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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자정 능력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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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통합진보당, 자정 능력을 잃었다"

[인터뷰]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창당이냐 혁신이냐 기로"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지쳐 보였다.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를 지치게 하는 듯 했다. 특히 지난 12일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이후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통합진보당을 넘어 민주노총을 향하고 있다. '배타적 지지' 관계는 아니었지만, 통합진보당의 최대 지지 기반은 민주노총이다. 그 민주노총이 '지지 철회'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완전히 버릴 것인가, 아니면 고쳐 다시 쓸 것인가.'

15일 만난 김영훈 위원장의 고민은 아직 정리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17일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열고 이 두 가지 갈래 길에서 어느 길로 갈 것인지를 선택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제일 손쉬운 게 탈당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가장 소극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김 위원장은 "두 가지 길의 장단점을 떠나 현실 가능성부터 따져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첫째 길은 정말 가능한가의 문제가 있고, 둘째 길은 당이 마련한 중앙위 결정마저 '부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라고 토로했다.

비례대표 선거 부정 사실을 세상으로 꺼내든 사람은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조준호 전 공동대표였다. 민주노총은 진상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입장을 내고 통합진보당의 쇄신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른바 '당권파'는 지난 12일 중앙위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의 공동대표를 집중적으로 폭행함으로써 그 기대를 저버렸다. '지지 철회' 언급은 중앙위 이후에 나왔다.

김영훈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여론에 밀려 (통합진보당을) 마녀사냥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론의) 소나기가 쏟아지니 잠시 피하자는 것도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제3당의 지위까지 만들어준 국민의 눈으로 보자는 것"이라며 "진보정당인지 아닌지를 떠나, 최소한 공당으로서의 책임을 얘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중적 진보정당'을 추구한다던 '당권파'가 이번 국면에서는 유독 '당원 중심'을 강조하는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질 때 나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기도 했었지만 그때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운동권 정당을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며 "그랬던 사람들이 (이번 사태는) 그 반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기들이 내세운 창당 정신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이석기 당선자가 제안했던 당원 총투표도 "당직자와 공직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발상"이며, 진상조사보고서에 문제가 있다는 '변호사' 출신 이정희 전 공동대표의 '무죄 추정의 원칙'도 "진상조사보고서는 범죄 사실을 소명하는 공소장이 아니"므로 모순이 된다.

김영훈 위원장은 "유시민 전 대표가 지금 가장 진보적인 것 같아 보인다고들 하는데 유시민 전 대표는 변하지 않았다"며 "현재 가장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날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진행된 김영훈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프레시안(허환주)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걸 보며 일종의 벽을 느꼈다"

프레시안 : 우선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솔직한 소회가 듣고 싶다.

김영훈 : 다들 이야기하듯, 완벽한 정당도 제도도 없다. 완벽한 건 없기 때문에 부실선거 논란도 있는 거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좋았지만, 이미 벌어진 거다. 제일 참담한 건, 이걸 수습해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들이다. 결정판은 중앙위원회에서 나타난 폭력사태다. 민주노총은 그간 이번 문제를 두고 입장을 두 번이나 냈다.

지난 11일 열린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발표된 입장보다 더 강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당과의 관계를 최대한 생각하고 당원들이 당을 생각하는 믿음을 생각해 마지막 호소를 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들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 이야기를 경청하고 참고라도 해달라는 건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행위들은 한 마디로 참담했다. 무슨 생각이 들었나 하면, '너희들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우린 변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견고한 벽을 느꼈다.

우리가 냈던 요구는 새로울 게 없다. 사실 알맹이가 없다. 당에서 결정한 대로 책임지고 집행하라는 거였다. 그건 당이 자정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라는 거였다. 완벽하지 않는 당에서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진상조사위를 만들고 자체적으로 수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공당으로서 할 일이다.

지금 쟁점이 된 비례대표 총 사표는 당에서 결정한 거다. 그걸 그대로 하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였다. 다른 요구가 있었다면 격조 있는 토론이 됐으면 하는 바람 정도였다. 그러나 그건 고사하고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대중 조직에서 의사 결정을 반대하는 물리적 행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방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너무 놀랐다. 더구나 당에서 필요하다고 해서 데려간 조준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폭행을 당하지 않았나.

