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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인 사찰?…그런 게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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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인 사찰?…그런 게 어디 있나"

[토론회] 민간인 불법사찰,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공직자, 정치인, 기업인 등 민간인을 상대로 그들의 정치성향, 출신지역, 정권에 대한 충성도 등을 조사해 논란이 됐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으로 일컫는 이번 사건은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관계자는 구속, 기소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의혹이 국민의 관심을 받은 이유는 정보기관도 아닌 국무총리실에서, 공직자만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사찰을 했다는 점 때문이다. 사찰이라 하면 정보기관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상적 동태를 살펴 조사하는 일을 일컫는 말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사찰은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다. 헌법에서 기본권으로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비밀 등 전 방위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사찰은 과거 역사에서 보듯, 매번 반복되고 있다. 1992년 초원복집 사건, 2005년 안기부 X파일 등이 그렇다. 드러나지 않은 건 이보다 더 많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왜 이런 일은 발생하는 걸까. 또한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선 어떤 제도가 도입, 개선되어야 할까.

4일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민간인 사찰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사찰을 토대로 진행된 김종익 KB한마음 대표에 대한 수사기록. ⓒ피디수첩 캡춰

"사찰의 가장 큰 문제는 이질적 자아를 만드는 것"

한의원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민간인 불법사찰의 가장 큰 문제는 이질적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개개인이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 대한 가치평가가 타인, 조직, 단체, 국가에 의해 이뤄졌을 때"라며 "은밀히 수집된 개인 정보가 사람과 사람에게 전달되고, 조직에서 조직으로 전달되면서 어느 순간 수집된 정보의 당사자는 자신도 전혀 알지 못하는 이질적인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만약 자신에 대한 정보가 잘못됐다면 이를 시정하고 바로 잡는 게 맞지만 자신도 모르게 진행되는 사찰은 시정 자체가 원천봉쇄 된다"며 "이것이 민간인 사찰 문제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한 교수는 법령에 근거하는 수사정보기구의 사찰은 일정 부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개방성과 민주성이 최고의 가치인 민주법치주의 국가에서는 공권력의 사적영역 침투는 금지가 원칙이고 허용이 예외"라며 "그렇기에 예외적 허용으로 사찰을 인정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복지국가 이념에 따른 국가의 적극성 요청과 헌법에 따른 요청으로 수사·정보기구는 업무의 일정부분에서 민간 영역에 대한 개입이 요청된다"며 "물론 이 같은 경우, 법령에 근거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법 사찰이란 단어는 없다"

반면,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찰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법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며 그 어떤 사찰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오 교수는 "국가권력이 국민을 감시하는 것 자체가 국가권력의 정당성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라며 "특히 정치적 비판자 등을 중심으로 세밀하게 감시하는 것은 불법 국가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국가기관의 국민에 대한 사찰은 한국 현대사의 착잡한 헌정 왜곡 결과물"이라며 "사찰이라는 말 자체가 일제시대 때 일본 경찰이 일반 주민을 감시, 통제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한 것을 뜻하는 일제시대 용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 교수는 "그러던 사찰이 지금은 방법 여하를 불문하고 개인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모든 사항을 수집해 정치적으로 피사찰자를 곤궁에 빠뜨리려는 의도에서 행해지는 정보수집의 활동을 의미한다"며 "사찰은 불법사찰과 동의어이며, 적법사찰 또는 합법사찰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오 교수는 "비리 사실이 발견되면 감찰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일반인이 범죄행위를 저지르면 수사기관이 수사하면 된다"며 "범죄행위가 일어나기도 전에 예방차원에서 평상적으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자료수집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 교수는 "국가정보원이 존재하고 검찰과 경찰 안에도 보안과가 있다"며 "일반 행정기관까지 보안과 감시를 하게 된다면 사실상 국민은 여러 개의 감시 체제에 놓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여러 의견 수렴한 가이드라인 필요"

그렇다면 불법사찰을 막을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성기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FBI의 '뮤케이지 가이드라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2008년 10월 당시 미국 법무부장관이었던 마이클 뮤케이지와 FBI 국장 로버트 물러가 제정해 뮤케이즈 가이드라인으로 불린다.

이 교수는 "이전 가이드라인까지는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에 시민이나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았지만 2008년 제정된 뮤케이즈 가이드라인은 의회의 심사를 거쳐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다양한 인권단체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물론 현재의 뮤케이즈 가이드라인이 인권단체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어 그 내용의 타당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그러한 가이드라인과 내부 매뉴얼이 FBI의 정보활동을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통제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한, 뮤케이즈 가이드라인은 적어도 구체적인 정보활동의 범위와 한계, 단계별 정보활동 업무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한 것과 그 내용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의회의 심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점은 미국 내에서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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