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잿더미 된 '마지막 판자촌'…"이젠 눈물도 말랐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잿더미 된 '마지막 판자촌'…"이젠 눈물도 말랐다"

[현장] 하루 아침에 집을 잃은 주민들 "재난지역 선포하라"

엿가락처럼 구부러진 철제 기둥만이 잿더미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꽃과 상추 등을 키웠던 텃밭은 깨진 화분만이 예전 그 장소임을 알게 했다. 마을 어귀에 주차된 승용차와 트럭 등은 전소돼 앙상한 뼈다귀만 남아 있었다. 화마가 지나간 '포이동 266번지'는 사람이 산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해있었다.

"마을 회관에서 자다가 새벽 4시께 잠이 오지 않아 집에, 아니 집이 있던 곳에 가봤죠.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새까맣게 탄 냉장고랑 보일러 기름통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어요. 모든 게 재로 변해 있었어요."

서미자(54) 씨는 "이젠 하도 울어서 눈물도 나지 않는다"며 "20년 넘게 살아온 집이 한순간에 이렇게 되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고 혀를 찼다.

화마가 지나간 '포이동 266번지'

지난 12일 오후 4시께 발생한 화재로 강남구 개포동 1266번지(구 '포이동 266번지') 주민의 집 대부분이 전소됐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이 곳에 살던 총 96가구(거주인원 189명) 중 75가구(100여 명)가 집을 잃었다. 자동차는 6대가 불에 탔다.

초등학생의 불장난으로 발생한 이번 화재는 판자촌 서쪽 목공소 인근에서 시작돼 판자촌 대부분에 퍼진 뒤에야 겨우 진화됐다. 집집마다 가지고 있던 부탄가스통과 보일러 기름통에 불이 붙어 대형 화재로 번졌다. (☞관련 기사 : '38억짜리' 강남 판자촌 포이동 266번지, 그곳에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소방헬기 2대, 소방차 75대, 소방인력 218명을 동원해 화재 진압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지만 당장 이 지역 주민들은 생필품은 고사하고 잠잘 곳조차 없는 형편이다.
▲ 화재가 난 마을을 주민 한 명이 둘러보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서미자 씨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화장실을 갔다 온 딸이 갑자기 '불이 났다''며 황급히 깨웠다"며 "놀라서 나와 보니 멀리 떨어진 판자집에서 검은 연기가 나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서미자 씨는 "워낙 황급히 나와서 말 그대로 몸만 빠져나왔다"며 "협심증이 있어 약을 정기적으로 먹어야 하는데 그것도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슬리퍼를 신고 있는 서 씨는 간편한 반바지와 흰 티를 입고 있었다.

인근 문구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딸은 14일까지 휴가를 낸 상태다. 입을 옷조차 없는 상태에서 출근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서 씨는 "딸아이는 근처 친구집에 있다"며 "당장 잘 곳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딸은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 등을 하다 상황이 어려워져 결국 대학을 자퇴했다. 이후 문구점에 취직해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딸이 받는 월급 115만 원으로 두 식구가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화재와 함께 사라진 아내의 반지

화재로 인해 몸만 빠져나온 건 서 씨 모녀만이 아니었다. 박재만(가명·56) 씨는 "급히 나오느라 아무 것도 집에서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며 "아내에게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선물해준 다이아몬드 반지도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나중에 화재가 진화된 뒤 집이 있던 장소에 가보니 다이아 반지도 집과 함께 불타 없어지고 반지 케이스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며 "어렵게 모은 돈으로 사준 반지인데 이렇게 없어지게 돼 안타깝다"고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김민수(가명·48) 씨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 씨의 판자집은 김 씨의 어머니와 자녀들을 포함해 총 여섯 식구가 살았다. 몸만 빠져 나온 김 씨는 아이들을 각각 고모집과 작은 아버지집에 보냈다.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자신은 '포이동 266번지' 마을회관으로 사용하는 컨테이너에서 하루를 보냈다.

집 없이 생활을 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 씨는 "씻을 곳도 없어 마을회관 앞에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사람들이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있다"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나마 매 끼니는 대한적십자사에서 제공해주고 있다. 속옷, 칫솔 등 간단한 생필품도 지급됐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대한적십자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도 14일까지 만이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끼니를 때워야 할지 막막한 포이동 주민들이다.

무엇보다 답답한 건 전기가 마을에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재로 인해 마을로 들어오는 전기선들이 다 녹았다. 이로 인해 지난밤에는 김민수 씨 어머니가 소방호스에 발이 걸려 넘어져 팔이 부러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마을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발생한 인재였다.
ⓒ프레시안(허환주)
"집은 사라졌지만 터전까지 사라지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강남구청에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구호 물품조차 지급하지 않고 있다. 대신 구청에서는 구룡초등학교 강당을 구호소로 지정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이동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포이동을 벗어날 수 않겠다는 입장이다. 조철순 포이동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구청에서는 우리를 이 곳에서 쫓아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며 "이번 화재를 기회로 아예 우리를 몰아내려 하고 있다"고 지정 구호소로 가지 않는 배경을 설명했다. (☞관련 기사: '자활근로대 강제이주'의 생존자 조철순 씨가 살아온 이야기)

이 곳은 개포동으로 통합되기 전에 '포이동 266번지 재건마을'로 불렸다. 서울 강남에 구룡마을과 함께 남은 마지막 판자촌이다. 주민 189명이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에서 살아왔다.

주민들은 1981년 12월 정부가 강제 이주시킨 자활근로대 대원들과 동 청사 부지 거주민, 상이용사, 공공주차장 부지 거주민들이다. 강제 이주된 사람들은 30년간 이곳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강남구청은 1990년부터 주민들에게 '시유지 무단점유'라는 이유로 가구당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이 넘는 토지변상금을 부과했다.

한 마디로 빚지기 싫으면 나가라는 이야기다. 조 위원장은 "우리는 이 곳 삶의 자리에서 한 걸음도 물러날 수 없다"며 "집은 잿더미가 됐지만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할 터전까지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강남구청은 포이동266번지에 재난지역에 준하는 조치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며 "우리는 그간 지켜온 우리 삶의 터전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프레시안(허환주)

▲ 마을 회관 앞에 놓여 있는 대야. 여기서 주민들은 세면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프레시안(허환주)

- 관련 기사 모음

'38억짜리' 강남 판자촌 포이동 266번지, 그곳에선…'
포이동 판자촌 주민들, 강남구민 되나
"시청 앞에 유령이 나타났다"
'자활근로대 강제이주'의 생존자 조철순 씨가 살아온 이야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