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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 아빠는 왜 용광로 쇳물에 죽어가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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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 아빠는 왜 용광로 쇳물에 죽어가야 했나?

[현장] 용광로 사망 사건 현장 가보니…

지난 10일 오전 8시께 전북 정읍시 북면 제3산업단지의 선박엔진부품을 제조하는 LS엠트론 캐스코(주)에서 용광로 쇳물 운반기계인 '래들'(쇳물을 용광로로 옮기는 국자모양 기계 : Ladle)이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밤샘근무를 하던 이 공장 직원 박모(28) 씨와 허모(29) 씨가 쇳물을 뒤집어쓰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 등 소방당국은 용광로와 쇳물의 고열 때문에 한동안 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다 숨진 노동자 시신을 겨우 수습했다.

"시신이라고 뭐가 있겠어요. 국립과학수사원에서 DNA 조사해 시신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11일 정읍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고인 박모 씨의 형 박인기(가명·31) 씨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도 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1200도 쇳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동생의 시신은 말 그대로 뼈도 못 추릴 상태였다. 박인기 씨는 이런 상황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고인의 직장 동료도 상황이 믿어지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빈소를 찾은 동료는 유족을 위로하다가 이내 스스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고인 박모 씨는 결혼했다. 얼마 전에는 딸을 낳았다. 이제 막 100일이 지났다. 부인은 남편 소식을 접한 뒤, 입을 닫았다.

고인이 된 허모 씨는 독자다. 누나만 둘 있다. 둘 다 결혼해 출가했다. 허 씨가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사실상 가장인 셈이다. 허 씨 매형은 "부모가 편찮으신데, 이번 일을 접하시고 몸이 더 안 좋아지셨다"고 말했다.

▲ 정읍 아산병원에 마련된 고인 빈소. ⓒ프레시안(허환주)

일자리 준다고 해서 반대 안 했는데…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캐스코는 LS엠트론의 핵심 협력업체다. LS엠트론 50%, 삼양중기 37.7%, 두산엔진 12.3%의 지분으로 설립됐다. 주물생산업체로 사출기부품, 공조기, 선박엔진, 풍력발전기 날개 등을 생산한다.

2006년 12월께 준공된 캐스코는 애초 전주과학산업단지에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환경문제를 제기하는 지역 주민반대에 부딪혀 지금의 정읍에 자리 잡게 됐다. 물론 처음엔 정읍 주민도 반대했다. 역시 환경문제 때문이었다.

박인기 씨는 "당시 지역 주민이 엄청 반대를 했다"며 "하지만 캐스코에서는 공장에서 채용하는 현장직 직원은 대부분 정읍 지역 청년들로 하겠다고 약속해 주민이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박인기 씨는 "정읍같이 작은 도시는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없기에 캐스코 같은 큰 공장이 들어와 일거리가 생기는 걸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고인이 된 두 노동자도 공장이 설립된 직후인 2007년 전후로 입사했다. 일당은 높지 않았지만 특근, 야근 등을 합하면 웬만한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당시 정읍 내 청년들도 비슷한 생각으로 캐스코에 들어갔다. 이날 빈소를 찾은 고인 직장 동료는 대부분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다.

열악한 작업 환경, 사후 대책은?

하지만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캐스코에서 작업한 노동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노동자가 지나다니는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로 좁아 늘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환풍은 제대로 되지 않아 늘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스크를 쓰면 반나절 만에 새카매졌다. 콧속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 마스크를 3~4일은 써야 했다.

용광로 작업을 하지만 제대로 된 안전장치는 없었다. 늘 부상을 달고 살아야 했다. 머리가 찢어지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회사는 사후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늘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다. 빈소를 찾은 회사 노동자 중 몇몇은 손가락 등에 깁스하고 있었다.

박인기 씨는 "정읍에 있는 청년들은 다들 캐스코에 들어가려고 안달"이라며 "하지만 공장 내부를 보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난다"고 말했다. 박 씨는 "회사에서는 안전모를 제대로 쓰라고 말하기만 한다"며 "하지만 근본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단순히 안전모만 쓰라고 하는 게 지금의 회사"라고 덧붙였다.

▲ 사건이 발생한 캐스코는 현재 외부인과 언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진상규명 때까지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는 유족

현재 캐스코는 외부인은 물론 언론의 출입도 금지하고 있다. 사건을 조사 중인 정읍경찰서는 래들에 담긴 쇳물을 조형에 붓는 과정에서 쇳물이 흘러내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목격자는 래들이 각도를 서서히 기울이면서 쇳물을 쏟아내다가 갑자기 뒤집히면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쇳물이 얼마만큼 쏟아졌는지, 기계적 결함이 있는지 등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식을 요청했다. 국과수 정밀 감식은 이르면 12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캐스코 관계자는 "국과수에서 조사 중이니 그 뒤에나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가족은 이런 회사의 대응이 답답하기만 하다. 박인기 씨는 "대표이사는 국과수 결과가 나온 뒤에 이야기하자며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며 "사람이 죽었으면 그에 관한 사과를 하는 게 우선인데 그것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박인기 씨는 "더구나 래들은 외국제품이라 기계결함이 있는지 등을 조사하려면 대략 한 달이 걸린다고 들었다"며 "결국 유가족은 그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인기 씨는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장례식을 치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노동건강연대

왜 한국은 산업재해 사망률이 1위일까

문제는 이런 죽음은 노동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사망률은 조금 떨어졌으나 한국은 여전히 세계 1위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0년 발간한 OECD 가의 산업재해 비교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06년도 한국의 산업재해 사고사망 10만인율(10만 명당 사망률)은 11.4명으로 21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는 OECD 평균보다 3배나 높고 사망률이 가장 낮은 영국보다 16배나 높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왜 산업재해가 빈번히 일어날까. 영국의 국가기관인 보건안전청(Health and Safety Executive)에 따르면, 매년 발생하는 산재사망 중 적어도 70% 이상이 사업주의 무책임한 경영 때문이므로, 대다수의 산재사망이 사업주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예방 가능한 것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임준 가천의과학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선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아직도 1980년대 굴뚝산업을 기반으로 짜여 있다"며 "사업주가 하지 말아야 할 사항들을 나열했지만 조항들이 전부 옛날 얘기"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요즘은 대부분 공장에서 신물질을 쓰거나 신공정을 도입했는데 법에 관련 규정이 없다"며 "열거된 옛날식 안전보건 조치만 이수하면 기업에 면죄부를 줄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안전을 규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임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어겨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도 문제"라며 "법을 어겼을 경우, 강한 처벌을 함으로써 재발을 막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은 관리·감독의 소홀을 지적했다. 전 국장은 "쇳물을 담는 그릇이 엎어져 사람이 죽었다는 건 안전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며 "문제는 이런 작업현장을 감독해야 하는 노동부 등은 그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캐스코 측은 " 대표이사가 빈소를 방문해 유족에게 사과를 했고 지속해서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캐스코 측은 "20년 넘게 작업을 해왔지만 지금과 같은 사고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사태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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