민주노총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그러면 안 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폭행이 정당화된다는 건 있어서는 안 된다 생각한다.

프레시안 : 중앙위위원회 폭행사건을 보고 2005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가 딱 떠올랐다. 1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진보 내 행동 양식은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게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영훈 : 생각이 다양한 건 당연하다. 소수파, 다수파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정당 내에서도 정치적 견해가 일치하기 어렵다. 민주노총은 더 다양하다. 통합진보당 내의 당권, 비당권파 뿐 아니라 더 다양한 정파가 민주노총 내에는 존재한다. 그렇기에 지금의 폭력사태같은 게 통용되면 민주노총은 앞으로 식물노총으로 전락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있다.

다수파가 무조건 나쁜 걸로 매도 되선 안 된다. 예를 들어 '김영훈파'가 출마해서 50.1%로 당 대표에 당선이 됐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김영훈파'를 지지하지 않았던, 비토 했던 사람과 함께 당을 운영해야 한다. 물론 당 운영은 다수결에 의해 운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소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의견을 어떻게 하면 함께 같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그런데 생각이 다르면 틀렸다고 하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폭력으로 이어진다? 어떤 걸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민주노총, 니들도 쌍용차 투쟁, 노동자대회 화염병 등 폭력을 많이 행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받는다. 하지만 이건 그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진상보고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 정치행위다"

ⓒ프레시안(허환주)
프레시안
: 당권파에선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폭력사태를 촛불 집회 때 경찰에 맞서서 한 폭력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김영훈 : 그 인식이 위험한 거다.

프레시안 : 총선 이후, 당에선 여러 차례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민주노총에서는 그간 입장이 변화된 게 있는가.

김영훈 : 민주노총에서는 그런 당내 분위기를 떠나서 일관되고 주장했다. 우선 진상조사보고서의 성격에 대해 명확히 생각해야 한다. 진상보고서는 범죄 사실을 소명하는 보고서가 아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행위 주체, 즉 당원들의 부정행위를 무고하게 적시한 것도 아니다. 물론 각종 언론에서 진상보고서를 가지고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당사자를 지목했지만 그건 언론의 자유다. 그것에 억울함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을 마치 수사권을 가진 검사이고, 그것을 반대하는 쪽을 변호인으로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거다. 공당에서 자체적으로 자정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진상조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진상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를 한 거다. 이를 기반으로 정치적 책임을 지자는 정치적 행위다. 국민의 마음을 읽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게 정치행위라 하면 그 행위를 한 거다. 그 행위를 두고 각각 당원의 구체적 범죄 소명과 그에 대한 무죄 입증 공방으로 가는 건 애초부터 위상이 다른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진보당은 그 길에 들어가 버렸다.

또 하나는 논란 없는 진실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모든 진실에는 논란이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을 이야기해보겠다. 이것도 논란이 존재한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은 광우병 쇠고기가 존재하고 이에 대한 검역주권이 강화되지 않고 수입된다면 국민의 건강이 위험하다는 게 실체적 진실이다. 이게 얼마만큼 위험하냐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렇다고 진실 공방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억울하더라도 여론재판 때문에 '너는 좀 입을 다물어 줘야 겠다' 이게 아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민주노총, 너희들은 깨끗하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한 번도 우리가 깨끗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이미 통합진보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무한한 책임을 진다고 했다. 다만 내가 노동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총연맹 위원장이기에 이 문제를 가지고 진퇴 고민하는 거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총선 부정으로 위원장직을 내놓아야 하는가.

선거 부정에서 우리도 일정 책임이 있다면 분명 조치를 취할 거다. '우리는 깨끗한데, 너희들은 뭐냐'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소나기가 오는데 다 같이 비를 맞자고 말하는 거다. 이런 마음이다. 민주노총은 깨끗하다고 하지 않았다.

