6000억 원 이상 삭감했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이 또 당한 겁니다. 그들의 대선 공약이 얼마나 화려한 명분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저소득층의 복지를 유린하면서 추진되어서는 안 됩니다. 황당한 것은 국회가 그런 짓을 하고도 자신들의 지역구 토건예산은 3700억 원 이상 늘렸다는 것입니다.

4. 새누리당이 민주통합당보다 더 강도 높은 노인연금 공약을 내놓은 것도 우연이 아니지요?
⇨ 당연한 겁니다. 민주통합당은 2040세대를 주로 겨냥하고 새누리당은 50 이상 세대를 겨냥하다 보니 새누리당에서 강도 높은 노인연금 공약이 나온 것뿐입니다.

5. 유시민 전 장관이 주도해서 만들어 놓은 기초노령연금을 새누리당이 확대하거나 약간 변형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기초노령연금제가 잘 운용되고 있는데도 기초연금제를 고집했습니다. 새누리당이 왜 이런 선택을 한 겁니까?
⇨ 새누리당이 기초노령연금제 대신 기초연금제를 추진하려 했던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국민연금 기금을 헐어서 기초연금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국민연금을 많이 받는 사람들에게 기초연금을 적게 주어서 연금 적자를 줄이겠다는 것. 1994년 스웨덴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결합한 목적은 후자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초연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웨덴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있습니다.

6. 우리나라의 상당수 학자들은 스웨덴 복지정책은 대체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 스웨덴 기초연금과 같이 1990년대에 스웨덴이 도입한 정책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1980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전 세계를 장악한 지배 이데올로기는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였다는 겁니다. 미국, 영국은 물론 남유럽, 북유럽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북유럽은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금융 규제 완화로 부동산 거품을 키웠고, 1990년을 전후하여 거품이 붕괴하여 집값이 1/4토막 나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 1990년대 북유럽 각국의 복지가 일시적으로 후퇴하기도 했는데요. 이것도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의 영향입니다. 특히 1990년을 전후하여 스웨덴이 신자유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1990년 이후 20년간 선진 주요 22개국의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율이 19.8%에서 24.5%로 4.7%포인트 상승할 때 스웨덴은 30.2%에서 28.3%로 1.9%포인트 낮아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학자들이 1994년에 만들어진 스웨덴의 기초연금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또 전 세계적으로 스웨덴식 기초연금제를 수용한 나라도 많지 않습니다.

7. 새 정부는 국민연금을 헐지 않는 방향으로 한 발 물러섰다고 했습니다.
⇨ 처음에는 박 대통령 측근들이 박근혜표 기초연금 도입에 필요한 재원 중 30%, 대략 3조 원 이상을 국민연금을 헐어서 충당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비판여론이 거세자 거둬들였습니다.

8. 박근혜표 기초연금 도입에 필요한 재원을 국민연금으로부터 확보하지 못할 것이면 무슨 이유로 양자를 결합하려 하는 걸까요?
⇨ 결합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지난 2월 28일 허만형 중앙대 교수는 <서울신문>에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꼭 합쳐야 하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양자를 결합하려 하는 사람들의 허점을 적절하게 잘 지적했습니다. "연금계층의 다양화가 세계 각국 연금 개혁의 공식처럼 인식되는 상황에서" 두 연금의 통합을 밀어붙인다는 것이 의아스럽다는 겁니다.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연금계층의 다양화를 전제로 연금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중층연금' 도입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연합뉴스

9. 일부 학자들은 기초연금을 1인당 40만 원 이상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 기초연금을 1인당 40만 원 이상 주려면 당장에 매년 30조 원 이상의 추가예산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당장 추진해야 할 복지에 연금 복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초연금을 1인당 40만 원 이상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느 가난한 4인 가족이 5만 원을 들고 외식을 하러 나갔는데, 어린 막내가 자신만은 1인당 4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고급 요리를 먹어야겠다고 보채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10. 선진국 수준이 되려면 기초연금을 1인당 40만 원 이상 주어야 한다는 주장 아닐까요?
⇨ 우리가 선진국 수준의 복지를 하려면 전체적으로 복지재원 규모가 160조 원 이상 늘어야 합니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율은 9.3%로 OECD 평균 21.7%보다 12.4%포인트 낮았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GDP가 1300조 원이라 가정하면 그중 12.4%는 161조 원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지금 20조 원도 추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연금만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여기에 동의하겠습니까?

