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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짜리 꼬마가 맨발로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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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짜리 꼬마가 맨발로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 까닭

[공정무역, 달콤한 기적·①] 굶주리는 필리핀 네그로스 사탕수수 농민

지난 22일부터 27일, 5박6일간 두레생협연합회 임원과 APNET 임직원이 필리핀 네그로스 사탕수수 생산지를 방문했다. 설탕 공정과정을 이해하고 농민들이 사탕수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두레생협연합회는 네그로스 지역 단체인 ATC(Alter Trade Corporation)와 마스코바도(유기농 설탕) 교역을 진행 중이다.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은 소비자가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때 개발도상국의 생산자와 노동자들이 환경에 부담을 덜 주고 생산한 믿을 수 있는 제품에 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걸 말한다.

ATC에는 14개의 사탕수수 농장이 속해 있다. 두레생협은 원조가 아닌 교역을 통해 네그로스 농민과 지속가능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마스코바도는 이러한 생각의 첫 번째 교역물이다. 설탕을 선택한 건 네그로스에서 설탕이야말로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땀이 만들어 낸 대표적인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네그로스 사탕수수 농장을 5박6일간 동행취재했다. <편집자>

10살은 됐을까. 한 눈에도 초등학생 정도로 돼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자기 팔뚝보다 큰 작두를 들고 사탕수수 밑동을 내리치고 있었다. 능숙한 솜씨였다. 왼손으로 사탕수수 줄기를 잡고 작두를 한 번 내리치면 자신보다 3배나 큰 사탕수수는 손쉽게 땅과 분리가 됐다. 그러면 그 옆에 또래로 보이는 또 다른 남자아이가 잘린 사탕수수에서 잎을 제거했다. 이들 두 소년 뒤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탕수수 농장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작업화나 작업복은 사치였다. 맨발에 장갑도 없었다. 소금기에 절은 얇은 반소매 티셔츠의 목 부분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사탕수수는 피부가 연약한 사람의 살에 닿으면 가려움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게다가 잎도 거칠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필리핀 네그로스 농민 크리시아(45) 씨는 "지금도 네그로스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저렇게 사탕수수밭에서 온종일 일하는 농가가 대다수"라며 "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이 사탕수수 수확을 거들어야 하는 게 지금의 구조"라고 설명했다.

두레생협연합회에서 구입하는 설탕 원재료 생산 농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두레생협에서 설탕을 구매하는 조건에는 아동 노동 금지도 포함돼 있다. 기금 마련 등을 통해 아동 노동 근절에 각별히 신경 쓴다.

반면, '소비자-생산자' 구조로 공정무역이 이뤄지지 않는 네그로스 사탕수수 농장 상당수에서는 아이들이 일을 하고 있다. 사탕수수 농장 곳곳에서 어린 아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외부 도움 없이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는 네그로스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소년 두 명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네그로스는 어떻게 사탕수수 농장으로 변했나

네그로스는 필리핀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61.5%가 농지다. 이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사탕수수다. 16만725ha(4억8619만3125평)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사탕수수 농장은 필리핀 국내 사탕수수 공급의 47%를 차지한다.

네그로스에 사탕수수 농장이 많은 이유는 외국 자본 때문이다. 1920년대 설탕산업으로 이익을 본 외국 자본가들과 국내 지주들은 대량 설탕생산을 위해 기존 땅을 사탕수수밭으로 바꾸어 놓았다. 논밭은 물론, 숲이 있던 자리까지도 사탕수수로 채워졌다.

사탕수수 한 작물에 의존하는 건 세계 설탕 시장 가격 변동에 따라 네그로스 농민의 삶을 좌우했다. 세계시장에서의 설탕가격 폭락은 사탕수수 농업노동자와 설탕 공장노동자의 대량해고로 이어졌다. 수입이 없는 농업노동자는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네그로스 농민이 땅을 소유하지 못한 점도 굶주리는 이유 중 하나였다. 네그로스 농민은 지주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하루 일하고 하루 일당을 받는 일용 노동자로 지내왔다. 아침 6시부터 온종일 일해도 가족의 끼니조차 살 수 없는 일당을 받았다.

