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비슷한 현상이 보육 정책에도 나타난다. 이명박 정부는 '만5세아 공통과정'을 도입을 비롯해 '만5세아 전액지원 대상 확대', '공공형·자율형 어린이집' 등 적지 않은 보육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근본적인 공공성 확대 정책은 없이 '보육료 지원' 수준에 머문다면 천정부지로 뛰는 보육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재정 부담만 안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률은 25~30%로 일반 소비자 물가 상승률(16.1%)의 두 배에 육박했다. 그동안 유치원 납입금은 무려 44.2%가 올랐다. 정부가 보육 정책에마다 붙이는 "공공성 확대", "다양성 보장"이라는 모토와 상반되는 결과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은 23일 서울 영등포 여성미래센터 소통방에서 '이명박 정부 보육정책 이것이 문제다'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가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국공립 보육시설은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는 데다 오히려 보육료 상승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편집자>
"공공이면 공공이지, 공공형은 뭐?"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김종해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공형 어린이집', '자율형 어린이집'과 같이 정부가 이름이 이들 정책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형 어린이집'을 전국적으로 확대한 것과 비슷한 정책인 '공공형 어린이집'이다. 민간 어린이집을 선정해 운영비를 지원하는 이 사업을 두고 정부는 "새로운 유형의 어린이집으로 국공립 어린이집 수준의 공공 보육인프라로 기능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김종해 교수는 "과연 보육 서비스에 필요한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부가 생각하는 '공공성'의 개념은 무엇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보육 서비스에서 가장 적합한 것은 (국공립 어린이집처럼) 정부가 직접 제공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정부는 이러한 역할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소위 '공공형 어린이집'이 공공 보육시설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보다 많은 재정을 지원한 서울형 어린이집의 경우에도 부분적 효과 외에 보육 서비스의 내용이나 질적 측면, 보호자의 보육비 부담 등은 개선 효과가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통 '공공형'이라고 하면 국공립 어린이집을 떠올리지 않겠느냐"며 "정책상 국공립과 법인, 장애우 보육시설 등을 '정부 지원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지금 정부의 '공공형 어린이집' 정책은 '민간 보조형'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들 어린이집에 '민간 시설'이라는 개념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이명박 정부 보육정책 이것이 문제다' 토론회. ⓒ프레시안(채은하) |
특히 문제는 정부가 내놓은 소위 '공공형 어린이집'에서 보육 서비스 질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김종해 교수는 "재정 지원이 서비스 질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효과적인 관리·감독 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며 "이번 정책에서는 '평가 인증제를 연동하겠다'는 것 외에 현재 수준보다 더 높은 관리 감독 방안은 나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문제는 민간 어린이집의 성격이 무엇이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어린이집은 정체성이 분명치 않은 상태"라면서 "사회 통념이나 세금이나 각종 비용 감면 등의 법규 상으로는 비영리 시설의 성격이 많지만 운영 방식이나 시설장(원장)의 의식은 영리형에 더 가깝지 않은가"라고 짚었다.
"자율형 어린이집? 솔직히 '영리형' 어린이집이라 밝혀라"
보육료 수납한도액의 1.5배 범위 내에서 어린이집에서 자체적으로 보육료를 정하도록 상한선을 완화한 어린이집인 '자율형 어린이집'도 이름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종해 교수는 '자율형'이라는 말보다는 '영리형'이라는 말이 더 본질에 부합할 것"이라고 짚었다. 정부는 "부모의 수요에 맞추어 다양화, 특성화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정책 효과로 내세웠지만 '다양성'과는 맞지 않는 방향이라는 것.
그러나 김 교수는 "과연 정부가 말하는 '다양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른 서비스 이용'을 다양성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회서비스의 다양성이란 '질은 유사하나 필요와 특성에 따라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부에서는 '보육료 자율화로 선택과 경쟁에 따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린이집은 시장 방식에 따라 선택 가능한 구조가 아니다"라며 "보호자로서는 정보도 불충분할 뿐더러 아이를 맡긴 입장에서 시설장에 비해 약자의 위치에 처하는 경우가 많고 '집에서 얼마나 가까운가' 등의 조건에 크게 얽매이기 때문에 사실상 선택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에서 논리적 근거로 '고급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대는 것을 두고도 "상위 10~20%를 위한 정책이 과연 우선 순위를 가질만큼 중요한지 의문"이라며 "대부분의 시민들이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한다면 국공립 서비스의 확대를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백선희 교수는 "국공립 보육시설에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시설장이 영리추구를 하지 않는다는 점과 민간은 시설간 차이가 큰 반면 국공립에서는 시설간 편차가 적기 때문에 부모가 믿고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크다"면서 "이는 단지 서비스의 '질'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고 짚었다.
"만5세 전액 지원, 이미 나온 정책 뒤늦게 실행"
한편 정부가 최근 내놓은 '만5세 통합과정 도입', '만5세 보육료 전액 지원 대상 100% 확대'를 두고도 홍보성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만5세 교육이 사실상 의무교육이 된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벌였다.
김 교수는 "제1차 중장기 보육계획의 현 정부 수정판인 아이사랑플랜에 의하면 2011년부터 만5세아 전액 지원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도록 되어 있다"며 "연말에 새해부터 바뀌는 제도 정도로 발표될 내용을 1년 늦게 시행하면서 새로운 계획처럼 발표하는 의도는 무엇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육 비용에 대한 정부의 재정 부담 확대는 바람직하나 실제로 보호자의 비용 부담 완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특기적성비(특별활동비)의 문제 등 공공형이나 영리형의 시설에서도 적절한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의 재정 지출만 증가하거나 보호자의 비용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5세아 통합과정'을 두고도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김성희 서울시 서대문구 구립어린이집연합회장은 "표준 보육과정이 전국 공통으로 보급된 것이 2005년 인데 또다시 통합 과정을 만들겠다는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어떤 내용으로 교육 과정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5세아 공통과정'이 시행되면 어린이집은 이원화된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며 "어린이집으로서는 오전에는 공통과정을 진행하고 오후엔 '종일반'으로 보육을 해야하기 때문에 교과부와 보건복지부의 이중 통제를 받아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백선희 교수는 "과연 보건복지부가 향후 보육 정책과 현장에 미칠 영향은 고민했는지 의문"이라며 "분명히 보육 교사와 유치원 교사간의 갈등이 생길 것이다. 지금은 보육 교사 자격증을 가진 이가 연수를 받으면 5세반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하지만 임시적인 조치이고 차츰 유치원 교사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외에도 보육 시설 내부의 혼란 뿐 아니라 영아 교육 등 보육 비용의 문제도 생길 것"이라며 "너무 졸속으로 통합하는 것 아닌지, 정말 방향성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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