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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정파 위탁정치' 청산 없이는 혁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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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정파 위탁정치' 청산 없이는 혁신도 없다"

[인터뷰]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장

그는 좀처럼 끝을 알 수 없는 통합진보당의 '치킨게임'에 답답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상 초유의 선거부정과 의장단 폭행으로까지 번진 통합진보당 사태는 좀처럼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권파와 비당권파,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상황. 이런 와중에 당 밖의 색깔론은 그 어느 때보다 거세고, '진보정치는 사망했다'는 차가운 평가도 진영 내부에서 흘러 나온다.

선거부정 논란 외에 '종북 주사파' 의혹까지 사고 있는 이석기·김재연 두 당선자가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의 자진 탈당 권고에도 버티며 결국 '의원직'까지 얻게 되자, 이를 기다린 듯 새누리당은 두 '의원'에 대한 제명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이젠 야권연대 '우방'인 민주당조차 이에 합의할 기세다.

19대 국회 개원 다음날인 1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을 지낸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장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민주노총 출신으로 30여 년간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몸담았다는 그는 "우리가 민중권력을 지향했지 언제 정파권력을 지향했었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 '자주파'라 칭하지만 당내에선 '비당권파'로 분류되는 그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을 지내며 지난해 진보대통합추진위원장을 맡는 등 통합 과정에서 앞장서기도 했다.

통합진보당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던 한 명으로서, 그는 "통합 3주체의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지 않은 채로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가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또 "정파의 식민지가 된" 통합진보당이 정파 위탁정치를 청산하지 못하고 노동자 중심성을 세우지 못한다면 당의 혁신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편집자>


▲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통합진보당 '특정 정파', 색깔론 먹힐 빌미 제공해"

프레시안 : 통합진보당 내부 문제가 수습되기도 전에 검찰수사,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색깔 공세로 당의 위기가 심해지고 있다. 어떻게 보나?

정성희 : 수구보수 세력의 종북 색깔공세는 통합진보당 안의 특정 인사, 특정 정파를 표적으로 삼아 진보정당 내부는 물론 야권 전체를 분열시키고 있다. 과거에도 민주당을 포함한 남북 화해협력 세력에 대한 색깔 공세는 늘 있어왔지만, 이제 진보 내부를 분열시키려는 신종 색깔론인 것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도 반성해야할 지점이 있다. 6.15 선언 이후 10년간의 남북 화해 분위기에 취해 이명박 정권 하의 엄혹한 정세를 지나치게 안일하게 인식했다. 제가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180명 예비후보 자격심사위원이었다. 그 때 이석기 씨가 비례후보로 등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쪽에서 색깔론으로 밀어붙일 게 뻔한데, 크게 걱정됐다.

프레시안 : 심사위에서 그와 관련한 문제제기를 했나?

정성희 : 동료들에게 얘기했지만, 당헌·당규상 후보 자격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석기 씨는 특정 정파(경기동부연합-편집자)의 이익에 복무해 다른 당원들과 전혀 상의하는 과정없이 후보에 올랐다. 자기 정파 내에선 열심히 투쟁한 인물로 인정할지 모르지만, 나머지 후보들에 비해 대중정당으로서의 상징성이 있거나 부문 대표성,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진보정당 운동을 열심히 해온 분들도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를 정도였다. 입당한지 4개월 밖에 되지 않은데다, 별다른 대중활동도 없이 불쑥 나온 점에 대해서 많은 당원들도 못마땅했다. 특정 정파가 자파의 이익을 당과 국민의 요구보다 앞세우면서 빚어진 문제였다.

사실 그 특정 정파가 상당히 아마추어적이었다. 종북 색깔 공세를 강력히 대응해야 하지만, 동시에 정세를 잘못 읽고 어리석게 빌미를 제공한 점부터 반성해야 한다. 진보정당으로서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통합진보당이 국보법을 무시하고 색깔 공세를 돌파할 자체적인 힘이 있나? 없다. 그런 때는 현명하게 우회 전략을 썼어야 했는데, 어리석게도 저쪽에 먹잇감을 던져준 것이다.