게다가 사탕수수는 5월부터 9월까지 사람 손이 필요하지 않는다. 이는 일당제 농민에겐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남자는 부두 노동자로, 여자는 하녀로 일하러 가야 했다. 아이들도 가족 생계를 위해 학교에 못 가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반세기 넘게 살아온 게 네그로스 농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1988년 21년간 필리핀 독재정치를 펼쳤던 마르코스가 축출당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새로 정권을 잡은 아키노 정권이 '종합농지개협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한마디로 말해 지주가 가지고 있는 땅 중 일부를 실제 그 땅에서 일하고 있는 농민에게 나눠주는 걸 골자로 하고 있다. 종합토지개혁은 2002년 12월 현재 약8만8751명의 수혜자에게 총17만6141ha가 분배됐다.

▲ 사탕수수를 다 수확하고 잎만 남은 농장에 소년이 앉아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 왼편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게 사탕수수 농장이다. ⓒ프레시안(허환주)

토지개혁, 하지만 여전히 굶주리는 네그로스 농민들

토지 수혜농민은 '이제 굶주림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농지를 받았다 하더라도 사탕수수 농사를 짓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수십 년 간 지주가 시키는 대로 농장에서 사탕수수 파종과 수확만 해왔던 농민들이 농업기술을 습득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파종법, 잡초제거, 수확시기 등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설사 농업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사탕수수 종자나 비료를 살 돈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도 요원했다. 가난한 농민에게 은행은 쉽게 대출해주지 않았다. 결국 손을 벌리는 게 고리대금업자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자금운영방법이나 농업기술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농민들은 대부분 농사에 실패하든지, 빚을 갚을만한 정도의 수입을 내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고리대금을 갚지 못하고 대부분 빚더미에 앉았다. 이 때문에 대부분 농지개혁수혜자의 땅은 고리대금업자에게 저당 잡혀 있는 게 현실이다. 다시 소작농 신세로 전락하는 구조다.

기타 주변시설의 부재도 사탕수수 농사를 짓는 데 어려움을 줬다. 전기, 관개시설과 도로 등을 관리하고 있는 지주들은 토지개혁 이후, 자신의 농장에서 이 모든 걸 철거했다.

이 때문에 농지개혁 수혜자들은 자신의 농장에 물을 공급할 수 없게 됐다. 물이 없다는 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걸 뜻한다. 트럭, 트랙터, 설탕 제조공장 등 농업시설 이용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독점하고 있는 지주들은 농민이 이를 이용하면 비싼 이용비를 내도록 했다. 결국,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농민들은 낮은 생산성을 낼 수밖에 없었고 이는 낮은 수입으로 이어졌다.

네그로스 중부 라까를로따시에서 사탕수수 농사를 짓고 있는 리또 필리핀 네그로스 해칼바 협동조합 의장은 "토지개혁 이후 일정 부분 땅을 갖게 됐으나 지주의 방해는 여전하다"며 "전기와 물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는 땅을 빼앗긴 뒤, 이곳 전기과 물을 끊어버렸다"고 설명했다.

리또 의장은 "전기와 물을 이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으나 정부는 이를 무시하는 상황"이라며 "이 지역 시장이 과거 지주의 딸이라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그로스 사탕수수 농민에게 법률적, 재정적, 여러 부분에서 지원하고 있는 ATFI(Alter Trade Foundation, Inc.)에서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해리 씨는 "농지를 받았으나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은 결국 견디다 못해 땅을 포기하고 정부에 되팔고 소작농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던 일용농업노동자가 하루아침에 주체적으로 농사를 짓는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토지개혁 이후에도 네그로스 농민. 전 가구 수의 41.6%가 빈곤층이고 50.2%가 빈곤선 아래에 포진해 있다. 아이들이 여전히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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