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는 25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10주년 기념식을 진행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내년부터 '인권증진 3개년 계획'에 따라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 위원장은 "이를 위해 자유권과 사회권 등 기본적 인권의 제도적 보장과 강화를 위해 힘쓰고, 이주민, 노인, 아동과 청소년, 시설 생활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와 함께 북한인권, 기업인권, 정보인권 증진을 역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 위원장은 "또한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 및 구제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인권교육과 홍보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 인권존중문화가 확산되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고도 했다.
▲ 24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 설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 및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등 회원들이 행사장 입구에서 인권위 독립성 훼손과 장애인권 후퇴 등에 시위하며 진입하려 하고 있다. ⓒ뉴시스 |
인권단체 회원들, 식장 들어와 "정권 하수인 현병철 물러나라"
하지만 이 기념사를 읽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기념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권단체 회원 10여 명이 식장에 들어와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등 한 때 소동이 벌어진 것.
이들은 "이명박의 친위대 현병철은 사퇴하라", "인권위를 말아 드신 소감이 어떤가", "국가인권만 옹호하는 인권위를 해체하라", "정권의 하수인, 권력의 개는 물러나라", "현병철은 인권을 알기는 하나" 등을 외치며 약 10여 분 간 소란을 피우다 주최 측에 의해 강제로 퇴거됐다.
이들이 식장에 난입한 이유는 현병철 위원장 이후 인권위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인권위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실제 인권위에 제기된 사건진정 건수는 매년 늘어나 양적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02년 2790건이었던 진정 건수는 지난해 9168건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올해는 10월 말 기준 616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0% 수준이다.
반면, 인권위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정부의 인권위 권고안 수용률은 현병철 위원장 취임이후 현저히 떨어졌다. 지난 10년간 자료를 종합하여 정리해 보면 인권위가 발표한 정책권고를 관계 기관이 그대로 수용한 수용률은 27%, 일부수용까지를 합한 수용률은 57%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역대 대통령 재임 기간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시기라고 할 수 있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는 연 평균 74% 정도의 수용률(일부수용 포함)인데 반해 그 이후부터 최근까지(2011년 9월 말)는 연 평균 30%로 급격히 떨어진다.
정책 권고에서 70% 이상 수용률을 보인다는 것은 매우 높은 것으로, 이는 관련기관이 인권위 권고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수용률이 30%대로 떨어졌다는 것은 인권위의 권고가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제대로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현병철 체제 이후, 제 역할 못하는 인권위
뿐만 아니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최고 의결기구인 전원위원회(전원위)가 정부와 여당이 추천한 보수인사로 채워지면서 우편향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9년 MBC <PD수첩> 검찰 수사에 대한 인권위 의견 제출안이 부결됐고, 지난해는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진정이 기각됐다. 용산 참사 관련, 의견 표명도 하지 못했다. 올해 인권위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인권보호 관련 의견 표명을 부결해 인권위 내·외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인권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며 지난해 8월부터 '쓰나미식'으로 주요 인사들이 인권위를 떠났다. 유남주 인권위 상임위원 등 다수의 인권위원과 인권위 설립 초기부터 관여해온 김형완 인권정책과장 등 직원 10여 명이 연이어 떠났다. 인권위에서 인권조사 등을 진행할 때, 전문자문 역할을 담당해온 상담위원 60여 명도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며 집단사퇴했다.
결국, 이러한 여러 이유로 2011년 들어 인권위는 관계 기관의 법령 조회에 의한 의견표명 이외에는 의미 있는 인권정책 권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말까지 정책권고를 이끈 상임위원들이 현병철 위원장이 이끄는 인권위에 항의하며 떠나고 보수적 인사들이 그 뒤를 채우면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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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기관에 면죄부는 주는 권력옹호기구 됐다"
하지만 현병철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계속해서 '마이웨이'일 뿐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인권단체는 25일 1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한국언론재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0년간 인권위는 우리사회에 인권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데 분명 기여했다"며 "하지만 현재의 인권위 모습은 후퇴하는 한국 인권에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인권위 문제의 핵심은 독립성 훼손"이라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 흔들기와 무자격자 인권위원 인선으로 인권위는 권력기관을 감시하는 인권옹호기구가 아니라 권력기관에 면죄부를 주는 권력옹호기구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인권위는 보수정권 등장으로 2년 반 만에 7년 반의 성과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현병철 위원장을 비롯한 무자격 인권위원들은 사퇴해야 한다. 더 이상 인권위의 이름으로 인권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광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인권위는 인권 침해 현장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간섭해도 아무 소용도 없는 북한 인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사무차장은 "결국 권력의 입맛에 맞는 소림만 하고 있다"며 "이게 10돌을 맞은 인권위의 자화상이다"고 꼬집었다.
명숙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오늘 기념식에는 이전에 인권위 위원장을 역임하신 분이 아무도 오지 않았다"며 "국가에 의해 인권이 침해당해도 아무 말 하지 않는 인권위의 지금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질타했다.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사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아무 것도 모르고 오로지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무자격자는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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