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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비서의 단독 범행? 위기의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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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비서의 단독 범행? 위기의 한나라당

[이태경의 고공비행] 대한민국의 위협받는 민주주의

현존하는 민주주의를 낱낱이 분해하다 보면 결국 최후까지 남는 제도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대리해 행사할 대표를 선출하는 공정하고 합법적인 선거제도일 가능성이 높다. 현대민주주의 이론의 대가라 할 보비오(Norberto Bobbio)와 달(Robert A. Dahl) 같은 경우도 민주주의적인 정부와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정부를 구별하는 기준을 보통 선거권, 주기적인 선거, 상호 독립적인 정치 결사체들 간의 경쟁을 통한 정부의 구성 등 민주적 경쟁의 공정한 룰을 확립하는 절차적 최소조건에서 찾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본적인 통치방식으로 정하고 공정하고 합법적인 선거사무를 전담할 선거관리위원회를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둔 것을 보면 '선거'라는 기제가 민주주의 제도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선출(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 등)하고 이들에 의해 국가와 지역의 주요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인 '선거제도' 혹은 '선거관리'의 중대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투표방해 행위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반역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최구식 의원의 비서가 지난 10.26서울시장보궐선거 당일 IT업체를 동원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공격했고, 이로 인해 출근에 앞서 투표권을 행사하려던 유권자들이 투표소 위치 검색에 어려움을 겪은 사건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중대 범죄다.

당시 박원순 후보(무소속)와 나경원 후보(한나라당)는 피말리는 접전을 벌이고 있었고 누가 이기든 선거결과는 박빙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따라서 투표율이 초미의 관심사였고, 투표율이 높을수록 박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런 상황에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이면서 서울시장 보선 당시 한나라당 및 나경원 후보측과 긴밀히 선거전략을 논의하던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가 IT업체와 공모해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했고, 이로 인해 홈페이지에서 투표소를 검색하는 기능이 출근시간대인 오전 6시부터 약 2시간가량 마비됐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 크다.

가뜩이나 투표장소가 많이 변경되어 유권자들의 혼란이 초래된 마당에 바뀐 투표소를 찾으려고 황급히 스마트폰 등으로 선관위 홈페이지에 접속했던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투표장 검색 서비스의 마비로 비상한 곤란을 겪었으며, 결국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들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최 의원의 수행비서가 무슨 목적으로 그 같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자명하다. 이 사건의 핵심은 수행비서가 누구의 사주를 받고 그 같은 범행을 자행했는가 하는 것이다. 범죄목적, 범죄로 얻을 이익, 범죄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 범죄 수법이나 규모, 대담성 등을 생각해보면 이런 엄청난 범죄를 고작 27살 먹은 수행비서가 단독으로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을 리 만무다. 수사기관은 이 사건의 배후를 반드시 밝혀내 처단해야 할 것이다. 그 배후가 누구이건 간에 말이다.

의혹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최 의원은 '자신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며, 만약 자신이 범행에 연루됐다면 즉각 사퇴하겠다'고 밝힌 모양이다. 최 의원은 정신을 차리는 것이 좋겠다. 설사 최 의원이 이 사건에 전혀 연루되지 않았다고 해도 최 의원은 수행비서에 대한 관리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마땅하다. 물론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 형사처벌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최 의원이 한가하게 사퇴 운운하는 건 아직도 이 사건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관위 홈페이지 습격사건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혹은 진영논리로 재단(裁斷)하거나 해석하거나 평가할 성격의 사건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주권자인 국민의 가장 주요한 주권행사방식인 투표행위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방해한 사건이고, 주권자의 의사와 선거결과를 임의적으로 조작·왜곡하려는 사건이며, '선거제도'의 무력화를 꾀한 사건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헌법의 구성원리 가운데 민주주의 원리가 으뜸이라는 사실을, 공정하고 합법적인 '선거'를 통한 대표자의 선출은 민주주의의 최소한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고 규명하며 처단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투표하는 것도 방해받는 나라에서 무슨 민주주의를 논한다는 말인가?

의심받는 선관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선관위는 갖가지 의혹과 추문에 둘러싸여 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위치가 많이 바뀐 투표소들, 디도스 공격에 대한 방어를 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홈페이지를 유린당한 점, 출근시간대에 투표소 위치 검색 기능을 정지시킨 것이 과연 디도스 공격이 맞는지 여부 등이 의혹과 추문의 근거들이다.

선관위는 쏟아지는 의혹에 억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지만, 선관위가 민주주의의 고갱이라 할 선거제도를 공정하고 합법적으로 운영해야 할 책임과 권한이 있는 헌법기관인만큼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에 대해 국민들이 품고 있는 의심을 해소시켜 줄 의무가 있다. 선관위는 국민들 중 일부가 선관위를 이번 홈페이지 공격사건의 피해자라고 여기고 있지만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 사건으로 백천간두의 위기에 몰렸다. 만약 이번 사건에 나경원 캠프나 한나라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민주적 기본질서를 정면으로 위배한 한나라당은 국민들로부터 정당 해산 요구를 거세게 받을 것이며, 이런 요구를 뿌리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한나라당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비서 개인의 행위로 규정하며 도마뱀 꼬리자르기에 나섰다.

한나라당의 기도가 성공할지 여부를 아직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적지 않은 국민들이 한나라당이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사건에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이라는 정당을 국민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가 여실히 증명된 것인데 이는 한나라당의 자업자업이기도 하다. 요행히 한나라당이 이번 사건에서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해도 한나라당의 전정(前程)은 무척 험난할 듯 싶다.

▲ 경남 진주지역 시민단체들이 5일 최구식 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최 의원은 자신의 비서가 연루된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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