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익 미래발전연구원장은 지난 28일 '고령사회와 복지국가' 강연에서 "기업이 가족 친화적이 되지 않는 한 한국의 장래는 없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그의 지적대로 저출산 문제의 핵심은 기업 문화, 혹은 노동 환경에 있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와 일을 해야 하는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크게 다르다. <편집자>
-사장님은 '출산 훼방꾼'? ☞"저 아이 가졌어요" 그 한마디에… (上) ☞"임신 5개월째부터 대놓고 모욕적 언사에…"(中) |
"어느 쪽이 재취업이 잘 될까요?"
20~30대 주부가 많은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 종종 올라온다. "애 없는 아줌마와 6개월 아이가 있는 아줌마 중에 누가 더 취업이 잘 될까요?" 재취업과 출산을 함께 고민하는 여성이 올리는 질문이다. 답은 갈린다. "전에 면접 본 회사에서 '결혼 했는데 애가 없으면 언제 낳을지 몰라 불안하다'고 하더라. 애가 있는 쪽이 낫다", "그래도 애 없는 쪽이 낫다. 아무래도 아기가 있으면 칼퇴근 해야 하니까" 등. 명답도 있다. "둘다 기피 대상이다. 그나마 한살이라도 어린 쪽이 낫다."
출산, 양육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여성은 경력 단절 시기가 시작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1년 6월 기준으로 경력 단절 여성은 405만 2000명 가량으로 추산되는데, 경력 단절 사유로는 결혼 및 출산이 38.5%, 육아 46.7%, 낮은 수입 7.5%, 자녀교육 7.3%로 대부분 출산, 양육과 관련되어 있다.
이 중 약 64.6%에 해당하는 261만 8000명은 재취업 의사가 있다고 추정된다. 이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벌이는 것은 아니나 통계상 '비경제활동 인구'로 잡히는 전업주부 중에도 취업하고자 하는 이들이 꽤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시 취업하려는 여성은 여러가지 난관을 겪게 된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해 3월 경력 단절 경험이 있는 전국의 여성 노동자 1181명에 대한 실태 조사에서는 이들이 재취업 과정에서 겪은 편견이 잘 나타나 있다.
"결혼 전에는 취업 원서를 넣으면 적어도 80~90%는 연락이 왔는데 아기를 데리고 간 취업 박람회장에서는 열군데 넘게 면접을 봤지만 의향을 물어오는 데가 한군 데도 없었다. 도리어 '애를 키워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만 들었다. 결혼하면서 일을 쉬게 됐는데 다시 하려고 하니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됐다. 충격이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심층조사 중)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실장은 "일, 가정 양립을 하려해도 취업이 가능해야 하는데 기혼 여성은 100만 원 급여 보장은 물론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예 취업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나이 어린 여성을 선호하는 남성 중심 조직문화 때문에 나이든 여성과 임신한 여성은 경력이 쌓일수록 퇴직 압력을 받거나 취업이 어려워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경력 단절 이후 여성들은 비정규직 일자리에 내몰려"
게다가 경력 단절 이후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의 질은 크게 떨어진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11.3)'를 분석한 '비정규직의 규모와 실태' 보고서를 보면 정규직 여성은 20대 후반을 정점으로 그 수가 크게 줄어들지만 비정규직 여성은 30대 초반에 낮아졌다 40대에 정점으로 나타난다.
이는 경력 단절 이후 다시 취업하는 여성에게 제공되는 일자리가 대부분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실태 조사 결과에서도 이전 일자리가 정규직이었던 여성 중 51.1%는 경력 단절을 거치면서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 그 결과 경력 단절 이전에는 응답자들의 62.9%가 정규직이었으나 재취업 이후에는 28.5%만이 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 직장을 8년 간 다니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그만뒀다. 출산한 지 1년 반 만에 재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진짜 고생했다. 결국은 계약직에다 원래 다니던 직장보다 연봉이나 조건도 훨씬 못한 곳에 왔다. 원래 직장에서 이 악물고 버틸 걸 한참 후회했다."
