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의 추모의식이 별 다를 것 없이 이어질 만큼, 홈리스들의 삶과 죽음은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노숙인 복지라는 것이 확충되어왔고 올해는 노숙인 지원법도 생겨났지만, 홈리스의 사망통계는 날이 갈수록 기록을 경신, 서울지역에서만 하루에 한 명 꼴로 홈리스가 사망하고 있다.
우리는 추모제를 준비하며 사회가 갖고 있는 홈리스에 대한 인식, 홈리스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간추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홈리스의 사망 문제와 또 다른 측면에서 홈리스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11년 홈리스(거리노숙, 시설, 쪽방과 고시원 거주자 등)와 관련한 주요 이슈들을 정리하고, 홈리스 당사자 66명의 의견을 모아 2011년 홈리스인권 10대 뉴스를 정리하게 되었다. 이를 몇 가지 주제로 묶어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
철도 역사 노숙인 퇴거 조치
한국철도공사는 8월 22일부터 서울역사 내 노숙인 퇴거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여론의 집중이 생각 외로 컸던 바 철도공사는 본 조치의 이름을 당초 '노숙인 강제퇴거'에서 '야간 잠자는 행위 금지'로 변경하였다. '노숙인'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노숙 '행위'에 대한 금지로 사회적인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가장 큰 피해는 예상하듯 서울역에서 밤을 보낼 수밖에 없는 거리홈리스들에게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특수경비용역이 노숙인 퇴거조치를 위해 고용되면서, 퇴거 시간 외에도 '노숙인'만을 골라 퇴거를 종용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 조치는 거리홈리스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서울역에서 무료배식을 받고 있는 노숙인들. ⓒ프레시안(최형락) |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역 퇴거조치로 인해 거리홈리스의 87%는 배회하거나 인근 지하도, 공원에서 밤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90% 가까이가 "막막함, 두려움, 걱정"과 같은 심리사회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울시의 후속 대책의 효과는 25%로 극히 미미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서울역 노숙인 퇴거 조치를 확대 시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18일에는 부산역에서 "부산역사 내 노숙인 출입금지 알림" 경고문을 통해, 심야시간 대 거리홈리스 퇴거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위 인권위 긴급실태조사 결과로 알 수 있듯, 서울역사 내 노숙인 퇴거조치는 거리홈리스 인구를 서울역사 보다 생존 조건이 열악한 인근 공공장소로 내몰고, 이들에게 심리사회적인 충격을 주었다.
그럼에도 철도공사는 거리홈리스에 대한 위협과 불편을 성과로 해석하고, 다른 철도역사로 점차 확대하려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철도공사는 홈리스의 생존과 인권 따위에는 관심 없고, 그들이 철도 역사에만 나타나지 않으면 된다는 집단 이기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 등 해외 철도공사는 거리홈리스에 대한 퇴거와 단속, 강압조치는 홈리스 상태를 벗어나도록 돕기는커녕 문제를 더 심화시킴을 인정하고, 이런 방식의 대응을 폐기한 지 오래다. 오히려 철도공사 등 공기업이 홈리스 지원의 일주체로 역할하고, 탈 거리노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일상 업무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한적이나마 지난 14일, 수원역에 설치된 거리홈리스 지원시설 '꿈터'는 철도공사의 인식 변화에 적잖은 시사점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정부와 수원역, 상업시설 들이 함께 수원역 거주 홈리스들의 잠자리와 탈 거리노숙 지원을 위해 상호협력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SOS 응급구호방'을 통해 지갑 분실 등 일시적인 위기에 처한 여행객을 위한 대 시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기도 하다. 위기계층을 위한 지원 체계는 보편적인 사회서비스로 기능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철도공사는 홈리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악화하고 생존권적 위기를 초래하는 서울역, 부산역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다.
홈리스에 대한 낙인과 혐오
4월 24일 공익근무요원 2명이 서울역 대합실에 취해있던 노숙인 문모 씨를 역사 밖으로 퇴거시키면서 폭력을 행사해 경찰에 입건됐다. 또한 6월 15일에는 서울역 지하도에서 술값 200원을 구걸하던 노숙인 정모 씨에게 어떤 남성이 칼을 휘둘러 크게 다치는 사건이 있었다. 비단 언론에 사건화되지 않았지만 거리홈리스 상담 과정을 통해 묻지마 폭행 피해, 집단 린치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사건들은 홈리스에 대한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낙인이 빚어낸 결과다. 공공권력 역시 이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7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로 선고받은 노숙소녀 상해치사 혐의 노숙 청소년에 대한 경찰의 강압과 짜맞추기 수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적 차별과 낙인은 홈리스의 보복성 범죄를 유발하기도 한다. 지난 4월 "장애수당이나 받고 있지 왜 돌아다니냐"는 멸시와 냄새가 난다는 타박을 듣고 슈퍼와 식당에서 내쫓긴 여성홈리스의 방화 범죄, 상업시설 경비원의 퇴거조치에 반발한 한 거리홈리스의 방화시도 등의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홈리스 등 사회적 약자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가까이하기 싫은 물건처럼 대하는 사회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에 대한 불인정, 몰이해에 대한 반응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자신의 입장을 발언할 역량이 미약하거나 대변할 지지망이 해체된 홈리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국가인권위 긴급실태조사 결과 서울역 거리홈리스의 95%가 서울역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하였다.