일부에선 '조합원을 범법자로 내모는 조준호 공동대표'라는 말도 나온다. 아마 동일 아이피에서 무더기 투표를 했다는 걸 두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 민주노총 총연맹 사무실도 동일 아이피 쓴다. 그런 부분이 소명이 안 될 거 같나. 모두 소명된다. 그런 걸 두고 현장에 있는 조합원이 노조 사무실에서 투표한 것까지 부정으로 몰았다며 그들을 범법자로 몰았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건 다 소명된다. 정말로 사실과 다른 문제다. 그걸 누가 범법자라고 하나.

프레시안 :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질 때,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하며 탄생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대중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김영훈 : 맞다. 대중적 진보정당을 자처하며 통합진보정당이 창당됐다. 물론 노동계에 우려가 있었다. 많은 우려가 있었다.

통합과정에서 통합을 일관되게 주장했던 그분들의 논거는 '이제 운동권 정당은 탈피해야 한다'는 거였다. 대중적 정당으로 나가야 한다는 거였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면서 외연을 확대하고 연립 정부안까지 구상했다. 나는 그 창당 정신으로 이 문제를 풀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대중적 진보 정당을 하려 했던 분들이 그 대중의 눈높이로 지금의 문제를 풀면 된다. 하지만 운동권 정당을 탈피하자고 했던 이들이 그 반대로, 즉 운동권의 모습으로 이 문제를 보는 게 나는 상당히 이해가 안 된다.

프레시안 : 당권파 핵심 인사로 알려진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최초로 제안했다고 밝혔다.

김영훈 : (당권파에서는) 이번 문제 관련해서 언론 관련된 호소도 많이 한다. 왜곡보도에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도 많이 한다. 그걸 다 아는 분들이 극우 언론이 제일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설명이 안 되는 거다. 전 국민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우리의 진의가 왜곡되는 걸 알면서도 그런(폭력) 행동을 했다. 그 어떤 행동도 스스로 절제해야 하는 게 맞는데 말이다. 언론의 왜곡보도가 아닌 대서특필을 만들어 줬다. 용팔이 사건은 둘째 치고, 세계진보 정당 역사에서 진보정당 당원들이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키는 건 일찍이 찾아보지 못했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그분들의 억울함은 충분히 호소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안 되는 당도 아니다. 지금 우리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지만 '억울하지만 너 죽어라' 그렇게 말하는 이는 없다. 여론에 밀려 마녀 사냥하는 거 아니다. 물론 많은 이가 조준호 전 공동대표가 성급히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해 언론의 추측성, 의혹성 기사를 남발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며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성급한 보도를 부추겼다 점과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해야 되겠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진보 정당이기 전에 공당이기 때문이다. 정치 조직이다. 정치 조직은 그에 걸 맞는 위상과 제 3당 위치에 올려놓은 국민의 염원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공당으로서도 최소한 자율능력이나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를 하게 한다.

ⓒ프레시안(허환주)

"철수 한 뒤 새 당 창당? 아님 전면 개입해 재창당?"

프레시안 : 모든 시선이 17일 열리는 중앙집행위원회에 몰리고 있다. 이미 당에 대한 지지철회는 당연한 거라고 했다. 그외 고민하는 부분이 있는가.

김영훈 : 크게 두 가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전면적 철수 뒤, 새 당을 창당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전면적으로 개입해 재창당 수준의 공당으로 만드는 주체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는 장단점 떠나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둘 다 일리 있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정치는 현실이니깐. 하지만 민주노총이 처한 현실에 기초해 볼 때, 새 당 창당에 들어가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8월 총파업 앞두고 말이다.

진보정치가 무너진 것도 노동 중심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노동 중심성이라는 것에는 민주노총의 역할을 중요하다. 민주노총의 역할은 스스로 사회적 위상을 드높여 노동의제를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총파업을 하고 투쟁을 한다.

그런 역할이 있는 우리가 새로운 당 창당에 들어간다? 우리가 해야 할 본업이 아니지 않는가. 그럼 최대 지지기반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역할은 어떨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당 중앙위원회 결정에도 부동의 하는 분이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개입해서 뭘 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 장단점을 떠나 무엇이 우리가 실천 가능한 방법인가를 고민한다.

