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날 "후보 단일화를 위한 뒷거래는 제가 살아온 방식과 전혀 다르고 그와는 생리적으로 맞을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2억 원이라는 돈의 규모가 너무 크고, 친구의 계좌를 통해 돈을 전달하는 등의 정황이 석연치 않다. 그 돈의 출처 또한 아직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돈을 건네면서 증여세를 제대로 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떳떳하다'라는 그의 선언에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
곽 교육감이 '2억 원을 줬다'고 인정하자마자 보수 언론에서는 검찰발 각종 기사를 쏟아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 이를테면 '각서가 있다, 없다'를 두고 오보를 내는 언론도 나온다. 숱하게 문제가 됐던 '무죄 추정의 원칙'은 온데간데 없다. 검찰의 주장을 사실인 양 받아쓰는 행태가 다시 반복된다. 그러나 곽 교육감이 '돈은 줬다'고 인정한 상황에서 검찰의 수사, 그리고 이를 보도한 언론을 싸잡아 비판할 수는 없다.
이런 풍경 속에서 곽 교육감의 지난날을 기억하는 이들은 한숨을 쉰다. 한국방송통신대학 교수 시절, 그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처벌을 가능케 한 5.18특별법 제정 운동의 한복판에 그가 있었다. 사법부도 어찌하지 못하는 권력이 된 삼성을 향해 칼을 겨눈 것도 그였다. 그는 동료 법학자들과 함께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사시(斜視)를 앓았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는 장애인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한다. 법학자인 그는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을 확대하기 위한 연구와 실천에 골몰했다.
그 결과가 국가인권위원회 초대위원·사무총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연구자문위원장,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장 등의 경력이다. 교수들이 흔히 하는 것과 달리, 이런 자리에서 그는 '이름만 올려놓고' 있지 않았다. 그러한 활동과 신념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의 시민사회가 그를 단일 교육감 후보로 추천하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뉴시스 |
설령 곽 교육감의 말대로 '선의로' 돈을 준 게 사실이라고 해도, 대중이 쉽게 납득할 것 같지는 않다. 고위 공직자 청문회에서 자식에게 수천만 원을 주고 증여세를 안 낸 사실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거액의 돈이 불투명한 경로로 오갔는데, 돈의 출처나 증여세 납부 여부 등이 모두 불투명하다. 과거 삼성의 불투명한 경영승계를 조리 있게 비판했던 곽 교육감으로서는 민망한 대목이다.
설령 그가 교육감 자리를 유지한다고 해도, 교육행정가로서의 리더십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됐다.
그러나 진짜 안타까운 대목은 따로 있다. 이번 사태가 뛰어난 학자·시민운동가가 상처를 입은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게다. 보수 진영은 곽 교육감의 문제를 무상급식·학생인권 등 그동안 서울시 교육청이 추진해 온 의제와 한데 묶어서 바라본다. 곽 교육감의 도덕성을 무상급식·학생인권의 정당성과 연계하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으로도 잘못이고, 사실 관계와도 다르다.
배옥병 친환경무상급식연대 상임위원장은 "곽노현 교육감 사건과 친환경 무상급식을 분리해서 봐야할 필요가 있다"며 "지난 10여년간 무상급식은 전국적으로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서울시가 반대하면서 서울시의 무상급식이 쟁점이 된 것일 뿐"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그렇다. 무상급식·학생인권 조례 등은 곽 교육감이 처음으로 제기한 의제가 아니다. 지역에서 풀뿌리 운동이 먼저 생겼다. 그리고 이를 공론화한 것은 주로 경기도교육청이었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지난해 교육감 선거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무상급식·학생인권 조례 등을 내건 후보가 대거 당선됐다. 지난 24일 주민투표 결과도 같은 맥락이다.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보편적 복지는 다수 국민의 요구다.
무상급식은 곽노현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이는 가차없는 여론몰이로 서울시 주민투표의 패배를 반전시키려는 보수 진영뿐 아니라 곽노현 교육감 그 자신과 진보 진영 역시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하는 원칙이다.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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