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 1호기에서 외부전원의 공급이 중단되고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하지 않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한달 간 은폐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 '고리1호기 폐쇄'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고리 1호기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으로 이미 설계 수명을 넘긴 노후 원전인데다, 후쿠시마 사고 역시 외부 전원 공급이 모두 차단되면서 냉각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생긴 사고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자칫하면 중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를 한 달 간 은폐한 것 역시 명백한 불법인데다 한수원의 고질적인 '비밀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비판이다.
"고리1호기 전원 상실, 후쿠시마와 비슷한 사고"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13일 "비록 전원공급이 중단된 것이 원자로 가동이 멈춘 계획예방정비기간 중이었다고 하더라도 원자로의 핵연료봉에서 핵붕괴는 계속 되고 있으므로 냉각기능 유지는 필수적"이라며 "핵붕괴 시 발생하는 원자로의 열을 식혀주지 않으면 수 천 도까지 온도가 상승하면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최악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용후핵연료 저장소도 마찬가지로 냉각기능이 상실되면 후쿠시마 4호기 사고에서처럼 폭발사고와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전원공급 중단으로 원자로와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의 냉각기능이 12분간 멈춘 것은 외부 전원공급이 상실되었을 때를 대비한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가 무용지물이었으며 핵산업계와 안전당국의 '안전'주장이 허구였음이 밝혀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도 14일 부산 고리 원전 본부 앞에서 '고리1호기 사고 은폐 규탄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히면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지진으로 외부 전원이 끊긴 상태에서 비상 발전 건물 마저 침수되어 발전소의 안전 장치를 움직이게 할 모든 외부 전원이 사라져 발생한 사고"라며 "이를 볼 때 이번 사고는 매우 심각한 안전사고였다"고 비판했다.
"한달 간 은폐? 대형사고는 비밀주의와 무능함의 결합으로 발생"
이렇게 심각한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한수원이 한 달간 사고를 은폐해왔다는 것도 큰 문제가 됐다.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더 큰 문제는 사고와 함께 보고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라며 "한수원이 보고하기 전까지 현장의 주재관은 물론 원자력안전위원회조차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원자력안전법 92조는 '원자력이용시설의 고장 등이 발생한 때'에 '안전조치를 하고 그 사실을 지체 없이 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같은 법 117조는 이를 어겼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불법행동임에도 한수원이 사고 사실을 한 달간 은폐한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를 즈음해서 여론이 나빠질까 우려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한수원은 수명 다한 고리 1호기를 안전하게 가동할 자격이 없으며, 원자력안전위원회 역시 안전 규제에 있어 무능함을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형원전사고는 이런 비밀주의와 무능함이 결합되어 발생한다"면서 "관련자 처벌과 함께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위험천만하게 가동되고 있는 고리 1호기의 즉각 폐쇄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녹색당도 "중대 사고를 늦게 보고한 것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자 증거인멸을 위한 시간 끌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늦장 보고 책임자를 엄벌하고, 잦은 사고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고리 1호기를 즉각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녹색당 비례대표 1번 이유진 후보는 이날 국회 정문 앞에서 고리1호기 폐쇄 1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앞서 1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계획예방정비로 가동을 중단하고 있던 고리 1호기가 지난달 9일 저녁 8시 34분 쯤부터 외부 전원 공급이 중단되고 비상 발전기도 작동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가 12분 후 복구됐다는 내용을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뒤늦게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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