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봤습니다. 과거 실종 사건을 다시 분석하는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인데, 기자인 저에게는 이 영화에서 귀가 번쩍 열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극중 주인공인 미카엘은 <밀레니엄>이라는 잡지의 발행인이자 기자입니다. 베네르스트룀이라는 재벌의 비리를 파헤치는 보도를 했다가 함정에 빠져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할 처지에 몰립니다. 미카엘은 자기로 인해 잡지사가 곤경에 처하자 발행인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원작 소설에는 손해배상 액수 말고도 재벌의 압력으로 광고가 떨어져 나가 잡지사가 경영난에 처한 걸로 묘사됩니다.
이 때 또 다른 재벌인 헨리크 방예르라는 인물이 미카엘에게 조카의 실종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헨리크는 미카엘을 설득하기 위해 미카엘과 <밀레니엄>의 편집장인 에리카에게 잡지사에 대한 투자를 제안합니다. 책의 내용이 영화보다 자세하기 때문에 원작의 한 대목을 인용해봅니다.
▲ 영화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포스터. |
"그런데요?"
"한스에리크 베네르스트룀은 비열하면서도 끈질긴 자요. 당신들을 그리 쉽게 잊지는 않을 거란 말이지. 최근 몇 달 동안 광고주를 몇이나 잃었소?"
(중략)
"나도 한때는 신문사 사주였다는 사실을 아시오? 우리는 노를란드 지방의 여섯 개 일간지를 소유했었소. 1950년에서 1960년대의 일이었지. 그건 아버지의 생각이었소. 언론의 지원이 있으면 정치적으로 유리하리라 생각하신 거지."
(중략)
"나도 왕년에는 신문 편집 일을 해본 적도 있다네. 어떤가? <밀레니엄>의 공동 사주가 한 명 더 필요하지 않은가? (중략) 나에게는 투자할 돈이 있소. 만일 이 잡지가 살아나 수익을 낸다면, 나 역시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겠소?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나는 살아오면서 이보다도 훨씬 더 큰 손해를 입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오."
미카엘이 입을 열려 하자, 에리카가 그의 무릎 위에 손을 얹어 제지했다.
"미카엘과 저는 독립성을 지키려고 오랫동안 노력해 왔어요."
"그건 난센스요. 이 세상 그 누구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 수 없는 법이오. 하지만 안심하시오. 나는 신문을 장악할 생각도 없고, 신문 내용에 대해서도 신경 안 쓰니까. 그 쓰레기 같은 스텐베크도 <모던 타임스>라는 잡지로 돈을 벌고 있는데, 나라고 <밀레니엄>을 밀지 말라는 법이 있소? 게가다 훌륭한 잡지인데 말이오. (중략) 이번 투자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미카엘이 발행인 자리에 복귀해야 하오. (중략) 베네르스트룀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서는 방예르 그룹이 <밀레니엄>을 지원하고 자네가 발행인으로 복귀한다는 사실을 발표해야 돼. 더 이상 분명하지 않을 수 없는 신호가 아닌가? 자네가 복귀한다는 것 자체야말로 방예르 그룹의 참여가 결코 권력 이양이 아니며, 잡지사의 기존 노선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니까. 이렇게만 해도 지금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광고주들은 생각을 달리 하게 될 거야. 베네르스트룀은 전능한 존재가 아냐. 그에게도 적들이 있네. 이 적들은 베네르스트룀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라도 <밀레니엄>에 광고하는 것을 고려해 보게 될 걸세."(밀레니엄 1부-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中. 스티그 라르손 저, 임호경 역, 웅진문학에디션뿔 펴냄)
어떤가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 않나요? 저는 어떤 목적에서이든 '독립성' 보장을 전제로 투자를 제안하는 방예르 같은 투자자가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미국에는 <프로퍼블리카>라는 독립 인터넷언론이 있습니다. 주요 일간지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기자 30여 명이 포진한 이 언론사는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며 2010년, 2011년 연이어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이 매체에는 광고가 없습니다. 광고주들로부터의 독립을 위해서입니다. 대신 억만장자 금융업자 허버트 샌들러가 매년 이 언론사에 운영자금으로 1000만 달러(약 115억 원)를 기부한다고 합니다.
▲ <프로퍼블리카>의 기부 페이지. |
우리나라에 이런 매체들이 생길 수 있을까요? 요원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엔 아직 '한국의 머독'이 되고 싶은 이들은 많지만 '한국의 샌들러'가 되고 싶은 부자들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프레시안>에게 '프레시앙'은 자랑스러운 존재입니다. 프레시앙들은 지난 4년 동안 '편집권의 독립'을 확실히 지켜주셨습니다. 수십억, 수백억의 뭉칫돈은 아니지만 2000여 명의 프레시앙 회원들은 <프레시안>의 든든한 '빽'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프레시앙이 1만 명으로 불어난다면 <프레시안>은 질적으로 완벽한 변화를 할 수 있으리라는 꿈도 꿔봅니다. 1명의 샌들러보다 1만 명의 '프레시앙'이 더 멋지지 않은가요?
[다음 회에 계속]
[지난 회 보기]
①"굶길 순 있어도 울릴 순 없다"
②구글에서 날아오는 수표 한 장
③금요일 밤마다 찾아오는 벌레들
④2005년 황우석, 2008년 촛불…살벌한 추억
⑤TV보면서 기사 쓰는 기자들? '어뷰징'의 유혹
⑥구글이 한국을 점령하지 못한 이유는?
⑦MP3, 개별 구매-월정액 구매? "이런 고민을 하게 되다니"
⑧ 사내 야구장보다 부러웠던 것
⑨하루에 '로그인' 몇 번 하세요?
지금부터라도 광고 없는 페이지를 보시려면 하단의 캠페인 배너를 이용하시거나 다음 링크를 클릭 하십쇼.
☞프레시앙 가입
안녕하세요. 프레시안 전략기획팀장 김하영입니다. 프레시안이 2012년 새해를 맞이해 '광없페'라는 생소한 이름의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광없페'란 '광고 없는 페이지'를 줄인 말입니다. 자발적 구독료, 혹은 후원회원을 뜻하는 '프레시앙'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프레시안 애독자들에게서 "지저분한 광고를 안 볼 수 없느냐"라는 요구가 많았습니다. 이에 '프레시앙'들에게는 광고가 전혀 없는 웹페이지를 서비스하자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광고수입이 매출의 상당비율을 차지하는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게 2011년 4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홍보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아직 이 획기적인 서비스를 모르시는 독자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올 1월부터는 광고 없는 페이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자 합니다. 저희가 이 캠페인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광없페'가 단순한 서비스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디 목적은 '프레시앙' 가입을 권유하기 위해서이지만 이렇게 제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이유는 독자 여러분들과 독립언론의 길, 광고에 대한 담론, 더 나은 인터넷 환경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광없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아이디어와 생각, 고민이 담긴 기고도 환영합니다.(보내주실 곳: richkhy@pressian.com)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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