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F폭탄이 터진다' ☞ <1> 문 닫은 저축은행, '그들'은 웃는다 ☞ <2> 저축은행 사태에 왜 정권 실세들이 쇠고랑을 차나? |
31조 원 투자, 총 56만6800㎡.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랜드마크 타워, 삼성역 코엑스의 여섯 배에 달하는 쇼핑 시설. 제1의 랜드마크가 될 건물 높이 620m에 이르는 최고층 빌딩으로, 111층으로 지어진다고 해서 이름도 '트리플 원'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칼리파(160층·828m)의 뒤를 잇는다고 한다. 단군 이래 최대 도심 개발 사업이라 평가되는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규모다. '단군 이래'라는 표현을 붙여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코레일에서 토지를 대고, 2007년 사업자 공모를 시작하자 SH공사를 비롯한 공기업부터 국내 유수 금융회사와 건설사가 대거 사업자로 참여했다. 개발 시공을 맡게 되는 건설투자자로는 컨소시엄을 주도한 삼성물산을 비롯해 GS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17개사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공모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 Project Financing) 사업이다. PF 사업은 워낙 큰 사업이라 다양한 회사가 투자에 참여한다. 그렇기에 이들을 조율하고 개발 계획을 짤 '머리'가 필요하다. 이를 시행사라 부른다. 일명 디벨로퍼(Developer)다. 용지구입, 상품기획, 설계, 시공, 마케팅, 분양, 입주, 정산, 사후관리까지 대형 부동산 사업 관련 총괄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디벨로퍼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합리적으로 수행하면 개발 사업의 비용을 절감하고 품질 좋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사업비용을 절감하고 사업 수지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PF 사업에서 디벨로퍼는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이라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왜 그럴까.
▲ 용산국제업무지구 조감도. ⓒ뉴시스 |
PF 사업은 어떤 구조로 만들어져 있나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지난 2일, 계획 설계 결과 보고회를 개최했다. 올 하반기에 우선 8조 원 규모의 공사를 한꺼번에 발주하고 내년 상반기 착공 및 분양에 들어가 2016년에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그간 이 사업은 조합 간 법적 다툼, 토지 대금 납부 차질 등으로 사업이 장시간 유보됐었다. 계획이 수립된 지 4년 만에 계획 설계 결과 보고회를 가진 이유다.
여러 지엽적인 문제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디벨로퍼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여느 PF 사업이 그러하듯 용산국제업무지구 내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한 조직은 공공기관이다. 공기업인 코레일이 이 지구의 실질적 추진 주체다.
2005년 철도청이 코레일로 전환되면서 4조5000억 원의 부채를 떠안아야 했다.이에 코레일은 자신이 보유한 서울 중심 철도정비청부지 146만497.5㎡를 개발해 부채를 갚을 계획을 세운다. 이후 일사천리였다. 2007년 8월20일부터 10월30일까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자 공모에 나섰고 11월3일 삼성-국민연금컨소시엄이 사업시행예정자로 선정됐다.
코레일은 그해 12월 민간 시행자, 여러 금융 기관과 함께 페이퍼 컴퍼니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일명 드림허브)(PFV)와 실제 개발 업무를 담당할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AMC)를 설립했다.
PF 사업은 흔히 이중 구조로 돼 있다. PFV와 AMC가 그것이다. PFV는 여러 업종의 투자자자들이 모인 투자 조합, 즉 프로젝트 금융 투자회사(PFV : Project Finance Vechicle)를 말한다.
크게 건설 투자자, 재무 투자자, 전략 투자자로 나뉜다. 건설 투자자는 PF 사업에서 건설하는 건물 시공 담당 회사를 일컫는다.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는 삼성물산(지분 6.4%), GS건설(지분 2%)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사업 자금을 담당하는 재무 투자자는 KB자산운용(10%), 미래에셋(4.9%) 등 금융회사와 연금공단이 여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전략 투자자는 무엇을 할까. 전략 투자자는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투자자로 재무 투자자와 다른 점은 개발 후에도 지분을 통해 경영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재무 투자자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개발 사업에서 나오는 배당금, 원리금, 수수료 등을 받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서 PFV 역할을 하는 건 드림허브다. 드림허브에는 40여 개의 각기 성격이 다른 회사가 들어와 있다. 크게 나눠서 세 가지 종류의 투자자가 들어가지만 그 안에는 공기업(코레일, SH공사), 자산 운용회사(미래에셋, KB자산운용), 보험업(삼성생명), 은행업(우리은행), 건설업(삼성건설, GS건설 등), IT 회사(삼성SDS) 등이 들어있다.
이 회사들이 출자해 만든 회사가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 즉 AMC다. AMC는 PFV가 실질적으로 개발 업무를 수행하고 자산을 관리하도록 한 일종의 기구로 자산 관리 회사(AMC : Asset Management Company)를 일컫는다. AMC는 PFV의 하부 조직으로 보면 된다.
이해관계가 상이한 투자자들이 모여 PF 사업을 하니…
40여개의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가 모여 있으니 툭하면 문제가 터지는 건 당연하다. 서로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끊임없는 의견충돌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토지대금을 어떻게 조달하는가' 였다. 코레일은 당초 보유하고 있던 용산 철도정비청부지만을 대상으로 개발 계획을 세웠지만 서울시는 한강 경관 개선사업을 고려해 서부이촌동의 12만4000㎡를 포함해 '통합개발'을 하는 것을 인·허가 조건으로 내세웠다.
