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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說'…김일성과 김정일, 사망 과정 판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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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說'…김일성과 김정일, 사망 과정 판박이

'중병설', '사망설' 나돌다 뒤늦은 사망 발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사망하기 전까지 국내외에서는 끊임없이 와병설이 제기되어왔다. 지난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와 비슷한 양상이다.

김정일 '와병설' 끊이지 않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와병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2008년 9월 초부터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월 9일 정권 수립 60주년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외신에서는 "뇌졸중을 앓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관련 기사 : "김정일 건강 심각하나 사망 임박 아니다" )

이번 사망소식에는 정보력 부재를 노출한 청와대와 정부는 2008년 9월 당시에는 적극적으로 '김정일 건강 이상설'을 유포했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뇌졸중, 뇌일혈, 뇌출혈 중 하나의 병으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후 언어에는 장애가 없으며, 움직일 수도 있다"고 보고 했다. 또 정부관계자의 발언을 받아 각 보수 언론에서는 선정적인 보도가 쏟아지기도 했다. (☞관련 기사 : MB정부, 김정일 병원 차트라도 봤나? )

이후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은 56일만에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 사진을 공개했다. (☞관련기사 : 김정일 위원장 공개 활동 사진 56일만에 공개돼) 또 같은해 11월 2일에는 북한군 '만경봉'팀과 '제비'팀간 축구경기를 관전했다며 사진 10여 장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군부대 시찰, 공장·기업소 현지지도, 해외 인사 접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0년 12월 위키리크스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은 양호한 것으로 보인다는 미 외교 전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전문에서 김 위원장은 "건강이 좋고 정신도 또렷했다",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줄담배를 피우는 등 건강에도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고 묘사됐다. (☞관련 기사 :"김정일 줄담배…건강은 양호")

최근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장거리 열차를 타거나 러시아를 방문하는 일정이 잦아지면서 건강 이상설이 다소 수그러지는 분위기였다. 김 위원장은 2010년 8월, 2011년 5월 중국을 방문할 때 야간 열차를 이용하거나 장거리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지난 8월에도 러시아를 방문했다. (☞관련 기사 : 김정일 중국 방문, 목적은?)

그러나 19일 북한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17일 뇌졸증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열차내에서 과로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중병설-사망설' 끊임 없었던 김일성 전 주석 때와 같아

김일성 주석도 1994년 7월 10일 사망하기 몇년 전부터 중병설 및 사망설이 적지 않게 제기되어 왔다. 남한에서는 김정일 사망설이 나올 때마다 적지 않은 혼란이 빚어졌다.

특히 1986년 11월에는 국방부 대변인이 "김일성 사망을 휴전선의 대남 방송이 보도했다"고 공식 발표하고 이를 대부분 언론이 '김일성 사망'으로 받아 쓰면서 대대적인 오보 사태가 벌어졌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러한 소동은 휴전선 대남 방송 청취 사병이 잘못 들은 내용을 미군이 본국에 타전하면서 빚어졌다. 미국 국방부는 다시 주한미군에 확인 요청을 했고, 이에 립시 당시 주한 미군 사령관이 국방부가 공식 발표하기 하루 전인 11월 16일 국방부에 문의 전화를 걸어 "김일성이 죽었다는 첩보가 있는데 관련 정보가 있느냐"고 물었고, 국방부는 다음날 이를 확정적으로 발표했다.

1992년에도 김일성 사망설이 휩쓸었다. 당시 홍콩 한국 총영사관은 "홍콩 증권가에서 북한 주석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미확인 루머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했고, 외무부는 각국 공관에 사망설의 출처와 진위 여부를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언론 보도도 나왔다. 결국 '주가 조작'을 위한 의도적인 공작으로 밝혀졌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1년 전쯤 부터는 '중병설'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1993년 초에도 "김 주석이 1992년 3월부터 밥을 입에서 흘리고 있다"며 "식사 때 입을 닦아주는 사람이 별도로 있다"는 도쿄발 뉴스와 한국 당국자의 확인으로 김 주석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설이 제기됐다.

1993년 4월 말에는 러시아 국방부의 한 고위관리 발로 "김 주석이 최근 앓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는 뉴스도 나왔다. 당시 김 주석의 건강 상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공식사인은 '동맥경화에 의한 심근 경색증'이었다. 당시 82세였던 김 주석은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한달 동안 17차례에 걸쳐 외부 행사에 참여하는 등 많은 활동을 벌였고 북한 관계 전문가 등은 '과로로 인한 자연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망원인에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 회담, 남북 정상회담 등을 추진 중이었고 이에 대해 북한 내부 강경세력의 불만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은 외국의 조문 사절을 일체 받지 않겠다고 발표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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