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대란은 예상된 일이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잦은 고장과 비리 문제로 5분의 1가량 운행이 중단된 게 주요 원인이다. 총 23기의 원전 중 5기 원전이 정지됐다. 영광원전 3,5,6호기, 울진원전 4호기, 월성원전 1호기 등이다. 이유도 제각각이다. 영광 3호기는 제어봉 안전관 파열로, 영광 5,6호기는 위조부품 사용으로 현재 운영이 중단됐다. 부품 교체작업이 길어지면서 재가동은 올해를 넘기게 됐다.
울진 4호기는 전열관 결합으로 내년 6월에나 재가동될 예정이다. 지난 11월 20일 수명이 만료된 월성 1호기는 10년 연장할 것인가를 두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심사를 받느라 정지상태다. 이들 모두 합하면 약 460만kw 정도 발전을 못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겨울철 난방 수요가 몰리는 1~2월 사이 평균 전력 예비력은 230만㎾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이마저도 영광원전 5,6호기가 연말 안에 모든 부품을 교체하고 재가동 된다는 가정하에 나온 것이다. 만약 영광원전 5,6호기 가동이 지연될 경우, 1~2월 예비전력은 30만㎾에 불과하다. 예비전력이 100만㎾ 이하로 내려가면 지난해 9월 15일처럼 전국적인 순환 정전에 들어간다.
추가로 원자력 발전소 1기가 정지하게 될 경우는 '블랙아웃'을 선언해야 할 판이다. 지경부 등에서는 '그런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가능성은 높다. 원전에서는 끊임없이 고장과 비리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 12일 오전 전력수급 경보 '관심(예비전력 300만㎾ 이상 400만㎾ 미만)'이 발령됐다. 지하철 시청역에 설치된 전력수급 현황판이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끊이지 않고 밝혀지는 '짝퉁 부품'
대표적인 게 지난 11월 5일 언론에 공개된 일명 '짝퉁 부품' 사건이다. 당시 지식경제부는 울진3호기와 영광3~6호기에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136개 품목 5233개 부품이 설치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품질검증 위조 부품 대부분(98.4%)이 사용된 영광원전 5·6호기의 부품 교체를 위해 가동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후속조치로 만들어진 원전부품 민관합동조사단은 지속해서 '짝퉁 부품'을 찾아냈다. △11월 15일 영광 5호기에 납품한 1개 업체 추가 적발, 4개 품목 총 154개 '짝퉁 부품' 적발 △11월 27일 울진 3,4호기, 영광 3,4,5,6호기에 납품하는 기존업체 추가 적발, 53개 품목 총 919개의 '짝퉁 부품'을 적발했다.
'짝퉁 부품'은 기존 원전만이 아니라 현재 건설 중인 신규 원전에서도 발견됐다. 원전부품 민관 합동조사단은 건설 중인 신고리 3·4호기에 내진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소화수펌프용 제어패널이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감사원 감사에서도 '짝퉁 부품'은 발견됐다. 감사원은 지난 5일, 고리원전 3,4호기에도 '짝퉁 부품'이 공급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민관 합동조사단과 감사원이 적발한 '짝퉁 부품'은 대부분 원전 안전을 위협하는 중요한 부품이다. '짝퉁 부품'으로 확인된 바닷물 취수용 펌프는 원자로 이외의 원전 기기의 과열을 막기 위해 사용한 냉각수가 뜨거워졌을 때, 바닷물을 끌어와 식히는 역할을 한다. 냉각수를 바닷물로 다시 냉각하는 장치다.
만약 이 펌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각종 계측기 등 원전 내 기기들이 과열돼 오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원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이 펌프가 고장 나면 비상 상황 때 작동하는 비상 발전기가 과열로 정지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때 원전 전체의 전원 공급이 끊길 수도 있다.