몇 년 전 민간단체의 실태조사 결과에도 거리 홈리스의 85%가량이 매일 구직활동을 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하였다. 노숙을 '선택'해서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통제 불능한 위기에 처해 홈리스가 된 이들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낙인은 홈리스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홈리스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던 2011년 1월 19일, 서울역사 주변에서 노숙인 유모(60세)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유 씨가 숨지기 전 통증을 호소해 경찰과 구급대가 출동하였으나, 당시 출동했던 경찰과 119구조대는 호흡, 맥박, 혈압 등을 체크한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역무원들과 함께 유 씨를 역사 셔터 밖으로 옮겨버린 후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10월 16일에는 서울 송파구에서 추위를 피하려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들어간 50대 남성 노숙인이 네 대의 차에 치여 사망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도립 충주의료원 구내 벤치에서 50대 노숙인이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숨지기 2시간 전에 병원 직원이 그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홈리스에 대한 방치이자 공공권력의 책임 방기로 인한 죽음들이다.
홈리스는 치안의 사각지대에도 방치되어 있다. 올해 11월, 상황판단에 불리한 지적장애인과 노숙인들을 꾀어 금품을 빼앗고 이들을 염전 등에 팔아넘긴 인신매매 일당이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11월 말에는 서울역 거리홈리스들을 꾀어 합숙소에 감금시킨 채 대출 등 금융사기 범죄를 일으킨 조직 10명이 검거되기도 하였다.
이런 사례는 빈번한데 2006년 민간단체의 조사결과 거리홈리스의 25%가 명의도용 범죄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사례로 추정컨대 이 비율은 대폭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치안당국의 예방책이나 피해자 구제제도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찰은 홈리스를 예비 범죄자 취급하며 크고 작은 사건 발생시 불심검문을 강화하거나 표적수사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공공권력의 무관심과 방치는 홈리스의 사망사건과 경제적 사망선고로 이어지는 만큼, 즉각 철회하고 예방책과 해결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제도의 후퇴와 파행, 홈리스에게는 직격타
지난 11월 국립중앙의료원 인근에서 변사한 39세 거리홈리스는 병원에서 치료거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치료비 체납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8년 의료급여지침 개정을 통해 부양의무자가 있는 행려환자에 대해서는 치료비 지급을 하지 않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표 독소조항인데, 지난 6~7월 복지부는 '부양의무자 일제조사'를 실시, 기초생활수급자 10만 4천 명의 급여를 삭감시키거나 탈락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다.
그로 인해 기초생활수급에서 탈락한 한 노인은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등, 이러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후퇴는 가난한 이들의 삶에 직격타를 날렸다. 국토부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역시 개선보다는 후퇴에 가깝다. 주거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절차를 신속히 한다 했으나, 지원대상자들의 현실과 먼 '자활'을 강제하고 있으며, 주택 역시 생활권과 동떨어진 곳에, 가구구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급되는 한계를 반복하고 있다.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실제 부양여부와 관계없이 가족의 '존재'만으로 부양을 당연시하는 부양의무자제도는 속히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입주대상자의 노동능력, 생활형편, 가구실태, 생활권 등 현실을 반영한 주거복지정책의 개선 역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이렇듯, 홈리스인권 10대 뉴스를 꼽아보며 희망적인 이슈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홈리스가 빈곤의 대명사가 된 지 10여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대우는 가십거리에 머물거나 철저하게 배척하고 탄압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홈리스인권 10대 뉴스'를 통해 본 홈리스의 인권은 여전히 '흐림'이다.
한 해 동안 인권사회운동진영에서 홈리스의 현실을 발언하고, 낙인과 편견 뒤에 도사리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협잡을 드러내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만이 홈리스 인권에 조금씩 빛을 끌어들이는 길이라는 점은 의심할 나위 없다. 내년에는 조금 더 밝은 홈리스 인권 뉴스를 나눌 수 있도록 홈리스 인권운동의 걸음을 재촉해야 할 것이다.
2011 홈리스인권 10대 뉴스 - 노숙인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 - 사라지지 않는 차별과 낙인이 노숙인 범죄를 불러와 - 폭행으로 이어진 노숙인 혐오 -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이들의 죽음 - 인신매매와 강제·사기노동의 피해자로 내몰린 노숙인 - 홈리스라는 이유로 노숙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경찰과 검찰 -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의 개선, 그러나 현실과는 괴리 - 수원역 거리홈리스를 위한 '꿈터', 공간 이상의 의미 - 홈리스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 병원 - 기초법 부양의무자 일제조사로 인한 무더기 수급타락, 일부는 노숙생활로 떨어지기도 ※ '홈리스인권 10대 뉴스' 전문은 homelessaction.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홈리스 당사자들이 기억하는 2011년은"이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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