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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노인들 상대로 '먹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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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노인들 상대로 '먹튀' 하나?

[시험대 오른 박근혜 복지·上] 누더기 된 '어르신 20만 원', 배경은?

복지 공약은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는 2010년 무상급식 논란 이후 야권의 이슈였던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이슈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정치 감각을 선보였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 관련 공약이 휘청거린다. 특히 표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과 '4대 중증질환 치료비 100% 국가 보장', 이 두 가지 간판 공약이 모두 위기에 처했다. 선거가 급하다보니 공약이 졸속으로 제시된 데 따른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고, 복지 정책이 국정 운영의 중심 축으로 자리잡는 것이 불편한 일부 언론과 기득권 세력의 반발 때문이기도 하다. 당선인 주변에 뚝심있는 '복지 전도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박 당선인에게 돌아간다. 복지 정책에 대한 체계화된 이해와 그에 따른 실천 의지가 과연 있느냐는 물음이다. 시대적 화두인 복지 문제가 인수위원회 단계에서부터 축소·왜곡 조짐을 보이면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감도 식어간다.

박 당선인이 이런 안팎의 저항을 견뎌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라고 했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먼저 박 당선인의 핵심 복지 공약이었던 기초노령연금의 '퇴행' 과정부터 뜯어봤다. <편집자>


"국민께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대선 기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거의 모든 유세 현장에서 반복했던 말이다. 실로 그는 '약속의 아이콘'이었다. 정치인생 15년 동안 늘 그를 따라붙던 '약속의 정치인'이란 수식어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다'던 그가, 불과 한 달 만에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대표적인 것이 대선 기간 "2배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한 기초노령연금이다.

기초노령연금, 공약 발표부터 '말 바꾸기' 까지

"기초노령연금은 급여 수준(2012년 9만4600원)이 너무 낮아 일생 동안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애쓰신 어르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음. (…) 기초연금은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중증 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 지급."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집에 담긴 기초노령연금 인상 내용이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을 보편적 기초연금화해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하겠다는 것인데, 핵심은 '모든 어르신'께 지급한다는 것에 있다. 지난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당시만 해도 "보편적 복지는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며 쌍심지를 켜고 야권을 공격했지만, 대선을 앞두고 기초노령연금에 있어선 사실상 '보편적 복지'를 선언한 셈이다.


▲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해 11월5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를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 박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을 직접 약속했다. ⓒ연합뉴스

실제 박 당선인이 선거를 직접 도왔던 그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만 해도, 당시 가장 첨예한 이슈는 무상급식을 둘러싼 '보편·선별 복지' 논란이었다. 여야 모두가 최대 화두였던 복지의 '적임자'를 자청하며 날카로운 입장 차를 보였다. 선별 복지를 강조해온 박 당선인도 새누리당과 입장이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당선인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진두지휘했던 지난 총선에서도 보편적 복지 수준의 기초노령연금은 새누리당 공약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역시 야권의 보편 복지 공약을 '포퓰리즘'으로 공격하던 때라, 자칫 역공을 당할 수 있음을 박 당선인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이 다가오면서 새누리당은 대대적인 '탈색' 작업을 벌인다. 기존의 '선별 복지'란 표현 대신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복지를 차별적으로 제공하는 이미지를 벗고,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연상케 하는 용어를 사용한 셈이다.

600만에 이르는 노인 표를 사로잡을 공약도 제시됐다.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기초연금 20만 원"을 직접 언급했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을 불과 열흘 앞두고 같은 장소를 찾아 "기초노령연금을 20만 원까지 드릴 수 있다"고 약속했던 것과 똑같다.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곧바로 폐기한 공약임을 박 당선인이 모를 리 없었겠지만, 지킬 수 있는지 여부는 당시로선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야권 단일화가 임박한 시기였다보니, 박 당선인 입장에서도 한 표가 급한 상황이었다.

실제 지난 대선 기간 내내 복지에 대한 박 당선인의 '진정성 증명'은 실로 눈물겨운 수준이었다.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라던 그는 공약의 대다수를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채우며 야권의 '브랜드'였던 복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박 당선인의 핵심 측근조차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기자들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통해 나라를 일으켰다면, 박근혜 후보는 성장의 그늘을 복지로 채워 아버지의 꿈을 완성하고 싶어한다"고 설득에 나설 정도였다.

그런데 대선 이후, 또 다시 말이 바뀌었다. 박 당선인이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에게 던진 유명한 표현에 빌자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대선 전엔 "모든 노인에 20만 원", 이제 와 "모든 노인은 아니고…"

우선 '모든 어르신께'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기초노령연금부터 말이 바뀌어 '차등 지급'으로 결론이 났다. 새누리당 일각의 거센 공약 수정론에 "(공약 수정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의지를 보이던 박근혜 당선인이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2013년 현재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월 평균 소득(A값)의 5%인 9만7000원으로, 만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70%(약 300만 명)에게만 지급된다. 박 당선인은 이 연금액을 2배(A값의 10%)로 올려 월 20만 원을 주겠다고 공약했었다. 실천 방향으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만 밝혔다.

