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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악'인가?…파이낸셜 타임즈와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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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악'인가?…파이낸셜 타임즈와 조·중·동

<기자의 눈> 스웨덴 선거에서 뭘 배웠나?

우리나라에선 한번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복지 '유령'이 스웨덴 총선의 여파로 다시 '악'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번 선거의 승자인 스웨덴 온건당(Moderate Party)의 공약이나 예상 항로는 '복지정책의 미세조정'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보수언론의 자의적 정치화 논리와 '어마 뜨거라' 식으로 손사래 치는 정부와 여당의 벙어리 냉가슴이 맞물려 '복지'가 다시 금기의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
  
  스웨덴 총선 결과 보고 신난 조중동
  
  지난 17일(현지시간) 벌어진 스웨덴 총선에서는 중도우파를 표방한 우파야당연합이 집권 중도좌파연합을 약 1.9% 차이로 누르고 25년 만에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그런데 전체 349개 의석 가운데 7석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엇갈린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가장 감격하고 있는 모양새다.
  
  "'노무현 정부 경제참고서' 스웨덴 복지모델 스웨덴에서 외면당했다"(중앙일보) "'스웨덴식 복지' 일단 멈춤, 유권자 '분배'보다 '성장' 선택…집권좌파 총선 패배"(동아일보) 처럼 1면부터 '스웨덴'으로 도배를 하는가 하면 1면은 다른 기사에 내줬지만 "스웨덴, 일자리 못만드는 무능 정부에 민심 등 돌려" "한계 드러낸 유럽식 '복지만능주의'"(조선일보) 기사도 난형난제였다.
  
  국제문제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한국 보수언론들이 북유럽 문제에 언제부터 이렇게 관심이 높았던가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기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동아일보는 "'복지와 분배만으론 이젠 안 된다. 시장과 경쟁의 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 17일 좌파의 패배로 끝난 스웨덴 총선 결과가 주는 교훈이다"고 준엄하게 일갈했고, 조선일보는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스웨덴 총선결과에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삼가고 있다"며 "노 대통령도 스웨덴 모델에 상당한 애착을 보여왔다. 노 대통령은 권오규 청와대 정책수석을 경제부총리로 임명, 스웨덴식 복지정책 실현에 나섰다"고 지난 기억을 애써 일깨워 주었다.
  
  요약하자면 '노무현 정권=복지중시=스웨덴 모델'인데 그 모델이 자국 국민들에게 외면 당했으니 그 모델에 애착을 보이던 노무현 정권도 당황하게 되었다는 식이다.
  
  "작은 미국보다 큰 스웨덴이 낫다"에서 "우리는 다르다"로
  
  그런 엄청난 유추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정부와 여권은 이날 '우리는 스웨덴과 다르다'고 손사래 치기에 바빴다.
  
  여당의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이날 아침 "우리나라의 복지가 스웨덴의 복지 모델을 모방하자는 것이 아니고 우리당은 당분간 세금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의장은 "우리당이 무조건 유럽식 복지모델을 추구하기 위해 국민 부담을 늘리는 정당이라는 것은 오해"라고 강조했다. 강 의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스웨덴 1/3 정도의 복지수준"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긴 했다.
  
  장병완 기획예산처장관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스웨덴식 복지모델은 고부담·고복지이지만 한국의 비전2030은 적정부담·적정복지를 지향한다"면서 "비전2030이 스웨덴 복지모델을 지향하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은 미국보다 큰 스웨덴이 낫다"며 '뉴딜'을 주창하던 김근태 당의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스웨덴 국민들은 과연 '복지 해체'를 택했나?
  
  보수신문들의 보도만 보면 스웨덴의 복지시스템은 당장 없어질 것 같고 '스웨덴 복지모델'은 천하의 몹쓸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자유당, 기민당, 중도당을 연정 파트너로 끌어들여 집권에 성공한 온건당의 라인펠트 당수가 내건 주요 공약은 감세와 복지조정이긴 하다.
  
  그런데 그 구체적 내용은 △저소득층및 중간소득자에 대한 세금 경감을 통한 5조7000억 원 가량의 감세 △월평균 임금의 80%에 달하는 실업수당을 70%로 축소 △앱솔루트 보드카 회사 같이 공공성과 별 관련이 없는 일부 공기업의 민영화 등이다.
  
  한 마디로 말해 복지정책의 미세조정(Fine Tunning)이라는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번갈아가며 집권하는 유럽에서는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국가의 근간인 복지시스템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경우는 없다. 마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멱살잡이에도 불구하고 주요한 경제정책에선 양 당의 차이를 찾기 힘든 것처럼.
  
