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과 2007년 대선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에 따른 양극화 속에서 치러졌다. 그 결과 민주화운동 진영을 지배해온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적지지 분위기에 어느 정도 균열이 생기고 진보 정당, 진보 후보에 대한 지지가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이 같은 분위기에 변화가 생겼다.
이명박 정부를 겪고 보니 "그토록 비판했던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이명박 정부에 비하면 양반"이었다며 "죽어도 새누리당의 재집권은 막아야한다"는 분위기가 민주화 운동 진영에 강해졌다(물론 이 같은 평가와 달리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사이에 차이보다는 연속성이 크다고 보는 좌파도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다 죽어가던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이명박 정부가 되살린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같은 비판적 지지의 분위기와 완전히 동떨어지게 움직이고 있다. 비판적 지지의 중심 대상이라고 볼 수 있는 민주통합당은 무능의 극치이다. 최근 한 언론에 쓴 글에서 개인적으로 지적했듯이, 민주통합당은 민심을 잡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느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차기 대권을 상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마디로, 현재의 민주통합당은 정권을 추구하는 정당이 아니라 정권을 잡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해 집단에 다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 대선이 백일 앞으로 다가왔건만 정책 논쟁은 사라지고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이전투구뿐이라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세계 금융 위기로부터 21세기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일본의 동맹 대 새로운 패권 도전 세력인 중국 간의 긴장, 동북아의 새로운 불씨인 북핵 문제, 그간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임계점에 이른 지 오래인 민생 문제 등 우리사회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논쟁은 찾아볼 수가 없고 허구 헌 날 이전투구의 싸움질만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이 같은 정치 실종, 정책 실종, 그리고 이전투구의 중심에 있는 것이 비극적이기도 민주통합당이다. 현재 민주통합당은 정권 탈환에 나설 제 1야당의 대권주자를 뽑는 경선을 벌이고 있지만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는 모바일 경선의 공정성 등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문재인 진영 대 비문재인 진영 간의 이전투구뿐이다.
아니 다른 것도 있기는 있다. 초상집에서 당 원로와 당의 원내대표가 시비를 벌리다가 물을 끼얹는 추태를 벌렸다는 뉴스이다. 이대로 가다간 지난 봄 총선처럼 앉아서 정권을 새누리당에 진상할 것이 자명하다. 다시 말해, 발본적인 자기 혁신이 없는, 현재의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새누리당에 정권을 진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 같은 민주통합당의 무능 덕분으로 신이 난 것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그러나 안 원장에게 12월19일과 그 이후의 5년을 도박하기에는 너무도 문제가 많다. 기존 정치권의 잘못에 대한 반작용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전혀 검증된 것이 없고 세력도 없는 한 인물에게서 구세주를 찾는 메시아주의에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절박함, 그리고 그 같은 절박함에 반비례하는 자유주의 정당의 무능이라는 특징 이외에 이번 대선이 지난 대선들과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은 '진보정당의 부재', 즉 형식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부재'이다.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압도적 과제 앞에서 비판적지지 분위기가 하늘을 찔렀던 1997년 대선 당시에도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 국민승리21이라는 진보정당 후보로 독자 출마를 했고 이후 2003년, 2007년대선에도 독자 출마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나 올해는 오히려 역사가 후퇴했다. 진보의 대표 주자인 통합진보당은 대선 국면에서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 진보적 대안을 제시해 21세기 한국의 미래 건설에 기여하기는커녕 부정 선거와 폭력 사태 등으로 민심의 외면을 받고 있다.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옛 당권파의 대표주자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리지만 한 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이다.
쇄신파 역시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가 자신을 제명하는 '셀프제명'이란 꼼수로 재창당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내부를 추스르기에 바쁜 실정이다. 진보좌파를 추구하는 진보신당은 지난 총선에서 정당 유지에 필요한 3% 득표에 실패함으로써 당을 해산하고 재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이다. 한마디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속된 노동자정당, 진보정당의 실험은 현재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러면 노동운동, 민중운동, 진보운동은 이번 대선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교수노조, 진보교연(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 연구자 모임),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가 중심이 되어 제안한 노동자-민중후보 추대 움직임이다. 즉 진보정당이 지리멸렬해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진보정당을 대신해 민주노총 등 진보적 사회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노동자-민중후보를 추대해 중요한 대선 국면에서 진보적 의제와 진보적 대안들을 제시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 후보가 끝까지 완주를 할 것인가는 변화하는 주객관적 정세 등에 대한 객관적 판단에 근거하여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열려진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 그 후보를 추대의 형식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민중경선과 같은 선거(통합진보당과 같은 기이한 선거와는 전적으로 다른)로 후보를 선출할 것인가도 진보진영의 지혜를 모아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밑으로부터 노동자 대중과 기층 민중들이 스스로를 조직해 자신들이 바라는 후보를 추대하는 운동, '희망버스'와 같은 '풀뿌리 희망진보정치운동'을 벌려 조직해나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풀뿌리 '희망진보정치버스'가 전국의 작업장을 누비며 후보를 조직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주체가 아니라 대상화된 노동자 대중과 민중들이 무력한 패배주의를 벗어나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일어서는 한편 침체된 진보정치운동, 나아가 대선 판에 새로운 신바람을 불러일으켜줄 수 있다.
▲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지도위원. ⓒ연합뉴스 |
김 지도위원은 노동자-민중후보이야기가 나오자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잠적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점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노동자-민중후보로 추대하고자 하는 내 생각,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생각은 아직은 짝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고공농성이 사람들을 감동시켜 희망버스운동을 만들어 냈듯이 이제 풀뿌리에서 시작되는 희망진보정치운동. 희망진보정치버스가 그를 노동자-민중후보라는 새로운 크레인의 고공농성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희망진보정치운동과 김진숙 노동자-민중후보가 절망적인 이번 대선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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