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는 26일 오후 6시 현재 부산항 등 전국 13개 물류 거점을 운행하는 화물차 1만1153대 가운데 운행을 중단한 차량은 2848대(25.5%)라고 밝혔다. 평택 당진항과 부산항의 경우 각각 전체 운행 차량의 66.9%(1160대)와 55%(1105대)가 운행을 멈춰 물류에 차질을 빚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지난 25일 같은 시간대에 1만105대 중 1570대(15.5%)가 운행을 중단한 것과 비교하면 하루 새 10%포인트가 상승한 것이다.
항만에 쌓인 컨테이너의 비율을 뜻하는 장치율(藏置率)은 26일 오후 6시 현재 44.2%로, 어제 같은 시간대(44.4%)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부산항과 인천항은 각각 51.6%와 66.8%를 기록해 "물류에 일부 차질을 빚고 있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통상 물류 거점의 장치율이 70~80%에 이르면 위기단계, 90%를 넘어서면 심각한 '물류 대란'으로 간주한다.
▲ 화물연대의 총파업 사흘째인 27일 부산항의 화물 반출입량이 보통 때에 비해 40%까지 줄어들었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가고 있다. ⓒ연합뉴스 |
점점 커지는 파업 규모
하지만 화물연대는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정부의 발표가 축소됐다고 주장한다. 화물연대는 27일, 부산항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이 평상시의 10%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전국 5t 이상 대형 화물차 9만 대 중 8만 대가량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26일 오전부터 부산항, 평택항, 의왕ICD 등 주요 컨테이너 기지와 철강 운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포항철강단지, 광양항 등에 이어, 강원, 충북지역 BCT 운송도 중단된 상태라는 것. 이 때문에 시멘트 운송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울산석유화학단지 및 여수석유화학단지에서도 운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화물연대는 밝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업 규모가 커지는 이유는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않은 미가입 화물차들이 파업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현재 파업에 참여한 차량 가운데 화물연대 미가입 차량은 절반을 넘는다. 평택당진항의 경우 운송거부에 참여한 726대 가운데 558대가 미가입 차량이며, 인천항도 운송거부에 참여한 184대 중 169대가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않았다.
화물연대 소속 차량이 많은 부산항에서도 미가입 차량의 동참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6일 저녁 10시 기준으로 운송거부에 동참한 999대 중에 화물연대 미가입 차량은 45% 정도인 434대에 이르렀다.
물론 정부는 파업 첫날부터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파업 화물운전자에게 6개월간 유가보조금(연간 최대 1786만 원) 지급을 정지하고 운송방해 및 교통방해 등 불법행위에 대해선 운전면허는 물론 화물운송종사자격까지도 취소 또는 정지하겠다는 발표했다. 또한, 운송거부 주동자는 집단행동에 따라 발생한 결과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파업이 진행될수록 참여하는 화물운전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왜 자신들의 밥줄인 '화물차'를 멈추면서까지 집단행동을 하는 걸까.
다단계 하청 구조에 죽어나는 화물운전자들
화물연대에 따르면 화물운전자가 현재 받는 운임의 58%가 기름값 지출로 나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4단계 알선업체를 통해 물량을 받는 차주의 실 순수입은 69만 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한 달 300시간 이상 일해야 얻는 수입이다. 시급 2197원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한국화물운송시장이 후진적인 다단계 하청 구조와 지입제(운수 회사에 개인 소유의 차량을 등록하여 거기에서 일감을 받아 일한 후 보수를 지급 받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물운전자들이 개인 사업자로 운송업체에 등록해 물량을 받아 목적지로 배달하고 그에 따른 적정 운임을 받는 구조다.
여기서 문제는 화물운전자와 화주 사이에 운송업체가 한 개만 있으면 좋겠지만 2~4개까지 있다는 점이다. 화주에게 화물을 수주한 운송업체가 그 아래 운송업체를 두고 그 아래 또 운송업체를 두고 있다. 건설업계에서 물량을 수주한 업체가 밑에 다단계로 하청을 주는 구조와 똑같다. 화물운전자 중 절반 이상이 3단계 이상을 거쳐 화물을 수주한다.
이런 다단계 구조는 화물운전자가 제대로 된 운임을 받지 못하게 만든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40ft 컨테이너를 부산에서 서울로 왕복할 경우 서류업무만 하는 운송업체가 운임의 37%를 가져간다.
다단계 구조도 문제지만 대형운송사의 일명 '운임 후려치기'도 문제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25일 발표한 '운송사와 화물노동자의 분배 구조 분석'을 보면 2009년~2011년 대형운송사의 매출은 30% 증가한 반면, 화물노동자 수입은 14% 증가한 것에 그쳤다. 영업이익은 대형 운송사가 2.9% 증가했지만, 화물노동자 순수입은 4.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2009년 이후 대형 운송사의 수익성은 개선됐지만 화물노동자는 유가 인상, 주선료 상승 등으로 지출이 증가해 실질 순수입은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2012년도 1/4분기 실적을 보면 글로비스 1113억 원, 대한통운은 317억 원, 세방은 163억 원, 동방은 40억 원 등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년 동기대비 각각 45%, 79%, 32%, 333%의 이익증가율을 보였다.
반면, 컨테이너 운임의 경우, 2008년 6월 9% 인상된 이후 3년간 동결됐다. 이후 2011년 6월 9% 인상됐지만 그것으론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다.
▲ 사흘째 파업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아래)와 국토해양부가 27일 오후 과천 국토해양부 별관 대회의실에서 첫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
'표준운임제' 왜 필요한가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건 '표준운임제'다. 2002년 화물연대가 출범한 이후, 줄기차게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2003년, 2008년 화물연대 총파업 때도 첫 번째 요구사항으로 표준운임제를 내걸었다.
표준운임제를 도입하자는 건 운송사가 화물운전자에게 지급하는 운임의 적정가격을 정하자는 거다.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있듯, 사실상 운송사에서 고용돼 일하는 노동자인 화물운전자에게도 최소한 운임을 보장해달라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표준운임제를 맞춰주지 못하는 중간업체들은 자연히 정리되면서 다단계 착취 구조는 개선될 수 있다고 화물연대는 주장한다.
정부도 이에 공감하고 2008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표준운임제의 법제화 추진을 약속했다. 당시 정부는 총리실에 '표준운임제 도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표준운임제 도입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5일에는 표준운임제 시행을 위한 중재안을 내놨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이 중재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화물차주에게 최저운임을 주도록 법적 강제력을 가진 방안이 아니라 단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정부 중재안에는 처벌조항이 없기에 화주와 운송업체가 이를 안 지켜도 방법이 없다"며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위반 시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7일, 정부와 화물연대 교섭
정부는 27일 오후 2시부터 화물연대와 교섭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부는 교섭 테이블은 아니고 설명을 듣는 자리라며 화물연대와 운송업체간 교섭을 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표준운임제는 오랜 시간 논의가 필요한 제도이므로 이번 파업을 통해 해결되리라곤 화물연대 측도 생각하지 않는다. 화물연대는 당장 생활고에 허덕이는 화물운전자들의 운임 인상과 유류비 보조금 지원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표준운임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도입되지 않으면 화물운전노동자들의 파업은 연례행사처럼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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