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8대 대선에서 국민은 할 만큼 했다. 추운 날씨에도 75.8%인 3072만 명이 투표장으로 달려갔고, 민주통합당의 연이은 졸전과 패착 속에서도 48%, 1469만 명이 박근혜 후보에게 반대표를 던졌다. 80%가 현 정권을 반대하고 60%가 정권교체를 바라고, 99%가 생존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진 것이기에, 필자는 18대 대선의 패인이 전적으로 민주당에 있으며 이를 제대로 성찰하고 쇄신하지 않으면 이 당은 곧 '호남당'으로 전락하리라 확신한다. 한 사람의 대통령 당선이 몇몇 노동자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비상시국'에서 대선의 패인을 분석하고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진보의 지표와 대안을 모색해본다.
대선의 패인에 대해 해몽 식,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 분석이 난무하는데, 필자는 지난 총선 때부터 당시 야당의 압승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정권 심판론으로는 반드시 진다는 내용의 글인 "민주통합당, 새로운 프레임을 짜라"라는 칼럼을 <프레시안> 3월 1일자로 기고하였으며, 18대 대선에서는 <한겨레신문> 12월 3일자에 "새로운 프레임 없이는 야권 승리 어렵다", <프레시안> 12월 13일자에 "과거의 박근혜가 아닌 미래의 박근혜를 얘기하라"라는 글을 기고했다. 거기서 제기된 문제제기와 대안은 무시되고 결국 민주통합당은 양 선거에서 졌다.
대선 전의 객관적 상황에 대해 돌아보자. 86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720만 명의 자영업자 가운데 57.6%가 100만 원도 벌지 못한 채 빚만 키우고 있고, 이도 여의치 않아 다단계 판매로 나선 415만 명 가운데 4분의3이 단 돈 1원도 벌지 못했다. 공공기관과 지방 정부를 합한 국가부채는 938조 원에 이르며, 아파트 전세 시가총액 908조 원을 포함한 실질적인 가계부채는 2000조 원에 달하는데, 집값은 하락하고 전세와 물가는 폭등하고 교육비 부담은 가중됐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생존위기에 직면해 있고 미래는 불안하다. 50대도 대개 자영업이나 비정규직에 종사하면서(상용 근로자는 38.6%) 간신히 마련한 집을 줄여가며 교육비, 혼수비, 노후자금으로 활용해왔는데, 부동산은 폭락하고 빚은 늘어만 간다.
반면에 정권은 자본과 유착관계를 맺고 기득권에 유리한 정책만 고집하였으며 대통령 측근이 모두 구속될 정도로 부패했다. 정권은 70%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공사를 강행했고,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잘 드러나듯 부당한 정리해고와 부패와 불의에 항의하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정의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는 주로 가진 자의 편이었고 검찰은 스스로 개혁을 이야기할 정도로 썩었는데, 이를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은 철저히 통제당하고, 야당은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진보는 분열되었고, 노동조합 또한 거의 괴멸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 국민을 지배한 것은 치끓는 분노와 끝을 알 수 없는 불안이다. 결국 불안을 잘 이용한 여권은 승리하였고, 분노를 잘 조직하지 못한 야권은 패배했다. 대중의 분노는 대선을 기점으로 좌절로 바뀌었다.
총선 직후 좌클릭을 해서 졌다는 민주당의 총선 평가를 보고, '대선도 지겠구나' 생각했다. 대선 이후 또 다시 좌클릭론과 경상도의 인구가 전라도의 1.6배이고,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유권자가 1618만여 명으로 30대 이하 유권자인 1547만여 명을 넘어서기에 진보가 이길 수 없는 구조라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펴는 것을 보니, 다음 선거가 걱정됨은 물론 민주통합당은 해체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단일화의 실패, 단일화에 매몰되어 골든크로스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함, 선거 막판에 투표율에 집중하여 정책대결을 벌이거나 '왜 문재인인지' 보여주지 못함, 콘트롤 타워가 없음, 여성성 비하 발언으로 인한 여성 표의 상실, 리더십을 갖춘 좋은 지도자가 아니라 마음씨 좋은 아저씨에 초점을 맞춘 광고의 실패도 패배의 원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패인은 국민 대다수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불안'과 '분노'가 지극한 상태에 있음을 직시하지 못한 채 이를 새로운 프레임의 창출과 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한 데 있다.
