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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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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

[강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네 번째

최근 경제민주화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주요 주제는 재벌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최하는 "정승일/이종태/장하준과 함께하는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의 네 번째 강연은 논쟁의 주제가 되는 재벌개혁에 대한 내용이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의 공동 저자인 정승일 박사가 강연하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에 관한 강의가 지난 6월 11일에 있었다. 강의 내용도 제목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다.

재벌개혁 - 죽 쒀서 개주면 안 된다

재벌개혁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논의되어온 주제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재벌 위주로 돌아간다는 방증일 것이다. 특히 재벌 가족들의 편법 상속이나 재벌그룹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같은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재벌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근의 중론이다.

문제는 재벌개혁이 잘못 진행될 경우 '아니함만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마구잡이 재벌개혁은 자칫 우리나라 최대기업들의 소유지배 구조를 뒤흔들어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와 투기자본들만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 잘못된 방향의 재벌개혁이 자칫 '죽 써서 개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11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로 정승일 박사가 강의하는 '한국경제와 복지국가' 네 번째 강연이 '재벌개혁'을 주제로 열렸다. 이번 강연에서 정 박사는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와 정승일 박사, 이종태 <시사IN> 기자의 <선택>이라는 책의 내용에 대한 해설과 함께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수십 가지 방법

정 박사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1주일 전에 이병천 교수가 <프레시안> 지상에서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는 제목의 긴 글을 쓴 것에 대해 "재미있는 제목의 글을 쓰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전에 이병천 교수에 대해 장하준 교수와 정 박사가 '재벌가문(총수 일가)과 재벌그룹(제도)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반박하자, 이병천 교수는 재벌이라는 것은 재벌 총수가문과 재벌 그룹 기업들이 한 몸으로 엮인 것이므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재벌 총수를 재벌그룹으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재반박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정 박사는 자신이 재벌 옹호론자가 아님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으므로 이를 중언부언하지 않겠다면서, 이번에는 작정한 듯이 구체적으로 재벌 기업 집단과 재벌 총수 일가를 구분해서 개혁을 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파산한 대우그룹은 왜 그룹 체제를 해체해야 했나?

정 박사는 이병천 교수의 글 제목을 얘기하면서, "재벌 총수를 재벌 그룹으로부터 구별하여, 실효적으로 떼어놓는 데는 수십 가지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재벌그룹이 파산할 경우 당연히 재벌가족을 재벌그룹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재벌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통념이 강했다. 하지만 IMF 사태와 그에 따른 재벌개혁 과정에서 많은 재벌그룹들이 파산하고 해체되었다. 정 박사는 "1997년 이전에는 흔히 30대 재벌그룹을 말했다. 그렇지만 그 30대 재벌그룹 중 1/3이 그 이후 해체되었다. 실질적으로 온전히 생존하여 재벌그룹 형태를 유지한 것은 과거 30대 그룹 중 1/3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30대 재벌이 아니라 10대 재벌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어 통합진보당이 실질적인 재벌해체를 지난 3월 공약으로 제시한 데 대해서도 "재벌해체가 별로 진보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30대 재벌그룹 중 1/3가량이 해체되고 1/3가량은 형체만 남은 1998년 이후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는지 잘 생각해보면 된다"고 충고했다. 재벌해체의 결과 대우자동차가 GM에 매각되고 쌍용차는 상하이차에 매각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또한 딤채 냉장고를 만드는 위니아만도(과거 한라그룹)와 오리온전기(과거 대우그룹)는 투기적인 영미계 사모펀드에 팔려 조각조각 해체되어 청산되었거나 지금도 그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재벌 해체론자들이 원하는 것이 이렇게 재벌 기업들이 해체되어 산산조각 나서 외국에 매각되거나, 본래 기업이 가지고 있던 가치와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인지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고 한다.