프레시안 : 그 고민의 결과는 17일에 나오는가.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하고 있나.

김영훈 : 어느 방향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어떤 게 최선의 방향인가를 찾는 과정이다. 적대적 모순 관계는 아니라고 본다. 새로운 제2의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거에 이견이 없고 그 방식을 새로운 당 창당으로 가야 하나, 기존 당을 혁신하고 남아있는 진보신당을 합하는 것으로 가야 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적대적인 이견도 있다. '의견을 내지 말아야 한다. 진상조사보고서가 폐기돼야 한다' 등의 의견도 있다.

프레시안 : 당 중앙위원회 권고안과 비대위 구성안, 이 두 가지를 소위 당권파가 받아들일지 말지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듯하다.

김영훈 : 최소한의 조치 아닌가. 자기가 속한 당에서 정한 결정을 우리가 이래라 마라 할 게 아니지 않나. 우리는 일관되게 요구했다. '문제가 벌어졌으니 외부의 손을 빌리지 말고, 자정능력으로 문제를 밝히고 대책을 세워라' 그러면서 '진보정당의 힘을 보여 달라' 이거 말곤 없다.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 관련) 내가 그분들을 두고 사퇴하라 마라를 넘어서, 본인들에게 당에서 사퇴하라고 하는데 우리가 더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그리고 우리는 어떤 특정인이 사퇴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도 없다. 민주노총 출신 비례후보는 다 사퇴했다.

ⓒ프레시안(허환주)

"노동 중심성 무너지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에 속한 조합원들은 총연맹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 지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입장 표명에 불복해 창문으로 뛰어내리겠다며 소동을 벌이는 일도 발생했다고 들었다. 민주노총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그것을 따르지 않을 분도 있을 듯하다. 17일에 결정된 정치 방침을 조합원이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김영훈 : 정치방침은 오래된 논쟁 중 하나다. 진보정당 운동사에서 내셔널 센터라는 총연맹과 진보정당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건 대단히 오래된 논쟁이다. 총연맹이 개개인 사상까지 속박할 권한을 가지고 있나. 또한,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를 해도, 조합원이 이를 따랐다는 걸 증명할 길도 없을뿐더러. 실효성이 있느냐에 대한 논쟁은 계속돼 왔다.

총연맹은 조합원들의 정치사상까지 근본적으로 침해할 권한은 없다. 다만, 이에 반하는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투표소에서 새누리당을 찍는 건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새누리당 지지 운동을 하는 건 막는다. 그게 배타적 지지다. 이번 일은 그간 민주노총의 규율과 원칙, 오랫동안 쌓인 우리의 전통에 기초해 풀어야 한다.

프레시안 : 이야기가 반복되는 듯하다. 원칙을 이야기하고 전통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는 계속 당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

김영훈 : 더 이야기 한다는 게 좀 그렇다. 똑같은 이야기다. 이석기 당선자는 당원 총투표로 당선됐기에 당원 총투표로 자기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신은 당선자 신분이다. 국회의원이다. 헌법기관이다. 그 신분을 만들어준 최종 결정은 국민 투표였다. 또한 정당 비례투표는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노선, 정책과 공약을 지지하는 220만 명의 국민 투표로 결정됐다. 그것으로 지금 자신의 지위와 위상이 정해진 거다. 물론 당 내에서 선 순위를 할 거냐, 후 순위로 할 거냐는 당내에서 논의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결정한 건 국민이다. 당직자와 공직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번 사건이 우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출범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 정당에서 이런 폭력사태까지 발생한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김영훈 : 결국 노동 중심성이 무너지면서 불행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노동중심성은 노동조합 중심성, 민주노총 중심성이 아니다. 진보정당의 가치, 정체성이라는 건 과거 민주노동당이 내걸었던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슬로건에서도 나타나듯, 일하는 사람들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노동의 가치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노동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나온다. 정치학으로 볼 때도 유권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시민들, 특히 그 중에서 일하는 노동자, 그가 조합원이든 아니든, 불문하고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정당은 그들을 최대 지지기반으로 그들을 위한 정책을 의회 내에서 실현하려 한다.