▲ 18대 대선 당일은 지난 19일,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무거운 표정으로 선거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조지 레이코프의 지적대로 새로운 프레임을 창출하지 못하고서 진보가 선거에서 이긴 전례가 없다. 그는 망나니 부시 부자에게 민주당이 두 차례나 패배한 원인을 그에서 찾았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사람은 코끼리를 떠올린다. 여당의 정책이 아무리 문제가 많더라도 그를 비판하는 순간 그 프레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민주당은 선거 내내 네거티브 프레임에 몰두했다. 유신정권과 연결시키려다 효과가 크게 없자 '이명박근혜' 공동심판론으로 불을 붙였고, 연일 박 후보에 관한 비리성 의혹들을 폭로했다. 하지만, 이미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차별화를 단행하였고 대다수 국민들도 그리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권심판론을 외치니, 상대편은 나는 상관이 없다 하였고, 민주당은 왜 문재인이 당선되어야 하는지 보여주지 못했다.
유신 독재에 대한 비판 또한 헛다리를 짚기는 마찬가지였다. 조희연 교수의 지적대로 역설적으로 박정희 향수는 박정희 독재정권과 맞서서 싸웠던 민주세력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군사독재정권 때 박정희 향수는 없었다. 국민은 경제 위기와 불안 속에서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있는데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안티로서 유신독재 비판만 했다. 국민은 생존위기를 맞아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지 못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을 구성하고 있는데 민주주의만 말하니, 국민들은 아마 밥그릇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도 심판하였음을 민주당은 뼈저리게 성찰하여야 한다. 신자유주의 모순 속에서 생존위기에 처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한 국민에게 노무현 정권은 대안이 아니었다. 만약 노무현 정권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단행했다면 압도적 다수의 국민들이 그의 분신인 문재인을 지지하였을 것이다. 진보· 노동 진영 또한 비정규직법을 제정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노동자를 강력하게 탄압한 제2의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기 어려웠다. 대선을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프레임을 짜고, '과거 대 미래, 절망 대 희망, 낡음 대 새로움'의 구도로 몰고 갔어야 했다.
민주통합당은 대선정국을 정책대결로 끌고 가지도, 차별적인 정책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우클릭하면 중도의 지지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은 민주통합당 보수파와 주변 학자들의 근거 없는 추측과 진단이다. 여러 실험에서 입증되었듯, 이념적으로 중도인 유권자는 없다. 그들은 정책에 따라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선택할 뿐이다. 16대 대선 때처럼 한 사람이 수백 통의 문자를 보내도록 진보의 열정을 결집하고, 서울시장 선거 때 무상급식으로 전선을 형성하여 승리한 것처럼 중도의 아주머니들도 달려갈 혁신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여야 했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수사적으로나마 선점하였는데, 문재인 후보는 노상 뒷북만 쳤고 그렇게라도 나온 정책이 그리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비정규직의 50%가 아니라 100% 정규직화, 입시철폐와 대학평준화와 같은 과감한 교육개혁, 10년 동안 성실하게 주택부금을 납부한 이에게는 무조건 공공주택을 주는 제도 등을 정책으로 내세워 그 정당성과 현실적 가능성 논쟁으로 판을 끌고 갔어야 했다.
계급전쟁으로 가지 않고 세대전쟁으로 간 것도 치명적인 패인이다. 민주통합당은 '젊은이=진보', '중장년층=보수'로 좌단하고 젊은이의 투표율만 높이면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세대전쟁으로 프레임을 구성하면서 세 가지를 잃었다. 계급에 바탕을 둔 진보적 의제를 설정하지 못했고, 서민의 불만과 분노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중장년층의 반발을 불렀다. 극단의 신자유주의 모순에 처해진 서민들에게 그들이 생존위기에 놓인 원인을 깨닫게 하고 그들을 그런 삶으로 몰아놓은 자들이 바로 여권의 기득권 세력임을 분명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대중의 분노는 100% 민주당의 지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데 이를 잘 조직해내지 못했고, 대중의 불안 또한 민주당의 지지로 연결시킬 수 있었는데 양자 모두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지도력 상실, 문재인 후보의 모호한 행보, 정의롭지 못한 제도를 개선하는 정책에 대한 설명 부족 등으로 분노한 대중은 과연 문재인 후보가 자신들의 분노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통치를 할 수 있는지 의심을 품게 됐다.
