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집은 화려한 집이 아니라고요? 작은 거실에 지하철역 가까우면 된다고요? 그게 2억3000만 원이에요. 2억3000만 원이 없으면 서울에서 멀어지면 돼요. 만약 아이가 한 명 더 태어나면 서울이 안 보이는 데서 살면 돼요. 어때요? 간단하죠?"
KBS <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이 무대 위 스크린에서 방영되자 강당에 자리한 500여 명의 대학생은 박장대소했다.
대학생 주거문제가 더는 대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대학생도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이야기하겠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신촌 지역 대학교 총학생회가 지난달 18일 '주거네트워크'를 발족한 이유도 대학생 스스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취지다.
그 연장선에서 3일 홍익대학교 가람홀에서는 대학생과 박원순 시장이 함께하는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대학생들의 주거문제'가 주제였다. 신촌 주변 대학교인 홍익대학교, 연세대, 서강대의 총학생회가 직접 대학생 주거 문제와 대안을 시장에게 들려주고자 자리를 마련했다.
▲ 토론회에 참석한 대학생이 주거 문제에 관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학생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 ⓒ서울시 |
"학교 근처 재개발 지역에 대학기숙사 설치 방안 고민해야"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주거문제의 이유와 해법은 무엇일까. 이날 토론회에서는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 총학생회장들이 참석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주거문제 해법안을 제시했다.
포문을 연 김삼열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하숙집과 자취방의 정보를 대학생이 접근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격도 상당히 왜곡돼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거정보조사단을 만들어 실제 주거비용를 조사하고, 정보공유사이트를 통해 가격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명우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대학교 기숙사 확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고명우 총학생회장은 "민자 기숙사가 생긴 이후 값싼 기숙사는 옛말이 됐다"며 "대학생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학교 근처의 재개발 지역에 1인가구 택을 확보하고 대학기숙사를 설치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고 총학생회장은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부지와 공영차고지(버스종점)의 땅을 이용해 대학연합기숙사를 건립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며 "그렇게 된다면 대학생 간 소통도 원활해질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웅재 홍익대 총학생회장은 대학생 아르바이트 확충과 문화시설을 결합한 주거형태를 제안했다. 홍대 상상마당 등과 같은 사회적 기업 건물에 기숙사를 설치하자는 것.
학내 기숙사 확충을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학교 측 패널로 참석한 손봉수 연세대 학생복지처장은 "기숙사를 신축하고 증축하려 해도 기존 건축규제가 있어 쉽지 않다"며 "학교 내 기숙사 건립 심의 기준을 완화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홍대와 연대, 서강대 세 대학 학생기숙사 주거율은 10%밖에 안 된다.
또한, 손 처장은 "건축기금으로 기숙사를 지으려 해도 사용 도가 법으로 규정돼 있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며 "이에 대한 해제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주거 문제 해결? 불굴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대학생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자신을 중앙대 3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남학생은 "주거 문제는 우리 시대의 대학생이 어른이 되지 못하는, 미성숙 사회로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학생은 "주거권이 보장되지 못하니, 대학생은 자연히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 하게 된다"며 "결국 이들은 독립심이 떨어지고 어른으로 성숙하는 것도 힘들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일이든 정부가 의지를 갖추고 일을 진행하면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며 "주거 문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을 예로 들며 "전 국민이 반대하지만 22조 원을 투입해, 불굴의 의지로 완성했다"며 "주거 문제도 그렇게 불굴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사회가 대학생의 미성숙을 내버려두고 있는 셈"이라며 "지금이라도 의지를 갖추고 주거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민간투자 기숙사의 문제도 언급됐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고 밝힌 남성은 "대구에서 올라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까지 학교 정문 앞에서 자취했다"며 "자취비를 등록금비 만큼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물론 가격이 싼 기숙사를 신청했지만,신청 학생이 많아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렇다고 기숙사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기숙사는 솔직히 여기서 못 살겠다 싶을 정도로 형편없다"며 "재개발되기 전 쪽방촌을 연상케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이 모든 걸 고려해도 기숙사비가 싸니깐 많은 학생이 기숙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러한 기숙사조차도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며 "민간투자로 지어지는 신축 기숙사는 한 달에 50만 원 가까이 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간투자 방식은 이익을 내려 학생들을 쥐어짜는 구조"라며 "민자로 기숙사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거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연세대 사회복지과에 다니고 있는 남학생은 "기존 방식은 시장 위주로 주거가 배치됐다"며 "실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학생은 "서울시는 앞으로 정기적으로 주거 관련 대학생과 시민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원순 "기성세대로서 사과의 말을 드린다"
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회를 경청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성세대로서 여러분이 아직도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에 대해 사과의 말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 시장은 "앞으로 여러분에게 사과를 안 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할 것"이라며 "여기서 나온 제안을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규제 완화 관련 "도시 생태 때문에 규제를 안 할 순 없다"면서도 "학생들이 이렇게 힘든 걸 알았으니 학교 안에 기숙사가 지어질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관련 부처 공무원도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조일환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시설담당관은 "규제 완화와 재정 확충, 좁은 캠퍼스를 대체할 부지 선정 등에 대해 국토부와 서울시가 손잡고 노력해 보겠다"고 답했다.
장명환 서울시 시설기획과장도 "주거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면서 "오늘 나온 의견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좋은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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