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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원한다면 '새로운 경호견' 조·중·동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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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원한다면 '새로운 경호견' 조·중·동을 잡아라"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프랑스 언론 다큐 <새로운 경호견> 흥행

반세기 전인 1960년대 초, 미국의 월간 <퀼(Quill)>에 "누가 언론을 비판할 수 있는가?"라는 글이 실린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언론인들은 언론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언론 문제에 왈가왈부하는 것을 주제 넘는 행동으로 간주하고 언론 비판을 언론자유에 대한 간섭으로 여긴다는 내용의 글이다. 언론에 대한 비판은 일종의 성역 침범처럼 간주되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도처에서 언론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론끼리도 언론인의 역할을 놓고 서로 공격하고 싸운다. 언론이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을 잊고 정치권력, 돈 권력을 옹호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많은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監視犬, watchdog)의 역할을 망각하고 정치인과 대기업주의 경호견 (警護犬, guarddog)으로 타락한 데 대한 업보다.

감시견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참 언론인이 경호견으로 전락한 사이비 언론인을 직접, 간접으로 공격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지금 프랑스 전역에서 상영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새로운 경호견>도 참 언론인들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사이비 언론인들의 언행을 조소하는 하나의 고발 영화다. 이 다큐는 시나리오 원작의 저자, 영화의 제작자, 감독 모두 언론인이다. 그래서 이 다큐를 언론계 내부에서 거대 미디어와 스타 언론인들의 탈선을 풍자한, 마이클 무어 스타일의 정치 팜플릿이라고 보는 평가도 있다. 기업 이익을 위해 민주언론의 사명을 포기한 미디어를 피고석에 세워놓은 다큐라는 프랑스 언론의 자아비판이다. 정치영화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도 <새로운 경호견>을 언론의 자성을 촉구하는 박진감 넘치는 영화라고 높이 평가했다.

▲ 언론인이 만든 언론의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새로운 경호견> 포스터.
영화는 15년 전 1997년에 출판된 동명의 책 <새로운 경호견>에 바탕을 둔 다큐이다. 원전의 저자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대학 정치학 박사인 알리미는 2008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사장 겸 편집인에 선출돼 언론개혁 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언론 원칙주의자이다. 알리미의 <새로운 경호견>은 프랑스 언론의 권경언(權經言) 3각 유착관계를 실명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1997년 책이 출판되자 프랑스 언론계에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었다. 프랑스의 언론계를 대표하는 수많은 스타 언론인 방송인들을 '새로운 경호견'으로 몰 수 있느냐는 분노와 반박이 논쟁의 불씨였다.

그러나 알리미는 2005년 <새로운 경호견> 증보판을 낸데 이어 이번에는 문제의 책을 영화 다큐로 만들어 프랑스 언론계에 제2의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공격 대상은 주로 프랑스 언론을 지배하는 거대 미디어 그룹 사주들과 방송계 스타 등 언론인 30인방(幇). 이들 30인방은 겸직이 허용되는 프랑스 특유의 문화 풍토를 이용해서 한 사람이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출연하고 신문 잡지에도 기고하는 1인 다역으로 영향력을 과시하고 그 명성을 자본으로 정치인 대기업주들의 '새로운 경호견'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는 언론인들이다. 언론권력의 독과점이 초래하는 부작용의 주범들이다. 조·중·동이 종편을 겸영하면서 여론의 독과점을 노리는 것과 노리는 목적은 유사하다.

알리미는 미디어가 대항권력, 비판권력을 자처하지만 대다수의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은 권력과 연계된 소수의 대기업 그룹에 속해 있는 모순을 지적한다. 권력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대기업의 영향하에 있는 언론이 어떻게 권력에 맞서야 하는 대항권력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익이 우선인 기업 언론은 이익에 거슬리지 않게 정보를 가공하고 경영주는 끊임없이 보도에 간섭한다. 알리미는 이런 언론을 '눈치 보기 언론', '공모(共謀) 언론', '시장 언론'이라고 규탄한다. 언론이 이익을 언론의 사명보다 우위에 놓을 때 언론의 자유와 독립은 소멸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경호견> 다큐는 영화를 통해 정권과 대기업의 이익에 봉사하는 사이비 언론인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영화 제작진은 1주 1회 저녁 8시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언론과 선거, '언론과 학교', '언론과 법원', '언론과 여성문제' 등 다양한 언론 관련 문제를 놓고 관람객들과 토론의 장을 갖는다. 언론은 단순히 언론인이나 언론종사자들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사회 구성원 전원이 알아야 할 문제라는 인식에서 관람객과의 토론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전쟁이 장성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듯이 언론 문제 역시 언론인들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주권 행사와 직결된 언론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는 당위에 속한다.

지난1월11일 개봉된 <새로운 경호견>은 전국 53개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오는 3월31일까지 상영 시간과 토론 일정이 예고된 상태다. 이미 2월 중순까지 12만 명이 영화를 보고 토론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드라마도 스릴러도 아닌 '재미없는' 다큐에 이렇게 많은 시민이 관람했다는 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그 만큼 언론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새로운 경호견> 뉴스를 접하면서 이런 다큐는 프랑스보다 한국에 더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국의 언론 현실을 보자. 신문 시장의 4분의 3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조·중·동이 정권에 불리한 뉴스는 침묵하고 여론의 비판을 받는 정책은 선전해주는 권언유착의 대가로 종편 방송을 하나씩 손에 넣었다. 과도한 언론소유의 집중이다. 여론의 다원화를 위해 언론소유의 집중은 민주국가에서 금하고 있는 대원칙에 어긋나는 조치다. 그러나 조·중·동과 유착관계에 있는 MB정권은 이러한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했다.

작년 12월1일 개국한 조·중·동 3개 종편은 첫날부터 약속이나 한 듯이 한나라당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로 알려진 박근혜의 단독 인터뷰를 방송했다. 조·중·동 이제 신문 뿐 아니라 방송까지 동원해서 박근혜 정권 창출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10.26 서울시장 선거 때는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적극 지원하고 박원순 후보에 대해서는 주로 네거티브 보도를 내보냈다. 선거 보도에 있어서 가능한 한 정직하게 균형있게 보도해야 하는 언론윤리를 무시했다. 이러한 보도 태도는 박근혜 미래 대선 후보를 다루는 기사에서도 드러난다. 조·중·동은 언론윤리를 지키는 정상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기 보다는 보수정권과 대기업을 옹호하는 한국판 '새로운 경호견'을 자임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느낀다.

이러한 언론이 활개를 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 국민이 올바른 대표를 뽑을 수 없다. 조·중·동의 탈선과 횡포를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판 '새로운 경호견'을 고발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민에게 조·중·동의 정체를 알리는 토론도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지금 큰 변혁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민 다수가 한국 사회의 변혁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려면 언론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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