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25일 대의원대회에서 '차기 임원선거'에 직선제 도입 여부를 토론하는 것을 놓고,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마이크를 뽑아 들었다. "과연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직선제'가 정답인가? 나는 그 답이 의심스럽다. 그러니 직선제는 보류하고 딴 문제들에 관심을 두자"는 취지의 주장을 <프레시안>에 기고한 것이다.
그는 어떤 문제를 건드린 셈인가? 노광표 부소장의 말마따나 "조직내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노동운동을 혁신하자는 데 아무도 이견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직선제는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그는 민주노총을 발본으로 혁신하자는 바람에서 나온 '혁신 방안'에 대해 이견을 제출한 셈이다.
"'승자독식구조'는 노동운동 위기의 결과"
그는 '직선제'를 고민하기보다 '승자 독식 구조'를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경쟁하는 두 후보 중 어느 편이든 51%만 차지하면 나머지 49%는 완전히 무시되는 결과가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정파간 발목 잡기'도 고민거리이기는 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투쟁성과 대표성의 위기가 단순히 '승자 독식 구조'나 '정파간의 과열 경쟁'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는 민주노총의 위기에 따른 '결과'를 '주된 원인'으로 뒤엎어놓은 아주 협소한 생각이다.
"거대 정파들이 서로 과열 경쟁을 자제한다면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침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의 진단은 무척 빗나갔다. 그 위기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다음에야.
"'직선제'가 80만 조합원을 일깨운다"
왜 민주주의 문제가 터져 나왔는가? 민주노총이 과연 앞길을 어떻게 열어가야 하는지, 80만 조합원 대부분이 무관심하기 때문에 나왔다.
80만 조합원 대다수가 "내가 관심 두는 조합은 내 직장/직종을 관장하는 눈앞의 조합일 뿐"인 마당에 민주노총이 아무리 조합원들더러 "천만 노동자를 위하는 일을 합시다. (또는) 총파업에 나섭시다"하고 외친들 도통 씨알이 먹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렇게 관심들이 없으니, '간-간선'으로 뽑힌 대의원들이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조직의 쇄신을 고민한다 한들 별다르게 힘이 실리지 못한다. 여지껏 민주노총은 (상당수가 조합간부들로 임명되어 채워진) 900명 대의원들의 조직이었을 뿐이다.
나는 노광표 부소장과 더불어 진취적인 토론을 벌이기가 정말 어렵다.
그는 '임원 선출로써 노조 민주주의가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신화'에 기초해 있다고 한다. 그는 '직선제가 노동운동 관료주의를 극복할 대안이라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고도 말한다. 이렇게 일반론적인 '단언'을 무 자르듯이 쉽게 한다.
그렇다면 임원 선출(이 말도 정확하지 못하다. '임원 직선'이다)이 노조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데에 별다른 구실을 하지 못하는가? 직선제는 관료주의 극복과 무관한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어야 서로 소통이 된다. "임원 직선이 관료주의 극복을 돕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되지 않는 쪽'으로만 생각을 모으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는 문제해결에 나서려는 '진정성'이 결여돼 있지 않으냐는 말이다!
조직혁신안을 올린 민주노총 본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임원 직선만으로 민주주의는 사통팔달한다"고 그들이 분홍빛 기대에 넘쳐 생각했다면 노광표 씨의 반박이 그들에게는 얼마쯤 들어맞는다. 그러나 그는 민주노총의 위기를 타개할 주된 혁신안의 하나로 '직선제'를 제기한 사람들의 문제의식은 진지하게 경청하지 않았다.
그가 사적인 자리에서 민주노총 간부들에게 '임원직선, 유일대안론'의 허술함을 설파했더라면 '그럴 수 있는 발언'이라 하겠으나, 그는 발본의 혁신을 바라는 일선 노조의 사람들에게 찬 물을 끼얹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그의 발언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 안건'의 부결을 돕는 발언이었다. 그러니 '임원직선 만능론'을 믿지 않는 우리가 나서서 대거리해야 한다.
