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일본의 음악이 우리보다 발달한 이유야 갖다 붙이면 수 없이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왜 하필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라 일본에게만 그런 열등감을 가졌는지는 늘 의문이었다. 때문에 몇 번이나 스스로 납득할만한 답을 내려고 했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이 나온 적은 당연히 없다. 그저 일본에서 발매되는 LP미니어처들이 예쁘면 예쁠수록, 사카모토 류이치와 조 히사이시의 피아노 음반이 국내에서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청소년들이 시부야케이나 제이퓨전 계열의 음악을 찬양하면 찬양 할수록 그런 이유 없는 찌질한 나의 열등감은 그냥 묵직하게 가슴 한편에서 커져만 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TBS에서 방송하는 일본의 음악 순위프로그램인 카운트다운 TV를 아주 우연히 보게 되면서 그러한 나의 감정은 마치 해방구를 찾은 듯 확하고 뚫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 방송을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당시 그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가수가 다름 아닌 한국의 아이돌 그룹인 '동방신기'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그렇게 욕먹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그동안 그토록 날 괴롭히던 찌질한 열등감을 없애주고, 심지어 은근한 자긍심까지 심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물론 일본의 음악시장을 단순히 차트에 대입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고, 아이돌의 음악은 분명히 영역자체가 다르긴 하지만 도쿄돔을 꽉꽉 매우고 HMV같은 음반 사이트 상위에 랭크되는 한국 뮤지션을 보는 것은 정말 참신한 충격이었다.
그 이후 동방신기보다 훨씬 이전에 일본에 진출해서 큰 성과를 거두었던 보아가 일본의 몬도그로소가 커다란 클럽에서 디제잉 할 때 커다란 화면에 등장하고, 프랑스 매체가 국내 케이팝과 관련한 특별방송을 방영하거나 르몽드가 샤이니를 인터뷰하고, 슈퍼주니어의 노래가 대만차트 52주 1위라는 거짓말 같은 기록을 내고, 유튜브 조회수 상위를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죄다 점령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 작금에 한국의 아이돌이 가장 대접 못 받는 곳은 어쩌면 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는 가수다>(나가수)에 옥주현이 나온다고 했을 때 딱히 거부감이 없었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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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에 애초에 어울리지 않은 '아이돌'
물론 안다. 상업적 성공이 그 뒤에 있는 모든 것을 보장하진 않는다. 삼성의 제품이 세계에서 엄청나게 팔리고 미디어가 국위 선양한다며 광고한다고 해서 그것이 삼성의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실제로 한국의 아이돌은 분명 8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의 커다란 줄기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강탈했다. 거기에는 아이돌 음악자체가 과거 워낙에 소비적인 마인드로 그냥 찍어냈던 원죄가 작용한다. 컨베이어벨트에 대량생산하는 물량공세에 대중이고 가수고 버텨낼 재간이 어디 있나. 그때 대중들이 느꼈을 일종의 박탈감, 또는 상실감은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당연히 그 과정에는 스스로 음악을 멀리하며 무작위로 음원을 소비하고 버리던 대중, 그것을 확대 재생산해내던 미디어, 덮어놓고 찍어내던 기획사 등등 꽤 복잡한 배경이 있지만 일단 욕먹는 건 무대에서 립싱크하고 춤추던 아이돌이다. 그게 제일 간단하다. 그리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나가수>다. <나가수>의 성공은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치닫던 한국대중음악에 대해 묵혀진 대중의 열망이 터진 프로그램이다. 박탈되었다 생각했던 감상이 보상받는 프로그램이다. 때문에 <나가수>에 등장하는 가수들의 노래는 고맙고 때론 미안하다. 찾아줘서 고맙고 몰라봐서 미안하다. 처절하게 부르는 그 가수들에 열정, 그들이 그토록 처절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꽤 복잡한 배경이 있다지만, 대중들은 왜 저들이 저렇게까지 열심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이유를 박탈당한 90년대 이후 아이돌에게서 찾기도 한다. 가수 같지도 않은 것들이 헐벗고 나와서 무대를 장악하니, 임재범이 그토록 힘들게 살았나 보다. 그래서 안타깝다. 그래서 드라마는 더 탄탄해진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몰입은 소외됐던 자신의 삶과 겹쳐 보이며 강력하게 몰입되고, 잊어버렸다 되찾은 감성이기에 눈물이 난다.