정승일 박사는 "대우그룹, 쌍용그룹, 해태그룹 등이 부도난 후 채권은행들이 그 그룹 및 계열사들의 주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병천 교수의 표현 그대로, 재벌그룹으로부터 재벌총수 및 그 가족들이 생이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병천 교수 역시 그룹 체제가 갖는 장점은 인정한다고 한다. 단독의 독립 대기업 체제보다는 대기업들로 구성된 그룹경영 체제가 선진국 추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정 박사는 "채권은행들이 재벌 가족을 대신하여 그 그룹들의 대주주 노릇을 하면 된다. 그런데 왜 그것이 안 되는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금산 분리(은산 분리)와 은행의 산업자본 대주주 역할 금지

그러고 보니 그렇다. 왜 안 된다는 건가? 정 박사는 대우그룹의 예를 계속 들었다. 대우그룹의 경우 먼저 1단계에서 채권은행단을 대표하는 당시 산업은행과 제일은행이 대주주가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이다. 채권은행들은 대우그룹이 거느리던 계열사들을 하나둘씩 매각하기 시작하였다. 왜 제일은행이나 산업은행 같은 은행들은 재벌그룹의 대주주 역할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면 안 되는 걸까?

정 박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알려면 이른바 '금산 분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 분리의 역사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정부는 대공황의 원인으로 지적된 모건(Morgan) 은행에 철퇴를 내리는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상업은행은 일반기업(산업자본)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일반기업의 부실화 위험이 그대로 은행의 부실화 위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어벽 설치 차원에서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은산 분리(은행-산업자본 분리)는 매우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조치가 아니었을까?

정 박사는 이에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당시 스위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은 미국의 조치를 따르지 않았다. 예컨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경제위기 속에서 독일의 다임러와 벤츠 자동차가 파산하였고 도이체방크라고 하는 채권 은행이 이들 회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당시 무수히 많은 독일 기업들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도이체방크는 다임러-벤츠의 대주주 역할을 회사가 정상된 이후에도 계속 수행하였다. 그 이후 70년간 계속 수행했으며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다임러 그룹은 한국 재벌그룹처럼 대기업 그룹으로 성장해서, 자동차 사업만 한 것이 아니라 항공과 IT, 철도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다양한 계열사들도 가지고 있었다.

독일만이 아니라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도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은행들이 은산 분리 원칙이 매우 엄격한 미국에 비해 더 금융위기(은행위기)를 겪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금산 분리(은산 분리)라는 원칙이 지고지순의 절대 원리가 아니라는 증거다.

정 박사는 "글래스-스티걸 법과 같은 엄격한 은산 분리 원칙을 지키는 선진국은 미국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세력조차 미국식 제도를 우상처럼 숭배한다"고 힐난했다. 한국에는 미국의 글래스-스티걸 법의 원칙이 은행법에 들어와 있고 따라서 시중은행이 비부실 기업(워크아웃 등을 졸업한 정상 기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단,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 특수은행은 예외적으로 대주주 역할을 지속할 수 있다.

개혁 진보적 학자들은 왜 은행의 일반기업 대주주 역할을 반대할까?

그렇다면 한국의 개혁적 진보 세력은 이 문제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할까? 대표적인 진보개혁 경제학자인 김상조 교수는 "은행들이 산업기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이른바 '독일식 은행 자본주의'를 한국에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은행들은 독일·스위스 은행들과 달리 독자적인 기업여신 심사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의 은행들이 독일과 스위스의 은행들과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관치금융의 관행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한국의 진보개혁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한국 시중은행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깔려 있다. 즉 한국의 은행들은 여전히 관치금융의 성격이 강하고 따라서 부실화된 대기업들에 제공되는 구제금융에서도 여전히 관치금융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관치금융을 이유로 은행의 대주주 역할을 거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김상조와 유종일 등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요구한 조급한 은행 민영화와 그 결과인 은행들의 주주자본주의화로 인하여, 은행들에 있어 고객 기업의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평가하는 심사능력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은행이 고객 기업의 대주주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제대로 된 기업통제, 기업감독 역할을 수행하려면 제대로 된 산업전문가와 업종 전문가들이 은행 조직 내에서 조직적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처럼 단기수익성 위주의 주주중시 경영으로 은행들이 운영될 경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정 박사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관치금융 비판과 조급한 은행 민영화 요구야말로 우리 은행들에 있어 기업 대주주 역할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런데 단기수익성 위주의 경영은 모피아 경제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말의 외환금융위기로 정부가 부실은행들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국유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은행 국유화 체제를 영구화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당시 그 '민주정부'들은 은행 민영화에 주력했으며 민영화 가격을 높이기 위해 은행들의 주가 올리기에만 주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국유 은행들조차 부실 재벌그룹들, 예컨대 대우그룹의 대주주 역할을 계속 수행할 의지가 없었다. 단기수익성과 주가 띄우기에 방해가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은행계 지주회사가 재벌그룹의 대주주 역할 –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

