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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의 기묘한 서문에 담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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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의 기묘한 서문에 담긴 비밀

[연속 기고 - 론스타 ⑦] 미국이 문제의 서문을 넣은 이유 직시해야

2012년 11월 22일, 론스타가 결국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했다. 10년간 지속된 론스타 문제가 왜 생겼는지, 제2의 론스타 사태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짚어봐야 할 대목이 많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 공학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듯한 대선에서 론스타와 ISD는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론스타 문제는 그렇게 적당히 묻어버려도 좋을 만큼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찬찬히 쟁점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선은 끝났지만, 론스타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론스타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김익태 변호사의 글들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로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통상교섭본부 민간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다. 2012년 8월 한미FTA와 ISD 문제를 다룬 <소송당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책도 펴냈다. <편집자>

[연속 기고 - 론스타]
① "론스타 소송,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 원인데…"
② ISD,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투자금 내놓으라는 격
③ 전두환 정부는 미국 무기 회사에 얼마를 건넸을까?
④ '제2의 론스타'로 가는 지름길 민영화, 박근혜는…
⑤ 투자자국가소송, 이제 골목을 노린다
⑥ 국제중재재판은 공정하다? 천만의 말씀

일개 펀드 회사인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자본의 법정에 세웠다.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을 이용하여 일국을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론스타는 미국 회사이다. 이 사실이 불안하다. 비록 론스타가 이번 ISD에서 못 이기더라도, 한미FTA를 근거로 또 다른 ISD를 제기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ISD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소송의 사유가 협정 발효 이후에 발생한 사안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한미FTA가 발효되기 이전에 발생한 양도소득세 부과나 매각 명령 지연과 같은 사안들은 한미FTA에 근거한 ISD의 사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회 연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론스타는 이미 세금 문제에 대해 국세청에 경정 청구를 신청하였고 거부 처분을 당하자 국내 법원에 소송까지 낸 상태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국세청이 론스타의 경정 청구에 대해서 거부 처분을 내리면 그것은 한미FTA 발표 이후 처분이기 때문에 그때는 론스타가 한미FTA의 투자자-국가중재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바 있다. 동의한다. 국세청의 거부 처분뿐만 아니라, 법원의 판단까지도 이후 ISD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론스타의 ISD는 생각보다 길고 지난한 싸움이 될 것 같다. 게다가 한미FTA의 ISD는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의 ISD보다 훨씬 강한 신무기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 간의 협정이라는 것이 평등주의에 입각한 것이니, 대한민국의 투자자들도 미국에서 똑같이 ISD라는 제도를 이용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이다. 예컨대 론스타처럼 미래에셋도 미국을 상대로 소송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한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바로 한미FTA의 서문에 담겨 있는 이상한 문구 때문이다.

한국 투자자도 미국 상대로 ISD 하면 된다? 과연 그럴까?

모든 중요한 문서에는 서문이 있다. 영어로 Preamble이라는 것으로서 일종의 총론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한미FTA 서문을 보면 희한한 문장이 하나 있다. 시작은 일반적인 협정문의 내용과 비슷하다. 양국 정부가 경제 협력 필요성을 느낀다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이후 자유무역이 상품과 투자 교류에 증진할 것을 확신하고 그리하여 서로 더 잘살게 되므로 서로 무역 장벽을 없애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에 이상한 문장이 하나 나온다.

Agreeing that foreign investors are not hereby accorded greater substantive rights with respect to investment protections than domestic investors under domestic law where, as in the United States, protections of investor rights under domestic law equal or exceed those set forth in this Agreement

미국 변호사인 나도 처음에 이 문장을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이며 왜 서문의 한가운데 뜬금없이 들어가 있을까? 문장이 어렵다기보다는 모호하다. 먼저 외교통상부가 내놓은 한글 번역본을 보자.