"임원 직선제만으로는 부족하다"
거대 조직의 대표를 단지 '직선'으로 뽑는 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상식이다. 그 집행부를 항상 감시하고 견제할 '대의원대회'가 제대로 구실해야 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대의원들의 대표성도 높여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직선'은 임원/대의원 직선이 '한 세트'로 실행되는 직선제다.
'실무적인 어려움'을 들어, '임원직선 먼저, 대의원직선 나중'을 말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아마 민주노총 본부는 이런 논거로써 대의원 직선안을 밀쳐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광표 씨가 말하는 '직선제 역기능론'이야말로 '임원 직선'만으로 생색내려는 민주노총 본부를 효과적으로 비판하는 논거가 된다고 본다.
한갓 '임원 직선'만 들여오려는 협소한 방책은 실무적인 어려움과 다소의 부작용에 비추어, 얻어낼 정치적 열매가 많지 않다. 임원/대의원 직선을 본때있게 실행하고, 거기 덧붙여 비정규/중소영세/이주 노동자들의 대표성을 높이는 '할당제'를 들여올 때, 그리하여 '내부 민주화'뿐 아니라 대공장 정규직 위주의 단체에서 소외돼 있는 소수자들의 활성화를 도울 때, 우리는 민주노총에 '다시 해보자'는 새 기풍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겠는가.
새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실무의 번잡함이나 혹시나 초래될 다소의 부작용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내일에 대한 희망 없이 늘 해 오던 대로 가느냐, 새 전환을 이뤄내느냐 선택하는 일이다.
"조직원리도 발전한다"
노광표 씨는 '직선제'가 중앙조직(또는 연맹의 결사체)의 조직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형식논리로는 그럴싸한 지적이지만, 그가 잊은 사실은 노조의 '조직형태'도 발전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지금의 민주노총이 태동할 때 '과도기적 조직'의 위상을 부여받지 않았는가? 산별노조들을 창출할 징검다리!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깊어감에 따라, 모든 노동자가 하나로 단결하는 '단일 노조'를 새로운 상으로 제시하는 의견도 나오지 않았는가.
'지금 있는 것이 선(善)'이라는 논리는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고 자본이 오히려 자기혁신을 위해 분발하는 시대와 대결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한 논리라 하겠다.
'임원 직선제' 하나로 이뤄낼 진전은 제한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각 연맹들에 비전 없는 노동관료층이 똬리 틀고 앉아 있는 시대에는 '몇몇 연맹 지도부의 과두제'를 깨는 시의성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다. 게다가 대의원 직선제로써 '내부 민주화'의 기틀을 확고히 마련하고, '소수자 할당제'로 노동운동의 '주력'이 돼야 할 부분들을 끌어안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신뢰와 대표성과 투쟁성의 위기를 상당하게 덜어낼 수 있다.
"직선제는 노동운동 위기 극복을 위한 정답 중 하나"
하지만 그는 있음직한 경우의 수를 '모두' 그러모아 '직선제의 폐해'를 역설했다. 그의 걱정을 들어주려면 언제 어디서도 '직선제'를 하면 안 된다. 물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직선제가 만능약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이 때는 '내부 민주화'를 통해 80만 조합원에게 민주노총이 '내 단체'로 다가가야 할 때이고, 그렇다면 직선제로 얻는 효과는 그것이 지지부진해질 때 빚어질 역기능보다 훨씬 크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과연 직선제가 정답인가' 회의한다고 했다. 우리는 대답한다. "그렇다. 그것이 지금은 정답이다!"라고.
쓸데없는 논란을 덜기 위해 굳이 말을 덧붙인다면 그것은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총체적 위기를 밀쳐나갈 '정답의 하나'일 뿐이다. 또다른 해법들을 가동해내려면 수많은 조합원들을 '주체'로 세우는 '조직 혁신'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