그렇기에 진보정당은 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도 절대 다수의 노동자가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는가에 따라 당을 운영, 진행해야 한다. 그게 노동중심성의 핵심이다. 민주노총의 지분을 인정해달라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은 스스로 이 땅 노동자의 대표를 자임한다. 물론 절대 다수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다 담진 못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노력한다.

노동 중심성에는 정파가 있다. 그게 없으면 전체주의 아닌가. 하지만 그게 대중의 이해와 충돌할 땐, 과감히 대중의 이해에 복무하는 게 진보운동, 진보정치 하는 사람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억울하고 서럽다. 하지만 억울한 거 따지면 민주노총만한 곳이 어디 있나. 나도 많이 '까'인다. 그게 억울하지만 그걸 탓하기 전에, 그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역사 속에서 다시 명예를 회복하는 우리의 길을 가는 게 진보정당의 길이다. 억울한 거 따지면 제일 억울한 게 민주노총 조합원 아닌가. 민주노총을 믿고 찍어줬던 유권자 아니겠는가.

ⓒ프레시안(허환주)
프레시안
: 노동 현장이 통합진보당 사태로 뒤숭숭하고 흉흉하다. 김진숙 지도위원도 트위터에 그런 글을 남겼다. 통진당 찍으라고 했던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어깨를 들지 못한다고 한다. 관리자들이 놀리기도 한단다.

김영훈 : 한 순간에 노동자들이 조롱거리가 됐다. 그 점을 잘 읽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 안 겪는 사람이 있겠나. 물론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돼서, 차마 도저히 양심상 동의가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시각에서 한 발 떨어져서 바라봐야 한다.

이정희 전 공동대표가 10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게 지금의 문제를 푸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틀리고 옳은 게 아니라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당권파나 비당권파나) 서로 다르게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는 거다. 이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나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당원들의 마음을 몰라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너희들은 억울하지도 않은데 억울한 척 하느냐'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 다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처방이 극명하게 갈라진다. 그러나 정치는 폭력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는 거다.

"노동자들, 통진당을 자신의 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총선에서 노동자 도시에서 전패를 했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영훈 : 총선 기간 내내 울산, 창원, 거제 등을 도시를 돌아다녔다. 현장 노동자 밀집 지역을 순회했다. 거기서 느꼈던 감정은 현장 노동자들이 통합진보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 민주노동당 만큼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엔 '민노당은 우리당이다' 이런 정서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게 상당히 많이 희석된 게 아닌가 싶다. 통진당을 두고는 '우리당 맞나, 노동자당 맞나' 이런 거를 생각하고 있었다.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를 통한 원내교섭단체 달성이 가장 큰 선거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게 노동자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과거 구 민주노동당은 부유세, 무상교육 및 무상의료 등의 의제가 있었다. MB 심판 반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야권연대를 통해 기존 노동자 정당만이 가졌던 아젠다가 사라졌다.

'야권연대 통한 원내교섭단체 달성'이란 목표도 본말이 전도된 거 같다. 결과가 20~30석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의 삶이 뭐가 바뀌는 건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느낀 거는 민주노당을 지지하지 않은 노동자는 지금도 통합진보당을 지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엔 당원이 아니더라도 조합원들은 '우리 민주노동당' 이런 표현을 자연스럽게 했다. 통합진보당이 창당한지 얼마 안 됐다는 시간적 한계도 있지만 노동자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 듯하다.

후보 난립, 후보 자질 문제 등 그런 것도 세부적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통진당이 던지는 메시지가 우리 노동자 삶을 어떻게 바꿀 건지에 대해 피부로 와 닿지 못한 거 같다. 물론 나도 반성을 많이 한다.

프레시안 : 이런 거를 선거 유세 당시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나.

