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 받지 않은 건축물이라도 주민이 장기 거주했다면 주민등록 전입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지난 18일 강남구청에 대해 "무허가 건축물이더라도 그 건물에 주민이 장기간 거주했다면 실제 거주지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주민등록 전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강남구청은 그간 포이동 266번지 비닐 판자촌 주민들에 대한 주민등록전입을 무허가 건물 등의 이유로 거부해왔다. (☞관련 기사: "시청 앞에 유령이 나타났다", "계속 지금처럼 살도록 내버려 두면 좋겠어요")
강남구청이 포이동 주민을 포기한 까닭은?
포이동 266번지는 1981년 정부가 도시 빈민, 고아, 넝마주이들을 모아 조직한 자활근로대를 강제로 이주시켜 생겨난 마을이다. 1984년 이곳은 포이동 200-1번지라는 번지수를 배정받았고, 1988년에는 주소가 266번지로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200-1번지로 등재된 기록도 말소된 주민들에 대해 강남구청은 주민등록 전입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이 지역은 행정구역 상 사람이 살지 않는 '공터'로 분류됐다. 구청 측은 이곳이 1988년 이뤄진 구획정리사업에 따라 지번이 폐쇄되어 환지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점, 포이동 266번지도 서울시에서 토지구획 정리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마련한 땅(체비지)이라는 점 등을 들어 주민등록 등재를 거부하고 있다. 또 구청 측은 '불법 무허가 집단 지역'은 주민등록 법률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강남구청이 주민등록 전입을 거부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이곳이 도곡동 타워팰리스 옆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판자촌과 비닐하우스 촌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주변 경관을 해친다며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다.
주민 등록이 되지 않은 주민들은 현재 자녀 취학 및 우편물 수령 등 각종 행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이 안 된 탓에 그들은 졸지에 '불법 무단 점유자'가 돼 토지변상금을 부과받았다. 변상금을 낼 수 없는 주민을 물리적으로 몰아내려는 압박도 잇따랐고, 결국 지난 2004년 한 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권위 "실제 거주지 전입신고 불허는 기본권 침해"
이에 대해 인권위는 "주민등록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주민의 거주지가 적법한 건축물 및 시설물이거나 적법한 지역이어야 한다는 요건은 없다"고 밝혔다. 강남구청 측의 주장처럼 판자촌이나 비닐하우스 촌의 주거 형태가 주민등록 전입 거부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
인권위는 "강남구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는 곳에 전입신고를 불허한 것은 헌법 10조의 인간의 존엄성, 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이곳 거주민들의 실제 거주지에 주민등록 전입이 허용되도록 조치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특히, 대통령 자문기구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지침에는 비닐하우스 등에 사는 주민들의 주민등록에 대한 적극적 조치가 명시돼 있다"며 "이런 지침에 대한 적극적인 실행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강남구청 담당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인권위의 권고 조치는 법적 강제력을 갖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던 사안"이라며 "이 사안은 소송 문제는 아니지만, 유사한 소송 사례와 비교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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