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부산일보>의 발행이 중단된 것은 1988년 편집권 독립 투쟁 이후 23년 만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사태의 원인은 편집권을 둘러싼 노사 갈등에 있다. 편집국이 이 날짜 신문 1면에 노조위원장 해고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사를 싣자, 사장이 직접 윤전기 가동 중단을 지시하면서 파행을 빚은 것.
그러나 사태의 본질엔 50여 년에 걸친 질긴 '악연'이 있다. 바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일가의 '정수장학회(정수재단)'를 둘러싼 갈등이다.
▲ 30일 폐쇄된 부산일보 홈페이지. ⓒ부산일보 |
박근혜 비판했다고 발행 중단…신문사 소유주는 '정수재단'
이날 발행되지 못한 신문 1면과 2면엔 "유력 대권 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가 정치 무대에 나선 만큼 신문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박 전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정수재단과의 완전한 분리가 필수적"이라며 부산일보의 지분 100%를 소유한 정수재단의 사회환원과 사장후보추천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또 이를 주장하다 해고된 이호진 노조위원장과 이정호 편집국장의 징계를 비판하는 내용도 함께 실렸다.
노사갈등을 촉발한 정수재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각각 한자 씩 따 만든 것으로, 5.16 쿠데타 직후인 1962년 설립된 '5.16 장학회'가 그 전신이다. 박근혜 전 대표 역시 2005년까지 정수재단의 이사장을 맡았다.
아직까지도 부산일보의 주식 100%는 정수재단 소유며, 사장에 대한 임명권 역시 정수재단이 갖고 있다. 노조가 공정보도를 위한 '사장후보추천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박정희의 '장물' 부산일보…군사정권 시기 '강제헌납'돼
부산일보를 둘러싼 해묵은 앙금은 1962년 '부일장학회 헌납 사건'에서 시작된다. 원래 부산일보는 부산지역 사업가인 김지태 씨(삼화고무 회장, 1982년 타계) 소유였다가, 5.16쿠데타 직후인 1962년 국가에 '헌납'된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김 씨가 부산일보의 이름을 따서 만든 '부일장학회'의 땅 10만 평과 부산일보 주식 100%, 한국문화방송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100%를 넘겨받았다. 김 씨가 국내재산 해외도피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군법회의에서 7년을 구형받고 석방된 직후의 일이었다. 말이 '자발적 헌납'이지, 실제는 '강제 헌납'이었던 셈이다.
박정희 정권은 김 씨로부터 빼앗은 재산을 바탕으로 두달 뒤 5.16 장학회를 발족시켰다. 지금의 정수장학회는 김 씨로부터 빼앗은 '장물'이나 다름 없었던 셈이다.
실제 김 씨는 1976년 발간한 자서전 <나의 이력서>에서 당시의 정황을 설명하며 부산일보 등을 강제로 헌납했다고 털어놨다.
"내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고 맞서는 경우를 생각해 보니 나 개인보다도 우선 산하 기업체 간부들이 희생을 당하는데다 기업경영이 엉망이 되어 수천 종업원이 실직하게 될 것이 안타까웠다… 구속된 조건 아래 그런 서류를 작성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니, 석방된 연후에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버티었으나 막무가내로 어느 날 작성해 온 각종 양도서(讓渡書)에 강제로 날인이 이루어진 것이다…이렇게 하여 1946년 4월 이래 14년간 애지중지 가꾸어 놓은 부산일보와 만 4년 동안 막대한 사재를 들여 궤도에 올려놓은 한국문화방송과 부산문화방송은 1962년 5월 25일 5·16재단으로 넘어가고 말았고, 이 기본재산을 토대로 하여 '5·16장학회'는 그 해 7월14일에 발족을 보게 되었다."
그의 장남인 김영구 씨 역시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포기각서를 쓴 만큼 명백한 강탈"이라고 증언했다. 김 씨가 5.16 쿠데타 전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 자금 요청을 거절하자, '괘씸죄'로 그를 구속하고 부산일보 등을 빼앗았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 5.16 쿠데타의 '주역'들. 가운데가 박정희 소장이다. ⓒ자료사진 |
이런 사실을 정부 역시 인정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7년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가 사실상 국가로부터 '강탈' 당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1962년 국가에 '강제 헌납'된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거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수재단이 소유한 부산일보, 문화방송(MBC) 지분 등을 김지태 씨 유족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또 "특히 언론 3사를 헌납하게 한 것은 언론기관의 존립근거인 공공성과 중립성 등 언론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4년 후, 신문 발행 중단으로 나타난 '부산일보 사태'를 정확히 예견한 것이다.
과거사위 결정에 "어거지 많다" 맹비난한 박근혜, 최측근을 이사장으로
그러나 이는 '권고'일 뿐이었다. 당시 대선 경선 후보였던 박 전 대표는 이런 결론에 대해 "어거지가 많다"고 맹비난 했다. 이미 정수재단이 '공익 법인'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돌려줄 이유도, 사회에 환원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김기태 씨의 차남 김영우 씨는 진실화해위의 결정에 "정수장학회를 부친의 호를 따 '자명장학회'로 하겠다"며 반겼지만, 이런 바람조차도 물거품이 됐다.
10여 년 동안 정수재단의 이사장을 맡아왔던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부일장학회 강탈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겠다고 하자, "정치 탄압"이라고 반발하며 이사장직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유신시절 자신의 의전·공보비서관을 지낸 최측근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를 후임 이사장으로 지목해 사실상 운영권을 놓지 않았다. 최 씨는 현재까지도 정수재단의 이사장으로 있으며, 지난 2006년 2월엔 현 김종렬 사장을 선임했다.
부산일보 사태엔 침묵했던 박근혜, 개국 종편과는 연쇄 인터뷰
부산일보 노조는 선거 때마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편파 보도'가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말한다. 박 전 대표에게 노골적으로 우호적인 기사가 탄핵정국 후 그가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4년 총선을 사흘 앞둔 4월 12일, 부산일보 기자들은 "낯을 들고 다니기가 부끄러울 정도"라며 편파 보도를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편집권 독립을 위한 '지난한 싸움'은 진실화해위의 권고 이후에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노조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표의 간접 영향을 받는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가 완전히 분리돼야 편집권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부산일보 기자들은 윤전기 가동 중단 이후 사장실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초유의 신문 발행 중단 사태 다음날인 1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로 탄생한 4개의 종합편성채널이 화려하게 개국했다. 8년 여에 걸친 부산일보 기자들의 요구에 "어거지"라는 단 한마디의 말만 남겼던 박근혜 전 대표는 이례적으로 종편 4개 채널과 연쇄 인터뷰를 하며 함께 축배를 들었다. 그 중 한 종편은 내년부터 <인간 박정희>라는 드라마를 선보인다. 같은 시기, 두 언론의 상반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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