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5년간 완성을 미뤄왔던 취학 직전 1년 간의 유아 교육·보육의 선진화를 실현하려는 것"이라며 "정부가 부담하는 의무교육이 사실상 10년으로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고 홍보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실상 의무-무상교육"이라는 식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만 5세 자녀를 둔 가정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번 정책이 과연 정부가 홍보하는 것처럼 '의무 교육의 확대'가 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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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육 시설'은 안짓고 지원금만 늘리나"
이번 정부 대책의 핵심은 5세 미만 아동의 학비 지원의 확대다. 기존에는 소득 하위 70%에만 학비가 지원되어 왔으나 내년부터는 소득에 관계 없이 전 계층으로 확대하겠다는 것. 지원 금액도 올해 월 17만7000원에서 내년 20만 원으로 늘리고 2013년 22만 원, 2014년 24만 원, 2015년 27만 원, 2016년 30만 원 등으로 매년 단계적으로 높인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가 '전액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닌만큼 무상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전국 사립유치원의 평균 교육비는 급식비와 현장학습비, 특가활동비 등을 제외하고 사립유치원이 월 31만3000원, 사립 어린이집이 24만8000원 수준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2016년에야 현 기본 보육료와 비슷한 수준이 되는 것.
게다가 많은 학부모들이 부담을 호소하는 추가 비용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금도 급식비와 현장학습비, 특가활동비 등을 합하면 보통 40만 원 선이 된다. 정부는 '사실상 의무교육의 효과를 기대한다'고 하나 지금까지의 정부 지원에도 추가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한 저소득층의 경우는 역시 혜택을 보기 어렵다.
김종해 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민간 중심의 보육 시스템을 바꾸지 않은 채 지원만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학부모의 부담을 줄인다는 목표 자체는 바람직하나 민간 시설 중심의 현 구조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보육료 지원을 강화한다고 해서 큰 차이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현재도 많은 민간어린이집이 공식 보육료 외에도 적게는 몇만 원에서 많게는 보육료와 맞먹는 수준의 비용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자율형 어린이집으로 보육료 올리고, 지원금도 올리고?"
게다가 보건복지부가 얼마전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자율형 어린이집의 경우 보육료 자체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던 차다. 자율형 어린이집은 보육료와 현장학습비, 특가활동비 등을 각각 현재의 1.5배 범위 안에서 지자체별로 인상할 수 있게한 것으로 강남구의 경우 최대 70만원 선까지 보육료가 오를 수 있다는 분석.
이 경우 자율형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5세 유아의 경우 이중 3분의 1 가량은 정부 지원으로 충당하게 되는 셈.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 지원금은 시설에 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받는 지원금이라 아이가 자립형 어린이집을 가더라도 받는 지원금은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에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민간 시설만 배부르게 하는 정책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2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린 '만 5세 보육-교육,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게시물에는 냉소적인 댓글이 많이 달렸다.
한 누리꾼(라임향기)는 "30만 원 넘는 유치원비 이제 50만 원으로 인상되겠네요"라며 "그만큼 유치원비 인상될 거 뻔하고 20만 원 지원나온다니 학부모 심리 이용해서 더 비싼 옵션 수업 넣어 엄마들 경쟁심리 부추길 거 뻔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누리꾼(하모니카)은 "무슨 국민 세금으로 20~30만 원씩 지원해서 또 부모가 이것저것 더 보태서 유치원을 보내느냐"며 "국민 혈세로 유치원만 밥먹고 살게 하려고 하느냐. 차라리 학교 병설 유치원을 보내면 아이들에게 더 교육적일 것 같다"고 썼다.
'5세아 공통 교육과정 신설', 교육의 질이 보장된다?
한편 정부는 유치원 교육 과정과 어린이집 표준 보육과정을 '만 5세 공통 과정'으로 일원화해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7월까지 공통과정을 마련해 내년 2월 담당 교사에 대한 연수를 실시하고 같은 해 3월 각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공통과정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제도 도입에 따라 만5세 유아교육, 보육의 질이 한단계 높아질 것"이라며 "정부가 책임지는 의무 교육이 사실상 10년으로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5세 유아와 학부모가 현장에서 느끼는 교육의 질이 크게 달라질지는 지켜봐야할 문제.
김종해 교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각각 운영해오던 교육, 보육과정과 얼마나 달라질 지 의문"이라며 "만약 보육료를 전액 지원한다고 해도 그게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 등에 투자가 되어야 교육의 질 개선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보건복지부는 "모든 만 5세아 교육·보육비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지원함에 따라 그간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5세아에게 지원되던 보육예산을 보육교사 처우 개선 및 어린이집 현대화 등에 우선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다.
교육과정 '획일화'? 안전성 확보 방안은?
또 '썩은 칫솔' 논란에서도 보이듯 그간 학부모들이 어린이집에 대해 교육 과정보다는 주로 안전성이나 부실 관리 등에 더욱 불안해 했던 것을 생각하면 단순한 교육 과정 통합은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번 정책은 보육시설의 질적 향상을 꾀하기 보다는 시설에 대한 지원을 양적으로 늘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자체가 낮은 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에 대한 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과연 요즘 학부모들이 획일화된 공통 교육을 얼마나 반길지도 의문"이라며 "실제로 부모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유치원, 어린이집 어디에 아이를 맡길 것이냐' 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보육형태에 대한 수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각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통합 교육과정'이 적용된다고해서 만 5세아 교육이 실제 '의무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 역시 "반드시 모든 유아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유행인 소위 '영어 유치원', 유아 영어학원 등의 유아 사교육 시장을 줄이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만 5세가 취학연령으로 인식되면서 취업 전 사교육 시장의 확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만 3세 자녀를 둔 엄마인 A씨는 "5세부터 소위 '의무교육'을 시킨다면 3~4세를 대상으로 한 선행학습이 각광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얼마전에 자율형 어린이집도 허가했는데 오히려 취학전 유아 사교육의 새로운 붐이 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라더니…선거 참패하고 급했나"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만 5세아 통합 교육정책'은 '지원 확대'의 정책이지만 온라인상의 여론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그간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시 등이 무상급식에 강하게 반대해온 것을 꼬집는 이들이 많다. 한 누리꾼(RianMaker)은 보건복지부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게시물에 단 댓글에서 "필요는 하다. 그런데 이것도 오세훈 말을 빌리면 망국적 포퓰리즘 아니냐"고 말했고 다른 누리꾼(김게바라)도 "복지 포퓰리즘 아니냐? 왜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고 꼬집었다. 정부가 이번 정책을 내놓은 것을 지난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여파로 보는 이들도 있다. 한 누리꾼(나무꾼)은 "정부가 내년 총선에 불안한 모양"이라며 "선심성 정책 진정성 없어보인다, 4대강 그만두고 그 재원으로 하면 믿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해오르미)도 "선거 참패 후 민심 잡아보려는 립서비스는 아니길 바란다"고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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