"국내법에 따른 투자자 권리의 보호가 미합중국에 있어서와 같이 이 협정에 규정된 것과 같거나 이를 상회하는 경우, 외국 투자자는 국내법에 따른 국내 투자자보다 이로써 투자 보호에 대한 더 큰 실질적인 권리를 부여받지 아니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이 한글 번역 또한 쉽지 않다. 원문이 워낙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번역에는 일단 문제가 없다.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액면 그대로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유는 대비되는 두 상황을 병렬적으로 배치했기 때문이다. Where 이전의 내용은 부정문이고, where 이후의 내용은 긍정문이다. Where 이전은 투자 보호에 관해 미국 국내법이 FTA의 수준보다 낮을 경우이고, where 이후는 미국 국내법이 FTA의 수준보다 더 높을 경우를 상정한 문장이다. 비교할 수 없는 두 상황을 교묘하게 한 문장으로 이어 놓은 것이다.

쉽게 의역해 보면 이 문장은, "미국에서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외국인 투자자는 이 협정문보다 더 높은 수위의 국내법의 투자자 보호 조치가 있을 경우 동등하게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더 많은 보호를 받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 언뜻 보면, 좋은 내용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의 투자자가 미국에서 미국의 투자자들과 동등하게 보호를 받게 된다는 내용이니까.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문장에 대해 오히려 보호 조항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교묘한 함정이 있다.

먼저, 이 문장을 뒤집어 보자. 한국인 투자자는 미국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FTA 협정보다 높은 수위의 미국법의 투자자 보호 조치에서 미국 투자자와 동등하게 취급된다. 그렇다면, FTA 협정보다 낮은 수위의 미국법의 투자자 보호 조치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다시 말해서, 한미FTA에 따라서 투자자에 대해 10 정도의 보호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미국에 투자를 했는데, 협정의 수준인 10에 못 미치는 미국 국내법이 발효되어 투자에 손실을 입힐 경우 한국인 투자자는 어떤 보호를 받게 되는가? 미국 내국인 투자자와 동등한 수준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서문의 원칙에 의하여 미국 내국인 투자자들이 내국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예를 들어 보자. 한국인 투자자 김익태는 미국 시카고 시내에 있는 버그호프(Burghoff)라는 오래된 건물을 매입했다. 빌딩을 허물고 그곳에 고층 백화점을 지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버그호프 빌딩이 시카고가 위치한 일리노이주의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문화재관리법에 의거하여 재건축이 금지되었다. 김익태 투자자는 이 프로젝트를 위하여 막대한 자금을 은행과 개인들에게 빌려서 조성하였다. 또한, 백화점 개장과 연관하여 추가 계약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그런데 모두 이행하지 못하게 될 처지에 놓였고 금전적 손실이 예상되었다.

그렇다면 김익태 투자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투자자-국가소송제인 ISD에 의거하여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에 제소를 한다. 그런데, 미국 정부의 반론이 충격적이다. 한미FTA는 양자 간 협정이기 때문에 협정문의 개별적 특징이 있는 바, 서문의 내용처럼 미국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투자자보다 더 많은 권리를 부여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본인 소유의 건물이라 하더라도, 일단 문화재로 지정되면 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 법에 의거하여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자라고 해서 미국인 투자자보다 더 많은 권리를 부여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ICSID의 판결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확실한 근거법이 제시된다면 판결은 쉬워진다. 김익태는 보호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로 한미FTA 서문의 그 이상한 문구 때문이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했더니 여기에 쓰이는 물건이었다.

▲ 한미FTA 이행 법안에 서명하는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ISD에 덴 미국, 국가의 자율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통상법 개정

변호사랍시고 괴담 수준의 소설을 쓰는 것인가? 아니다. 먼저, 앞선 예시는 "간접 수용"에 관한 미국의 대표적인 판례인 펜센트랄 사건(Penn Central Transp. Co. v. New York City, 438 U.S. 104 (1978))의 사실관계를 토대로 한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김익태라는 외국인 투자자가 개입되었다는 점뿐이다.