그런데, 아무튼 지난 반세기도 넘게 유지되어온 은산 분리 원칙을 갑자기 한국에서 폐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정 박사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은행계 산업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시중 은행들이 보유한 대주주 지분을 그 산업 지주회사에 이전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예컨대 현재 워크아웃에 들어가 있는 건설업체와 조선업체들의 경우, 그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산업 지주회사를 신설하고 그 지주회사를 통해 정상화된 건설사 및 조선사들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때 우리은행이 그 지주회사에 대해 대주주 역할을 하는 데서 발생하는 은산분리 원칙 침해에 대해서는, 은산 분리에 관한 은행법에 예외 조항을 신설하여 은행계 지주회사에 한해 허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경우 그룹 계열사의 부실화 위험이 은행 부실화의 위험으로 전이될 위험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 박사는 "그런 위험 전이의 가능성은 그 중간에 있는 산업 지주회사가 제대로 된 차단벽 역할을 수행하도록 잘 설계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놀라운 것은 스웨덴 최대의 재벌그룹이며 한국 재벌의 개혁방향으로 흔히 거론되는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이 사실상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SEB라고 하는 은행이 설립한 은행계 지주회사(holding company)로 출발한 Investor AB라고 하는 지주회사가 발렌베리 그룹의 핵심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핀란드에도 이런 은행계 기업그룹들이 여러 개 있다고 한다.

재벌가족의 편법 상속 – 국가적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재벌 그룹 계열사들이 부실해져 파산하였을 경우이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우량 재벌그룹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삼성그룹이나 현대기아차 그룹 같은 우량 재벌그룹에서 재벌가족을 그 재벌그룹으로부터 구별하여 떼어놓을 수 있을까?

정 박사는 삼성그룹의 사례를 들면서 "삼성은 누가 보아도 편법적인 방식의 상속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5년경 이건희 회장의 재산이 4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재용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불과 16억 원만을 상속세로 냈다. 현행법상 상속재산의 50%인 2조를 냈어야 했다. 정 박사는 "이런 경우 '재벌과의 타협'은 있을 수 없으며, 이건희 회장은 몇 년간 감옥에 들어가 조용히 반성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 박사는 그렇지만 "만약 이건희 일가가 상속세를 법규대로 50% 납부한다면, 가뜩이나 쥐꼬리만 한 이건희 일가의 대주주 지분은 그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면서, "삼성그룹 전체의 결속력을 유지해온 대주주 지분이 이렇듯 더욱 줄어들게 될 경우, 국내외의 주식투자 펀드들과 투기자본들이 더욱 설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에 대해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그런 문제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시장의 논리'에 맡기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정 박사는 "이때 시장 논리란 바로 주식시장 논리와 M&A 시장 논리를 말한다"고 평했다. 또한 "주식시장과 M&A 시장은 주가 가치 극대화 논리를 따르는 법이며, 따라서 이 경우 삼성그룹을 쪼개고 해체하여 '매각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장 논리가 작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정 박사는 "이 경우 삼성전자 같은 초대형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이 국내 자본에게는 힘에 부치기 때문에 결국은 해외 자본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LG전자가 삼성전자를 인수하는 것 역시 독점 금지에 위배되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박사는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여타 계열사들은 과거 국민의 혈세로 육성한 기업들이다. 왜 이런 소중한 기업들을 해외 자본에 매각하려야 하는가?"라고 아울러 반문했다.

