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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를 조롱하고, 스님을 때리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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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파를 조롱하고, 스님을 때리는 세상입니다"

[전태일 통신]<92> 밀양 주민들, 언제까지 싸워야 하나요?

몸도 성치 않은 노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맨몸으로 기계 앞에 서는 것뿐이었다. 좋지 않은 무릎으로 기어서 산을 올랐다. 나무를 껴안고 나무를 베려는 젊은 인부 앞에 섰다. 지팡이를 짚고 나무를 끌어안았다. 매일 새벽녘마다 반복된 일이었다. 누군가는 맞았고, 누군가는 조롱을 당했다. 억울했지만 들어주는 이도 없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였다.

1월 16일 새벽 영하의 찬 공기가 덥혀지기도 전에 용역 50여 명과 굴삭기가 논으로 들이닥쳤다. 논으로 달려가 막았다. 그들은 내일도 모레도 올 것이었다. 노인은 절망했다. 어떻게 마련한 논인데. 전 재산이자 형제의 삶이 오롯이 담긴 그릇이었다. '저 굴삭기 불 지르고 나도 죽겠다'던 노인은 해질 무렵 마을 입구 다리에서 몸에 불을 붙였다.

일흔이 넘은 노인들이 구부정한 몸으로 이른 아침마다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그렇게 농사도 작파하고 산에 올라 젊은이들과 악다구니를 벌였다.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산에 산막도 지었다. 나무를 자르려는 사람 옆에 서서 방해도 해봤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조롱했다. 농민들과 함께 해주었던 스님은 그들에게 지독스럽게 맞았다. 7년을 이어온 싸움. 씨 뿌리고 거두는 일을 포기한지도 2년 째. 매일 산에 올랐지만 세상은 그들을 알지 못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지역 이기주의에 불과한 시골 노인네들이…

화려한 밤거리를 수놓는 네온사인과 한여름 무더위에 버튼 하나로 찬바람 씽씽 나오는 에어컨아래 있는 그 누구도 매일같이 산을 올라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젊은이들과 싸우는 70~80대의 힘겨운 노인의 삶을 알지 못했다. '동생이 굶어가며 마련한 논'을 눈뜨고 빼앗기게 된 일흔네 살의 노인이 아흔 노모를 두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기 전까지 그들은 '지역 이기주의'에 불과한 시골 노인네들에 불과했다.

전 재산인 시가 4억 원 가량의 논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 100m 짜리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는 대가로 그가 제안 받은 것은 6천만 원이었다. 논에 들어오는 굴착기 앞을 가로 막아도 보았고, 젊은 용역들 앞에서 분노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기력뿐이었다. 노인은 몸에 불을 붙였다. 노인의 죽음에 대한 한전의 대답은 10억 원에 가까운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노인들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 신청도 했다. 법원이 기각했지만 한전은 창원지법에 항고했다. 몇 년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파괴하는 것으로도 부족했다.

송전탑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정부가 하는 일이니까, 나라에서 하는 큰 사업이라는데 누군가는 손해를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보상 몇 푼 더 받으려고 그러는 것 아닐까. 누구든 시가 1억 5천만 원짜리 밤밭을 포기하는 대가로 145만 원을 받으라고 한다면, 나라에서 하는 큰일이니까 당신이 손해를 봐야 한다고 하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편의상 지도에 쉽게 금을 그어버린 누군가 때문에, 단지 공사비용 조금 더 아껴보겠다고 우리 집 앞에 100m 짜리 위험한 철말뚝을 박아야 한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도 꼭 그길로 지나가지 않는 다른 길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법이란다. 도로에 관한 법도 군사시설에 관한 법도, 깡그리 다 무시해버리는 법 때문이란다. 관련법 20개 이상을 무력화 시켜버리는 법위의 법 '전원개발촉진법'때문이란다.

이 법은 법뿐만 아니라 인간위에 군림하는 법이다. 전력 생산 시설을 짓는다고 장관한테 허락만 받으면 사람의 삶이나 그 터전 따위는 무시해버릴 수 있단다. 토지 소유자가 원하지 않아도 전원개발사업으로 지정되면 우리의 토지가 강제수용당하는 법이란다. 땅을 빼앗긴 우리가 채무자가 되어 법원으로 나가 재판을 받아야 하고, 공사방해로 국가재산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당해야 하는 법이란다. 그게 이 나라의 법이란다. 평생을 일구고 살아온 터전, 공동체, 삶의 이야기는 물론, 군사시설이나 환경과 관련된 조건도 무시할 수 있단다. 사람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한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촌부들에게 적용된 법이란다.

▲ 송전탑 반대 밀양시 4개면 주민대책위원회와 분신대책위원회는 문정선 밀양시의회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7월 25일 오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4공구 현장 사무소 입구에서 공사장 인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26일 밝혔다. ⓒ분신대책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었다. 힘 좋고 건장한 용역들이 몰려오는 날이면 도로에 드러누워 안 된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없었다. 나무를 베고 건설 공사를 하려고 하면 같이 산에 올라가 방해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법도 정치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새로 지어지는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나라 곳곳으로 전달하기 위해 지어진다는 '나랏일'에 촌부들의 구부정한 허리와 지팡이는 어떤 위협도 되지 못했다. 노인들은 송전탑 건설이 시작되면 그 구덩이에 같이 묻힐 거라고 했다. 이대로만 살게 해달라는 노파의 눈물 섞인 목소리는 이미 묻혔다. 유서를 가슴에 품고 휘발유통을 지고 산다는 노파의 절절한 목소리는 정책결정자 누구의 가슴을 울리지 못했나보다.

"어떻게 이 나라가 국민들에게 이런 고통을 줍니까? 아픈 몸을 이끌고 매일 산을 오르며 공사를 막았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욕심이 없습니다. 그저 짓던 농사 그대로 지으며 살다가 죽게 해 주십시오"

"한전 직원들과 시공사 직원들은 우리 주민들을 개 취급하며 조롱합니다. 손자뻘 되는 그들은, 우리가 나무 베는 것을 막으려고 이리저리 쫒아 다니고, 가파른 산길에서 기어 다니는 것을 보면서 '오늘은 할머니들 열 바퀴 돌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매일 휘발유가 담긴 병을 들고 산에 오릅니다.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거예요. 우리가 죽어서라도 세상에 억울함을 알릴 수 있다면, 남은 여생 그나마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민들이 눈물로 호소합니다. 제발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일까. 가난한 농부들의 삶을 빼앗아도 되는 법과 함께 알량한 에어컨 바람 앞에 살고 있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이 세상을 그대로 용납하고 눈감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삶이 한순간에 송두리째 뜯겨나가도 그건 '나랏일'인 그런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일까.

남은 생도 이렇게 살다 가게 해 달라는, 보상도 필요 없다는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조롱과 협박, 폭력, 가압류, 손배소, 무관심, 절망이었다. 죽고 나서야, 사람이 몸에 불을 지르고서야 그들의 싸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의 작은 외면이, 당장 편한 것만 찾던 나의 조그만 이기심이 쌓여가는 동안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었다. 인간위에 군림하는 법이 지배하는 세상. 노파를 조롱하고, 스님을 때리고, 사람이 죽는 세상. 당신과 나의 세상은 어떤 세상이며, 우리는 당신은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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