서부이촌동의 대림, 성원, 동원베네스트 등의 아파트와 단독주택 600여 가구를 개발대상에 포함하니 갑자기 토지 매입 대금이 애초 3조8000억 원에서 8조 원으로 증가했다. 자금 부담이 늘어나자 드림허브(PFV) 내 전략 투자자와 재무 투자회사들은 건설 투자자들이 자급보증을 서 자금을 조달해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건설 투자자인 삼성물산은 건설 투자자에게만 모든 부담을 다 지우는 건 불공평하다고 반발했다. 결국, 2010년 8월, 삼성물산은 "현 상태로는 사업성이 없다"며 용산역세권개발㈜ 경영권을 반납하고 단순 투자자로 내려앉았다. 용산역세권개발의 1대 주주인 삼성물산이 발을 빼자 사업 시행 여부는 불투명하게 됐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 PF 사업이 지닌 외국과 다른 특징 때문이다. 미국 등 우리보다 먼저 PF 사업을 해 왔던 나라들의 경우, PF 사업은 프로젝트의 수익성과 미래를 예측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디벨로퍼가 10년 장기 임대 사업을 생각하고 빌딩 건설을 계획한다고 하면, 매월 얼마의 임대료가 나오고, 보증금은 얼마이고, 건물을 짓는데 비용은 얼마가 드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계산한 내용을 보고 투자자는 투자를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하지만 한국의 PF 사업은 프로젝트의 수익성보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이 어디인가에 더 중점을 둔다. 은행 등 금융권 투자자들은 시행사, 즉 디벨로퍼에 지급 보증을 선 시공사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서 자금이 부족하자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지급 보증을 서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리보다 먼저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들의 경우, 한국처럼 단기 수익 목적으로, 즉 분양을 목적으로 대형 프로젝트를 발주하지 않는다. 건물을 지을 경우, 분양이 아닌 임대를 주요 목적으로 짓는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PF 사업이 부동산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한국의 PF 사업이 분양위주로 움직이는 건 사람들이 '부동산 불패'에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침체기에 빠지면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 분양 자체를 꺼리게 되고, 종국엔 PF 사업 자체가 실패하고 만다. 한국의 대형 PF 사업도 같은 이유에서 대부분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한국의 디벨로퍼와 선진국의 디벨로퍼의 다른점은?
그렇다면 왜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다른 PF 사업 구조를 가진 걸까. 김경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전문 디벨로퍼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의 디벨로퍼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개발 사업에 대한 전 과정을 주도한다고 보면 된다. 좋은 개발 프로젝트를 발견하면 시장 조사, 타당성 분석 등을 통해 수익성을 검토하는 등 포괄적인 사업 계획을 수립한다.
또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분쟁, 위험 요소 등을 관리하고 조율한다. 한 마디로 프로젝트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한국의 경우, PFV가 출자한 시행사를 디벨로퍼라 일컫지만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맺은 집단이 모인 PFV의 지시를 받는 수준에 그친다.
자연히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긴 어렵다. 투자자들의 입맛에 맞게 단기형 수익 창출에만 목을 맨다. PF사업에서 분양이 주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경민 교수는 "PF 사업을 한다고 하면 미국의 경우, 20~30년 고정금리로 대출해준다"며 "시공사가 보증을 설 필요도 없이, 디벨로퍼가 세운 계획만 보고 미래 수익이 어느 정도 날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대출을 해주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경우, 디벨로퍼가 금융기관이고 건설사"라며 "그들이 부동산 시장과 구조에 대해 장기적인 고민을 하고 PF 사업을 하기는 무리가 있다. 지금 진행되는 PF 사업에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도 마찬가지다. 디벨로퍼인 용산역세권개발은 사업 추진이나 장기 수익 등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 디벨로퍼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미국의 경우, 디벨로퍼는 프로젝트 개발 사업에 참여할 때 대략 20~30%, 많게는 그 이상을 자본금으로 투입한다"며 "자금을 투입한 디벨로퍼가 PF 사업을 주도하고 그에 맞춰 투자자와 건설사 등을 끌어들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대형 프로젝트를 금융 투자사, 또는 건설사와 연관 없는 별도의 독립 회사, 즉 디벨로퍼가 운영한다는 이야기다. 선진국의 경우, 금융 투자사는 디벨로퍼에게 자금을 투자하고 프로젝트가 완공되는 시점에 개발 이익 일부를 가져간다. 건설사도 시공에 대한 비용만 받지 프로젝트 완공에 따른 이익을 받진 않는다.
김 교수는 "하지만 한국의 디벨로퍼는 건설 회사와 금융회사 등 서로 업종이 다른 회사들을 묶어 회사 하나를 만든 후, '이제부터 이 회사가 디벨로퍼 역할을 수행한다'고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며 "입장이 상이한 업종 회사들이 모여 세운 회사에 갑자기 디벨로퍼 역할을 하라고 하니 어떻게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사무직 직원 줄어드는데, 너도나도 오피스 건설
전문 디벨로퍼의 부재는 부동산 시장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에는 여의도에 있는 프라임 오피스 빌딩 공간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이 방대한 공간이 모두 분양될지는 미지수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계획이 발표된 2007년 국토연구원 자료를 보면 오피스 빌딩의 수요자인 서울 지역 사무직 노동자는 2007년 230만 명이었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정체하거나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앞으로 공급될 오피스 건설 물량은 상당하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이외에도 잠실 제2롯데월드, 상암 DMC 랜드타워, 송도인천타워 등이 그것이다. 2016년까지 공급되는 오피스 빌딩은 전체면적 기준으로 640만 제곱미터에 이른다.
김 교수는 "앞으로 시장 수요 등을 예측한 뒤 사업 계획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며 "전문 디벨로퍼가 있다면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오피스 건물을 짓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전문 디벨로퍼는 건물을 단순히 분양하려고만 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을 생각하고 프로젝트를 계획한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을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렇다 보니 주변 환경과의 조화도 고민하고, 지어진 건물을 잘 관리,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한국도 전문 디벨로퍼 시스템을 도입해 좀 더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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