다수의 대중들은 그래도 문재인을 찍자고 투표소를 찾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기권했다. 대중은 안정과 여당을 동일시하기에 대중의 불안에 대해선 여당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대중의 불안을 선점하는 자'가 지지를 얻는다. 대중의 불안이 기득권의 수탈에서 온 것임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그를 안정으로 이끄는 것은 선별적 복지나 생색내기용 경제 민주화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와 증세를 통한 경제 민주화 정책임을, 복지를 통하여 외려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음을 충분히 알렸어야 했다.
더구나 대선은 5년의 미래를 다스릴 지도자를 선출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미래의 문재인'을 보여주고 '미래의 박근혜'를 비판해야 하는데 '과거의 박근혜'만 비판했다. "현 정권이 고환율정책만으로 여러분에게 빼앗아 부자들에게 준 것이 174조 원에 달한다. 박근혜 후보의 정책을 보면 이것이 재발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대중의 분노와 미래의 박근혜를 연결시키는 전략을 텔레비전 토론 때라도 구사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여권은 총력을 다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했는데, 민주당의 국회의원과 당원은 열정을 다하지 않았다. 보수언론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들의 동맹 안에서만 맴돌았다. SNS에서 벌어진 진보적 담론은 그 바깥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세력은 세련된 전략, 경제민주화에 대한 선점 및 온정적인 복지정책을 통하여 이명박 정권이 만든 보수우파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게모니 투쟁에서 승리했다.
필자는 지금도 여론조사에서 계속 지고 있는 데도 왜 문재인 후보가 과단성 있게 판을 바꾸고 혁신적인 정책을 펼치는 파이팅을 보여주지 못하였는지, 토론에서 왜 더 과감하거나 공격적이지 못하였는지, 압도적인 승리 조건에서도 정권심판론을 펼쳐서 총선에 지는 '기적'을 연출했는데도 왜 그것을 대선에서 반복했는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정치쇄신을 열망하는 자들인데 왜 친노의 일선 후퇴를 비롯한 당의 혁신을 감행하지 않았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민주당 지도부나 문재인 후보의 판단력이나 결단력이 상식 이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선거는 졌고, 정치 쇄신을 열망하는 안철수 현상과 권력의 횡포와 불의에 분노하는 '도가니 현상', 대다수 국민을 생존위기로 던져놓은 신자유주의 모순은 남아 있다. 박근혜 정권은 선별적이고 온정적인 복지를 펼치면서 노동을 배제하는 정책을 취할 것이다. 노동의 저항을 받겠지만 서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이를 바탕으로 대중의 자발적 동의와 설득에 바탕을 둔 강력한 헤게모니를 획득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이 헤게모니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박근혜 정권과 차별성을 드러내야 하고 이는 새누리당이 할 수 없을 정도의 혁신적인 정치쇄신과 좌클릭 뿐이다. 모든 공천권을 국민에게 주고, 호남에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모순을 극복하는 정책을 지향해 그 모순에 던져진 99%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불의에 분노하는 대중의 분노를 조직하여 검찰 개혁을 비롯하여 모든 정의롭지 못한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는 운동을 주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자유주의 우파들은 전면에서 후퇴하고 자유주의 좌파들이 권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획득한 박근혜 정권에 5년 내내 끌려다니며 새누리당을 일본의 자민당과 같은 공룡여당으로 만들 것이다. 중도 보수이지만 상대적으로 청렴하고 정치쇄신을 한 안철수의 당이 생길 경우 민주당 중도파는 이 당에 흡수될 것이며, 다수 대중 또한 그 당의 지지로 전환할 것이다. 더구나 진보 정당이 단일화 할 경우 민주당은 제3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진보의 지표와 재구성
그럼, 이 상황에서 진보 진영은 어떤 지표를 설정하고 재구성할 것인가.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볼 때 '박근혜 대 문재인', '신자유주의 보수 세력 대 신자유주의 자유주의 세력'의 대결은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김대중 정권에서 정리해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노무현 정권에서 비정규직법을 만들고 노동자를 탄압하였기에, 누가 되든 신자유주의 정권이 20년으로 연장되는 것이었다. 다만,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정책을 선점하면서 민주당이 좀더 좌클릭했고, 그 틈으로 '상대적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대 '상대적 신자유주의 규제 강화'의 블록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진보 진영에 약간이나마 기대를 걸게 했는데, 결국 대선의 패배로 그 기대조차 사라져버렸다.