김영훈 : 사실 민주노총의 당 개입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민주노총이 실력이 없어서다. 선거 과정에서 '우리 실력이 이거 밖에 안 되는 구나' 그런 반성을 했다. 지금 상황에서 탈당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극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고민까지 하는 건 민주노총의 거듭되는 호소라고 보면 된다. 솔직히 계속된 호소에도 불구하고 계속 당에서는 폭력 사태 등이 발생한다. 그렇다보니 때로는 민주노총의 조직적 철수를 바라는 분도 계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더 이상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새 당을 만들라'고 메시지를 주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세계 진보 정당 역사에서 조직된 노동자에 기반하지 않고 성공한 사례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60이 넘은 장년층도 진보정당을 지지한다. 소중한 자산이다. 비정규직부터, 억대 연봉을 받는 아나운서까지 진보정당을 지지한다.

물론 민주노총은 부족하다. 하지만 이를 전제한다 하더라도 노동이 폐허된 곳이 진보정치의 꽃이 피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말씀을 듣다보니 통진당이 왜 이렇게 됐나가 이해간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배타적 지지를 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내에 이견이 있었다.

김영훈 : 사실 내가 정치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노동정치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배타적 지지 관련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중심 고민은 5% 밖에 안 되는 노조 조직률을 가진 민주노총이, 물론 이 5%는 매우 중요하다. 어쨌든 그런 민주노총이 국민의 5% 지지를 받는 진보당과 배타적 지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서로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거다.

구 민주노동당 시절, 통합 논의는 정당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정당은 대중적으로 나가야 하는 게 맞다. 5% 노조 조직률을 가진 민주노총의 요구만 어떻게 다 들을 수 있겠는가.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 부분에서 통합을 주장했고, 거기에 동의했다. 우리 조직률이 30~40%만 되면 '이게 절대 다수 노동자의 요구다. 당에서 접수해라' 라고 하겠지만 우리 스스로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 집권을 노리는 당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삼자(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통합연대)가 통합 할 때, 나를 비난하는 이는 '통합을 묵시적으로 동의한 거 아니냐'며 '그 당으로 가려는 거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충분히 일리있는 비판이라 생각한다.

내 고민은 지금 우리 수준, 즉 민주노총 수준으론 당을 강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당이 스스로 결정해서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은 어쩌면 당으로선 당연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대신 앞으로 전술적으로 우린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근본적인 정치방침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지금의 문제는 과거 창당 이념을 생각하면 된다. 통합진보당은 진보적 대중 정당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문제를 대중적으로 풀면 되는 거다. 유시민 전 대표가 가장 진보적인 거 같더라는 말이 나온다. 그 사람이 변한 건 하나도 없다. 그런데 가장 진보적인 거 같다는 말이 나오는 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그 방식으로 나아가라는 거다.

ⓒ프레시안(허환주)

"총파업, 의지로 돌파하려 한다"

프레시안 : 8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사태로 현장의 힘도 많이 빠져 있을 듯하다.

김영훈 : 세상 이치가 다 그런 듯하다. 위기가 기회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는 게 세상 이치다. 지금의 사태로 인해 좋은 점은 산별에서의 결속력이 대단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우리가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 진보정치를 세우는 가장 큰 힘은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드높이는 거다. 우스갯소리로 최근 민주노총을 두고 '잘한다', '구원투수다' 이런 식의 칭찬을 받고 있다. 살다 보니깐 내가 이런 이야기도 들어보나 싶다. (웃음) 솔직히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보였나 하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건 민주노총이 제2의 정치세력화를 하기 위해선, 민주노총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노동의 가치를 우리 사회의 가장 중심적 가치로 올려놓아야 한다는 거다. 그 방식의 하나가 노동자 정치세력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전통적인 투쟁을 통해 노동의제를 전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거다. 의회정치에서 그걸 해주면 좋지만, 그게 안 된다.

과거 1996~19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대투쟁이 있을 때는 진보정당 없이 했다.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히려 진보정당이 있어서 더 어렵다는 말도 있다.

결연한 마음으로 8월 총파업을 반드시 성사시킬 거다. 물론 지금까지의 상황은 비관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의지로 돌파하려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게 우리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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