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나라당 일각에서 긍정적인 호응이 나오면서 정치권에 화제는 되고 있지만 발언의 당사자들조차 영호남의 정서상 "아직은 이르다"고 입을 모은다. 양 지역에 각각 기반을 둔 정치집단 간의 인위적인 결합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공산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범보수연합'이라는 한나라당의 기본적인 대선 전략에 민주당이 한발 다가선 점, 이에 따른 야당발(發)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추가된 점 등은 정치권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의 생존 위한 몸부림
당초 "한국 정치의 발전과 상생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강조했던 한화갑 대표는 최근 "단지 개별 정책에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이지, 대선에서의 공조는 한나라당의 생각일 뿐"이라고 그 수위를 조절했다. 한 대표도 직접적인 대선 공조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몸값을 높이려는 립서비스"라고 일축했다. 실제로 한 대표와 민주당 일각에서 애드벌룬을 띄운 한민공조는 정계개편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고자 하는 민주당의 '시위'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한 대표 등의 발언이 한나라당을 향한 듯 보이지만, 사실상 우리당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성동격서의 노림수가 담긴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정계개편을 앞둔 여권 내부의 최근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은 없다"고 못 박았고, 여당 내부에서도 뚜렷한 이탈 조짐이 감지되지 않으면서 민주당의 바람인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의 가능성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민공조의 대미는 박근혜-DJ 연대?
따라서 '한민공조'와 관련해선 민주당의 몸부림보다는 한나라당 쪽에서 나오는 반응에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김무성 의원은 최근 "한나라당을 깬 뒤 신당을 만들어 정체성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헤쳐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화갑 대표의 발언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호응이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표 체제에서 당 사무총장을 지낸 3선 의원으로 박 전 대표 성향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정책이나 정서적으로 충분히 연대가 가능하다"고 가세했다.
물론 한나라당은 그동안 당 차원에서 '호남 끌어안기'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 내년 대선을 겨냥한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적어도 호남에서 두 자릿수의 지지율은 확보해야 집권이 가능하다는 주장에는 계파를 떠나 한나라당 다수가 공감한다.
다만 '누가 호남 끌어안기의 적임자냐'는 쪽으로 화제를 살짝 바꿔보면 얘기가 민감해진다. 정치적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해'로 표상될 수밖에 없는 이 논의의 중심은 역시 박근혜 전 대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표의 호남 행보는 유달랐다. '호남 끌어안기'는 사실 그의 2년3개월 간의 대표 재임기에 마련되고 추진됐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5.18 기념식에는 남총련 시위대의 항의에도 아랑곳없이 광주방문을 강행했다. 그에 앞서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행보에 기반해 정치권에선 박 전 대표가 DJ와의 '정치적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유신의 그늘을 단박에 시대 간의 화해, 동서간의 화해로 역전시킬 수 있는 고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의도가 접점을 찾기 위해선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남는다. 무엇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표의 구애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화답해주느냐다.
퇴임 후 현실 정치에 대해선 거의 말을 아껴 온 김 전 대통령이 이제 와서 태도를 달리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상황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시기가 맞물려 김 전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부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린다.
다만 최근 강경 보수적 성향을 강화시켜가는 한나라당의 행보나, 이런 흐름을 틈타 등장한 '한민공조'라는 정치공학적인 연대론은 오히려 김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간극을 넓히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더욱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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