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첫 공식 일정에 나선 박 후보는 이날 오전 국립현충원에서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차례로 참배한데 이어 이날 오후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박근혜 후보가 21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 |
박근혜 "권 여사님이 얼마나 가슴 아플지 잘 이해해"
박 후보는 사저에서 열린 권 여사와의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옛날에 제 부모님 두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얼마나 힘든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권 여사님이 얼마나 가슴 아프실지 그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그 때 국민이 큰 힘이 되어 주셨다. 권 여사님도 많은 국민이 위로해주는 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 주셔서 감사하고, 건강하신 모습을 뵙고 가니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 꿈은 어느 지역에 살든, 어떤 직업을 갖든 모든 국민이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열심히 잘 해서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건강 잘 챙기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에 권 여사도 "이 일이 참으로 힘들 일이다. 얼마 만큼 힘들다는 걸 내가 안다"면서 "저로서는 박 후보가 바쁜 일정에 이렇게 와 주시니 고맙다. 한 나라 안에서 한 국가를 위해 애쓰는 분들인데, 건강을 잘 챙기시라"고 말했다.
노무현 향해 '참 나쁜 대통령' 비판하던 박근혜, 첫 묘역 참배
박 후보가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 자신과 정치적 대척점에 섰던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박 후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4~2006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으면서 각종 현안을 놓고 노 전 대통령과 대립해 왔다. 2005년엔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단칼에 거절해 제동을 걸었고, 2007년엔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박 후보가 스스로의 표현대로 '참 나쁜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것은 후보 본인의 결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진에겐 "대한민국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가 돼서 참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전 조율 없이 '깜짝 방문'…'진정성' 비판도 거세
그러나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찾으며 사전 일정 조율조차 하지 않은 점을 들며 방문의 '진정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당장 민주통합당은 박 후보의 방문을 사과와 반성이 결여된 '정치쇼'로 폄훼했고, 이에 새누리당은 "트집잡기"라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 정성호 대변인은 이날 오전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와 정치검찰에 의해 돌아가셨다"며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로서 진정한 사과와 반성없는 전격적인 방문은 보여주기 식 대선 행보에 불과하고, 유가족에 대한 결례"라고 비판했다.
당 핵심 관계자 역시 "박 후보의 대선 후보 선출은 오래 전부터 기정사실이었는데, 통상적으로 선대위가 첫 일정을 잡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 않느냐"면서 "처음 하는 방문이고, 여사까지 뵙겠다는 거면 사전에 언질과 협의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언론을 통해 이를 전달한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불쾌감을 토로했다.
반면 새누리당 홍일표 대변인은 "전직 대통령의 묘역은 특정 정파의 배타적 관리구역이 아니다"면서 "모든 국민이 원한다면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방문해 참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이 같은 비판을 '트집잡기'로 일축했다.
묘역 인근에서 양측 지지자들 사이 실갱이도
이날 묘역 인근에서도 박 후보의 방문에 항의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박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 실갱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 노 전 대통령 지지자는 박 후보의 '참 나쁜 대통령'이란 발언을 문제 삼으며 "참 나쁜 후보의 선거 운동 일환으로 계획된 참배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내용의 피켓 시위를 벌였고, 다른 한 지지자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며 "환영하지 않습니다"라고 항의했다.
친노 출신의 야권 대선 후보들은 박 후보의 봉하마을 방문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박 후보의 '진정성'을 문제 삼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상주 역할을 했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형식적인 방문이 아닌 과거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 화합을 도모하는 진정성을 가졌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김두관 후보는 "방문 자체에 대해선 평가하지만, 5.16 쿠데타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고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도 앞장섰던 분"이라며 "방문의 진정성이 없어 보여 아쉽다"고 꼬집었다.
박근혜, 보수 지지층 넘어 외연 확대 '시동'
박 후보의 이날 '깜짝 방문'은 대권 행보의 첫 키워드로 '국민 대통합'을 꺼내든 만큼 자신에 대한 비판 세력까지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지층을 확장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보수층으로 한정된 지지 기반을 노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중도 및 진보층으로까지 넓히면서 외연을 확대하고, 고질적인 '불통' 이미지까지 완화하려는 포석인 셈이다.
앞서 박 후보는 전날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가는 국민대통합의 길을 가겠다"며 '100%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박 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찾아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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