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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사령부, '민주경제원'을 창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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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사령부, '민주경제원'을 창설하라

[긴급 제안] 경제민주화, 연목구어가 되지 않으려면…

경제민주화는 2012년의 화두다. 그러나 그에 관한 말만 무성할 뿐 제대로 진척되지는 않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경제민주화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기득권 세력의 움직임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16일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통해,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긴급 제안을 했다. <프레시안>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의 동의를 얻어 유 교수의 글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유력 대선주자들이 모두 다 경제민주화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각 후보가 올려놓은 10대 공약을 보면 박근혜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경우 경제민주화가 첫 번째 공약이고, 문재인 후보의 경우는 세 번째 공약이다. 필자가 항상 강조했던 것처럼 경제민주화는 정파적 과제가 아니라 역사적 과제로 부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발독재 하에서 산업화를 추진하는 데에 4반세기를, 그리고 직선제 민주주의 아래서 시장화로 치달으면서 4반세기를 보낸 우리는 이제 합의제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경제민주화를 이룩해야 하는 역사적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이런 의미에서 가히 시대정신이요 국정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정부조직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경제민주화를 총지휘할 사령부로서 '민주경제원'(가칭)의 창설을 제안한다. '민주경제원'은 예산편성권과 정책조정권을 바탕으로 경제민주화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부서로서 그 장관은 부총리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통령만 잘 뽑으면 경제민주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경제민주화는 법 몇 개 만들어서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 뿐더러, 입법은 물론 법과 제도의 시행 과정에서 엄청난 반대와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이를 뚫고 개혁을 꾸준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신념은 물론이거니와 집권세력의 이해관계가 경제민주화 철학과 일치해야 하며 치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이를 간과한 것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준비해온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비극이다. 그는 누차에 걸쳐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했고, 그것 하나면 경제민주화 실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1:10의 압박 아래서 자신이 준비한 경제민주화 공약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박근혜 후보의 세력 기반이 경제민주화와 배치되기 때문에 그는 김상조 교수가 예측한 대로 '토사구팽'의 운명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집권세력의 경제민주화 실현 의지와 역량이라는 면에서 보면 야권의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의 경우에도 그다지 미덥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일전에 어느 토론회에서 <한겨레> 곽정수 기자의 재치 넘치는 표현에 따르면,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세 커플이 있는데 이들의 부부관계가 모두 수상하다고 한다. 박근혜-김종인 커플은 부부싸움을 자주 해서 부부관계가 너무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별거 수순에 돌입한 것 같다. 문재인-이정우 커플은 한미FTA니 삼성이니 심각한 성격차이로 인해서 한 번 이혼을 했었는데 슬그머니 재혼을 한 경우로서 정말 성격차이를 제대로 극복을 한 건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한계를 확실히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의 근거를 제공하는 데 미흡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철수-장하성 커플은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는데 갑자기 결혼한 과속 커플이라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고한 저항을 뚫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기 위한 팀워크가 부재한 현실에 대한 지적이다.