둘째, 한미FTA의 서문이 꼭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왜 이 이상한 문구가 생겼는지를 따져보면 된다.

북미자유협정(NAFTA)을 체결한 이후 미국 또한 ISD를 당했다. 비록 지긴 했지만, 캐나다 투자자들이 미국을 상대로 초반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미 WTO 가입 이후로 크고 작은 송사에 휘말렸던 미국은 자국 또한 더 이상 소송의 무풍지대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미국 통상대표부는 ISD와 관련한 미국의 통상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고, 2006년 투자자에 대한 국가의 자율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NAFTA를 개정하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위에서 예를 든 펜센트랄 사건과 같은 경우, 미국 법에 의하면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도, ICSID에서 다른 판결이 나오면 어떻게 될지 불안해졌다.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법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와 배경에서 만들어진 문구가 바로 한미FTA 서문에 들어가 있는, 앞에서 우리가 해석했던 그 문구이다. 2001년부터 미국의 대외통상법 개정을 주도한 민주당 하원의원 찰스 랭겔(Charles B. Rangel)이 2008년 <Harvard Journal on Legislation>에 기고한 글을 보자.

"1994년부터 2000년 사이에 NAFTA와 관련한 분쟁 사건에서 문제가 있는 판결들이 다수 내려졌다. 그래서 2001년 나는 미국의 통상조약에서 투자 관련 조항을 개정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중략) 그리고 2001년 NAFTA를 개정하였다. (중략) 그래도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중략) 그래서 새로운 FTA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서문에 넣게 되었다. (필자 : 이후에는 우리의 서문에 있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구는 투자 조항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부분이다. 만약에 중재재판부가 FTA의 투자 조항에 대하여 두 가지 가능한 해석을 고려한다고 가정해 보자. 첫째는, FTA의 적용을 받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미국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 미국 투자자보다 더 많은 권리를 제공해 주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동등하거나 더 낮은 권리를 제공해 주는 경우이다. 서문의 이 문구는 재판부가 첫 번째 해석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것이다."

아주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그 이상한 물건은 이후 미국이 체결하는 모든 FTA의 서문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미국의 의도는 FTA가 미국 국내법과 충돌하면 자기들 법대로 하겠다는 것

이 서문의 위험성은 상당히 심각하다. 만일 미국의 의도대로 된다면, 어떠한 외국인 투자자도 미국의 국내법 수위 이상의 투자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또 있다. 미국에서와 같이(as in the United States)라는 말을 굳이 서문에 써 놓음으로서, 이러한 국내법의 적용을 미국에만 한정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 "미국에서와 같이"라는 말은, 자칫 외국인 투자자는 미국에서 국내법 이상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나, 미국인 투자자는 한국에서 그 이상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말이다. 그래서 이처럼 복잡하게 써 놓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FTA에서 부여하는 권리가 미국 국내법과 충돌할 경우, 자기들 법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불순한 의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국의 의도처럼 미국 국내법을 기준으로 적용하겠다면 이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한다. 비엔나협약(Vienna Convention) 제27조는, 국내법을 근거로 들어서 국가 간의 조약의 불이행을 정당화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미국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판례를 내올 근거를 만든 것이다. 우겨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제법을 근거로 미국의 입장을 반박한다면, 쉽게 미국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서문의 효력에 대해서도 상이한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 단순히 선언적인 의미일 뿐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미국의 의도는 이 서문의 효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서문은 선언적인 의미일 뿐이며, 구체적인 각론에서 모든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만 자의적 해석을 막을 수 있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론스타가 세금 문제를 가지고 대한민국에 또 다른 ISD를 제기한다면 한미FTA는 드디어 수면 위로 부상하며 이에 근거한 ISD는 본격적으로 가동하게 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ISD와는 차원이 다른 ISD이다. 론스타의 전 방위적인 소송 행태를 보면서 한미FTA에 근거한 ISD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어차피 예견된 바이다. 이제는 이에 관한 법적 대비책을 중장기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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