대선 개표 직후 고(故) 최강서 열사 등 노동자들이 연이어 네 명이나 자살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장에서 활발하게 투쟁하던 활동가였다는 점이다. 누가 이들을 죽였는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아니라 '극단의 이익'을 위해 회계조작까지 해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을 강요하여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는 자본, 이들과 유착관계를 맺고 노동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늘 자본의 편만 들어주는 국가, 노동자들을 과격분자나 경제혼란범으로 매도한 보수언론, 이들의 문제를 외면한 시민과 야당만이 아니다. 분열된 진보, 희망을 보이지 않는 노동운동이 그들을 더욱 절망시켰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다.
권영숙 교수의 지적대로, 노동배제의 사회, 노동을 대표하지 못하는 정치적 민주주의, 노동을 외면하는 시민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 고립'이 첫째 문제이고, 그런 노동계급의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 주체화하고, 노동현안을 사회의 중심적 쟁점으로 삼아 이 나라의 정치와 시민사회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노동주체, 나아가 노동자의 대중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의 무능함과 계급적 성격의 모호함이 둘째 문제이다. 한국은 갈수록 파업 빈도가 줄어들지만 파업을 시작하면 장기파업이 된다. 이는 노동자들이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본이 비타협적이고 국가가 일방적으로 자본의 편에 서고, 보수-자유 양당이 노동배제적 정치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야금야금 노동 배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악되고, 국가와 자본, 대형교회, 보수언론으로 이루어진 기득권의 카르텔과 노동 사이의 권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칭이다. 진보는 분열되고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했고, 전체 노동자 가운데 10%도 되지 않는 사람만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는데, 이 또한 민주노조와 어용노조로, NL과 PD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져 있다.
그럼, 이 상황에서 진보·노동진영은 어떻게 길을 낼 것인가.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길은 늘 막다른 곳에서 열린다. 파괴는 창조다. 절망의 극단에까지 나아가서 뼛속까지 성찰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지금이라도 정파주의, 관료화, 종업원 이기주의, 구태의연함을 말끔히 씻어내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가 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임을 직시하고,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굳건히 연대한다. 금융과 토지, 공장을 포함한 모든 생산수단의 공유화, 노동이 진정한 자기실현인 사회, 노동이 자본을 통제하는 세상을 향한 굳건한 목표 아래 모든 정파와 갈등을 녹여내야 한다. 노조 간부들의 관료화를 극복하고 아래로부터 활발한 소통을 하며, 정당이든 조합이든 절차적 민주주의와 내용의 민주주의를 확보한다. 종업원 이기주의를 일소하고 끈끈한 동지애와 굳건한 투쟁의지를 갖고서 민주 노조 깃발 아래 연대한다. 김혜진 정책위원장의 제안대로, 한 사업장의 투쟁이 그 사업장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싸우자. 단순히 노동악법을 개선하는 방어적 자세에서 노동배제를 심화하고 노동자의 죽음과 장기사업투쟁을 야기하는 노동법과 제도를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다시 만드는 싸움을 하자.
머리는 가슴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은 발을 이기지 못한다. 희망은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노동자들, 집회와 희망버스에 참여하는 시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99%로부터 꽃필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엔엘(NL,민족해방) 중심의 진보 운동의 종언을 의미한다. 진보정의당은 유시민 세력과 단절하지 않는 한, 진보의 대열에 설 수 없다. 쌍용차에서, 현대자동차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진보신당,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노동전선 등을 아울러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을 제외한 진정한 진보좌파정당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혁신을 통해 다시 구성된 민주노총이 결합해야 한다. 이제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로 전선을 명확히 하고 노동을 중심에 놓고 계급적 성격을 명확히 하되, 탈핵 등 생태와 복지와 사회정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결합하자. 노동과 환경, 소수자, 소위 적녹보(적색·녹색·보라색, 각각 노동·생태·여성을 상징) 동맹을 맺자.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되, 용산참사, 강정마을, 4대강에서 싸우던 이들과 함께 하자. 멀리 보고, 지역에서부터 풀뿌리 운동을 하고 또 이를 통하여 조직을 확대하자. 한국인의 강한 공동체 지향성을 꼬뮨에 결합하고, 신명이 나는 싸움을 하자.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투쟁과 함께 노동현안을 사회적 쟁점으로 삼는 담론 투쟁을 하자. 그리하여 노동배제의 이 사회를 끝장내고 진정으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열자. 어두울수록 별은 밝게 빛나고 길은 멀리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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