ⓒ연합뉴스

정권교체가 경제민주화 성공으로 이어지리란 보장 없어…경제민주화 동맹 필요

이러한 현실을 볼 때 정권교체가 곧 경제민주화의 성공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필자는 현 시점에서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이 두 가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재계와 모피아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뚫고 나가기 위해 경제민주화를 향한 아래로부터의 동력, 즉 필자가 늘 강조해온 경제민주화 동맹을 조직화해야 한다. 정치민주화와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도 궁극적으로는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질 일이다. 비근한 예로 작년에 수십만 명의 격렬한 시위 끝에 재벌개혁에 착수한 이스라엘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되어 지난 9월부터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둘째, 단일화 과정에서 집권세력의 경제민주화 의지와 역량을 최대한 키우는 방식의 단일화가 이루어지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는 일이다. 정치공학적 단일화가 아닌 가치와 정책을 공유하는 정치연합으로서의 단일화를 이룩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고 역사적 과제임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이에 걸맞은 인적 쇄신도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집권 후 추진할 경제민주화 정책을 제시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추진을 담당할 경제민주화 사령부를 어떻게 설치하고 그 집행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공론화하여 이것이 대선공약으로 채택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 추진기구와 관련한 구상을 밝힌 바가 아직 없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에는 대통령 직속 재벌개혁위원회의 설치를 공약했다. 이는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를 밝힌 것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과거 정부에서 무수히 많았던, 그리고 대체로 유명무실했던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들의 경험을 보면 이것이 효과적인 방안인지 의심스럽다. 아무리 대통령과 관계 장관들이 참여한다고 해도 집행력이 없는 자문위원회일 따름이기에 정책 추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근한 예로 동북아시대위원회나 녹색성장위원회가 과연 어떤 성과를 냈는지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후보 자신이 경제민주화 집행기구 문제와 관련하여 언급한 바는 없으나, 최근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이 '경제민주화기본법'을 준비하여 입법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법안에는 총리 직속 합의제 행정위원회로서 경제민주화위원회를 설치하여 경제민주화기본계획의 수립 및 시행을 담당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행정기구라는 점에서 진일보한 안이지만 필자가 공청회에서 밝혔듯이 공정거래위원회와 이해상충 우려가 있고, 무엇보다 이 정도 위상으로는 경제부처의 저항을 극복하고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해 낼 힘이 부족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공청회에서 필자는 경제민주화위원회를 방송통신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독립적인 합의제 행정기구로 설치하고, 공정거래위원회와 규제개혁위원회, 중소기업청 등 경제민주화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큰 정부기구들을 그 산하에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때 재계의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해온 규제개혁위원회를 개편하여 여기에 사회경제적 약자의 목소리가 대폭 반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동시에 국회에도 예결위와 같은 상설특위로서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후에 필자는 이 문제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해본 결과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다양하게 감지되는 경제관료들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저항 움직임을 보면서 더욱 강력한 경제민주화 집행기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일례로 최근 기획재정부에서 경제민주화 이슈 관련 내부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해본 결과, 경제민주화는 경제성장과 배치된다는 낡은 인식에 기초해서 정치권에서 나온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재계의 입장을 판박이처럼 되풀이하면서 온통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이어서 충격을 주었다. 가히 '모피아'의 본질을 드러낸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기재부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인식[을] (…) 방치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제민주화는 좌초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필자는 '모피아' 세력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으로서 과거 국가 주도 산업화 시대의 경제기획원에 필적하는 위상과 권한을 갖춘 '민주경제원'의 창설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경제기획원에 필적하는 위상과 권한을 갖춘 '민주경제원' 창설이 대안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국가 주도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이를 총괄하도록 창설한 부처가 경제기획원이었다. 경제기획원은 국가 주도 산업화를 기획하고 각 부처 간 정책을 조정하였으며, 이러한 기능을 실질적인 권한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예산편성권을 가진 막강한 선임부처였다. 스테판 해거드를 비롯한 상당수의 학자들이 한국의 경제적 성공을 설명하면서 경제기획원이라는 제도를 중요한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이 시기에 급속한 산업화와 고도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바람직한 경제의 모습은 아니었다. 정경유착과 관치경제, 재벌독점과 노동탄압, 지역·계층 간 불균형 등 심각한 경제왜곡과 모순을 만들어냈으며, 만성적인 인플레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하여 반복적으로 경제위기를 맞기도 했다. 정치적 억압과 더불어 경제적 모순의 심화가 군사독재정권의 종언을 초래한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개발독재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직선제 민주주의 시대가 개막했다. 이 시대에 경제정책의 사조에 있어서는 개발독재 하의 국가 주도 관치경제를 민간 주도 시장경제로 개혁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이는 분명 필요한 개혁이었지만 동시에 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재벌과 같은 경제권력을 규제하며 노동자와 같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직선제 민주주의 하에서 재벌개혁, 노동권 강화, 복지와 재분배 등 경제민주화 요구는 힘을 받지 못하였고, 시장개혁이라는 미명으로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득세하였다. 이렇게 된 까닭으로는 당시 시대적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신자유주의가 횡행한 시대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IMF 위기로 인해 우리는 그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외부적인 사정 못지않게 중요한 원인이 직선제 민주주의의 정치적 한계였다.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화를 이루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국민의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매우 저급한, 불완전한 민주주의였다. 정치란 무릇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갈등을 봉합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가 되어버렸다. 독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권력싸움 위주의 정치문화가 형성된 데다가,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직선제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등 정치제도가 승자독식 제도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정치, 정책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지역주의를 근거로 기득권화한 양대 정치 세력 사이의 권력투쟁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식의 정치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경제권력의 영향력은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긴다고 하는 정책, 즉 경제권력이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정책이 득세한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1987년부터 금년 2012년까지 4반세기 동안 시장화의 길을 내달은 한국경제는 근본적인 모순에 봉착해 있다. 재벌은 문어발 확장에 열을 올리는데 골목상권은 붕괴하고, 대기업 이익은 폭증하는데 임금과 중산층 이하 가계소득은 뒷걸음질 치고, 경제는 성장하는데 대다수 국민의 삶은 팍팍해지는 모순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극도로 불행하고 청년은 희망을 잃은 나라, 중장년층은 장시간 노동에 허리가 휘면서도 고용불안과 노후불안에 시달리는 나라, 노인들은 압도적인 빈곤율과 자살률 통계가 보여주듯 삶을 지탱하기도 힘든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국민들의 인식에 대전환이 왔다. 이제는 제발 성장에만 '올인'하지 말고 분배도 좀 하고 복지도 좀 하자는 것이며, 1% 특권층을 위한 경제가 아닌 99%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경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며, 시장만능주의와 친기업주의를 넘어서 경제민주화를 하자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지역주의에 기대어 기득권만 챙기는 정치, 재벌 눈치 보면서 국민에게는 립 서비스만 하는 정치를 확 바꿔서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가자는 것이다. 즉, 승자독식의 직선제 민주주의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를 포함한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는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대전환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한 역사적 과제다.

▲ 유종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경제민주화, 경제적 대전환을 주도할 새 부대가 필요하고, 필자는 그래서 '민주경제원'의 창설을 제안하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국가 주도 산업화 시대의 경제기획원을 폐기하고 그 대신 재정경제원을 신설한 바 있다. 외환위기가 엄습해오던 1997년 하반기에 미국계 컨설팅회사인 부즈.앨런&해밀턴사는 '21세기를 향한 한국경제의 재도약'이라는 보고서에서 재정경제원을 해체하고 대신 '자유경제원'을 설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시장화의 사령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지난 4반세기 동안 경제부처들은 사실상 '자유경제원'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피아'들은 항상 시장원리와 개방을 통한 선진화를 내세우며 재벌이나 월가 금융자본 등 경제권력과 협력했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민주화 시대를 이끌어 갈 사령부로서'민주경제원'을 설치하여 모피아를 제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제민주화는 연목구어가 되고 말 것이다.

필자는 대선 캠프 참여와 관련해서 많은 압력을 받으면서 깊이 고민했다. 각 캠프의 상황을 보면서 경제민주화 실현에 최선의 기여를 하는 방법이 캠프 안보다는 밖에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이 글은 밖에서 하는 노력의 작은 소산이다. 부디 공론화되어 야권 단일후보의 대선 공약에 반영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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