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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스펙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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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스펙의 불편한 진실

[민교협의 정치시평]<7> '스펙사회', 대학의 역할을 생각하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만난 대기업 중견간부가 된 한 대학동창이 "요즘 대학에서 도대체 뭘 가르쳐?"라는 조소 어린 질문을 했다. 그의 이어지는 말은 "요즘 대학생들은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지만 현장 실무 능력은 '꽝'이야." 신자유주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는 교육 현장의 팍팍한 현실을 알지 못하니 그런 질문을 하겠지만, 마음은 다소 불쾌했다.

오늘날 스펙이라는 말이 주는 불편함을 논외로 한다면 광의의 스펙은 모든 일을 하는데 요구된다. 스펙, 즉 specification은 제품 설명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이 물건은 어떤 능력, 사양을 갖고 있음을 말해 주는 보증서와 같은 것이다. 어떤 전문 분야의 일을 하는데 방면의 일을 하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보증을 해 주는 것이 바로 '스펙'이다.

20대 청년 중 80%넘는 이들이 대학생이 되는 시대. 해마다 60만 명이 넘는 대학 졸업생이 넘쳐나고 있다. 매년 신규 일자리는 20여 만 개에 불과하고, 그런 일들이 대졸 학력이 필요 없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의 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일자리의 상당수는 정규직도 아니다. 그래서 좋은 일자리(정규직, 고용 안정성, 미래 발전 가능성, 쾌적한 작업장 등)에 들어간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과 같다.

1995년 김영삼 정부의 5·31교육정책 덕분에 대학교는 이미 졸업장 발부 공장이 되어버렸다. 그러기에 대학 성적표는 더 이상 학생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학생들은 교수들과 함께 연구하기는커녕 논문 제조기가 되어버린 교수들의 나사 부품이나 되어버렸을까?

예전에는 학교의 3주체로 이해되었던 학생들에게 요즘의 학교는 멋진 낯선 말을 부여했다. '대학 고객'이 그것이다. 학교 당국은 교수들에게 늘 고객 관리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휴학 지도, 편입 지도, 학사경고 지도 등은 학생들이 학교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도하라는 것이다.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취업 지도이다. 취업률 올리는 게 대학의 존망과 직결되어 있는 현실에서 학문을 통한 교육은 꿈이 되어 가고 있다. 이론과 현실을 연결하는 교육의 이상은 산학협력이라는 말로 인맥 등을 통한 취업 보장으로 변질되었다.

대학 공부, 전공이나 교양 공부 잘하는 게 더 이상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로부터 대학의 공부는 사회생활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지만, 그 자체가 피나 살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 강의가 피와 살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교수들이 공부해온 방식이나 목적이 피와 살 그 자체가 아니라, 피와 살이 되게 하는 원리나 방법일진데, 그런 목적이 잘 실행될 리가 있나? 즉 대부분의 교수들이 수단으로서 제외하고 토익이나 토플, 지멧 점수 올리기 공부, 자격증 취득 공부 등을 전공으로 한 적이 없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으로 간다. 또는 해외 연수를 간다. 스펙 쌓기에 많은 시간이 걸릴수록 그 학생은 대학 정규 교육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모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표준화된 스펙으로 충만한 대학생이 발붙일 직장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스펙은 화려하지만, 정작 취직된 후 현장에서 사용되는 능력은 '특정한 스펙'이 아니라, 현실적이면서도 복합적이고 유기적 능력이다. 오히려 그러한 능력을 함양시켜 주는 데에는 대학 교육이 가진 장점이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대학 강좌는 아직은 다양한 내용들이 진행되고 있고, 다양한 교육 방법들이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생이 스펙 쌓기에 많은 시간을 들일수록 그들은 다양한 경험과는 멀어진다. 비판적·성찰적 문제의식도 더 옅어질 수밖에 없다. 영어 점수, 자격증 취득 공부는 대부분 암기식, 주입식 공부가 되다 보니, 창의성과는 더 멀어지게 된다.