외국의 품질검증서를 위조한 계전기·퓨즈·스위치는 전원 계통의 안전과 직결된다. 계전기는 이상 전류가 흐르면 감지해 전원 차단기에 신호를 보내 작동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상 전원 감시 장치인 셈이다. 계전기가 불량품이면 이상 전류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전원을 차단해야 할 때 차단하지 못한다. 전원을 차단하지 말아야 할 때 차단하는 등 오작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결국, 전원 계통에 이상이 생기면 원전이 불시에 정지되는 등의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소화수펌프용 제어패널은 비안전등급 설비로, 소화수펌프가 작동하지 않으면 이를 감지하는 기능을 한다. 원전 보조건물에 설치되기 때문에 핵심부품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화재가 확산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원전 안전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 2012년 동안 발생한 원전 고장 일지.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 |
부품에 문제 있지만 운영 중단 안 하는 원전, 왜?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추가로 원전을 정지시키지 않았다. 규모나 중요도가 작다는 게 이유였다. 정부는 가동 중지 없이 부품 교체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이 설치된 원전은 영광 3~6호기, 울진 3,4호기 등 총 6기다. 고리원전 등의 경우, 납품은 됐으나 설치되지는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30여개의 보증서 위조 부품이 사용된 울진 3호기는 발전을 멈추지 않고 부품을 교체하기로 했다. 2600여 개가 사용된 영광 5·6호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짝퉁 부품'을 사용하는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지 않는 이유를 두고 '전력난'을 지목한다. 5기 원전 가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추가로 원전이 멈춘다면 올겨울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가로 원전 가동이 중단되지 않아도 블랙아웃이 발생한 여지는 충분하다. 일시적인 원전 가동정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2012년 원전 일시 가동정지 사례는 11월 초까지 총 9건이었고 원전 가동정지 일수는 총 58일이나 됐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게다가 민간조사단이 활동하는 동안 중요 부품 관련, 추가로 '짝퉁 부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현재 확인된 '짝퉁 부품'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 언제 '블랙아웃'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원전관리 문제도 있지만 환경단체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현재 전력난은 정부가 전기를 값싸게 제공하면서, 그에 따라 방만하게 전기를 이용하는 수요층이 늘어나면서 발생했다는 것.
핵심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한국전력이 전력거래소로부터 사는 가격은 원전이 ㎾h당 39.2원(2011년 기준), 화력발전이 67.22원이다. 원전이 화력보다 절반 수준인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핵폐기장 선정 비용, 원전 폐쇄 비용 등이 포함된다면 화력발전과 비슷하거나 높은 비용이 소요되지만, 현재는 이런 비용을 원전 단가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값싼 전기 정책을 지속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무턱대고 확대했고, 그 결과 일반시민은 원가보다 싼 전기를 사용하게 됐다.
실제 한국 전기요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물론이고 아시아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의 전기요금은 우리의 2.8배, 필리핀은 2.4배, 중국도 1.4배다. 지난해 기준 원가보상률이 87.4%로 한국전력이 전력거래소로부터 100원에 전기를 사서 고객인 국민에게 87원에 파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전기 수요는 더 늘어났고 전력난은 더욱 심화했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및 1인당 전력소비량은 전 세계적으로 상위수준에 있다.
결국, '전기값이 싸야 한다→원전은 화전에 비해 단가가 싸다→원전을 늘린다→전기값이 싸진다→전기 수요가 늘어난다→원전을 더 짓는다' 이런 도식이 성립된다. 악순환인 셈이다.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대선 후보들의 원전 공약은?
환경단체는 이러한 패러다임에서 전환, 즉 탈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원전 건설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싸다'는 이유로 에너지 소비왜곡을 불러일으키고 낭비하는 현재의 악습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핵에 필요한 대책도 제시했다. 강력한 수요관리 정책이 그것. 특히 전체 전기소비의 53%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용 전기소비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하고,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들에 강력한 수요억제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시민들에게 절전을 호소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책수단을 동원하고 국회에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렇다면 대선 후보들은 이런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기본적으로 탈핵에 찬성한다. 대통령이 되면 신규원전 건설 금지, 설계수명 종료한 노후원전 가동중단 및 폐로, 안전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원전 조기 폐로 등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면서 대기업이 사용하는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부터 현실에 맞게 개선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핵발전에 찬성한다. 지난 10일 발표한 원자력발전 정책공약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박 후보는 △노후 원전의 연장운전 허가를 엄격히 제한하고 고리1호기, 월성1호기 원전의 폐기도 EU방식의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를 거쳐 결정 △여론을 수렴, 앞으로 20년간의 전원믹스(Mix)를 원점에서 재설정하며,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재검토하는 걸 내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은 그동안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취해오던 일방적인 원자력발전확대 정책에서 '재검토'를 하겠다고 말한 점 외에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우선 노후원전의 경우, 유럽연합 수준의 스트레스 테스트 같은 강도 높은 조사를 한다고 해도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엄격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더라도 관련 규제기준을 완화한다면 안전성 보장과 상관없이 가동을 강행할 수 있다.
환경단체는 박근혜 후보의 이 같은 공약은 수명 다한 노후원전을 계속 가동하기 위한 명분 확보로 해석한다. 박근혜 후보가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한 민병주 국회의원이 원자력계에 종사해 온 전문가로서 고리1호기 수명연장에 관여한 바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또한, 신규 원전의 경우,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재검토하겠다는 건, 사실상 신규 원전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걸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에너지원, 즉 대안에너지는 1~2년 안에 뚝딱 만들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값이 싸다는 오해를 받는 원전에 의존해 전력 수요를 늘려나가는 기존 정책을 고수할지, 아니면 새로운 전환을 시도할지는 유권자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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