11. 일부 학자들은 지금 당장은 국민연금 기금을 헐어서 쓰고, 나중에 고갈될 우려가 있으면 그때 가서 국민연금에 국고보조금을 주어서 고갈을 막으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국민연금 고갈을 막으려면 지금부터 국고보조금을 늘리고, 보험료를 늘려서 고갈에 대비해야 합니다.

12. 일부 학자들은 언제부터 국민연금에 국고보조금을 주자고 하고 있나요?
⇨ 그들은 막연히 국가가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고갈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연금 고갈을 막으려면 지금부터 대비해야 합니다. 그들 주장처럼 고갈 직전에 국고보조금을 매년 수십조 원, 수백조 원 투입해서 고갈을 막는다? 그런 방식으로 고갈을 막게 되면 국가재정이 급증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게 됩니다. 물론 국민연금 고갈도 막지 못하고 말입니다.

13. 지금부터 국민연금 고갈에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첫째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올려야 합니다. 둘째, 지금부터라도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늘려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정부가 농어촌 저소득층에 대하여 국민연금 보험료의 일부를 대납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의 주요 목적은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지만, 국고의 일부가 국민연금으로 들어간다는 데도 의미가 있습니다.

14. 다른 사회보험에는 국고보조금을 주고 있나요?
⇨ 정부는 매년 5조 원 이상을 국고에서 빼내 건강보험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보적일까요? 퇴행적일까요? 진보적입니다. 반면 일부 학자들은 여전히 기초연금의 재원을 미래가 매우 불안정한 국민연금을 헐어서 충당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보적일까요? 퇴행적일까요? 퇴행적입니다.

15. 사회보험에 국고보조금을 주는 것이 진보적이라는 근거가 있나요?
⇨ 누진세가 포함된 조세의 부담을 늘려서 그것을 재원으로 누진성이 약한 보험료로 지탱되는 사회보험을 지원하는 것은 진보적입니다.

16. 특수직역연금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수조 원에 달하는데,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소액에 불과한 수준이죠?
⇨ 특수직역연금에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이 있는데요. 이 중에서 공무원연금을 보면 2011년 연금수급자는 28만7980명이고, 1인당 수급액은 연간 2615만 원(월 218만 원)이며, 올해 적자 보전을 위한 국고보조금은 1조8953억 원입니다. 다음으로 군인연금을 보면 2009년 연금수급자는 7만2934명이고, 1인당 수급액은 연간 2820만 원(월 235만 원)이며, 올해 적자 보전을 위한 국고보조금은 1조 3891억 원입니다. 사학연금은 아직 고갈 시기가 도래하지 않아, 적자 보전을 위한 국고보조금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학연금도 2020년이 되면 고갈되고, 매년 수 조 원의 국고보조금을 요구할 겁니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매년 어느 정도의 국고보조금을 집어넣어야 할까요?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시점인 2060년에 연금수급자는 1600만 명에 이릅니다.

17. 특수직역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도 많은데요. 이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학자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 대다수 학자들이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 수혜자이기 때문입니다. 동료집단의 시선이 무서워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18. 우리 세대가 후세대에게 염치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면, 국민연금 보험료와 국고보조금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려야 할까요?
⇨ 그 수치가 워낙 커서 국책연구소도 아직 손도 못 대고 있을 겁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학자들은 국민연금을 헐어서 쓰자고 주장합니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19. 일부 학자들은 400조 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기금을 금융기관에만 넣어놓기보다는 복지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합니다.
⇨ 2005년 이후 8년간 국민연금 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6%였습니다. 그런데 연평균 수익률 6% 이상의 수익률을 내는 복지사업이 있기나 한가요? 공공임대주택사업? 공공임대주택사업은 수익률은커녕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사업입니다. 다른 복지사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복지사업을 하려면 국민연금이 아니라 조세로 해야 하는 겁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