"당원비대위, 하루 빨리 당기위 제소해야"

프레시안 : 사태 수습이 안 되다 보니 이제 민주통합당도 이석기, 김재연 두 의원의 의원직 박탈에 합의할 분위기다. 어떻게 보나?

정성희 : 지금이야말로 일치단결해서 싸워야할 때다.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결탁해선 안 된다고 본다. 우리 내부적으로 출당을 하든지, 정치적 해법을 통해 해결하든지 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 꼬리 자르기 식으로 외면할 게 아니라, 진보세력이 합심해서 맞서 싸우는 게 최우선이다.

프레시안 : 결국 통합진보당이 비례경선 문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당 입장에선 마냥 기다리기도 부담스러운 상황 아닌가?

정성희 : 어떻게든 사퇴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2차 진상조사 특위가 가동이 되는데, 최대한 빨리 앞당겨야 할 것이다. 얼마 전 강기갑 위원장을 만나서 강력하게 주문을 했다. 첫째는 중앙위 폭력사태 진상조사를 빠르게 해 마무리해 관련자를 당기위에 회부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세계 진보정당 역사상 어떻게 회의 방해하다가 단상을 점거하고 의장단에게 집단 폭력을 가하는 일이 있을 수 있나. 그래놓고 폭력을 유도했다고 항변한다. 이건 심각한 불감증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두 번째로 당원비대위 책임자를 당기위에 제소해야 한다. 언제까지 언론에 이중권력, 한 지붕 두 가족 모습을 보여야 하나. 이건 분명한 해당행위다. 오병윤, 김미희, 유선희 이 세 사람은 당기위원회에 제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프레시안 : 당원비대위를 당기위에 제소하는 것은 지금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정성희 : 최근 검찰조사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진보정치의 도덕적 우월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폭력사태, 당원비대위는 엄벌해야 한다. 오병윤 위원장은 자신을 뽑아준 광주시민들조차 용납 못하고 있지 않나. 빨리 물러나 이중 권력 상태를 해체하고, 혁신비대위에 들어와야 한다.

프레시안 : 강기갑 혁신비대위가 출범 당시와 달리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평도 있다. 좋게 말하면 너무 조심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눈치 보느라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떻게 보나?

정성희 : 강기갑 위원장의 혁신의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혁신과 함께 당의 통합 역시 잘 해야한다는 일각의 주문이 있고, 그래서 강 위원장이 고심하는 것 같다. 한편으론 진상조사위에 외부인사가 참여해야 하는데, 많은 분들이 계속 고사하다보니 조사가 발 빠르게 안 된 측면도 있다. 저도 주문을 했다. 당원비대위 문제, 폭력사태 진상조사는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 이게 제대로 안 되면 강기갑 혁신비대위가 과연 혁신 의지가 있는 것인지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앞으로 잘 할 것이라 기대한다.

프레시안 : 선거의 부실, 부정 문제도 있었지만 '진성당원제'라는 당 시스템도 이번 일을 계기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떻게 보나?

정성희 : 선거제도 역시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비례대표는 부문과 전문성, 직능 등 고유의 기준이 있지 않나. 이 기준에 따라서 최소한 1번부터 6번까지는 전략공천 해야 한다고 본다. 노동, 농민, 여성, 비정규직, 시민단체…이런 식으로 정해서 그 부문 내에선 경쟁할 수 있게 하고, 순위는 당의 중요한 의결 기구에서 정해야 한다. 과거 민주노동당에선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번엔 1,2,3번도 일반 순위경쟁에 넣어서 하다 보니 특정정파의 조직력만 강하게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수구세력에게 색깔 공세의 빌미만 주고, 내부적으론 노동자 농민 등 부문 대표 후보들이 후순위로 밀렸다. 그게 바로 씻을 수 없는 오류였다.

"참여당계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운영 원하지만, 민노당계는 조직·질서 우선해"

프레시안 : 비례경선 이전엔 그런 정파 패권주의로 인한 갈등이 없었나?