재벌가족의 상속 지분을 국가 소유로 관리하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삼성그룹 해체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의 편법 상속을 지금처럼 방치할 수도 없지 않는가? 이에 정 박사는 재벌가족들의 경영권 상속(대주주 지분 상속)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즉 지금처럼 이건희 일가가 국세청에 현물(주식) 형태로 납부한 상속세를 시중에 매각하여 현금화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그 현물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그 주식지분을 보유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지주회사를 신설하거나 또는 국민연금 특별계정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만약 이런 방안이 전면적으로 실시될 경우, 삼성그룹의 핵심 대주주는 이건희 회장 일가와 함께 국가(민주공화국)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으로부터 부분적이지만 생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재용으로부터 그 후손에게로 다시 상속될 때마다 국가는 상속세로 획득한 지분의 보유를 확대할 것이며, 따라서 언젠가 국가는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가 될 것이다. 즉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생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30대 재벌 특별법을 시행하여 이런 방식의 현물 상속세를 30대 재벌그룹에 적용하게 할 경우, 국가는 앞으로 수십 년 뒤 30대 재벌그룹의 최대 주주로서 그 재벌 그룹들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정 박사의 가설이었다.

정승일 박사는 "이와 같은 방안은 현재의 상속증여세와 여타 법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시행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즉 '국유화'라는 명칭에서 연상되는 엄청나게 급진적인 방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필요한 것은 국가지주회사 또는 국민연금 특별계정에 관한 법을 새로 제정하여 그 기관이 위와 같은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재벌 가족의 상속 지분을 공유재산으로 공익적으로 관리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방안은 대기업 그룹의 점진적 국유화라는 재계의 비난과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그렇다면 다른 방식을 타협안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재벌가족의 상속 지분을 국세청에 납부하지 않고 공익재단에 기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익재단의 지배구조와 운영을 해당 재벌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방식으로, 그야말로 공익적 인사들에 의해 수행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예컨대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는 이건희 가문에서 점진적으로 수십 년에 걸쳐, 그 공익재단으로 이전될 것이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이건희 가문이 점진적으로 생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정 박사에 따르면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이 현재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발렌베리 그룹 소유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최대 주주는 발렌베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그 지주회사의 최대주주는 여러 개의 공익재단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50년 전에 시작된 발렌베리 가문은 그간 5회가 넘는 재산 상속을 했는데, 그때마다 상속세를 납부하는 대신 여러 개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그 재단에 자신들의 상속 지분을 현물로 기부했다.

그 결과 오늘날 공익재단은 발렌베리 가문을 제치고 Investor AB의 최대 주주이다. 물론 그 공익재단의 수익금은 역사와 언어학 등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연구비로 쓰이고 있으며, 발렌베리 가문 일가에는 단 한 푼도 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다. 단, 그러한 기부에 대한 대가로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들은, 그룹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이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가족원들은 Investor AB에서 적은 지분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 경우, 경영 능력이 떨어지는 무능한 후계자들은 그 지주회사의 경영 일선에 CEO로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사장(chair man) 또는 한갓 이사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무능한 재벌 3세, 4세 경영'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정 박사는 아울러 설명했다.

기업집단법을 제정하여 '무책임 황제 경영'을 '책임 황제 경영'으로 바꾸자

마지막으로 정 박사는 한국의 경우 기업집단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정 박사는 "나는 2006년부터 이미 기업집단법의 필요성에 관하고 말하고 써왔으며, 요즘에는 김상조 교수와 정태인 원장 등도 그것에 동의하는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집단법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정 박사는 이미 지주회사(holding company) 체제로 전환한 LG그룹과 그렇지 못한 삼성그룹을 비교했다. "LG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의 최상위에 있는 지주회사인 (주)LG가 상법상 주식회사다"라면서, 따라서 "(주)LG는 상장회사인 까닭에 공시의무도 있고, 감사위원회와 사외이사 선임 의무도 있어 상당 정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삼성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 최상위에 있는 미래전략기획실이 아무런 법적 권위도, 법적 의무도 갖지 않는 임의 조직이다. 정 박사는 "따라서 미래전략기획실은 아무런 공시 의무도 없고, 그것을 감독하고 감시할 이사회도, 감사위원회를 구성할 의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래전략기획실은 투명성이라곤 전혀 없는 일종의 유령 조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에서 총수 황제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기업집단법은 이와 같은 기형적인 현실을 타개하여, 미래전략기획실과 같은 그룹 경영 조직에 아예 상법상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면서 양성화,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장점은 먼저 미래전략기획실로 대표되는 그룹경영 조직을 감시하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상법상 의무화되고 또한 공시 의무도 부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삼성그룹 최상위 조직의 내밀한 활동을 감시하는 장치들이 합법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 결과 삼성그룹의 편법 상속과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 등이 지금에 비해 매우 힘들어진다.

