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박 후보의 이런 '통합 행보'에, 한 야권 관계자는 "박근혜는 갈 곳 많아 좋겠네"라고 비꼬았다. 맞는 말이다. 박근혜 후보가 노무현·전태일을 찾는다면 '과거와의 화해'지만, 반대로 민주당의 어느 대선주자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거나 박정희 묘역을 찾았다면 기껏해야 '배신자' 소리나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과거에 사죄할 일이 많은 것'이리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대선 후보' 박근혜가 이념 프레임상 야당보다 유리한 입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물론 환영받진 못했다. 진정성 논란도 여전하다. '내가 간다면 가는 것' 식의 협의없는 방문에, 그를 맞이하는 쪽 입장에선 '박근혜 식 국민 통합'이라기보다 '박근혜 식 일방 통합'이란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 28일 전태일동상을 찾은 박근혜 후보가 헌화하려고 하자, 이에 반발하는 쌍용차해고노동자에게 수행원이 멱살을 잡는 사건이 발어졌다. 이날 이상일 캠프 대변인은 "국민을 분열시켜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 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논평을 내놨다. 그의 헌화를 막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전태일 열사 유족이 '분열 세력'이란 얘기다. ⓒ뉴시스 |
사실 박 후보의 '대통합 행보'는 현재가 아닌 과거와의 화해(혹은 달래기)다.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됐던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각종 발언처럼, 유독 박 후보는 과거사 문제만 튀어나오면 스텝이 꼬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5.16은 구국혁명"이란 '강성' 발언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다"로 수위가 낮아졌지만, 한 토론회에서 "5.16이 쿠데타 맞냐"는 비박(非朴)계 후보들의 집요한 추궁이 이어지자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진 발언 역시 '교과서를 뒤엎을 만한' 강성이었다. "나라 전체가 공산화될 위기였다."
비박 후보들의 '도발'에 박 후보가 달아오르자, 중도층 공략을 위한 준비된 메시지에서 이탈한 셈이다. 때문에 흥분 상태의 박 후보가 내뱉은 당시 발언이 5.16에 대한 박 후보의 '진짜 속내', 숨길 수 없는 '권위주의 유전자'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박 후보의 광폭 행보에 진정성을 문제 삼는 것 역시 이런 맥락이다. 28일 전태일 동상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박 후보는 이날 헌화 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화해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예의 '통합론'을 강조했지만, 같은 시간 쌍용차 해고 노동자는 수행원들에게 멱살이 잡혔고, 박 후보의 '봉변'에 분노한 캠프 대변인은 "국민을 분열시켜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 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아이러니'한 논평을 내놨다. 논평대로라면, 전태일재단 방문을 막은 유족과 노동자들이 '분열 세력'이며, 박 후보 측은 누군가를 '물리치며 동시에 통합'하겠다는 얘기다.
박근혜 '광폭 행보'에 놀란 민주, 언제까지 '진정성' 타령만…
그러나 박 후보의 '진정성' 여부야 차치하더라도, 연일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광폭 행보가 여전히 집안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야당을 긴장시킬 만한 훌륭한 '정치공학'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죽은 전태일이 아니라 고통받는 현실의 전태일을 만나달라"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절규야 박 후보가 무겁게 받아야 할 '현재'의 숙제지만, 연일 "정치쇼"란 주장만 되풀이하는 민주당의 비아냥은 아무래도 옹색할 수밖에 없다. 박 후보의 행보가 '쇼'라면,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FTA를 추진하다 180도 돌아서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다르다"고 항변하는 숱한 민주당 의원들의 강성 발언은 '쇼'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보여주기 식 행보'란 비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정치는, 특히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 할 일은 보여주는 것이다. 한 쪽은 '심판'보다 '민생'을 얘기하며 미래로 가자고 하는데,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진정성이 있든 없든) 과거와의 화해까지 시도하는데, 언제까지 '죽은 박정희의 유령'을 그 딸에게 뒤집어 씌울 수는 없는 일이다. '과거 대 미래' 프레임으로 철저히 패배한 지난 4.11 총선의 교훈은 벌써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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