정성희 : 제가 민주노동당 말기에 진보대통합 추진위원장을 맡았었다. 외연 확대를 위한 진보대통합론이 나왔다. 그런데 그 쪽(당권파)에선 이를 위한 연석회의에도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나오고, 갑자기 유시민 대표와 북콘서트를 하더니 참여당과의 선통합을 주장하고 나왔다. 이석기 씨가 이미 그건 자기 작품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역설적인 건 참여당과의 선통합을 그렇게 목소리 높여 주장했던 세력들이 지금 가장 참여당계와 극단적으로 갈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면 결국 진보통합에서 그들에게 최우선적 과제는 자신들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런 갈등은 통합 이후, 총선 공천 과정에도 꾸준히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사실 문화 차이도 있었다. 3자 통합 이후 가치나 정책은 그다지 갈등 요인이 되지 않았는데, 당 운영에서의 문화 차이가 컸다. 일단 참여당계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당 운영을 원하지만, 민주노동당 계열은 조직과 질서를 더 중시하고, 이게 구태를 못 벗는 장애 요인이 되기도 한다. 참여당이 개혁적 시민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민주노동당은 민중운동권 문화가 큰 것이다. 활동방식에 있어서도 민주노동당은 대중의 의식화, 조직화, 대중투쟁을 중시하지만 참여당계는 대중과의 상식적인 소통과 공감을 중시한다.

통합 3주체의 장점을 잘 모은다면 훌륭한 대중진보정당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었는데, 그 차이의 화학적 통합 과정 없이 조기에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여기서 특정정파가 대중정당을 일사분란한 활동가 당으로 운영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자파를 당보다 앞세우는 정파 패권주의가 횡행했다. 국민을 최우선을 놓고 그 다음에 당, 그 다음에 정파와 개인이 있어야 했는데, 그들에겐 계파의 이익이 최우선했던 것이다.

저도 자주파라고 불리는 사람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특정정파는 자파가 아닌 세력이 한 마디 지적하면 콧방귀를 뀌고, 같은 자주파인 인천연합에 대해선 소위 '맛이 갔다'고 여기고, 울산연합에 대해선 '총선 다 떨어지고 무슨 할 말이 있냐'며 무시한다. 자파가 아니란 이유로 기회주의적이라고 몰아가고…. 당권에 환장해서 비례부실을 조작했다고 악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자주파 내에서도 이렇게 하는데, 소위 평등계와 참여계, 통합연대 동지들한테 어떤 태도로 임하겠나. 특정 정파가 잘만 한다면 10년이고 100년이고 당권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심각한 고질 병폐부터 고쳐야 한다.

"통합진보당 혁신 과제, 노동중심성 강화돼야"

프레시안 : 정파패권주의 청산 외에 통합진보당의 혁신 과제는 뭐가 되어야 한다고 보나?

정성희 : 이 모든 것들이 노동중심의 진보대통합 정당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본다. 세 그룹의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해도, 중심에 노동이 서 있다면 정파들이 함부로 못 했을 것이다. 심지어 민주노총 출신의 공동대표를 세우는 문제도, 지난해 이정희 대표가 누차 약속한 사안인데 조준호 대표를 뒤늦게 겨우겨우 선임했다. 그것도 활용적인 차원이었다. 사실상 세 명의 대표가 다 해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프레시안 : 노동중심성 강화는 이번 총선 이전부터 나왔던 문제인데, 사실 어디서도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정성희 :

비정규직이나 청년실업 문제 등 노동정책과 가치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노동대표성이 있는 정치 간부가 많이 당에 들어와야 한다.

프레시안 : 노동계 출신이라고 해도 정파의 구성원으로 활동한 전례가 많지 않나? 민주노총 출신 숫자로 노동자 중심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정성희 : 물론 무조건 노동계 출신이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그게 담보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통해 대중운동을 경험하고, 정치적으로 단련이 된 사람들이 진보정치 지도집행력을 담당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조직 기반이다. 노동자가 당원의 절반이 되고 매달 당비를 내는데도, 정파들에게 대상화되고, 정파에게 위탁정치를 하는 일이 없애야 한다. 직장위원회를 통해 일상적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노동조합 운동이 사업장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운동, 정치운동 중심으로 배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조 간부나 조합원들이 기층까지 조직 기반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정파의 노리개가 됐다. 지금은 대중진보정당이 '정파의 식민지'가 된 상황인데, 통합진보당은 대중정당이지 전위정당이나 활동가정당이 아니다. 대중 자신의 대표가 공직이나 당직에 나와야 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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