또한 현재의 공정거래법상 재벌규제가 모두 폐지되고 상법상의 재벌 규제로 대체되기 때문에 재벌들의 구명 로비가 매우 힘들어진다. 즉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의 재량권 여지가 많은 행정 규제가 아니라 사법부 판사의 판결에 따르는 상법상 규제로 재벌 규제가 획기적으로 재편되는 까닭에, 재벌 규제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대폭 향상된다는 것이 정승일 박사의 설명이다. 즉 사후적으로 계열사들에서 소액주주와 채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법부에 모기업 또는 미래전략기획실을 소액주주 또는 채권자가 고소·고발하고 그에 대한 판결을 공무원이 아닌 사법부에서 내리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기업집단법이 제정될 경우,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무능한 재벌 3세, 4세는 경영 일선(그룹 CEO)에 나서지 말고, 후선(그룹 이사회 이사장)에 머무르게 하는 '책임 경영'이 명확하게 된다고 아울러 말했다. 즉 지금처럼 이건희 회장이 북치고 장구 치고 자기 마음대로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자신이 삼성그룹의 CEO인지, 삼성그룹의 이사장(chair man)인지 본인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를 지속하는 것보다는, 미래전략실의 최고 경영자(CEO)는 최지성 씨가 맡고 예컨대 이재용은 미래전략실 이사회 이사장(또는 이사)으로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을 법률적으로 명확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업집단법이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 경우 재벌 가족은 재벌 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몇 발짝 물러나는 것이고, 그만큼 재벌가족과 재벌그룹의 생이별이 진행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경제력 집중 축소냐, 집중된 경제력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냐

정 박사의 강연을 들은 일부 청중은 기업집단법에 대하여 "그렇게 되더라도 삼성그룹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차라리 출자총액제한 등의 수단으로 계열사 확대를 저지하는 것이 더 낳은 대안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그렇다. 기업집단법은 재벌그룹의 계열사 확대를 저지하지 않는다"면서, "그렇지만 만약 삼성그룹이 항공산업과 제약산업 같은 미래첨단 제조업 쪽으로 신규 계열사를 만들고 그것의 육성에 전력을 다할 경우, 오히려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성원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항공이나 첨단 소재, 제약 같은 미래 산업의 경우 향후 5년, 10년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며 더구나 그 기간 동안 흑자가 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그런 일에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거둔 혈세를 사용하느니, 이왕이면 삼성이나 현대차 같이 이미 돈 많이 벌고 있는 기업그룹들이 대신 해준다면 국민들로서는 얼마나 좋은 일이냐는 것이다.

이 경우 삼성그룹 또는 현대차 그룹으로 경제력이 더 집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집중된 경제력(기업집단)을 사회적·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정승일 박사는 "경제력 집중 그 자체의 긍정성과 효율성까지 약화시키는 장치들(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해)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은행이나 국가, 공익재단과 같은 여타 이해관계자들이 삼성과 현대차 같은 재벌그룹의 대주주 또는 최대주주로서 역할하게 하여 그 집중된 경제력(재벌그룹 권력)을 사회적·민주국가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경제력 집중의 방지·약화'(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한)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상의 내용과 함께 이번 네 번째 강연을 마쳤다. 정 박사의 이번 강연 내용에 따라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재벌개혁에 대한 논쟁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와 복지국가' 다섯 번째 강연은 6월 18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교육실에서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 노동 문제를 가지고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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