또한 스펙 쌓기에 많은 시간을 들일수록 많은 교육 비용이 들어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기 마련이다. 1년의 등록금 1000만 원이라는 비용적 부담은 말할 것도 없고, 스펙 쌓기 드는 비용을 부모에게 다 의지할 수 없기에 대학생 10 중 8, 9는 과외비를 마련하기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격이다. 그러다보다 학교 공부에 대한 집중력은 더 떨어지게 된다. 1시간에 4100여 원 시급은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좀 더 받기 위해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 수업시간에 앉아 있으면 잠이 오는 건 공식이다. 목표-수단 전치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래서 반값등록금은 절실하다. 그렇다고 하여 반값등록금이 만병통치약인가? 현실적 문제를 더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다. 즉 현재와 같은 사회 구조에서 대학생들은 반값등록금이 되어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고학력사회는 더욱 심화되고 대학 서열 구조, 즉 학벌 사회도 심화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대학 서열 구조가 해체되지 않는 한 대학생들은 더 많은 스펙 쌓기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각종 자격증에 해외 연수, 국내외 봉사 등의 자격증보다 더한 자격증을 요구할 것이다. 그 비용을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다보면, 대학 교육 정상화는 더욱 요원해 질 것이다.

정답은 사회구조 개혁이다. 스펙 쌓기 문제가 발생한 것은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모순 때문이다. 현재 대선 후보들이 화려한 교육 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다. 정말 필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 구조를 그대로 놔둔다면 아무리 멋진 교육 개혁 방안을 제시하더라도 '제도는 제도'일 뿐이다.

우선은 선택과 집중의 신자유주의적 원칙을 내려놔야 한다. 모든 일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실현시켜야 한다. 노동 강도가 세고, 노동 시간이 길수록 정당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어느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로 되는 3D업종일수록 제대로 평가를 받아야 그에 상응하는 노동력이 공급될 수 있다.

또한 현재와 같은 비정상적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또는 안정화시키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여성 노동력의 70%가 비정규직이고, 퇴직 연령 45세인 환경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삶의 안정을 찾기 어렵다. 이러한 불안한 노동시장의 환경 속에서 20대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느라고 청춘을 허비하고 있다. 허비되어지고 있는 스펙 쌓기 시간에 다양한 자기 개발을 하고 이론과 현실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노력들이 청년들에게나 우리 사회에도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중소기업이 안정성을 가져야 한다. 승자 독식 사회에서 현재와 같은 재벌이 재채기를 하면 중소기업은 몸살을 앓는 구조 속에서는 인재들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가 어렵다. 대선 후보들의 중소기업 관련한 숱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재벌의 배경을 받고 있는 정당이나 대선 후보가 과연 진정으로 중소기업 살리기를 할 수 있겠고, 대학 살리기를 할 수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이건 공부하는 사람이건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돈과 권력, 배경의 크기가 척도가 된 사회에서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 우리 청년들은 이미 어려서부터 개미의 가치 못지않게 베짱이의 가치도 배운 세대들이다. 다시 말해 돈이나 권력의 힘 못지않게 자아실현의 의미도 배웠다.

그러나 기성의 사회는 사는 재미를 잃게 만든다. 현재는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머지않아 그런 세상은 끝날 것이다. 그럴 때 사는 의미를 다시 배워야 한다. 그 의미를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누구나 재미있게 공부하고 재미있게 살 자격이 있다. 스펙 많은 사람은 많아서 재밌겠지만, 적은 사람은 적더라도 재밌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다. 청년들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쫄지 말고 열정을 갖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입니다. 19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습니다. <민교협의 정치시평>은 손호철, 최갑수, 김귀옥, 김성희 교수의 순서로 돌아가며 연재되며, 매주 1회 금요일에 <프레시안>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민교협 홈페이지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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