그러나 당선 직후 말이 바뀌었다. 조짐은 박근혜 선거 캠프의 민생경제대응단장을 맡았던 나성린 당 정책위부의장이 "대선 공약에서 기초노령연금을 2013년부터 65세 이상 노인 전부에게 20만 원 씩 지급한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꿀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박 당선인도 지난달 2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 토론회에서 "국민연금에 가입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들에게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깔아주고,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는 분들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의 기초 부분(균등 부분)이 20만 원이 안 되는 부분만큼 재정으로 채워주는 방식"으로 기초연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20만 원'이란 금액은 맞추더라도, 국민연금 가입자에겐 차등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현재의 2배를 주겠다"던 약속은 폐기되고, 빈곤층에게만 집중되는 '선별적 복지' 성격으로 후퇴한 것이다.

현행 국민연금은 가입자 개인의 소득에 연동되는 '소득비례 부분'과 가입자 전체의 평균 소득에 연동되는 '균등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박 당선인이 언급한 '기초 부분'은 여기서 균등 부분을 지칭한 것으로, 사실상 국민연금의 균등 부분을 기초연금으로 전환하겠다는 말이다. 결국 국민연금에 미가입한 빈곤층 노인에게만 기초연금 20만 원이 온전히 제공되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겐 균등 부분 몫을 빼고 지급한다는 얘기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형평성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논란이 이어지자 인수위는 대상자를 4개 그룹(△국민연금 미가입 한 소득 하위 70% 그룹 △국민연금 가입한 소득 하위 70% △국민연금 가입한 소득 상위 30% 그룹 △국민연금 미가입한 소득 상위 30% 그룹)으로 나눠 차등 지급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지만, '말 바꾸기'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 기초연금에 필요한 재원을 국민연금에서 빼서 쓴다고 했다가 "조삼모사(朝三暮四)"란 비판이 일자 "세금으로 주겠다"고 말을 바꾸며 급한 불은 껐지만, 국민연금에서 일부를 '충당'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누가 박근혜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나

대선일부터 공약 수정까지 고작 한 달 남짓, 그 사이 박 당선인을 향한 압박도 많았다. 먼저 '아군(我軍)'의 공격이 시작됐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연일 기사와 사설을 통해 공약 수정 필요성을 언급했고, 기초노령연금은 언제나 '수정 1순위'에 꼽혔다.

박 당선인의 조력자였던 새누리당에서도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이 총대를 메고 연일 난타전을 벌였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공식 회의석상에서 "이건희 회장에게도 노령연금을 주는 것이 올바르냐. 선별 복지의 대원칙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당선인에게 "버릴 건 버리고 미룰 건 미루는 냉철한 용기"를 주문했고, 선거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정몽준 전 대표 역시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우선 순위를 정해 추진해야 한다"며 '속도 조절론'을 제기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운 박근혜 당선인이 보수 진영의 저항에 먼저 부딪힌 셈이다.

관료 집단의 '몽니'도 한 몫 했다. 여러 정부 부처가 인수위 업무보고 과정에서 재원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고, 이에 지난달 12일 박선규 대변인이 나서 "복지 정책에 대해 특정 부처가 '재원상 어렵다'고 하는 기사가 나오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 (각 부처가) 과거 관행에 기대 문제를 유지해가려는 부분에 대해 당선인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미 공약을 뱉어 놓은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 정부가 '공약 폐기'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는 것이다.

朴 당선인 측, 이제 와 "오해였다"는데…

상황이 이런데도 새누리당과 인수위는 '말 바꾸기 논란'이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애초에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을 공약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에서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를 지원 대상에서 삭제한 게 "공약을 바꾼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공약이 아니었다"고 항변한 논리와 유사하다. (4대 중증질환 관련 자세한 내용은 2편에서 소개)

▲ 노년유니온 등 노인 및 복지단체 회원들이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최근 줄줄이 수정된 박근혜 당선인의 기초연금 및 4대 중증질환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 커지자 나성린 부의장은 지난달 16일 기자회견을 자처해 "공약 '말 바꾸기 비판'은 대선 공약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만 원으로 책정된 것은 '기초노령연금'이 아니라 국민연금과 통합된 '기초연금'이라는 것이다. 그는 "새누리당이 제시한 대선 공약은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에 편입, 기초연금화해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항변'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나 부의장의 주장과 달리, 박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TV토론에서 직접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을 못 박았었다.

"기초노령연금을 보편적인 연금으로 확대해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에게 내년(2013년)부터 20만 원을 드리려고 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2차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나 부의장은 이런 지적에 대해 "녹화해 놓은 것이 있나…"라고 말끝을 흐려야만 했다.