"둘째 낳고 10개월쯤 됐는데 정말 힘들게 재취업 했다. 직장 10년 다녔는데 아무 소용 없었다. 지금은 월급은 반 정도에 복지도 안좋다. 같이 재취업한 동료가 '아줌마는 재취업할 때마다 월급이 떨어진다'고 하더라. 다만 집이 가까운 것에 위안 삼으며 다니고 있다." (30대 여성)
임윤옥 실장은 "경력 단절이 여성의 비정규직화를 초래하는 중요한 기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경력 단절은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점점 더 열악한 일자리로 이동하게 되는 메커니즘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 아이와 엄마. (이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뉴시스 |
"저숙련, 저임금…내가 이런 일 하려고 공부했나"
재취업을 할 때마다 열악한 일자리로 옮겨가게 되는 경력단절 매커니즘은 기묘한 결과를 낳는다. 한국에서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고학력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면 노동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비경제활동 인구가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고학력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대 중반에 가장 높고, 결혼과 출산을 기점으로 급격히 낮아져서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L자 형'을 보인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의 취업률이 여성 전체 취업률보다 낮게 나타나는 유일한 국가다.
이는 경력 단절 이후 주어지는 일자리의 질이 낮기 때문이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경력 단절 이후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자리가 비숙련, 저임금,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재취업한 고학력 여성들도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 낳기 전에는 인사팀 관리직으로 일하다가 아이 낳고 3년 정도 쉬고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은 단순 사무직이다. 가깝고 출퇴근 시간 정확한 곳을 찾다보니 일자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 안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그냥 하려고 하지만 이따금씩 내가 이런 일 하려고 공부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숨이 나온다."(30대 여성)
한편 고학력 여성이 'L자 커브'를 보이는 까닭은 학력이 높을수록 고임금의 남편을 만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임윤옥 정책실장은 "정확히는 '학력'이 아니라 '가구수입'이 변수"라며 "남편 소득으로 가계부양이 가능하면 저임금과 비인격적 대우를 감내하지 않아도 되니 노동시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이런 것을 감수하더라도 몇십 만원 벌기 위해 재취업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계 보조자'로서의 여성"
아이 엄마들이 자주 찾는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등을 살펴보면 경력 단절 이후 여성들이 재취업 때 출퇴근 시간과 집과 직장 간의 거리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조사에서는 재취업 여성들은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30분 미만인 곳을 선호한다고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당연히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구할 수 있는 일자리를 공간적으로 제한하고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로 쏠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박진희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경력 단절 여성은 '주 소득자'인 남편에 비해 '부소득자'가 되고 또 육아의 의무 등이 있기 때문에 구직 활동이 공간적으로 제한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임윤옥 정책실장은 "전문직의 소수 여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성들이 '생계 보조자'로서 돈 몇푼을 벌려고 하는 처지"라며 "동시에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데 육아 책임을 나눠줄 공공인프라가 없다보니 여성들이 저임금을 감수하면서도 '동네 일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력 단절 이후 여성에 대한 대책은 마땅치 않다. 장지연 연구위원은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한번 경력이 단절되면 재취업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며 "애초에 여성이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경력 단절을 방지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설문조사에서 '다시 직장생활 중 출산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육아에 전념하겠다'는 응답은 8%도 되지 않았다. 일을 그만 둔 이후 경력 단절과 재취업을 겪은 여성들은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든 근로시간을 줄이든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답변을 했다.
근본적으로는 근무 환경의 변화가 가장 급선무의 과제로 꼽힌다. 장지연 연구위원은 "탄력근무제나 정규직 단시간 근로 등은 지금의 노동 현실에서 주장하기에는 비현실적이고 '단시간 근로 보호' 등도 구호일 뿐 장시간 비정규직도 낮은 임금을 받는 상황에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며 "결국은 '8시간 근무 지키기', 초과근무, 장시간 근무 하지 않기 정도만 지켜져도 크게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윤옥 정책실장도 "단시간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이 있는데 '보호'라는 말만 붙어있을 뿐 실제로는 '단시간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본다"며 "실제로도 여성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시간제 비정규직 일자리'가 아니라 근무 시간이 지켜지는 정규직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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