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경쟁에서 지쳐 떨어지는 대신, 경쟁에 뛰어들어 남을 짓밟고 뜀박질하는 대신, 스스로 거부자의 길을 택하겠습니다. 내 삶의 주체는 끝없는 스펙도, 학벌도 아닌 내 자신이고 싶습니다."
그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하며, '수험생'이 아닌 '빛나는 청춘'임을 선포했다. 저마다 대학거부를 결정하기까지 아프게 고민했던 순간들, 대학에 목숨 걸게 하는 세상에서 끝없이 불안했던 경험들을 쏟아내는 학생들을 보며, 수능을 거부하며 1인 시위를 했던 1년 전 그날이 뜨겁게 되살아났다.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꿈' 그 꿈이 깨지던 순간
나에게도 '좋은 대학에 가는 꿈'이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수많은 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열일곱이던 나도 친구들과 함께 난생 처음 거리로 뛰쳐나왔다. 우리는 그저 질 좋은 고기를 싸게 먹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다.
소가 그렇게 미쳐버리기까지, 또 그런 소를 자랑스럽게 수입하기까지의 과정은 우리 모두의 삶의 위기였다. 태어나자마자 숫자가 박힌 번호표를 달고 좁은 우리에 갇혀 앉지도 달리지도 못한 채, 오직 살을 찌우기 위해 동족을 갈아 넣은 사료를 먹다 결국 미쳐버린 소. 그 '미친소'는 마치 교실에 갇힌 나와 친구들의 모습인 것만 같았기에, 우리는 온 삶을 걸고 저항했다.
종이 치면 정해진 자리에 앉아야 했다. 수능시간표에 따라 내 몸의 리듬까지 맞추는 게 현명한 전략이 되었다. 친구들이 말했다. "차라리 기계가 되고 싶어. 공부 말고는 딴생각 안 들게."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촛불을 들고 세상을 비추고 나를 비추었던 시간들, 이제 나는 예전의 나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었다.
당신들이 강요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함께 사는 법이 아닌 '생존의 법칙'만을 온몸으로 배워온 우리가, 책상 앞에 앉혀져 두려움을 학습하며 죽어라 '전투준비'만 하던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갈 세상은 전쟁터가 아니고 무엇일까. 언젠가 선생님이 말했다. 좋은 대학 가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인생이 바뀐다고.
그런데 모두가 그토록 열망하는 '편한 삶'이란 게 무엇일까. 우아한 집에 편히 앉아 바다를 건너온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영화관 같은 TV로 영화를 보고, 매일 피부관리를 받고, 새로운 옷을 사고, 가끔 있는 돈을 뚝 떼어 기부하며 선한 마음도 사고. 그것이 편한 삶이라면, 나는 미치도록 불편하게 살고 싶었다. 돈이라는 종이쪼가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내가 나의 주인일 수 없는 인생, 딱 한번뿐인 내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또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서울대 박사 부부가 학위를 버리고 농사지으러 산에 들어갔대. 뭘 해도 일단 좋은 대학 들어가고 봐야 돼. 그래야 인정받아" 그날 나는 결심했다. '나는 결코 대학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어떤 좋은 일을 해도, 어떤 의미 있는 삶을 산다 해도 결국 남는 것은 '좋은 대학'이란 이름뿐인가. 내 존재 자체로 '좋은 대학만 나오면'이라는 근거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난, 이 끝없는 질주를 멈추기로 했다. '친구를 적으로 만들고, 인생을 점수로 매기는 수능을 거부합니다.' 나는 결국 대학 진학률 80%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수능거부 1인 시위를 하고 대학에 가지 않았다.
균열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는 'D-364'(364일 전)이라는 팻말이 붙는다. 4대강 토건공사는 자유로이 굽이쳐 흐르는 강을 일직선 콘크리트로 가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삶의 가치들이 하나의 시장 논리로 상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하나의 '성공모델'로 삶의 정답을 정해놓고, 그 안에 끼워 맞춰지기를 강요하는 지금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며 단호히 거부하고 나와, 다양한 삶의 길을 뚫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를 빼겠다"며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 선언>. 그 후 굳건했던 대학의 탑은 점차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대 유윤종 씨, 연세대 장혜영 씨까지, 'SKY'(스카이, 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를 가리키는 은어)로 불리는 명문대 학생들의 자퇴 선언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1%라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자살, 중앙대의 기업식 구조조정을 막으려다 퇴학당한 학생들,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하며 고공시위를 하던 학생. 또 '빚내는 청춘이 아닌 빛나는 청춘이고 싶다'던 청년들의 반값등록금 시위까지. 작은 돌멩이들이 모여 '대학'이란 거대한 탑에 균열을 키워온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너희의 아픔은 당연한 거라고.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살아있는 젊음이라면 아프면 낫기 위해 저항해야 한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자기 의지대로 강물을 거슬러 간다. 오직 죽어있는 것만이 흘러가는 대로 순응한다. 우리의 길을 찾아가자. 이 불합리한 세상을 거슬러 가자.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를 가둔 댐을 부수고 산으로 들로 메마른 땅 구석구석으로 굽이쳐 갈 것을 믿는다.
(이 글은 "미친 소에서 나의 모습을 본 그때"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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