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경상북도 구미시 고속버스터미널. 시내로 가기 위해 잡아탄 택시 기사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수도 나지 않았는데 둑은 터졌고, 가뭄도 아닌 시기에 물이 끊겼다. 손이 빠른 사람들은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썼고, 그조차 여의치 않았던 이들은 생수통을 몇 통씩이나 변기에 들이부어야 했다. 한마디로 '물난리'였다.
구미-칠곡 일대의 주민 50만 명이 단수 피해를 입은 '악몽의 5일'이 지나자 구미시민들은 차분함 속에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 '아직도 복구 중'. 10일 경북 구미시 해평면 구미광역취수장 앞 낙동강에서 한국수자원공사가 중장비를 동원해 터진 임시 물막이를 복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러나 불신은 남았다. 사고가 난 구미 해평취수장 가물막이는 4대강 공사로 수위 변동이 심해지자, 적정 수위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09년 설치된 것이었다. 거기다 강바닥을 6m 이상 파내는 준설로 낙동강의 물살이 빨라지면서, 가물막이용으로 설치된 200여m의 시트파일(얇은 철로 만든 가림막) 가운데 20m가량이 무너져 내렸다. 공기를 맞추기 위한 '속도전' 공사에, 무리한 준설이 낳은 '예고된 사고'였다.
"빨래는 물론 설거지도 못해 일회용 그릇, 젓가락을 사다 썼어요. 쌀 씻을 물도 없으니 식사도 인스턴트식품으로 떼우고…. 하루 이틀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곧 (물이) 나올 거라면서 안 나오니까 불신만 커지는 거죠. 학교도 급식이 안 되니까 애들을 조퇴시켰는데, 맞벌이 부모들이 고생을 했죠."
봉곡동 한 마트에서 만난 주부 정모(37) 씨는 5일간 계속됐던 단수에 불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주부 홍모(36) 씨가 "우리 집은 변기 물을 내리려고 생수 몇 통을 들이부었는지 모른다"며 거들었다.
홍 씨는 "사실 4대강 사업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고 나니까 세금만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차라리 그럴 돈으로 애들 양육비나 지원해주지…"라는 말을 남겼다.
번번한 국책사업의 실패는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던 TK(대구-경북) 민심까지 바꾸고 있었다. 경북 일대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과학벨트 유치 무산 등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고, 4대강 사업에 큰 저항이 없었던 공단도시 구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원평동 구미중앙시장에서 만난 개인택시 기사 한모(68) 씨는 "구미 사람들이 4대강 사업에 별 말을 안했더니 정부가 하는 거면 다 찬성하는 줄 아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면서 "이번 (단수) 사태로 다 돌아섰다"고 말했다.
덤프기사, 버스기사 등 운송업에만 평생을 종사해왔다는 그는 "4대강 해서 결국 배 띄우자는 건데, 그게 요즘 세상에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요즘 배 띄워 물류하는 나라가 어디있나. 구미같은 공단 도시엔 차라리 밀양 신공항이 필요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은 '부글부글', 시는 '수공 탓'만
지역의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구미 출신 현역 한나라당 의원들의 긴장감도 남다르다.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구미 갑)까지 "단수 사태로 4대강 사업에 대한 구미 여론이 180도 돌아섰다"라고 성토할 지경이다.
그는 4대강 사업에 있어서는 사실상 정부와 '한 몸통'이나 다름없는 수자원공사 사장의 사퇴를 앞장서서 주장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이 4대강 사업 예산을 강행처리하던 2009년 당 정책위 의장을 지낸 대표적인 '4대강 찬성론자'다.
한나라당 출신 남유진 구미시장 역시 16일 수자원공사 김건호 사장의 사과를 받은 직후 직접 법원을 찾아 수공을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들의 손끝은 모두 '4대강 사업'이 아닌 '수공'을 향해 있다. 구미시민 대부분이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상황에서, 단수 사태를 수공의 '과실'로만 축소하고 있는 것.