  한 정치학자는 이를 두고 "중간층에서 한 클릭씩 좌우로 왔다갔다 하는 정도"라고 풀이했다. 또한 스웨덴 보수당이 중도우파를 이끌며 집권한 것은 복지 축소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던 당의 이념을 스웨덴 정치지형의 중앙부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영국의 권위지 <파이낸셜 타임즈>를 통해 제기됐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의 분석
  
  
'스웨덴이 오른 쪽으로 돌아선 것에서 캐머런이 얻어야 할 교훈'(Lessons for Cameron as Sweden swings right)이라는 분석기사에서 이 신문의 칼럼니스트 퀜틴 필은 "스웨덴의 막강 사민당이 선거에 패할 때마다 스웨덴 밖에서는 높은 세금과 복지제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번영을 누려 칭송을 받아 온 '스웨덴 모델'이 종말을 맞은 것은 아닌지 분석하려는 유혹에 빠진다"면서도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부정적(Negative)"라고 단언했다.
  
  이 신문은 "승리를 이끌어낸 온건당 당수 프레데릭 라인펠트는 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부정적'인지 보여준다"면서 "라인펠트가 승리한 것은 페르손 총리가 이끄는 기존 사민당 정책을 뒤집는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던 당의 이념을 스웨덴 정치 지형의 중앙부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02년 총선 당시 온건당은 급진적인 감세와 복지제도에 대수술을 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책을 내놓은 뒤 지지율이 15%대로 떨어지는 타격을 입은 바 있다"고 지적한 이 신문은 "(온건)당의 노선에서 보수적인 대처주의적 요소를 포기함으로써 라인펠트는 자유당, 기민당, 중앙당 등 여타 중도우파 세력을 설득해 연합전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며 "이것이 이번 승리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스웨덴과 한국이 닮았다?…스웨덴에 대한 모독
  
  
이렇게 보면 같은 결과를 두고 한국 언론과 영국 언론은 정반대 해석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조중동이 입을 모아 '복지모델'의 종말을 외치는 반면 파이낸셜 타임즈는 '그것은 오산'이라며 '우파의 중도화'가 승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이 지상천국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실업률도 꽤 높은데다가 자살율도 만만치 않은 나라다. 하지만 보수언론의 기세등등한 모습과 정부여당의 손사래를 보고 있자니 기가 찰 수밖에 없다. "우리와 스웨덴은 다르다"는 정부 여당의 손사래가 아니라도 스웨덴과 우리는 다르기 때문이다.
  
  노조 전임자 임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건설노조 위원장을 구속시키는 검찰, 3자가 머리를 맞대고 헌법적 권리인 복수노조 설립권한을 자의적으로 유예시킨 노·사·정, 전국에 도박판을 장려하는 문화부, 외국 대통령에게 제 나라 작통권을 다시 거둬 달라고 읍소하는 제1야당, 한미FTA로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대통령이 매일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가운데 각종 복지지수는 OECD 기준으로 꼴찌를 도맡고 있는 우리나라와 '평균임금의 80%인 실업수당이 너무 많으니 조금 깎자'는 스웨덴이 비슷하다면 그건 스웨덴에 대한 모독이다.
  
  영국 보수 진영과 한국 보수 진영의 차이
  
  마치 사전에 짜기라도 한 것처럼 "스웨덴 복지모델이 실패했다"는 것인지 "실패했으면 좋겠다"는 것인지 모를 기사를 내놓는 보수언론에 대해선 별로 더 할 말이 없다.
  
  다만 일각의 지적처럼 이들이 벌써 '대선 캠페인'에 나선 것이라면 '노무현=복지=좌파=악'이라는 황당공식을 유포할 것이 아니라 스웨덴 우파연합이나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 보수당 당수 제임스 캐머런의 비결을 배워야 할 것이다.
  
  스웨덴 온건당의 비결이 '강경보수색의 탈각'이었듯이 '따뜻한 보수'를 표방하는 캐머런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친미정당 당수인 캐머런은 지난 11일 런던에서 현 노동당 정부의 대미 추종정책을 맹비난 하는 가운데 부시 정권의 대외정책에 대해 "비현실적이고 단순한 사고방식"이라며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만 나누고, 스위치를 켜면 단박에 어둠을 빛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꼬집어 큰 박수를 받았다.
  
  보수 색채이면서도 권위지라는 데에 세계인들이 별로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앞서 언급한 기사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 지었다. "물론 스웨덴은 영국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캐머런이 라인펠트의 성공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을 막진 못할 것이다"(Of course Sweden is not Britain. But that will not stop Mr Cameron from learning any lessons he can from Mr Reinfeldt's success.)
  
  하지만 우리나라 보수 진영은 이번 스웨덴 선거결과로부터 '복지=악'이라는 교훈만을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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