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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저축은행, 치매 남편 불러내 채권 5억원어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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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저축은행, 치매 남편 불러내 채권 5억원어치를…"

부산저축은행 첫 공판, 피해자들 분노ㆍ통곡

"내 돈 내놔라, 이 도둑놈들아!"

재판이 끝나고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 회장, 김양 부회장, 김민영 은행장 등 피고인들이 퇴장하기 시작하자 이날 재판을 방청하던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고함을 내질렀다. 일부는 피고인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으려다 법원 경위와 공익근무요원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민사대법정에는 불법·특혜 대출 등 7조 원대의 비리를 저지른 혐의(횡령·배임 등)로 구속 기소된 부산저축은행 그룹 관계자 21명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이날은 본격적인 공판에 앞서 검사와 피고인의 주장 요지 등을 확인하는 공판 준비기일이었다.

피해자들 "아무리 돈이 좋아도" 변호사에게도 항의

이날 재판에는 부산저축은행에 맡긴 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대거 몰렸다. 부산에서는 총 52명이 이날 새벽 4시 반부터 버스를 빌려 올라왔다고 했다. 이 때문에 200석에 달하는 민사대법정 방청석이 꽉 찼다. 재판 와중에 판사와 법원 경비의 제지에도 피고인들에게 소리치며 항의하던 이들은 공판이 끝나고 피고인들이 빠져나가자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특히 곤욕을 치른 것은 피고인의 법정 대리를 맡은 변호사들이었다. 이날 재판에는 대형로펌의 변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 특히 <PD수첩> 항소심 재판장을 지내고 올해초 퇴직한 이상훈 변호사나 공무원 시국선언 사건에서 재정합의부 재판장이던 정한익 변호사 등 최근 법복을 벗은 전관 변호사들이 눈길을 끌었다. 박연호 회장과 김양 부회장, 김민영 부산저축은행장 등은 법무법인 바른이나 화우 등 대형로펌의 변호사를 세웠다.

피해자들은 법정에 변호사들이 남자 "변호사들 이리 나와봐라",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그들이 도둑놈인 걸 모르냐", "우리 돈 가져다가 비싼 변호사들 샀냐"고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한 70대의 남성 피해자는 "있는 놈들은 돈도 미리 빼가고 변호사도 사고. 그게 다 우리 돈이다. 나같은 늙은이가 죽어야 알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당황하던 변호사들은 법원 경비 등이 피해자들을 막는 사이 재판장 출입문으로 퇴정했다. 몇몇 피해자들은 그 자리에 주저않거나 아예 바닥에 누워 통곡하기도 했다.

▲ 이날 재판에서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거듭 호소했다. 사진은 피해자들이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본점 모습이다. ⓒ뉴시스

박연호 회장 "횡령 혐의 외에 모두 부인한다"

이날 공판에서 박연호 회장은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이날 재판에서 박 회장의 변호인은 "공소사실 가운데 저축은행 자금 44억 5000만 원을 횡령한 혐의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부인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박 회장에 대해 횡령 혐의와 함께 △저축은행 대주주가 경영하거나 사실상 지배한 특수목적법인(SPC)에 4조 6000억원 상당의 신용을 공여한 혐의 △1조 3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하거나 이를 근거로 1000억원 상당을 부정거래한 혐의, △3600억원이 넘는 부당대출로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을 제기했다.

박 회장과 함께 기소된 김민영 부산저축은행장, 김양 부산저축은행 등 나머지 피고인들은 대체로 공소사실은 인정했지만 세부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및 법률적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자들 "피가 거꾸로 솟는다"

재판을 방청하던 피해자들은 답답한 듯 연신 가슴을 두드려댔다. 부산저축은행 후순위채권 2000만 원을 갖고 있었다는 한 피해자는 "분노라는 표현도 맞지 않다. 그냥 속이 계속 폭발한다"며 "후순위채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없는 사람들이다. 돈이 없으니까 그 이자가 아쉬워서 후순위 채권을 샀던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은행에서는 '후순위채권이 망하려면 나라가 망해야 한다'면서 안전하다고 했고 통장에도 '원금보장된다'는 말은 크게 쓰여져 있고 예금자보호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은 깨알만하게 쓰여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피해자는 "은행 직원들도 처벌해야 한다"면서 "나는 500만 원만 사려고 했는데 직원들이 '아는 사람들은 10억~20억 씩 한다'고 속여서 채권을 팔았다"고 말했고 또 다른 피해자는 "은행에서 집으로 전화해서 2007년에 치매 판정을 받은 남편을 불러내 내 통장과 아들, 딸 통장을 가져다 5억 어치 후순위 채권을 사게 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부산저축은행이 사전 인출 해준 것에 대해서는 "피가 거꾸로 솟더라"라며 "흉악범만 사형시켜서는 안된다. 사실상 우리의 생활을 죽인거나 마찬가지인 부산저축은행 경영진도 사형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법원은 분노한 이들 방청객과 피고인들 사이의 충돌을 우려해 '법정보안계획'을 세웠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민사대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한편 기존 법정 경호 인력 외에 경위 2명과 공익요원 20명을 추가로 투입해 피고인과 변호사 사이에 일렬로 세워 충돌을 막았다.

법원은 향후 재판에서는 피고인 호송 등의 문제로 형사대법정을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재판 기일은 6월 9일 오후 2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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