김수민 구미시의원(무소속)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수공은 깃털에 불과하지만, 시나 한나라당 입장에선 수공 과실로 정리해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을 차단하고 싶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구미YMCA 이동식 사무총장 역시 "2009년 4대강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해평취수장 취수관로가 준설 구역에 포함돼 이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면서 "무리한 준설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로, 이번 일을 계기로 4대강 사업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지난해 8월에 도개면 일대에서도 준설 때문에 농업용 취수시설의 수위가 떨어져 농민들이 피해를 본 일이 있었다"면서 "4대강 사업을 진행한 정부와 수공, 시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구미YMCA 등 이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연대모임인 구미풀뿌리희망연대는 지난 14일부터 구미시 및 수자원공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기 위한 시민소송인단을 모집하고 있다.
"과학벨트 논란 와중에 단수사태 상징적…'자치없는 분권'은 그만" [인터뷰] 김수민 구미시의원 "가뭄도 아닌데 웬 물난리입니까. 구미시장과 일부정치권이 수자원공사에 배상 책임을 묻겠다지만, 궁극적으로 4대강 공사 자체에 대해 따지고 반대하지 않는다면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단수 사태 나흘째를 맞은 지난 11일, 김수민 구미시의원(무소속)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사상 초유의 단수 사태에도 구미시와 여권 모두 사태의 '진범'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지역 시민단체들과 함께 정부를 향한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진보정치와 보편적 복지를 내걸고 출마해 경북지역 최연소(27세) 시의원으로 당선된 그를 18일 구미시의회에서 만났다. <편집자> 프레시안 : 단수 사태 이후 4대강 사업에 대한 여론은 어떤가.
지난해에는 낙동강 준설토의 황사 바람으로 주민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고, 지금도 농지에 쌓인 막대한 양의 준설토 때문에 반발이 있는 실정이다. 특히 농지리모델링 사업지구 인근의 공장들에선 준설토 바람으로 인한 고장 등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썩 자본친화적이지도 않은 개발인 셈이다. (웃음) 프레시안 : 단수 당시 주민들의 목소리는 많이 들었나. 김수민 : 지역구를 돌아다니다보면, 주민들이 먼저 4대강 사업 이야기를 꺼낸다. 물 공급 중단 사태가 5일까지 길어졌는데, 언론 보도도 잘 안되다 보니 '혹시 보도 통제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프레시안 : 시에서는 4대강 사업과의 연관성을 어떻게 이야기 하나. 김수민 : 물론 시에서는 (단수 사태와) 4대강 사업의 연관성을 부정한다. 구미시가 수공을 상대로 싸울 수는 있겠지만, 4대강 사업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지 않겠나. 문제의 본질이 4대강 사업에 있다는 것은 주민 대다수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시 입장에서는 만만한 게 수공인 것이다. 수공이나 정부나 4대강 사업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는데, 그런 논리라면 4대강 공사의 본질을 본인들이 몰랐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준설로 유속이 빨라지는 것에 대한 대비 자체가 없었다는 게 아니겠나. 문제는 우기다. 지역구에도 4대강 공사 현장이 있는데, 벌써부터 비 올 때 보면 난리도 아니다. 프레시안 : 과학벨트 등 국책사업의 혼란으로 대구경북지역 민심이 정부에 등 돌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구미 분위기는 어떤가. 김수민 : 구미에서도 지난주 결의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그런 종류의 국책사업이 민생경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지역에서 전혀 설득이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 과학벨트, 신공항.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지역에선 지역균형발전의 논리를 들며 유치에 열을 올리지만 그 자체로 국책사업의 의존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그 세 가지는 '자치 없는 분권', '민생 빠진 개발'인 셈이다. 지역의 주류정치권과 지역자본들은 달려들지만, 정작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상황이 아니다. 정작 혁신학교나 무상급식 등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전국에서 가장 뒤떨어진 실정이다. 중앙 정부가 던지는, 소위 '떡밥'을 유치하는 데만 열을 올리던 지역사회가 결국 민생과 생활의 근간이 되는 상수도에서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저는 과학벨트 논란이 있던 와중에 단수 사태가 터진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주류 정치권은 국책사업을 유치해 지역경제가 성장하면 표심도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밑바닥 민심에선 더 이상 그런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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