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지난 9년간 해온 일은 배에 페인트 칠하기다. 일명 '터치업'이라고, 붓을 들고 다니면서 용접부위나 분무할 수 없는 곳을 칠하는 작업이다. 언뜻 들으면 손쉬운 작업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개미가 자동차를 도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한다.
우리가 배를 생각하면 어업을 하는 배나 유람선 정도를 생각한다. 하지만 김 씨가 일하는 배에는 대형급 컨테이너선도 포함돼 있다. 대형급인 8600TEU급 컨테이너선은 길이 323미터, 높이 25미터, 폭 46미터나 된다. 대략 축구장 크기의 세 배 정도다.
이런 곳을 손바닥만 한 붓과 페인트통을 들고 돌아다니며 붓질을 해야 하니 일은 고될 수밖에 없다. 배 바닥에 페인트칠할 때는 일자 사다리를 타고 건물 7층 높이 정도 되는 거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 오리엔탈 정공 정문 모습. ⓒ프레시안(허환주) |
"아줌마, 앞으로 이곳에서 밥 안 먹을 거요?"
한 번 내려갔다 올라오는 데는 상당 시간이 소요되기에 점심 먹을 때를 빼고는 아예 내려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작업반장이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배 구석구석에 페인트칠을 하다 보면 온몸이 페인트 범벅이 된다. 그래서 최대한 몸을 감싸고 일을 한다. 그렇다 보니 한여름에는 일하기가 정말 힘이 든다. 사방에 깔린 철판이 햇볕에 달궈져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렵다. 한창 뜨거울 때는 신발 밑창에서 타는 냄새가 날 정도다.
반면 배 부속품인 탱크 안에서 일할 때는 햇볕이 없어 곤욕이다. 조그마한 소형 플레시 하나에 의지해 페인트칠을 해야 한다. 자칫 탱크 안에서 길을 잃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 중 한 명은 탱크 안에서 길을 잃었지만 아무도 그걸 알지 못하고 탱크 문을 잠가 탱크 안에서 가스 과다 흡입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탱크 안에는 유해 가스가 늘 가득 차 있다.
작업 환경이 그렇다 보니 몸에 이상이 오는 건 당연하다. 생리가 정기적이지 못한 건 기본이고 알레르기 비염을 늘 달고 다니는 김 씨였다. 함께 일하는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병을 앓고 있었다. 작업장 내에서는 '젊은 여성은 아이 다 낳고 와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김 씨가 도장으로 사용하는 페인트는 특수 페인트로 독성이 강하다. 일한 다음 날 아침에 소변을 보면 소변에서 시너 냄새가 진동한다. 호흡기를 통해 마신 시너가 그대로 신체에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퇴근하고 아이들에게 뽀뽀를 하려 해도 입에서 시너 냄새가 나서 그마저도 하지 못한다. 발톱도 새까매지고 손톱은 늘 갈라져 있다. 일하다가 다쳐도 산재는 꿈도 못 꾼다. 얼마 전 동료 중 한 명이 족장(1미터 높이의 발판, 사업장에서는 이를 몇 단씩 쌓아 놓는다)에서 떨어져 허리가 다쳤지만, 산재는 신청도 못 했다. 작업반장이 "아줌마, 나중에 여기서 밥 안 먹을 거요"라며 했기 때문이다.
일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남성 작업반장의 치근거림도 참기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반장 눈 밖에 나면 힘든 일에 배치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다.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술 마셔준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김 씨는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 아니냐"며 "오죽하면 '조선소 남편'이라는 속된 말이 나오겠느냐"고 말했다.
▲ 노동자 한 명이 바닥에 물이 차 있는 곳에서 용접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
두 달 일했는데, 그 돈을 갖고 도망친 하청업체 사장
지난 6월부터는 경남 진해에서 선박 내 조정실 등을 제작하는 오리엔탈 정공 주식회사 사내하청 (주)아산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리엔탈 정공은 현대중공업, 대우해양조선 등에 납품을 하는 업체다.
그전에는 경남 통영에 있는 조선소 사내하청에서 일을 했다. 집이 부산이라 숙소 생활을 해야만 했다. 오리엔탈 정공 사내 하청으로 회사를 옮긴 건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어서였다. 김 씨는 "객지 생활을 하니 가족과 저녁밥을 먹는 게 소원이 됐다"고 회사를 옮긴 이유를 설명했다.
부산 해운대 근처에 사는 김 씨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통근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조선소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한다. 하지만 잔업이 있어 일은 늘 7시가 되어야 끝난다. 집에 도착하면 대개 9시가 넘는다. 휴일은 없다. 김 씨는 "그나마 주말엔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정규직, 즉 원청 직원과 차별은 힘들다기보단 '치사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했다. 통근버스에는 정규직 자리가 지정돼 있어 자리가 비어도 함부로 앉지 못했다. 정규직 직원이 나오지 않는 날에는 회사 내 온수도 나오지 않아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정규직 퇴근 시간이 지나면 기본 전기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끊겼다. 그렇게 두 달 넘게 일했다.