공약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 제시없이 '슬로건' 수준의 공약을 내놓다보니, '말 바꾸기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문제가 된 기초노령연금만 해도 대선 공약집엔 단 5줄로 설명돼 있다. 새누리당은 '공약을 수정한 게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박 당선인이 선거 유세마다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께 20만 원!"을 되풀이했으니, '다른 해석의 여지'는 당선인 쪽에서 제공한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 당선인 쪽에선 계속 '오해'라는 말만 반복한다. 대선 후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을 주는 것은 아니다. 공약을 오해한 것"이고 해명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박 당선인 주변 인사들도, 인수위원들도 굳게 입을 다문 채 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오해'. 지난 5년 이명박 정부를 겪은 국민들에겐 꽤 '익숙한' 데자뷔다.

'국민 신뢰'와 '돈 끌어오기'…갈림길 선 박근혜

이제 박 당선인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다. "국민이 오해했다"며 기초연금 차등 지원을 강행하느냐, 아니면 '국민이 이해한대로' 모든 노인에게 현행보다 2배 씩 인상해 지급하느냐다.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 박 당선인에게 두 가지 방안 모두 위험 부담이 크다. 전자는 국민의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후자는 재원 마련 방안이 녹록치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기초연금 차등 지급에 대한 국민적 지탄은 단순히 '말 바꾸기'에 대한 실망 때문만은 아니다. '복지'를 선거 의제로 내걸었음에도, 보편적 복지 등 전향적인 복지 정책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탓도 크다.

박 당선인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시대정신"이라고 할 정도로 대선 과정에서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에 많은 복지 전문가들은 "기초연금을 보편적 지급 형태가 아닌 빈곤노인 구제를 위한 '공적 부조' 성격으로 설명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처사"라고 말한다. '국민이 오해한'의 방안인 '보편적 기초 연금'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김보영 영남대학교 지역및복지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는 우리 사회가 갖는 문제들을 성장이 아닌 분배의 문제로 풀자는 합의가 최초로 이뤄진 선거"라며 "보편급여 방식이 아닌 선별급여 방식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것은 시대정신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 당선인 공약집에서 그나마 구체적으로 나온 부분이 보육, 노인 소득보장, 의료 등"이라며 "구체적일수록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일 텐데 그렇다면 '모든 노인에게 지급한다'고 말한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도리이며, 민주주의 과정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박근혜 당선인의 핵심 복지 공약인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이 갈림길에 섰다. 문제의 핵심은 '재원 마련'이다. ⓒ연합뉴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도 정치적 위험부담 측면에서 "공약을 바꾸는 것보다 재정 확충 방안을 강구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공약 수정' 방안에 대해 "최근 발표(차등지급 방안)대로 밀고 나간다면, 출범도 하기 전에 국민에게 '실패한 정부'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5년간 국정을 이끄는 데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세, 가장 현실적 방안" VS "증세보다 예산 조정이 먼저"

기초연금을 공공부조 성격이 아닌 보편 지급 형태로 간다면, 이제 관건은 재원 조달 방식이다.

한 때 인수위에선 기초연금 재원을 연금기금과 재정을 통합해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했었다. 그러자 기존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했고, 이에 박 당선인은 지난달 28일 "모든 재원은 세금으로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민연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쐐기를 박은 것.

그러나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 당선인은 조세를 통한 재원 조달을 약속하는 동시에 "세금을 새로 걷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씀씀이를 줄이고 비과세 감면 조정 등의 노력으로 재정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증세 없는 기초연금'을 공언한 셈이다.

박 당선인의 이 같은 구상에 대해 오건호 연구실장은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에 따르면 기초노령연금 지급액은 현행대로 운영된다고 가정하더라도 2015년 7조2500억 원, 2030년 30조7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두 배로 확대할 경우 정부의 재정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오 연구실장은 증세가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세계적으로 낮은 편이기 때문에, 증세하자는 주장은 조세부담률을 정상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지난해 말 기준 19.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조세부담률(25%)의 80% 수준이다. 다만 그는 "국민적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여러 사실을 토대로 '대국민 담화 발표' 등의 증세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구체적인 증세 방안에 대해선 "시민사회계에서 법인세 등 직접세 중심의 증세와 간접세인 부가가치세에 토대를 둔 증세 두 가지 방안을 고민 중"이라면서 "박 당선인도 머잖아 이들 방안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증세론은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 교수는 "새 정부의 실천 의지 자체도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세 논의부터 나오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국민들 입장에선 '일단 돈부터 내라'는 식으로 들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부 예산 조정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그는 "증세는 결국 이미 고정된 예산에 추가로 세원을 걷는 것이므로, 단기적 해법이 될 수밖에 없다"며 "경제개발예산 등 과도 책정돼있는 예산을 사회복지 예산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증세는 그 뒤에 논의해도 충분하다"며 "증세를 한다 해도 순차적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나아가 복지 이슈가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만큼 장기적 사회적 합의를 위해 정치권·노동계·학계가 모이는 '다자간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사회복지 문제는 정치적 해결 과정이 중요하다"면서 "외국에서 이미 운영 중인 '연금위원회' 등을 꾸려 독립적으로 합의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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