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밤 방영되는 <100분 토론>에 출연한 노무현 대통령은 4주 전 KBS 단독 회견이나 그보다 3주 앞섰던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때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미 FTA,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특유의 논리를 펼쳐나갔고 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쉽진 않지만 잘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적 분야에 대해서는 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전 회견과 달리 노 대통령은 야당과 국회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했고 '일반론적 이야기'임을 강조하면서도 정계개편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분명히 했다.
"선거용 정당 안 돼"
여당 일각에서 열린우리당, 민주당, 고 건 전 총리를 이른바 '중도개혁세력'으로 뭉뚱거리려는 듯한 모습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제가 좌우할 수 없는 영역 중에서 말도 안 하는 것이 도움이 죄는 영역이라고 판단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어느 경우에라도 정책을 연합하고 타협할 수 있으면 당을 같이 하고 정책이 전혀 다른 사람은 따로 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당의 정대철 고문은 전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통합형 신당을 만들 것"이라며 "노 대통령은 따라오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바 있다. 정 고문은 오는 2일에도 당 원로 들을 모아 자신의 뜻을 밝힌다는 계획이다.
이를 부정이라도 하듯 노 대통령은 "하여튼 선거용 정당을 만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지만 곧바로 "최소한 정치적 타협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 우리당에서도 큰 흐름에 있어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새판짜기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는 통합형 신당에는 부정적이었지만 '외부선장론'을 언급하기도 했던 기존의 모습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 반대하는 데에는 어떻게 그렇게 손을 잘 맞추냐"
노 대통령의 화살은 한나라당에 집중됐다. 작통권 환수 반대를 위한 한나라당의 방미에 대해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 분들은 정치적 입장이 있으니까 되도록 (작통권 환수가) 안 되는 얘기를 많이 듣고 오시길 좋아하지 않겠냐?"면서 "의원 외교라는 것이 국가 외교를 돕는 방향으로 가야지 국가 외교의 판을 깨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당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은 정책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야 한다"며 "정책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한 당에서 정부 반대 하는 데는 어떻게 그렇게 손을 잘 맞추는지 정치를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정책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그냥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니까 저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회자가 "지금 지적한 당에서 열린우리당을 향해서도 똑같은 질문을 할 수 있겠다"고 지적하자 노 대통령은 "우리당은 일사불란은 잘 없는 것 같고 소신껏 토론도 하고 타협하고 좀 거칠지만 민주주의를 그런대로 밟아 나가는 모습을 본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선 좀 편파적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다"며 우리당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국회에 FTA자료 이미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한미FTA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는 여당 일부 의원은 물론 국회 전체를 비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일부 여당 의원들에 대해 "서운하고 안 서운한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자율 속에서 협력 같은 것이 되는 정치까지 가면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국회에 대한 정보보고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최대한, 내가 받는 만큼 공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던 이전 인터뷰 때와 달리 "문서가 키 높이 만큼이나 많은데 어떻게 의원들이 다 보시겠냐"며 "이해득실을 따져볼 만한 자료로서는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고 추가 정보공개가 필요 없다는 듯한 답을 내놓았다.
또한 노 대통령은 "특위도 6개월 만에 만들었고 회의도 일주일 마다 느긋하게 하고 계시더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국회가 제 일을 하건 못하건 간에 일단 보고 받을 권한이 있다는 점과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같은 전문가를 특위 전문위원으로 위촉하려는 시도를 여당이 앞서서 막았다는 점, 정부 부처가 특위에 지극히 비협조적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청와대와 국회 사이의 골 더 깊어질 듯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와 관련해서는 노 대통령이 "자세히 들여다 보니까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고 다 보완해 드렸으니 국회에서 결론을 내야 한다"며 "절차가 부족해서 반려하면 반려하는 대로, 부결하면 부결하는 대로 이제는 국회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국회의 권능을 인정하는 듯 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애써 대립각을 피하던 기존 인터뷰와 달리 이날은 야당과 국회를 향해 직설적 언사로 불만을 표시함에 따라 청와대와 국회의 골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작통권 논란이나 헌법재판소장 인준 과정이 지지부진한 것은 한나라당의 발목잡기 탓이라는 여론도 적지 않아 대통령이 이날 자신 있게 한나라당을 비판하게 나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날 대통령은 야당에 대해선 정면승부를, 여권 일각의 '일단 뭉치고 보자'는 정계개편 움직임에 대해서는 제동을 건 셈이다. 대통령의 이런 시도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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