또한 그래서 옥주현의 등장은 첫 시작부터 욕먹는 게 당연했다. 너무 당연하다. 예전부터 딱히 호감은 아니었던 옥주현의 등장을 반길 사람은 애초에 적었다. 그렇기에 루머가 돈다. 아무리 봐도 소설 같지만 사람들은 믿는다. 왜. 욕먹어도 쌌던 아이돌이고, 별로 호감형 가수도 아니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어쨌거나 걔는 물 흐릴게 뻔했다. 그런데 방송 보니 덜컥 1위했다. 거기다가 편집에서 어딘지 모를 옥주현에 대한 푸시가 있는 듯하다.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방송출연해서 노래한 것 밖에 없는데 이렇게 욕먹는 이유는 이러한 과정이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옥주현이 아이돌이라서 싫은 게 아니라, 사람이 싫어서 싫다는 의견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딱히 개인에 취향에 태클을 걸고 싶진 않으니까.
옥주현은 애초에 감정이입에 드라마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렇게 그녀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원죄를 가지고 등장했다는 드라마가 분명히 있다. 이게 그녀가 가진 가장 큰 드라마의 줄기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대중음악 발전의 저해요소로 꼽혔던 아이돌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재와 겹친다. 그렇기에 적어도 나는 옥주현이 1위를 했을 때 감정이입이 가능했다. 눈물은 안 났어도 분명 감동이 있었다. 아울러 이 지점에서 <나가수> 제작진이 왜 이런 드라마를 설득하지 않고 쓸데없는 발편집으로 옥주현의 신생 안티들을 만들어냈는지 의문이기도 하고.
'옥주현'을 옹호하는 팬이 없는 이유
알다시피 아이돌은 소모품이다. 소모품에 몇 년간 지속되는 말 그대로 '열성적인' 팬이 있을 리 없다. 단지 SM이니, JYP니, YG니하는 브랜드만 선호될 뿐이다. 현재 위기에 처한 옥주현을 감싸는 팬이 적은 이유는 그녀가 아이돌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크다. 그녀가 못나서 팬을 만들지 못한 게 아니라, 한국에서 아이돌이란 존재는 원래 그렇다. 세월이 지나고 시간에 밀려가면 한국에서 아이돌에 열광하던 10대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왜냐. 아이돌이니까. 그게 아티스트와 아이돌의 결정적인 차이다. 그래서 임재범은 10년 뒤에 <나가수>에 나와 다시 루머에 시달려도 방어해주는 팬들이 있을 것이다. 왜냐. 아티스트니까.
그래서 옥주현의 <나가수>의 등장은, 그 자체가 대중들이 가진 뿌리 깊은 아이돌에 대한 불신의 변화가 이뤄질까 하는 의문부호를 지닌 드라마를 가지고 간다. '옥주현이 감히..'가 '옥주현도 잘하네?'로 변하는 순간, 한국대중음악 발전의 저해요소로 지목됐던 아이돌 집단에 대한 관점이나 소모품이라는 평가에 변화가 생길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그녀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방송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면 갈수록, 그녀의 노래를 듣는 청중들은 더욱 냉정해질 공산이 크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이 프로그램이 콘셉트 자체가 '서바이벌'이기 때문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나가수>에 등장한 옥주현, 그리고 1위라는 결과가 '납득하기 어렵다'라는 수준에서, '아이돌이라고 색안경 끼고 볼일만은 아니다' 정도로 변화하길 기대한다. 10대 때부터 인생 저당 잡히고 하루 24시간 중에 2/3이상을 투자해서 나오는 아이돌이라는 소모품이,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으로 변화하고, 때론 한국대중음악 발전에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증거를 그녀가 남겼으면 하는 것이다. 좀 부담스런 요구일지는 몰라도 누가 그러더라. 위기는 곧 기회라고. 어쨌든 <나가수>라는 드라마에 새로운 여주인공 등장이다.
필자 정희웅 씨는 문화기획그룹 <가슴네트워크> 필진이며, 현재 <오마이뉴스>와 <네이버뮤직> '이주의 국내앨범' 선정위에 대중음악과 관련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필자의 블로그: kells.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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