그러던 지난 18일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했다. (주)아산 대표 이사가 원청으로부터 공사대금 8000만 원을 지급받고 '튀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때문에 김 씨를 포함한 1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1억 7000여만 원의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김 씨의 경우, 6월 임금은 다 받았지만 7월분과 8월분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조선업 사내하청에서는 7월에 일한 월급을 그달에 주는 게 아니라 다음 달에 주는 게 관행으로 돼 있다. 김 씨는 7월분 월급을 8월 25일에 받는다.
그나마 원청인 오리엔탈 정공 주식회사에 공탁금을 걸어 놨으면 그 돈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 회사는 그런 것도 걸어놓지 않았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지난 19일, 사내하청 노동자 30여 명과 함께 원청 업체 사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원청이 하청업체의 공사대금 명세 등을 검사하는 등 도의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탁금을 걸지 않고 협력업체를 받아들인 건 이와 같은 문제를 대비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학 다니는 자식이 눈에 밟혀 집에도 못 들어간다"
사실 김 씨가 이렇게 돈을 떼인 적은 이번 한 번만이 아니다. 2010년 5월에도 STX조선 사내하청에서 두 달간 일한 돈을 받지 못했다. 하청 업체 사장은 지금과 같이 공탁금을 한 푼 걸지 않았다.
당시 사장은 선수금을 받고 지금과 같이 '튀어버렸다'. 김 씨 등은 고소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공탁금도 받지 않았을뿐더러, 하청업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원청 STX조선에 법적 책임을 물고 싶었지만, 노동부 근로감독관마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포기를 종용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런 일이 발생하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김 씨는 "하청업체가 돈을 가지고 튀었는데 원청에서는 자기완 아무 상관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우리는 일할 때 '오리엔탈 정공'이라고 적힌 작업복을 입고 일하며 회사 통근버스도 탄다. 안전교육도 모두 원청에서 받는데도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장 전 처리(도장을 하기 전에 도장이 잘되도록 철판의 녹이나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 일명 '파워(도장그라인더)' 작업을 하는 전수환(46) 씨는 "하도 돈을 떼이거나 체납하는 일이 많으니 일을 할 때, 업체가 돈을 잘 주는지, 망할 우려는 없는지를 항상 확인한다"며 "이번 경우는 공탁금이 걸려 있다고 들어서 일을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전 씨는 "대학교에 다니는 자식이 있는데 집에 있노라면 이놈이 눈에 밟혀 집에 있지도 못한다"며 "사실 지금 농성을 할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일하러 가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착잡한 심정을 설명했다.
전 씨는 5년 전 한진중공업 연수원에서 파워 작업 교육을 받은 뒤, 목포, 통영, 부산, 창원 등지를 돌아다니며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해 왔다.
진용기(40) 씨는 "5년 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에서 일할 때만 해도 안전하게 일하게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지금은 돈만이라도 제 때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점점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하는 조건은 열악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오리엔탈 정공 조선소. ⓒ프레시안(허환주) |
ⓒ프레시안(허환주) |
"원청→하청→노동자, 먹이사슬로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조선업계는 비정규직 하청 비율이 매우 높다. 일례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한진중공업은 2009년 당시 정규직은 1235명이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는 3081명이었다. 3배 규모인 셈이다.
그나마 한진중공업은 정규직 비율이 높은 셈이다. STX조선의 경우, 사내하청 규모가 8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정은 다른 조선소도 마찬가지여서 사내 하청노동자의 비율은 평균 55%에 달한다.
잘 알려졌다시피 조선소에서 하청업체를 두는 이유는 낮은 노동단가 때문이다. 조선업은 재료비가 모두 비슷하게 책정되기 때문에 인건비가 납품단가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하청업체는 수주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납품단가를 낮춘다. 물론 이것은 고스란히 하청 노동자 임금 하락과 안전 장치 미비으로 이어진다.
그나마 2003~2007년 조선산업 호황기 때는 이런 구조 속에서도 하청업체와 원청 조선소가 상부상조하며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원청 조선소는 하청 업체에 납품단가를 내릴 것을 종용하면서 하청 노동자의 임금은 체납되거나 떼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 선박산업 전문가 허민영 경제학 박사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임금을 떼인 금액은 몇조 원은 될 것"이라며 "조선업 호황기 이후 우후죽순 늘어난 하청 업체가 금융위기 이후 물량이 부족한 과정에서 과당 경쟁과 제품 단가 인하 등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거나 사장이 도망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원청은 하청에 위기를 전가하고 하청은 노동자에게 이를 전가하고 있다"며 "먹이사슬 구조가 그대로 조선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오 위원은 "정부에서는 동반 성장, 이익 공유제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를 철저히 비웃고 있다"며 "모든 책임을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현 시스템이 지금의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하면서도 돈 떼일 걱정을 해야 하다니…"
하지만 아무도 이 문제를 책임지려하지 않고 있다. 결국 애꿎은 하청 노동자만 죽어나는 상황이다. 박영기(가명·49) 씨는 "조선소 사내하청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다치는 건 늘 있는 일"이라며 "이것은 별로 걱정하지 않지만 다음 달 임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는 늘 걱정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업무 도중 족장에 무릎을 부딪쳐 정기적으로 무릎에서 고름을 빼낸다고 했다.
박 씨는 "성과급에 보너스 등 돈 잔치를 하는 대기업 사주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하청 업체 노동자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런 일은 발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 일하면서도 돈 못 받을 걸 생각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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